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인천 부평의 위너스 길드.
대한민국 공식 랭킹 25위에 빛나는 위너스는 인천 일대를 주름잡고 있는 대형 연합 길드였다.
제너럴 리스트였던 위너스를 주축으로 인천의 중소 길드 7개가 모여 만들어진 곳.
아무래도 연합 길드인 만큼 비슷한 랭킹의 타 길드보다 질은 떨어졌지만, 숫자가 워낙 많아 여러 방면에 힘을 뻗고 있었기에 인천에서만큼은 나름의 영향력을 구사하는 단체였다.
위너스 길드장실.
상석에 앉아 서류를 넘기고 있던 길드장 최장우가 앞에 서 있는 사내를 향해 물었다.
“길드원들과 연락이 끊긴 지 얼마나 됐지?”
“다섯 달이 넘었습니다.”
사내의 대답에 그가 서류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다섯 달이라…….”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합니다. 추가로 파견한 병력도 벌써 세 달째입니다. 무언가 조치를 취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갔던 다른 길드는 어떻게 됐나.”
“오늘 복귀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애초에 할당된 구역이 달라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도착을 하고 바로 헤어졌다고 하더군요.”
“중국 쪽 애들은?”
“정상 입국 됐으나, 그 이후는 자신들도 아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정말 사고라도 당한 것인가.”
“그들은 저희 길드 최정예입니다.”
“알아. 하지만 대륙엔 레드 홀에 버금가는 필드가 즐비해 있지 않나. 혹여 길이라도 잘못 들었다면 변을 당했을 수도 있는 일이야.”
“말씀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중국으로 원정을 가는 팀들은 할당 구역이라는 게 있습니다. 관리자가 붙기 때문에 그 구역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게 현실이죠. 더군다나 저희 같은 경우는 화랑이 보증을 섰습니다. 어느 누가 딴생각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할당 구역을 벗어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자네 생각이 뭐야. 이미 답을 내려놓고 있는 것 같은데.”
“중국 놈들이 무슨 일을 벌인 게 아닐까요?”
사내의 말에 최장우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들과 거래를 하고 있는 톱 티어 길드가 몇인데. 이런 일로 한국과 척을 지려 하겠나.”
“한번 들어 보십시오.”
“뭘 말인가.”
“최근 중국 쪽 애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단 정보가 있습니다.”
“심상치 않다?”
“중국은 최근까지도 세력이 나눠져 있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우리와 연을 맺고 있는 화산에 비하면 나머지 넷은 그리 영향력이 있다고 할 수 없어.”
“그 넷이 하나로 뭉쳤다고 합니다. 이건 사실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인데, 화산이 그들에게 패했다는 소문이 톱 길드 위주로 돌고 있습니다.”
“그래. 나도 그 소문은 들었어.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화산이 어떤 곳인데.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기라성처럼 버티고 있는 초일류 단체야. 고작 변방의 작은 세력 몇이 합친다 해서 무너질 곳이 아니란 얘기지.”
“증거가 있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증거?”
“기존에 거래를 하던 화산의 인사들이 모두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사 중 몇몇은 화산과 적대 관계에 있던 봉신방의 사람들이었다고 하더군요.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화산과 봉신방은 철천지원수 관계에 있는데 말입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봉신방 따위가 어떻게 화산을 누를 수 있단 말인가. 당장 우리 한국만 해도 화산과 정면으로 붙으면 승률이 반도 나오지 않거늘. 거, 이상한 소문에 휩쓸리지 말고 화랑에게 다시 한번 연락을 넣어 봐.”
“하지만.”
“어허. 이 사람 참.”
“알겠습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사내가 나간 뒤 최장우는 다시 서류를 펼치다 의자에 몸을 뉘이며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 수하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들이 패했다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
화산은 세계에서도 먹어 주는 일류 중의 일류였기 때문이다.
“화산이 무너져? 100만 위세를 자랑하는 그 화산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서류를 검토하는 최장우였다.
* * *
피융-! 핑! 피-잉!
쇄애애액-!
파파팟!
온갖 소음이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허공을 가르는 수십 개의 빛과 그 빛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물대포.
찰나의 순간 수직으로 상승한 태정이 발을 쓸고 지나가는 엄청난 속도의 물줄기를 바라봤다.
‘위험했다.’
프리지아가 끌고 온 새끼 벨라모스를 손쉽게 처리한 태정은 이후 튀어나온 성체 벨라모스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약 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동체에 갑옷 같은 비늘을 두르고 용의 수염과 새의 부리를 가진 기이한 괴물.
한눈에 봐도 이전에 처리했던 벨라모스와는 격이 다른 놈이었다.
그렇다고 도망은 갈 수가 있느냐.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덩치에 맞지 않게 놈의 비행 속도는 그의 비행 속도에 거의 근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씩 물대포를 쏠 때만 빼고는 금세 쫓아와 아가리를 벌리는 벨라모스.
벌써 몇 번이나 집어삼켜질 뻔한 태정이었다.
“제라드, 놈의 레벨이 어떻게 되지?”
-성체에 이른 벨라모스는 최소 800 이상입니다.
“800 이상이라. 요정의 숲이랑 별 차이도 없는데 난이도가 왜이래?”
이미 광선검을 사용한 태정이었다.
하지만 갑옷같이 단단한 놈의 비늘을 뚫을 수가 없었다.
이레이저 건 역시 출력을 50%까지 끌어 올려 봤지만, 놈이 쏘는 물대포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방어력, 공격력, 기동력 뭐 하나 앞서는 것이 없었다.
-요정의 숲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799까진 일반 속성을 가지지만 800부터는 강화 속성을 띄기 때문에 공격력이 절반 가까이 줄어듭니다. 게다가 덩치에 따른 방어력도 감안을 하셔야 합니다.
