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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29화 (129/182)

129화

환기구 통로를 따라 앞으로 쭉 나아가던 태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곳에 도달했다.

진원지는 바닥이었다.

구멍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욕조로 보이는 캡슐(?)과 거울, 세면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왔네.”

미소와 함께 구멍을 비집고 내려간 태정은 바닥에 착지해 플렉시온을 해제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원상태로 돌아온 그의 몸과 시야.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봐도 이건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미래의 기술력(?)에 혀를 내두르기도 잠시.

그는 곧 문으로 추정되는 투명 벽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테두리에 초록색 불빛이 뜨며 앞을 막아서고 있는 벽이 통째로 사라졌다.

문을 나서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가 들어온 욕실은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태정은 가까운 2층부터 훑어보기로 생각했다.

허공에 곡선으로 떠 있는 특이한 침대와 창밖으로 보이는 초고층 도심의 전경.

그 풍경이 너무나도 생생해, 정말이지 어느 한 도시에 있는 고급 호텔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이건 영상이겠지? 근데 진짜 손 뻗으면 닿을 것같이 생겼냐.”

8k니, 16k니, 리얼 홀로그램이니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생생함이었다.

창을 열면 당장이라도 도시의 소리와 바람이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랄까.

침실로 보이는 2층을 한번 싹 훑은 태정은 본격적인 탐색을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엔 거실로 보이는 공간과 방 하나 그리고 한쪽엔 은하수를 배경으로 한 수영장이 놓여 있었다.

다른 곳은 볼 필요가 없었기에, 그는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하나 있는 방은 그의 예상대로 서재였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책과 책상위에 보이는 여러 자료.

태정은 일단 카드라 불리는 팔찌부터 찾기로 했다.

“제발 여기 있어야 하는데.”

플렉시온을 써 버렸기 때문에 반드시 이곳에 팔찌가 있어야 했다.

다시 7일을 기다릴 순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이곳저곳을 뒤지며 바쁘게 손을 놀리던 태정은 주먹 하나 크기의 작은 함 하나를 발견했다.

함은 반지 케이스를 열 듯 쉽게 열렸다.

그리고 보이는 띠 형태의 팔찌 하나.

“이게 그 카드라는 건가.”

찾고 있던 물건을 발견한 태정이었지만, 어째 표정은 영 신통치 않아 보였다.

팔찌의 비주얼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띠 형태의 금색 팔찌.

언젠가 노점에서 본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런 엄청난 문명에서 이런 평범함이라니.

일단 팔찌를 팔에 두른 태정은 다른 것이 더 있나 계속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 소득도 올리지 못한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맞는 것 같은데. 그런데 이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곳을 쓰고 있냐.”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침대가 하나인 것을 보면 독방.

그 말은 곧, 이 로봇 기지 내에서도 특별히 더 중요한 역할을 가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가 책상 위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이것들 번역 좀 해 봐.”

-전부 말씀이십니까?

“일단 넌 다 번역을 해서 저장을 하고, 그중에 바실리스크의 천신병과 관련된 게 있으면 알려 줘.”

태정의 주문에 제라드가 곤란하다는 듯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이곳의 자료는 나가는 즉시 소멸됩니다. 해서 이후에 물어보셔도 제가 대답을 해 드릴 순 없습니다.

“그럼 인벤토리에 넣어 갈 수도…….”

-불가능합니다.

단호한 대답이었다.

“그럼 천신병에 대한 게 있으면 그것만 알려 줘.”

너무 방대한 양의 자료였기에, 그는 자신이 해야 할 것만 빠르게 처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제라드로부터 별로 달갑지 않은 대답이 들려왔다.

-천신병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없다. 이 정도 인사가 그런 자료도 없단 말이야? 그거 말고 뭐 중요한 내용 같은 건 없나? 개발하고 있는 신무기라든가, 비슷한 거라도.”

-R-1이라는 초인공 의식체와 관련된 코멘트가 있습니다.

“뭐라고 나와 있는데.”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이 최근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이라. 그럼 그건 사람처럼 감정도 느끼고 뭐 그런 거야?”

-그런 감정과는 다르지만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 넌 그럼 뭐냐.”

갑자기 궁금해진 태정이었다.

제라드는 과연 어느 레벨의 인공지능일까.

-현재의 수준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인공 의식의 바로 전 단계인 초인공지능 단계입니다.

“그 말은 지금 너보다 더 굉장한 인공지능이 개발이 되었다는 거네. 이 2600년대에…….”

제라드가 프리지아에겐 고철 취급을 받고 있지만, 인간에 비해 월등한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런 제라드보다 더 굉장한 인공지능이라니.

정말이지, 과학이란 분야는 알면 알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럼 뭐 하냐.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그게 아닌데. 일단 나가자.”

카드로 추정되는 팔찌를 얻었으니, 이제 단서를 찾으러 갈 때였다.

혹시나 놓친 것이 있을까 거실과 주방, 침실을 다시 훑은 그는 그곳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어디 보자. 여기서는… 여기부터 가야겠구나.”

층을 바꿨을 때 가장 가까운 곳은 방위군의 통합 군사 창고였다.

해당 층에 도달하자 무기 관리 시설소와 마찬가지로 사방을 둘러싼 터널의 모습이 보였다.

“제발. 한 번에 가자.”

