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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48화 (148/182)

148화

다음 날.

태정은 통합 훈련소에 들러 교관을 만났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대장님.”

“검술을 좀 배워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검술이요? 대장님께선 클래스 특성이 원거리형 딜러 아니셨습니까?”

“근접도 좀 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검술 말고도 다른 병기술이나 격투술 등 근접전에 필요한 건 뭐든 다 배워 보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유. 그럼요. 제가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힘닿는 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실례가 안 된다면 레벨 테스트를 좀 해 봐도 되겠습니까. 정확한 실력을 알아야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해서…….”

“물론이죠. 그냥 편하게 훈련생 교육시킨다 생각하시고 대해 주세요.”

잠시 후.

“어떻습니까.”

땀에 흠뻑 젖은 태정의 물음이었다.

그 말에 교관이 난감하다는 듯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게…….”

“그냥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게 저한테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요.”

“그럼 감히 한 말씀드리자면, 그… 기초부터 배우셔야 될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다고 감이 없으신 건 아니고. 센스는…….”

“굳이 포장해 주려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봐도 엉망이었는데요, 뭐.”

“그런데 왜 스킬은 사용하지 않으신 겁니까. 보통 보조 스킬은 운용을 하면서 하는지라.”

“처음부터 스킬에 의존해 버리면 놓치고 가는 부분이 생길 거 같아서요. 기초부터 차근차근 몸에 전부 익힌 뒤에 적용을 시켜 보려 합니다.”

“아. 그런 깊으신 뜻이…….”

“그 정도까진 아니고, 아무래도 제가 사용하는 스킬은 다른 딜러들과 다르게 의존적 성향이 강해서. 운용을 해 버리면 거의 본능에 움직이게 됩니다. 그럼 배우는 것 대부분이 의미가 없어지겠죠.”

“혹시 한번 견식을 해 봐도 되겠습니다.”

“안 될 것 없죠.”

말을 끝으로 태정이 태극 1호와 함께 워커팩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교관의 입에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오. 이걸 이리 가까이서 보게 될 줄이야.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그럼 가볍게 대련을 좀 해볼까요?”

태정이 훈련용 목검을 잡아 들자, 교관 역시 자신의 목검을 들었다.

“그럼 제가 먼저 공격을 하겠습니다.”

선공은 태정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처음부터 크게 검을 휘두르며 사선으로 교관의 몸을 쪼개 갔다.

일명, 마구잡이식 베기.

당연히 교관의 검에 막힐 수밖에 없었다.

딱!

완벽히 쳐 낸 태정의 검이 허공으로 들리며 그의 전신에 빈틈이 발생됐다.

어딜 넣어도 치명상인 사점들.

‘확실히 힘은 있지만 움직임이 느려. 이러면 검보단 근력의 쓰임새가 높은 도나 양손형 무기술이 낫겠군.’

태정이 워낙 초보다 보니, 한번 부딪혀 본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어울리는 무기술이 어떤 것인지.

파악을 끝낸 그가 열린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바로 그때였다.

“엇?”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태정의 몸이 거의 직각에 가까운 각도로 누워 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무릎으로부터 수평이 되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태정의 모습은 눈을 의심케 할 만큼 신기했다.

중력을 거스르지 않곤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자세.

더 신기한 일은 이후에 일어났다.

살짝만 건드려도 등이 닿을 것 같은 태정의 신형이 마치 누가 당긴 것처럼 그대로 일어서서 허공에 지른 그의 검을 옆으로 쳐 버린 것이다.

“이게…….”

“봐주지 말고 제대로 한번 부탁드립니다.”

“아. 예.”

정신을 차린 교관은 그때부터 사정 봐주지 않고 맹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을 걸고 들어가도 검이 몸에 닿질 않았다.

맞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몸을 틀어 죄다 빗겨 나가는 검.

자세도 엉성하고 회피의 기본인 스텝도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대도 맞질 않는다니?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회피술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이렇게 엉망인데, 하나도 안 맞아?’

20년 이상 무기술에 매진한 교관이었다.

