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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40화 (140/182)

140화

파파팟!

“으으.”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맞바람이 온몸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태정의 몸에 안겨 남부 기지로 향하고 있는 리나는 이것이 정녕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속도인지 의심스러웠다.

사물이 없어 시각적 체감은 덜했지만, 몸이 격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플라이 스킬 따위하곤 비교도 안 돼. 이건… 이건 그냥 비행기야.’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녀 또한 장벽거의 외손녀인 만큼 수많은 랭커들과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한 적이 있었다.

해서 어지간한 경험은 다 해 봤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터.

하지만 이건 그녀의 상식을 파괴하는 수준이었다.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폭발시키는 것이 아닌, 무한정 지속되는 스피드.

이는 무언가 탈것을 탔을 때 외엔 느껴 본 적이 없는 굉장히 이질적인 기분이었다.

정말 비행기 바깥에 앉아 있으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속도가 빠른 만큼 추위 또한 상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은 지구에서 가장 춥다고 알려진 남극대륙.

거기에 바람이 더해지니 체감 온도는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태정이 준 내의가 없었다면 동사를 했을지도 모를 상황.

그마저도 손과 얼굴은 보호가 되지 않아, 몇 번이고 방한 스킬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그런 추위조차도 지금 그녀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 순 없었다.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 희망 하나만으로 그녀의 가슴은 열이 올라 펄펄 끓어 넘치고 있을 지경이었다.

‘이 남자라면.’

리나가 본 그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다.

국적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베일에 감춰진 사람.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

레귤러 무리를 처치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그가 단순히 S급 헌터일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레벨임은 분명했다.

800 이상의 헌터는 어느 국가, 어느 길드를 가도 엄청난 환대와 대우를 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추살대와의 전투를 보고 난 이후,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틀려도 한참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본 그는 거의 하이 레벨에 근접해 있는 헌터였다.

옛 화산으로 따지면 수호대 바로 밑인 장벽거의 친위대 정도.

그 말은 당장 중국 내에서도 최소 200위권 안에 랭크 될 정도로 엄청난 고수라는 뜻이었다.

물론. 화산을 접수해 버린 봉신방엔 그 정도 인물들이 굉장히 많았다.

문제는 여기가 본토가 아닌 남극이라는 것.

현재 남부 기지에서 가장 강한 이를 꼽으라면 단연 왕무영일 것이다.

이곳의 총책임자이자 사령관인 S+급으로 추정되는 실력자.

그 외엔 정예 부대인 비영대와 호위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비슷한 수준의 추살대가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궤멸을 당했기 때문이다.

즉, 이번 전투의 승패는 왕무영을 처치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

‘작전만 잘 짜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충 판세를 훑고 있을 때, 태정 역시 그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대니얼에게 듣기로 남부 기지의 병력은 대략 3-4천.

넉넉히 잡아 5천이라 가정을 했을 때, 상당히 부담이 되는 물량인 것은 확실했다.

그보다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도 무리 없이 잡아내긴 했지만, 몬스터와 인간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생각이란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피지컬만 내세워 덤벼드는 몬스터들과 다르게, 인간은 당하면 당할수록 진화를 하는 동물.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분명 그에 대한 대응과 대처법이 생겨날 것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짧은 시간 많은 피해를 줘야 했다.

생각을 하던 태정이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천신병.”

[왜 부르나.]

“그럴 리야 없겠지만.”

[거절한다.]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

[내 데이터에 의하면 이런 경우 도와 달라는 말이 99.8%의 확률로 나오게 되어 있다.]

“귀신이네.”

[넌 아직 날 사용할 조건이 안 돼.]

“나도 널 그렇게 쉽게 꺼낼 생각은 없다. 네가 최종 병기였던 만큼, 나한테도 최종 병기가 될지 모르니까.”

[말은 잘하는군.]

“그런데 우리 기왕 말까지 텄는데, 이름을 좀 바꿔 보는 건 어떨까. 천신병이라고 하니까 영 입에 감기지가 않아서 말이야.”

[내 이름은 카이저다. 첫 번째 파트너가 그 이름을 지어 줬지.]

“카이저? 그게 훨씬 낫네. 그럼 천신병은 뭐야?”

[그건 국제 군사 기구가 만든 군사 병기의 통합 명칭이다.]

“무슨 뜻일까?”

[하늘 위에 군림하는 병사란 뜻이지.]

“그럼 바실리스크는 뭐야? 어디 지명인가.”

[그건 내 애완 로봇이다.]

“뭐? 애완 로봇? 그런 게 있어?”

[당연하지.]

“그럼 그 애완 로봇이랑 같이 소환이 되는 건가?”

[아니. 그놈은 지금 여기 없다.]

“어디 있는데?”

[나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내겠지.]

“이건 몰랐던 사실인데… 잠깐. 근데 좀 이상하지 않냐.”

[뭐가 말인가.]

“네 애완동물, 아니 로봇인데 어떻게 앞에 이름이 붙었지? 천신병의 바실리스크가 돼야 하는 거 아냐?”

[쓸데없는 소리.]

태정이 재차 물으려던 그때.

제라드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전방 10km 부근 정체불명의 기지가 보입니다.

“규모가 어떻게 돼?”

-지금 보이는 것만으론 제닉스 길드의 민간 전용 구역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해안가에 배도 두 척이 보입니다.

“맞나 본데.”

대니얼에게 듣기로 남극의 모든 기지와 배는 완전히 파괴됐다고 했다.

이곳에서 멀쩡한 배를 운용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

봉신방의 남부 기지밖에 없었다.

“속도 좀 줄이자. 보기 적당한 곳이 있으면 가다 내려 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른 후.