몬스터 레벨에 따른 강화 속성.
태정도 이미 교육을 받아서 알고 있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몬스터가 한 방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 상황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
게다가 놈은 소위 말하는 보스 몬스터도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레이저를 아끼는 건데. 지금 출력 몇까지 나와?”
-60%까지 가능합니다.
“60%라…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은데. 최대출력까지 충전은 얼마나 남았지?”
-20분이면 100% 활용 가능합니다.
“늦어. 모으는 시간까지 하면 거의 5분은 더 있어야 하는데. 이거 결국 내려가야 하나.”
슈트 상태의 무기는 죄다 사용을 한 태정이었다.
천무 역시 놈이 튀어나오자마자 개시를 했다.
빗나가 버려 무위로 돌아가긴 했지만.
어쨌든 현 상황에서 놈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무기는 로켓포나 미사일뿐이었다.
물론, 이 둘은 사용을 할 수가 없었다.
공중에서는 기체 소환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에겐 수중 기체인 네비게이터가 있었다.
천룡에 버금가는 데미지를 가진 어뢰를 쓴다면, 놈을 해치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마친 그는 무서운 속도로 날아드는 놈을 피해 수직 하강을 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하강에 헛걸음을 한 벨라모스가 수십 미터를 튀어나갔고, 그사이 물에 처박히듯 수면 위에 도달한 태정이 네비게이터를 소환했다.
첨벙!
무사히 네비게이터에 안착한 태정은 곧장 잠수에 들어갔다.
“레이더 오픈하고 최대한 깊이 들어간다. 미리 거리를 벌려 둬야 해.”
제라드의 보조를 받아 바다 깊숙이 잠수를 시작한 태정은 디스플레이에 하나의 물체가 잡히자 곧장 선회해 놈이 오는 방향으로 어뢰를 조준했다.
“좌표.”
-설정 완료되었습니다.
“가라.”
명령과 함께 최종 발사 버튼을 누른 태정은 좌우 발사관에서 쏘아지는 어뢰를 바라봤다.
어뢰는 순식간에 날아가 자취를 감추었다.
순간 불발인가 싶은 그때.
파파팟!
작은 충격파와 함께 저 멀리 새하얀 섬광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성공인가?”
[벨라모스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500만을 획득합니다.]
[트라이아기의 분노를 획득하셨습니다.]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어뢰 2발이 정확히 놈을 박살 내 버린 것이다.
“그런데 트라이아기의 분노는 뭐냐. 아이템인가?”
인벤토리를 오픈해 확인을 해 보려는데.
곧장 제라드의 경고가 울려 퍼졌다.
-좌측 55도 방향 3km 부근 무언가 거대한 것이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또 있었어?”
-굉장한 속도입니다. 2.5km… 2km… 1.5km.
말 그대로 엄청난 속도였다.
무려 500미터씩 접어 접근을 하고 있는 괴생명체.
급히 다시 어뢰를 장전했다.
“조준.”
-좌표 설정…….
“아.”
계산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태정의 입이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맥없이 벌어졌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정체불명의 시커먼 구조물.
그것은 단순히 거대함을 넘어 압도가 될 지경이었다.
대체 저게 무엇일까?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상승!”
도저히 장전 시간이 나올 것 같지 않았던 태정은 생각을 바꿔 최대출력으로 기체를 상승시켰다.
하지만 시커먼 것의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빨랐고, 벗어나지 못한 태정이 좌우 손잡이를 잡은 뒤 충돌에 대비했다.
하지만 막상 충격은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사방이 시커멓게 변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제라드,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파악 중에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서치를 켰다.
뭐라도 보일까 해서였는데.
태정의 눈에 들어온 것은 굴이었다.
그것도 굉장한 크기의 동굴.
조금 전까지 바닷속에 있던 그가 어떻게 이런 곳으로 들어오게 된 것일까?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아 풀렸다.
-이곳은… 해왕 트라이아기의 뱃속인 것 같습니다.
“해왕 트라이아기? 그럼 내가 지금 몬스터한테 먹혔단 말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
“괴물의 뱃속이라니. 이 무슨… 그보다 얼마나 크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규모를 자랑하냐. 서치가 끝까지 닿지도 않아.”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내부였다.
이걸 한눈에 담을 수나 있을까.
신기함에 혀를 내두르며 구경을 하는데, 프리지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놈이 큰 게 아니다.]
“놈이 큰 게 아니라니?”
[네가 작아진 거야.]
“뭐?”
[트라이아기의 권능이지.]
“그런 게 가능해?”
태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는데, 제라드가 프리지아를 찾았다.
-프리지아 님.
[왜?]
-이거 혹시 일부러 그러신 겁니까.
[넌 눈도 없냐. 해왕은 어지간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네 주인이 벨라모스 부자를 박살 냈기에 등장을 한 것이지. 내가 해왕을 끌고 온 건 아니잖아?]
-위험할 수 있습니다.
[걱정 마. 이미 계산 끝났으니까.]
-앞으론 자제 부탁드립니다. 이런 식으론…….
[이봐, 고철. 깐깐하게 굴지 마. 다른 건 몰라도 이번 건은 절대 걸릴 리 없으니까.]
둘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태정이 그들을 향해 물었다.
“이봐, 너희 지금 무슨 얘기하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넌 네 할 일 하면 돼.]
“아니, 이것들이…….”
자신만 빼고 비밀 얘기를 하는 것 같자 기분이 상한 그가 재차 물으려는데, 돌연 그의 귓가로 선명한 알림음들이 들려왔다.
[돌발 퀘스트가 오픈되었습니다.]
[퀘스트 창을 확인해 주십시오. - 시리우스의 전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