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31화 (131/182)

131화

“뭐야……?”

당황스러운 얼굴이 된 태정이 전방을 바라봤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거대 로봇과 몇 차례 들려온 알림음.

상황을 인지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게 그거였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바실리스크의 천신병.

그게 로봇이었을 줄이야.

무기로만 알고 있던 그의 생각이 완전히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이봐, 제라드.”

-예, 주인님.

“무기라고 하지 않았냐.”

-맞습니다. 이 시기에 로봇은 무기였습니다.

“난 이런 거일 거라곤… 미쳤잖아, 완전?”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방금 그걸 단순히 무기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 로봇이라 해도 말이 안 되는 크기였다.

궁금함에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던 태정은 바로 스킬 창을 열어 봤다.

[바실리스크의 천신병]

봉인 레벨 [3]

계급 [병]

AI: 인공 의식체

장갑: 15.5만 / 물리 공격력: 12만

캐논 브레스: 50만 / 쿨타임: 7일

무기 - 없음. 장비 - 없음.

탈것 - 없음.

업그레이드 레벨 [1]

최소 접속 조건 – 의식 공유 [알칸토 lv1]

소비 마나 - 모체 공유

*언령 깨어나라, 바실리스크의 천신병이여.

“뭔가 복잡해 보이면서도… 엄청 좋아 보이는데?”

당장 보이는 수치로만 보면 최상급이었다.

물리 공격력이 12만에 또 다른 공격 수단으로 보이는 것이 50만.

그가 가진 최강의 무기인 순항 핵미사일에 비하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쿨타임이 훨씬 짧은 것이 장점이었다.

더군다나 이쪽은 단발성 공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 전투가 가능한 로봇.

그냥 휘젓고만 다녀도 상대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데 접속 조건이랑 모체 공유, 이건 뭐야?”

-모체 공유는 주인님과 마나를 공유한다는 뜻입니다. 접속 조건은 천신병을 소환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력을 뜻합니다.

“정신력? 뭐 의지 같은 건가?”

-의지도 이 범위에 포함이 되나, 여기서 말하는 정신력이란 좀 더 초월적인 의식 체계를 뜻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인간의 의식 체계는 총 4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설명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은 2단계까지로 표면 의식과 잠재의식이 바로 그 2가지입니다. 여기서 2단계에 해당되는 잠재의식을 개방해야 비로소 천신병을 운용하실 수 있습니다.

“…잠재의식이라. 혹시 그것도 스킬인가.”

-아닙니다. 잠재의식은 모든 인간이 가진 고유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인간이 이를 개방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해서 시리우스가 기술적으로 길을 뚫어 놓았습니다.

“어떻게?”

-해당 스킬을 활성화시켜 보십시오.

제라드의 말에 태정은 곧장 스킬을 활성화시켜 봤다.

그러자 순간 그의 양쪽 관자놀이로 작은 칩 같은 것이 형성되더니, 이내 내면으로 무언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느낄 수 있었으며, 다른 사물을 보고 있으면서도 희미하게나마 인지를 할 수 있었다.

“이건…….”

-느껴지십니까.

“시커먼 어둠 속에… 실? 같은 게 보이는, 아니 느껴지는 것 같아. 보인다고 하기엔 좀 애매한데. 기분이 좀 이상해. 이게 뭐지?”

-보고 계신 건 실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의식, 즉 무의식 세계의 구조입니다. 원래는 표면 의식 아래에 있어 자각을 할 수 없지만, 나노 칩을 이식해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겁니다.

“무의식 세계의 구조라…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 무의식 세계의 구조를 또렷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표면 의식의 50%까지는 끌고 올라와야 하죠. 방법은 고도의 집중밖에 없습니다. 미래의 인간들은 이 훈련을 무의식의 자각 또는 잠재의식의 현실화라 불렀습니다.

“뭔가 좀 복잡한데.”