체계적인 스텝이나 방어술도 아니고 거의 제자리에서 취하는 자세만으로 검을 피한다는 건 그의 훈련 인생을 통틀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상대와 다르게 그는 무려 20년을 수련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

게다가 그 역시 보조 스킬을 가동 중이라, 몸 상태는 전투를 하기에 있어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공격형 스킬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거의 전력을 다한 검격.

그게 하나도 맞지 않고 있었다.

“헉. 헉.”

“여기까지 하죠.”

태정이 검을 늘어뜨리자, 그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검을 아래로 내렸다.

그 상태로 한동안 숨을 고르던 그가 침을 꼴딱 삼키며 말을 내뱉었다.

“이렇게 실력이 좋으신데 왜 굳이…….”

“더 잘해 보려고요.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교관과 일정을 짜고 나온 태정은 오후 일과를 마치고 집무실을 나섰다.

오늘은 본부장과 식사 자리가 있는 날.

“퇴근하세요?”

“어. 나 오늘 저쪽 본부장님이랑 저녁 약속 있어서 먹고 들어갈 거니까, 기다리지 말고 챙겨 먹어.”

지역대를 나선 태정은 본부장과의 약속이 있는 해리슨 호텔로 향했다.

제닉스에선 단 1개밖에 없는 부티크 호텔.

번화가인 B 구역에 있는 만큼 요금 또한 굉장히 비싼 곳이었다.

이곳의 30층 레스토랑이 오늘의 약속이 있는 자리였다.

번쩍번쩍한 로비를 지나 레스토랑으로 올라가자 미리 나와 있는 직원이 그를 알아보곤 자리로 안내했다.

“햐. 야경 봐라. 분위기 괜찮네.”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만큼 뷰가 특급 호텔 뺨칠 정도로 좋았다.

한라산 명도 호텔보단 아니지만, 규모에 걸맞는 최상의 뷰.

그가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있는데,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고개를 돌려보니, 낯익은 얼굴이 그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한서연 씨?”

“앗. 제 이름 기억하고 계셨네요?”

“모를 리가요, 본부장님 따님이신데.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약속이 있으신가 봐요.”

“네.”

“이거 좀 신기한데요? 저도 오늘 여기서 본부장님과 저녁 약속이 있는데.”

“알고 있어요.”

“그래요? 아무튼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식사 맛있게 하고 들어가세요.”

확실히 호텔이 한 개밖에 없으니 이런 일도 생기는 구나 싶은 태정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태정의 건너편에 앉았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

“아버지는 오지 않으실 거예요.”

“네?”

“제가 대장님과 약속을 좀 잡아 달라고 부탁을 드린 거거든요.”

“아.”

“죄송해요. 사할린에서 돌아와서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거절하셨다고 해서 이것밖에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너무 막무가내죠.”

그녀가 태정의 눈치를 보며 말하자 그가 괜찮다는 듯 대답했다.

“아뇨. 밥이야 뭐 누구와 먹든 그게 중요한가요. 전 상관없습니다.”

“정말요? 전 또 화를 내시면 어쩌나 조마조마했거든요.”

“무슨 이깟 거 가지고 화를… 그보다 몸은 좀 어떠세요.”

“완전 좋아요.”

“다행이네요.”

“식사하셔야죠? 대장님은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저는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습니다.”

“그럼… A 코스로 할까요? 와인도 한잔 주문하고요.”

“편하신 대로.”

한서연이 주문한 코스는 한식과 양식이 어우러진 퓨전 요리였다.

급이 있는 호텔의 레스토랑답게 맛은 물론이고, 데코며 장식, 음식을 담아낸 그릇 하나까지도 고급스러웠다.

거기에 비싼 와인까지 곁들이니, 제법 분위기가 그럴듯했다.

“그런데 대장님은 쭉 서울에서만 사셨나요?”

“네.”

“어느 동네요?”

“신림동이요.”

“아. 저도 거기 자주 놀러갔었는데. 거기 유명한 산 하나 있잖아요.”

“관악산이요?”

“네. 거기요. 어릴 때 아빠 손잡고 몇 번 오른 적이 있거든요.”

“저도 한때, 그 산 많이 올랐습니다.”

