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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39화 (139/182)

139화

휘이이-!

차가운 바람이 대지를 휩쓸고 지나갔다.

여기저기 보이는 시체들과 눈밭을 흠뻑 적신 시커먼 핏물들.

그것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태정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이게 잘한 일이 맞는 것일까.

끝나고 보니 의문이 드는 태정이었다.

분명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인 것은 확실했다.

죄 없는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능욕하고 모욕하고.

지옥의 악마도 고개를 흔들 정도로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자들이 양산됐고, 지금도 그 일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문제는 놈들을 심판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냐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손에 묻은 피를 보며 중얼거린 태정이었다.

하지만 두 번 생각을 해도 결과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놈들은 어차피 국제사회의 심판을 받을 몸.

어쩌면 이보다 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해야 할지도 몰랐다.

“속이 좀…….”

긴장이 풀리며 뒤늦게 참상의 여파가 밀려들었다.

살인에 대한 거부감과 굳어서 시퍼렇게 변한 시체들.

약해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참아 냈지만, 그것이 한 번에 적응이 될 턱이 없었다.

태정은 밀려드는 구역질을 억지로 참아 내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다국적 헌터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대니얼이었다.

“제라드 님… 괜찮으십니까?”

태정의 안색을 살피던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물었다.

“전 괜찮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덕분에 여기도 전부 무사합니다.”

“다행이군요.”

“한데,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혹시 하이 레벨의 헌터십니까?”

대니얼이 그렇게 물은 이유는 간단했다.

S급이 둘이나 붙은 추살대를 혼자서, 그것도 가지고 놀 듯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스 레귤러를 해치운 것보다 더 대단한 것으로, 그의 레벨이 최소한 900은 가뿐히 넘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말에 태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역시 히든…….”

“그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우선 쓸 만한 장비가 있으면 다들 챙기십시오. 온전한 장비들이 꽤 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여기서 남부 기지의 지리와 구조를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 누구입니까?”

태정의 물음에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한 사람을 지목했다.

팀의 유일한 홍일점.

바로 리나였다.

“아무래도 리나 님이 가장 오래되셨고, 이감도 많이 돼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일단 장비부터 챙기십시오. 그리고 리나 님.”

“네.”

“이거 안에 입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태정이 인벤토리를 열어 무언가를 건넸다.

그러자 그것을 받아 든 리나가 궁금하다는 듯 말을 물었다.

“이게 뭔가요?”

“히팅 처리된 내의입니다. 자동으로 체온을 맞춰 주는 아이템이죠.”

“아. 이건 왜…….”

“필요하실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잘 입겠습니다.”

사람들이 흩어져서 장비를 노획하고 있을 때, 태정은 눈을 감은 채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아직도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놈들을 벨 때의 소름 끼치는 감각과 직전 마주쳤던 수많은 눈빛.

살려 달라고 빌던 그들은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우욱!”

불편한 감정이 밀려들며 그가 속에 있던 내용물을 쏟아 냈다.

그런 그를 향해 프리지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인간을 죽인 건 처음이구나?]

“뭐…….”

[그러게 뭐 하러 나서? 가만히 내버려 둬도 언젠가는 죽을 놈들이었는데. 후회해?]

“후회라기보단… 내가 너무 내 감정에 치우쳐서 그런 건 아닌가 싶어서.”

[그게 무슨 상관이지?]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 단순히 화가 나서 사람을 죽인 꼴이 되는 거니까.”

태정의 말에 프리지아가 그를 달래듯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인간인 거야. 네 앞에 있는 저들을 봐. 저들에게 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네가 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했겠지. 직접적인 당사자들이니까. 그런데 거기에 감정이 완전 배제될 수 있을까? 우리야 가능한 일이지만, 인간은 절대 그럴 수가 없지.]

프리지아의 말에 이번엔 천신병이 입을 열었다.

[망령 주제에 인간을 꽤 잘 아는군. 이봐, 인간. 어설픈 감상에 젖어 개폼 잡지 마라. 지금은 무력 사회다. 힘이 곧 법이 되는 시대지. 그런 면에서 넌 잘못을 한 것이 없다. 지금 네가 하는 생각들은 과거 수백 년 전 법치가 살아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고민들이지. 지금 시대엔 맞지 않아.]

“그거 위로냐.”

[조언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솔직히 말하면 구하고 싶다. 사람들을 그 지옥에서 꺼내 주고 싶어. 너흰 오지랖이라 하겠지만, 이대로 갈 수 없을 것 같아. 그사이에 죽어 나갈 사람들을 생각하면… 물론, 내 힘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 근데, 시도는 해 보고 싶다.”

태정이 그리 말하자, 프리지아로부터 전혀 뜻밖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럼 해.]

“뭐?”

[하고 싶으면 해야지.]

“이번엔 왜 반대를 안 하는 거지?”

[망설임이 없다는 걸 봤으니까. 내가 반대를 했던 건, 네가 너무 물러 터졌기 때문이었어. 전투가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죽음은 따라오게 돼 있는데, 그걸 못해서 망설이다 죽은 놈들을 수도 없이 봐 왔거든.]

“그런 이유… 였어?”

[생사를 두고 싸우는 전투는 장난이 아니야. 일말의 동정심 혹은 망설임,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결국은 네 목을 움켜쥐게 되지. 확실히 적이란 판단이 들면 그때부턴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돼. 그게 생존율을 높이는 가장 좋은 수단이자 기본적인 마음가짐이지.]