-쉽게 풀어 드리면 눈이 뒤쪽에도 달려 있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앞을 보고 있는 시각과 뒤를 보고 있는 시각이 따로 놀지만 둘 모두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하나가 기능을 하는 와중에, 다른 하나가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앞은 보이는데 뒤는 보이지 않고, 뒤는 보이는데 앞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 개의 의식을 같이 가지고 있으면서 이질감이 없어야 된다는 거네.”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그럼 이거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일반적인 멀티 플레이가 아니잖아.”

표면 의식 아래 두 가지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서로 다른 의식 2개를 하나처럼 사용해야 한다는 말.

이는 단순히 생각해도 엄청난 훈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거 이러면 사용을… 보통 얼마나 걸리냐.”

-동화율에 따라 다르지만 이 시기의 파일럿들을 기준으로 1년 이상은 훈련을 해야 기체를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천신병의 경우 기체보다 훨씬 높은 동화율을 요구하기 때문에 시간은 더 걸릴 것입니다.

“그럼 당장 쓰기는 어렵다는 거네. 1년… 1년은 너무 길잖아.”

태정이 좋다 말았다는 듯 중얼거리자 제라드가 이어서 말을 내뱉었다.

-주인님께선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으실 겁니다.

“어째서.”

-이 시기엔 뇌 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각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가상의 의식을 만들어 공유하는 비효율적인 훈련이 주를 이루었죠. 당연히 진짜 잠재의식이 아니기 때문에 동화율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주인님께선 실제 잠재의식의 구조를 들여다보고 계신 겁니다. 지금은 느낌 정도겠지만 훈련에 따라 그 실체가 점점 구체화될 것이고, 이 시기에 활동을 하던 파일럿들보다 시간은 훨씬 단축이 될 겁니다.

“그래도 그래. 이 엄청난 걸 바로 써먹질 못한다니. 좀 많이 아쉽네. 근데 이 언령은 뭐냐? 깨어나라… 말하기도 좀 그렇네. 누가 이런 촌스런 걸 만든 거야.”

-그건 인간이 아닌 인공 의식이 스스로 정한 겁니다.

“이걸 꼭 말해야 되는 거야?”

-그렇습니다. 언령은 이 시대로 치면 접속 코드 혹은 패스워드 같은 것입니다. 물론, 후에 교감을 통해 바꾸실 순 있지만, 아직 그 정도 단계는 아니시기 때문에 현재로선 필수라 할 수 있습니다.

“총체적 난국이구만. 잠재의식에 오글거리는 언령까지… 뭐 그래도 기왕 얻었는데 한번 시도는 해 볼까?”

훈련이 되진 않았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혹시 또 알까.

이 방면에 재능이 있어 한 번에 성공을 할지.

‘집중해 보자.’

태정은 곧장 잠재의식을 느끼기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선명한 의식 아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미한 또 다른 공간의 의식.

확실히 뭔가 있긴 있었다.

조금 동떨어져 멀리 있는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된 것도 아닌 느낌.

인상까지 써 가며 감을 잡아가길 몇 분, 무언가 흐릿하던 것이 좀 더 명확해졌다.

그 순간.

태정의 손이 자연스레 올라가며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깨어나라, 바실리스크의 천신병이여.”

…….

-…….

“…….”

침묵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살면서 이렇게 창피했던 적이 있었을까.

슬며시 손을 내린 그가 몸을 털어 내며 중얼거렸다.

“거봐, 안 된다니까. 연습해야 돼. 상식적으로 이게 한 번에 되겠냐. 어우, x발. 닭살이야. 근데 600년이나 지났는데, 언령이 이게 맞냐?”

-손은 왜 드신 겁니까.

“그건 그렇고, 우리 보상이 하나 있었지.”

가볍게 무시한 태정이 다시 스킬 창을 오픈했다.

[전방위 로드워커팩] [AI 감응식]

슈트 C1 이상 타입에 장착되는 회피 기동팩.

구동 범위 - 전방위

지속 시간 [반영구적]

소비 마나 [초당 1-50]

“음. 이게 뭘까. 회피 기동이면 움직임에 대한 건데. 간단히 설명 좀 해 봐.”