“정말요? 그럼 저희 오다가다 만났을 수도 있겠네요?”

“뭐…….”

“혹시 지금 만나고 계시는 분은 있으세요?”

“예?”

“대장님 인기 많으시잖아요. 요즘 대장님이 입으셨던 그 옷도 없어서 못 산다고 하던걸요.”

“그게 뭐 저 때문인가요. 옷이 좋아서 그런 거죠.”

“에이. 그건 아니죠. 제 또래에서 대장님하면 선망의 대상인데요. 그보다 정말 연애하시는 분 안 계세요?”

“제 할 일도 바빠서 연애는 잠시 접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일과 연애를 하고 있는 중이랄까요? 하하하.”

웃자고 던진 말이었지만 한서연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와. 멋있어요.”

“예?”

“일과 연애라니. 뭔가 되게 프로페셔널 하신 것 같아요.”

“아니, 전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참. 아버지께 물어보니 저보다 나이가 다섯 살 위더라고요. 대장님만 괜찮으시면 제가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예?”

태정이 약간 놀란 듯 묻자, 그녀가 그의 눈치를 보며 소리를 죽였다.

“역시 그건 안 되겠죠?”

“안 될 것까진 없는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뭐 저야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빠.”

“하하.”

“태정 오빠.”

“이것 참.”

별말도 아닌데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오는 태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프리지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년 여우다.

그녀의 말에 태정이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너 삐진 거 아니었냐?”

“네?”

“아.”

한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태정이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혼잣말입니다. 갑자기 생각이 난 게 있어서…….”

“아. 전 또 저한테 묻는 말인 줄 알고. 오빠도 말 편하게 하세요.”

“지금도 편한데요 뭐. 그런데 서연 씨는…….”

“서연이라고 부르셔도 돼요.”

이번이 고작 두 번째 보는 자리였지만 그녀는 마치 오랫동안 알았던 것처럼 태정을 스스럼없이 대했다.

그게 너무 직선적이고 비현실적이라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는 수차례 당황을 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무르익고.

시계는 어느덧 2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다 드신 것 같은데, 이만 일어날까요?”

“벌써요?”

“본부장님 걱정하세요. 제가 집까지 데려다드릴게요. 어느 구역이세요?”

“전 오늘 집에 안 들어가요. 여기 호텔 예약했거든요.”

“아. 호캉스?”

“네?”

“요즘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호캉스.”

“아…….”

“그럼 올라가서 푹 쉬세요.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태정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가 당황한 듯 덩달아 일어났다.

“제가 배웅해 드릴게요.”

“무슨 배웅까지나요. 들어가요.”

만류한 태정이 혼자 걸음을 옮기려 하자, 갑자기 그녀가 머리를 짚고 휘청거렸다.

“아아. 어지러워라.”

“괜찮아요?”

“어떡하죠. 술을 너무 먹었나 봐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말을 뱉던 그녀가 자연스레 태정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저기 서연 씨, 정신 좀 차려 봐요. 서연 씨?”

태정이 그녀의 어깨를 흔들어 보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바로 그때.

그녀의 오른손으로부터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태정이 숙여 주워 보니.

[해리슨 호텔 1901호]

객실의 카드 키였다.

“예약된 곳이 여긴가.”

태정이 한숨을 쉬며 카드 키를 보고 있는데, 또 한 번 프리지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뭐 하냐. 차려 준 밥상 숟가락만 뜨면 되는데.

그녀의 말에 태정이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진짜 모르겠냐. 이 인간 여자는 지금 너와 합체를 원하는 거야.

말뜻을 알아들은 태정이 어림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합체 좋아하시네. 개수작 부리지 마라.”

태정은 그렇게 말하며 한서연을 부축해 걸음을 옮겼다.

“얼맙니까.”

“계산은 이미 되셨거든요. 그리고 와인이 많이 남았는데, 킵 해 드릴까요?”

직원의 말에 태정이 테이블 위 와인병을 바라봤다.

각각 한 잔씩 먹어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와인.

자동적으로 그의 시선이 한서연을 향했다.

‘술이 약하긴 진짜 약하구나. 빨리 올려다주고 가야지. 할 일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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