그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장비 노획을 마친 대니얼 등이 태정을 향해 다가왔다.

“이거 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것보다 좋은 장비들이군요.”

대니얼이 머쓱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 보이며 뱉은 말이었다.

다른 이들 역시 풀세트로 갖춰 입었는지 몸에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입니다.”

“한데,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저는 남부 기지로 갈 겁니다.”

“예?”

“능력이 닿을진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구해 볼 생각입니다.”

“아. 그럼 저희도 가겠습니다. 얼마나 힘이 될진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그곳에선 여러분을 지켜 드릴 수 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제 장비도 생겼고, 저희 몸은 저희가 챙길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리나 님의 도움을 좀 받겠습니다.”

태정이 그리 말하자, 리나가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저요?”

“네. 그곳의 지리와 내부 구조를 가장 잘 아신다고 하셨죠?”

“아마, 여기선요.”

“리나 님과 제가 먼저 출발을 할 테니, 다른 분들은 천천히 따라오십시오.”

“같이 출발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일분일초라도 빨리 가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먼저 가서 힘 닿는 데까지 해 보고 있을 테니, 조심히 오십시오. 리나 님.”

“네.”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네? 아.”

태정이 리나를 들쳐 안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기도 잠시.

곧 그의 신형이 떠오르자, 신기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플라이 계열인…….”

“꽉 잡으세요.”

슈아악!

“앗!”

갑작스러운 발진에 그녀의 손이 자동적으로 태정의 목을 끌어안았다.

동시에 엄청난 강풍과 함께 신형이 빛살처럼 쏘아지기 시작했다.

* * *

F 구역 지하 수감소.

“으으. 으.”

“조금만 참아. 제발. 힘내야 돼. 여기서 무너지면 안 돼.”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 누워 있는 여자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대여섯의 사내들.

오늘 오후 사냥을 나갔다 살아 돌아온 위너스 길드의 헌터들이었다.

오십 명 중 살아남은 이는 일곱.

그마저도 한 명의 상태가 매우 위독해 보였다.

“아… 저기, 오빠들.”

줄곧 신음하던 여자가 힘겹게 입을 달싹였다.

그러자 한 사내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말해, 우리 다 듣고 있어.”

“나 있지… 아무래도 여기까진 것 같아… 더 이상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그게 무슨 소리야. 할 수 있어.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야. 제발 버텨, 버텨야 해.”

사내가 울먹이며 잡은 손을 더 꽉 잡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체온은 조금씩 식어 가고 있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

그걸 알기에 사내의 가슴이 더욱 미어졌다.

“엄마… 보고 싶다. 엄마랑… 여행 가기로 했었는데. 엄마랑…….”

“가면 되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너 이렇게 약해지면 어머님한테도 죄짓는 거야. 샛별아, 제발 조금만 힘내. 할 수 있어.”

사내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손등으로 떨어졌다.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듯 크게 흐느끼는 그.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여자가 마지막 힘을 짜내 입을 열었다.

“오빠들.”

“말해.”

“그동안 고마… 웠어. 꼭… 살아.”

잡은 손에 힘이 풀리며 여자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 모습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사내가 그녀의 두 뺨을 어루만졌다.

“샛별아. 샛별아! 야. 너 장난하지 마. 우리 악착같이 버텨서 돌아가기로… 흑.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안 돼. 야! 야!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흑으윽.”

오열을 하는 사내의 등을 또 다른 사내가 토닥였다.

그리고 이내 한 사내가 일어서 감옥의 창살을 거칠게 잡고 흔들었다.

“이 개새끼들아! 너희가 사람 새끼들이냐! 으아아!”

그의 절규에 간수로 보이는 헌터 하나가 다가와 곤봉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악!”

나자빠진 사내와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헌터.

이내 통역기를 타고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새끼야, 옆 동은 전멸이야. 이게 어디서 배부른 소릴 하고 있어. 여자가 죽은 모양인데. 그러게 시중을 들라 할 때 든다 했으면 이런 개죽음은 안 당했겠지. 그 무슨 대단한 몸땡이라고 거부를 하긴 거부를 하나, 어차피 죽으면 썩어 없어질 것을.”

“너, 너 이 새끼…….”

“조용히 하고 자빠져 자라. 내일도 오늘 같은 행운이 있으려면 잠이라도 푹 자 둬야지.”

그 말을 끝으로 간수는 어둠 속 통로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한 사내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를 향해 다가왔다.

“괜찮냐? 피난다.”

“샛별인 죽었는데, 이깟 피가 대수야.”

“그래도 지혈해야 해. 앉아 봐.”

“됐어. 됐다고 좀! 그만 좀 하라고 x발! 흐윽. 다 죽었어. 다 죽고 우리만 남았다고! 팀장님도, 조장도, 동료들도! 다 죽었다고, x발. 길드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우리가 여기 있는 거 알고는 있는 거야?”

“진정해. 길드장이 어떤 사람인데. 찾고 있을 거야.”

“찾기는, 벌써 몇 달인데. 포기한 거야, 그냥. 우리는 가망이 없어. 다 죽을 거야, 다. 전부 다!”

“…….”

흐느끼는 그에게 사내는 더 이상 어떤 대답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 역시도 속으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기적은…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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