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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53화 (153/182)

153화

박세아의 키스는 무척이나 서툴렀다.

무작정 입을 맞춰 빙글빙글 돌리는 것이, 딱 봐도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한 티가 절절 흘렀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겐 최선이었다.

눈은 질끈 감은 채, 여전히 떨고 있는 박세아의 몸.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다가선 것은 그를 위해서였다.

‘이렇게 해야 다가오기 편하실 거야.’

그녀가 나름대로 배려를 하며 입을 맞추고 있을 때, 태정은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얼른 밀어내야 하는데, 무의식의 구조가 드러나며 어느새 자신이 그 미로의 통로 속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밖에서만 봤지 이렇게 내부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는 쉽사리 그녀를 떼어 낼 수가 없었다.

‘그래. 여기까진 괜찮아, 더 가지만 않으면.’

무의식의 미로 속에 들어선 태정은 무작정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

반사적으로 그가 제라드를 호출했다.

‘이봐, 제라드. 엇?’

-예, 주인님.

‘이거 뭐야? 여기서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은데?’

-잠재의식의 개방되어, 의식으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 뭐 아무튼. 여기서 스킬은 사용할 수 없나?’

-이곳은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 세계라 시스템적인 스킬은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럼 계속 이렇게 걸어서 돌아다녀야 해?’

-하고자 하는 것을 강하게 의식해 보십시오. 빠르게 달리고 싶다. 날고 싶다. 이동을 하고 싶다. 어떤 것이든 괜찮습니다.

‘그래?’

제라드의 말에 태정이 하나의 생각을 깊게 의식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걷고 있던 그가 허공을 밟으며 화살같이 쏘아졌기 때문이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기존에 타던 블라스터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거 괜찮네. 더 빨라질 수도 있는 건가.’

-의식을 강하게 하면 할수록 원하는 것에 가까워질 겁니다.

‘그럼 카이저의 방을 찾고 싶다고 의식하면? 바로 갈 수 있나?’

-그건 현재의 능력으론 불가능합니다.

‘일단 그럼 찾자.’

속도는 그가 원하면 원할수록 빠르게 올라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통로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달리고 날고 쏘아져도 똑같은 배경.

나중에는 이게 앞으로 나아가곤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한편 내면의 자신이 통로를 나아가고 있을 때, 침실에서는 난리가 난 상태였다.

“하아. 흐응. 음.”

남녀의 뜨거운 숨소리가 끈적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몸은 달아오를 대로 올라 둘 모두 시뻘건 난로가 된 상태.

하지만 진도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어떡하지?’

그를 위해 먼저 다가선 박세아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생각했다.

벌써 입맞춤만 20분째.

뭔가 있어도 있었을 시간인데, 태정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숨만 거칠게 쉴 뿐, 입만 벌린 채 가만히 있는 그의 몸.

연애는 해 보지 않았지만 보고 들은 것이 있는 그녀였기에, 지금의 상황은 박세아를 당황케 하기 충분했다.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 모르겠어. 여기서 뭘 더 해야 할지.’

그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 다가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멈춰야 하는 것일까.

더 가야 한다면 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것일까.

몸도 뜨거운데 머리까지 뜨거워지는 박세아였다.

‘그래. 내가… 움직여야 돼. 가만히 계시는 걸 보면 내가 먼저 움직이길 기다리고 계시는 거야.’

장고 끝에 그녀가 진도를 빼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혀에 경련이 오다 못해 마비가 올 지경.

그녀의 가느다랗고 작은 손이 태정의 가슴을 쓸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뭐, 뭐 하는 거야, 얘?’

정신없이 통로를 훑고 다니던 태정이 몸의 변화를 느끼곤 당황했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부드럽고 따뜻한 그녀의 손.

그 방향이 점점 아래를 향하자, 결국 그가 박세아의 손을 잡았다.

“하지 마.”

“네?”

“하지 말라고.”

“아…….”

용기 내 움직인 손이 그에 의해 저지를 받자,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너무 성급했던 것일까.

밀려드는 창피함에 급히 몸을 빼려는데, 그의 팔이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보, 보스?”

“이대로 잠깐만 있자.”

“수, 숨이…….”

“참아.”

“네…….”

숨을 쉬기 불편할 만큼 강한 포옹이었다.

하지만 눈을 감은 그녀의 표정만큼은 편해 보였다.

‘보스의 품은 정말 따뜻하구나.’

의식 세계의 박세아를 제압한 태정은 그 상황에서도 계속 무의식의 공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냐.’

한참을 달리기도 잠시.

곧 그의 눈에 특이한 점 하나가 포착됐다.

통로의 색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 색이 바랜 묵색으로, 거기서 또 한 번 짙은 회색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방에서 빛이 쏘아지며 그는 어떤 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들어와 있었다.

암석형 동굴에서 갑자기 현대식 구조물이 눈에 들어오자, 태정은 이게 순간 꿈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만큼 변화는 빨랐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바뀐 결과물에 대해선 이질적이었다.

마치 게이트를 통과해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는 거기서 첫 번째 문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문은 로봇 기지에서 본 차단벽처럼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가 다가서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서서히 오픈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볼 수 있었다.

20여 기의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마르시-1을 말이다.

태정이 제라드를 향해 물었다.

‘얘내들 뭐야?’