태정과 리나는 해안가에서 제법 가까운 언덕 위에 내려섰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리나를 품에서 내려 준 태정이 물은 말이었다.

“문제없어요.”

“다행이네요, 저기 저곳이 맞습니까.”

태정이 저 멀리 보이는 해안가와 길게 늘어진 장벽들을 가리키며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저곳이에요.”

“일단 제대로 오긴 온 것 같네요.”

“지금 여기선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으니, 제가 묻는 말에 답변만 해 주시면 됩니다.”

“네.”

“감옥이 대충 어디쯤에 있습니까?”

“제가 알기론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어요. A구역부터 F구역까지 있는데, 전부 일렬로 북벽에 붙어 있어요.”

“지상에 있습니까?”

“아뇨, 지하요.”

“혹시 입구가 네모난 형태의 굴처럼 되어 있는 곳입니까? 방공호…….”

“엇. 맞아요. 그걸 어떻게…….”

“그럼 저기 산에 붙어 있는 여섯 군데가 감옥이네요.”

“여기서 그게 보이나요?”

리나는 어떻게 저 담벽 너머의 구조가 그의 눈에 보이는지 신기했다.

이곳에서 저곳까지의 거리는 최소한 5km.

시력이 말도 안 되게 좋아 볼 수 있다 해도 절반이 가려져 있는 구조였다.

물론 태정은 그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남부 기지 상공에 b6-1을 띄워 놨기 때문이었다.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놈들이 기거하는 곳은…….”

이후에도 태정의 질문은 계속 됐다.

한동안 이것저것을 물어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대충 파악은 끝난 것 같군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쓸어버려야죠.”

“쓸어버린다면… 정면 돌파를 하시겠단 말씀이세요?”

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태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게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입니다.”

“제라드 님껜 투명화 스킬이 있잖아요.”

“네. 그런데 그건 왜…….”

“그럼 몰래 잠입을 해서, 먼저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풀어 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까 말씀드렸던 장비 창고를 털면 그들도 엄청난 전력이 될 텐데요.”

“저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닙니다. 하지만 발각될 위험도 있을뿐더러.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타깃이 될 게 뻔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저 혼자 커버 칠 수가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수천인데, 저희 둘이서는…….”

“공격은 저 혼자 합니다.”

“네?”

“여기서 계시다가 대니얼 님이 도착하면 그때 들어오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이 도착하기 전까진 진입하시면 안 됩니다.”

말을 끝으로 태정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동시에 어딘가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태정을 바라보고 있던 리나는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중얼거렸다.

“대체 혼자서…….”

리나와 헤어져 최대한 기지에 가까이 붙은 태정은 기체로 갈아타 다연장 로켓인 천룡을 소환했다.

“배는 지금 보이는 두 척이 전부지?”

-그렇습니다.

“좋아. 아무리 빨리 도망가도 내가 잡을 수 있어. 저긴 배제하고. 북벽에 붙은 6개의 방공호 보이지?”

-예, 주인님.

“정확히 굴 위로 두 발씩이다. 저 툭 튀어나온 콘크리트를 무너뜨려서 입구를 막아야 돼. 어떤 경우에서든 사람이 나와선 안 되니까.”

이미 감옥 구조를 리나에게 들어 꿰고 있는 태정이었다.

제라드를 통해 시뮬레이션을 돌려 본바, 어지간한 폭격으론 꿈쩍도 안 할 것이란 결론이 도출됐다.

즉, 저곳만 막아 놓으면 신나게 폭격을 퍼부어도 상관이 없단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체크해. 장비가 없는 사람들이나, 족쇄를 차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 보이냐.”

-없습니다. 모두 풀 무장을 한 헌터들입니다.

“좋아. 좌표 설정하고… 때려.”

태정의 명령에 천룡의 발사대가 70도 가까이 올라갔다.

동시에 하단에 숨어 있던 유도탄 열두 발이 출격을 하기 시작했다.

쉬이이이-!

비행운을 만들며 쏘아진 열두 발의 로켓이 기지 북벽에 붙어 있는 방공호 처마를 그대로 강타했다.

콰콰쾅!

엄청난 굉음이 일며 순식간에 거대한 폭운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 모습에 기지 내에 있던 헌터들이 깜짝 놀라 나자빠졌다.

“뭐, 뭐야!?”

“방금 뭐였냐?”

“사, 산사태 아냐? 저기 북벽 수감소 쪽인 것 같은데.”

그런 그들과 가까운 막사에서 제법 급이 있어 보이는 헌터 한 명이 급히 튀어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지진이 일더니 북벽이…….”

간부로 보이는 이가 바로 북벽을 바라봤다.

제법 큰 시커먼 덩어리 여섯 개가 일정 간격으로 치솟고 있었다.

“저게 뭐야?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기지 내에서 광역 스킬을…….”

저 정도 폭운이면 폭발이 분명했다.

그것도 상당한 범위의 광역 스킬.

그들이 상황 파악에 나서는데, 바람이 일며 점차 폭운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됐어?”

-성공입니다. 여섯 개의 방공호가 전부 막혔습니다.

“좋아. b6-1 좌표 계산 끝났지?”

-예. 명령만 주시면 바로 폭격 가능합니다.

모든 게 완료 된 상태였지만 태정은 섣불리 마지막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다시 한번 심판자의 위치에 서게 된 그.

이번엔 그 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알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망설임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백 번을 생각하고 또 해도 구해야 할 사람들의 목숨값이 훨씬 값지고 비쌌다.

이윽고 결단을 내린 그가 기지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이건… 짐승보다 못한 네놈들에게, 하늘이 내리는 천벌이다. 달게 받아라… 투하.”

그의 명령에 남부 기지 상공에 떠 있던 전략 폭격기가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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