-감응식 로드워커팩은 252개의 초소형 분사 체계를 통해 활동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주는 보조 장비입니다. 이걸 사용하시면 좀 더 근접전에 유리한 전투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어디 성능 체크 한번 해 볼까.”

태정은 곧장 워커팩을 소환해 봤다.

그러자 태극 1호에 빛이 한번 서리더니, 곳곳에 미세한 일자 구멍들이 생겨났다.

바뀐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일단, 장착은 한 것 같긴 한데. 사용은 어떻게 하냐.”

-사용법은 따로 없습니다. AI 기반 전자 감응식이라 자동으로 조절이 됩니다.

“자동이라. 근데 딱히 뭔가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말이야.”

팔다리를 움직여 보던 태정이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러기도 잠시.

“한번 뛰어 볼까?”

돌연 그가 전방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몸에서 바로 반응이 올라왔다.

콕 집어 말을 할 순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몸이 굉장히 가벼운 느낌이었다.

왠지 한 바퀴를 구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그가 앞발을 차며 몸을 숙이자, 점프한 태정의 신형이 그대로 날아 허공을 돌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은 이후에 발생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미증유의 거대한 힘.

몸을 틀 수 있을 것 같아 방향을 전환하자, 앞으로 구르던 그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옆으로 틀어졌다.

인간의 몸에선 절대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실로 만화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몸이 반이나 돌았는데 다른 방향으로 턴이 되다니.

하지만 거기서 그는 멈추지 않았다.

복부에 힘을 주며 재차 몸을 틀자, 가속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반대로 턴을 하는 그의 신형.

그렇게 무려 세 번이나 기이한 동작을 하고 지상에 내려앉은 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매만졌다.

“몸이… 미친 거 같아. 생각하는 대로 다 돼.”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중력의 힘을 받지 않는 것처럼 동작이나 행동에 대한 제약이 전혀 없었다.

도저히 믿기 힘든 상황에 다시 한번 그가 신형을 날렸다.

그는 일부러 여러 동작을 섞어 어디까지 가능한지 극한으로 몸을 굴려 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안 되는 동작이 거의 없었다.

있는 힘껏 뻗은 스트레이트가 곡선을 그리며 어퍼컷이 되고, 몸이 돌아갈 정도로 강력하게 찬 로우 킥이 말도 안 되는 궤적을 그리며 올려 차기로 돌변한다.

이건 페이크 같은 것이 아니었다.

2개의 동작이 그냥 하나의 기술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몸을 굴려도 약간의 힘과 의지만 있으면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면에 새끼발가락 한 개 정도만 걸치고 있으면, 자세를 다시 잡는 데 전혀 무리가 없는 상황.

그 덕분에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동작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거다. 이런 걸 원했어. 이거만 있으면 나도 근접전에서도 검사 못지않게 싸울 수 있어.”

항상 아쉬웠던 것이 근접전이었다.

강력한 무기는 있지만 행동에 제약이 많아, 그는 간단한 사냥조차 부스터가 없이는 할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굉장히 비효율적인 사냥으로 같은 스펙의 검사와 비교를 한다면 그 성과가 열 배 정도는 우습게 차이가 나고도 남을 것이다.

게다가 기체가 없는 상태에서의 원거리 무기는 지금 레벨에선 거의 통하지 않기 때문에, 광선 검이나 스피어 블레이드의 사용은 필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워커팩을 얻은 건, 호랑이가 등에 날개를 단 격이나 마찬가지인 셈.

“좋아. 그럼 퀘스트도 완료했고. 이제 슬슬 한번 나가 볼까.”

얻을 것도 다 얻었고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블라스터를 전개한 태정이 막 움직이려는데.

탕!

돌연 총성과 함께 그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동시에 여러 알림음이 들려왔다.

[전투 준비 태세가 발동됩니다.]

[외부로 향하는 게이트가 오픈되었습니다.]

[해당 공간은 곧 사라집니다.]

[제한 시간 내에 탈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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