-이곳이 바로 주인님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임시 저장고입니다.

‘그럼 이게 그때 네가 말했던…….’

-맞습니다. 방이 공유되었으니, 이제 주인님께선 저를 통하지 않으셔도 의식만으로 저장고의 로봇들을 자유자재로 꺼내실 수 있습니다.

‘그건… 좋긴 한데.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천신병이 나와야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로봇을 꺼낼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제라드가 있는데, 굳이?

기대에 비해선 영 신통치 않은 성과였다.

그런 그의 귓가로 제라드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이건 실망이 아니라 기뻐하셔야 합니다.

‘어째서?’

-정상적인 루트였다면 이곳까지 오는 데도 1년이 넘게 걸리는 일입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대로 무의식의 공간은 굉장히 넓습니다. 이다음 단계인 초의식에 이르러도 전부를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광활한 규모를 자랑하죠. 그 넓은 공간 안엔 각자의 독립된 장소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거야. 핵심만 말해. 지금 몸이 좀 이상해… 머리가…….’

-기물 소환의 방. 현재 주인님께서 들어와 계신 공간입니다. 그 셀 수도 없이 많은 방 중 이곳이 특정된 겁니다. 그러니 이 공간만 잘 살펴보셔도 그를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 그거 듣던 중 다행… 그런데 몸이 좀… 왜 이러지? 너무 뜨거워.’

제라드의 말을 듣고 있던 태정은 마치 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증기방에 들어간 것처럼 숨을 쉬기가 힘들고 머리는 무거워 당장이라도 고개를 땅에 처박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

-밖에 계신 주인님의 몸이 한계에 이르신 것 같습니다.

‘몸이 한계에 이르다니?’

-주인님은 지금…….

이후 제라드의 말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의식이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뒤이어 그의 눈이 점점 감기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눈이 감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야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주변이 어둠으로 잠식되고, 이내 2개의 의식이 하나의 의식으로 겹쳐졌다.

동시에 끝없는 졸음이 밀려들었다.

.

.

.

“보스?”

‘보스? 이건 박세아가 나를 부를 때 하는 소리인데…….’

“보스, 보스 정신 좀…….”

‘어디서 부르는 거지?’

그녀의 부름에 태정은 당장이라도 눈을 떠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눈꺼풀의 무게가 천근만근이었다.

아무리 뜨려 해도 미동도 하지 않는 눈.

다른 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미역 줄기처럼 잔뜩 늘어진 몸.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박세아의 목소리는 희미하지만 계속 들리고 있었다.

“보스, 정신 좀… 봐요. 정신 좀… 제발!”

절규하듯 외치는 그 소리에 늘어져 있던 태정의 몸이 꿈틀거렸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그 움직임으로 인해서 마치 속박되어 있는 것 같은 그의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서서히 떠진 그의 눈.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자신의 배 위에 올라타 닭똥 같은 눈물을 쏟고 있는 박세아였다.

“너… 뭐 하냐?”

그의 느릿한 물음에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던 그녀가 하던 것을 멈추곤 그의 양쪽 뺨을 만졌다.

“정신이 돌아오신 거예요?”

“그럼 내가 언제 정신이 나간 적이 있었나.”

“흑. 흐윽. 잘못되신 줄 알았다구요.”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우는 그녀.

태정은 그녀가 왜 저러는지 이유를 몰랐지만, 일단은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저, 미안한데. 나중에 울고 좀 나와 줄래? 무겁다.”

“아! 죄송해요.”

그녀가 눈물을 닦으며 그의 배 위에서 내려왔다.

“으으. 몸에 힘이 하나도 없네.”

땅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는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운 태정은 앉아서 주변을 바라봤다.

별다를 것 없는 자신의 방 안.

이어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띵동! 띵동! 띵동!

그가 박세아를 바라봤다.

“뭐야? 이 시간에?”

“제가 의료 팀을 불렀어요.”

“왜?”

“숨을 쉬지 않아서요.”

“내가?”

그 짧은 대화 사이에도 초인종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띵동! 띵동!

“괜찮으니까. 아무 일 없다고… 아니다. 내가 말할게 그냥.”

태정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매우 낯선 느낌이 그의 감각기관을 타고 전해졌다.

그 진원지는 하체였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 사이 느껴지는 굉장히 불쾌한 기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설마.’

태정이 방을 나서다 말고 멈칫하고 서자, 박세아가 침대에서 내려와 얼른 그를 부축하려 했다.

그런 그녀를 그가 한 손으로 저지했다.

“오지 마, 난 괜찮으니까. 아무래도 네가 나가 봐야 할 것 같다. 몸에 힘이 없네.”

“그럼 앉아 계세요. A급 팀이라 금방 봐 주실 거예요.”

“아니!”

“네?”

“난 멀쩡해. 그냥 돌아가라 그래.”

“그래도…….”

“부탁이니까, 그냥 돌려보내.”

태정의 단호한 말에 그녀가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그것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라보고 있던 그가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으로 속옷 하나를 꺼내 냉큼 욕실로 들어갔다.

“뭐야 이게?”

그가 손에 들린 축축한 천쪼가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조금 전까지 그가 입고 있던 하체 가리개.

이게 왜 촉촉해진 것일까.

사뭇 진지해진 태정이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

“박세아,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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