손목에 찬 팔찌를 바라보던 그가 장갑을 두르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한번 식겁한 그였기에, 걸음은 전과 다르게 매우 신중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긴장과 무게감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대로 전해진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절반쯤이나 도달했을까.

태정의 귓가에 반가운 알림음이 들려왔다.

[Welcome, tenor. Have a nice day.]

“오케이. 이거지. 이 사람 이름이 테너였나 보네.”

경고음 대신 환영음이 들려오자, 그의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반대편에 이른 태정은 이전에 볼 수 없던 거대한 크기의 문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한층 더 견고하고 단단해 보이는 문.

하지만 팔찌가 있는 그에겐 별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쉬이익-!

문이 오픈되고 내부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좌우로 진열된 슈트들이었다.

“오. 이거 내거랑 좀 비슷한데?”

태극 1호와 같이 생긴 슈트가 통로 좌우 벽에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물론, 생김새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보고 있는 게 슈트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 모습에 태정은 왠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졌다.

이곳에 와서 드디어 조금이나마 익숙한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여기 왠지 기대된다. 있을 거 같아.”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에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통로를 지나 도착한 곳은 복잡한 시설이 즐비한 매우 큰 공간이었다.

사방에 보이는 알 수 없는 기계들과 천장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호스와 배관.

무언가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곳으로 보였다.

또한 중앙으로 통하는 4개의 거대한 통로가 있었는데, 그 아래로는 정체불명의 레일이 깔려 있었다.

“뭘 옮기는 장치인 거 같은데.”

아무 표식이 없었기 때문에 태정은 그중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들어간 끝에 그는 볼 수 있었다.

좌우로 진열이 된 수많은 기체를.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와. 이것들은 다 뭐냐.”

캡슐 같은 것에 들어가 있는 기체들은 모양과 크기가 다 제각각이었다.

그중 특별히 큰 것도 있었는데, 코앞까지 다가가자 기체의 정보가 홀로그램 형식으로 떠올랐다.

[피닉스]

전장 5.5m.

전고 8m.

다목적 군사 기체.

전용 무기 레일건.

“와. 전고가 8미터야. 뭐 이런 게 다 있냐.”

인간으로 치면 신장이 8미터.

이것은 일반적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기계의 크기가 아니었다.

프로텍터 타입 2의 전고가 4미터 남짓인 걸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엄청난 덩치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들어가면 갈수록 내부가 커지며 말도 안 되는 크기의 기체가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테라비온]

전장 12m.

전고 25m.

다목적 군사 기체.

ICBM 탑재 가능.

“이건… 그냥 괴물이잖아. 크기 봐라. 말이 되나.”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거대한 기체였다.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다고, 아니 경악을 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비주얼과 크기였다.

이게 만일 도심 한가운데서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재앙이었다.

“지린다, 진짜.”

좀 더 들어가자, 이젠 이게 기계인지 몬스터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기체들이 여럿 등장했다.

[구돌-lv2]

전장 10m.

전고 5m.

4족 보행형 기체.

주무기 다연장 캐논포.

“이래서 몬스터가 밥이었구나. 이런 것들이 있는데 몬스터가 설칠 수가 없지.”

기체는 대형체, 중형체, 소형체 등 가리지 않고 계속 나왔다.

그러다 어느 한 곳에 도달한 태정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프로텍터 타입 2]

전장 2m.

전고 3.5m-4.2m.

레벨1 군사 기체.

*2단 변신 모드.

“애기네, 애기야. 여기서 보니까 왜 이렇게 없어 보이냐, 이거.”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기체를 보자 반가움과 함께 민망함이 밀려들었다.

앞서 본 것들과 비교해 너무나도 아기자기한 모습.

이건 뭐 거의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에겐 한 덩치 하며 놀라움을 줬던 기체인데, 다른 것들이 그렇게나 거대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태정이었다.

“야, 제라드.”

-예, 주인님.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기체가 마지막은 아니지?”

-무엇이 있다고 정확히 말씀을 드릴 순 없지만, 마지막은 아닙니다.

“그래. 그래야지.”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저 중에 하나만 들어와도 대박이었다.

무기도 무기지만, 어지간한 놈들은 몸통 박치기만으로도 정리가 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걸 꺼냈을 때의 반응을 생각해 본다면, 벌써부터 웃음이 터지는 태정이었다.

“여기 오길 잘했어. 성장 욕구가 몇 배로 치솟잖아.”

그렇게 기체들을 구경하며 나아가던 그는 어느덧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

그러자 보이는 또 하나의 문.

이전과 다르게 문에는 출입 금지 표식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보려 앞으로 다가가자, 문 앞에 놓인 동그란 바닥에서 돌연 녹색빛이 솟아났다.

흠칫하기도 잠시.

문이 열리며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내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난간이 설치된, 사방이 다 뚫려 있는 승강기였다.

공사 현장에서 볼 수 있는 화물용 엘리베이터.

내부를 살피기 위해 안으로 걸어 들어간 태정은 버튼이 단 두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로 향하는 초록색 버튼과 아래로 향하는 빨간색 버튼.

“문이 열렸다는 건 권한이 있다는 거겠지?”

먼저 태정은 초록색 버튼을 눌러 봤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 봐도 반응이 없었다.

이어서 그가 빨간색 버튼을 누르자.

끼이이-!

귀를 긁는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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