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길드를 출발해 동해상에 이른 태정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놓인 쿠릴열도로 향했다.
쿠릴열도는 그 옛날 일본과 러시아가 섬을 두고 대립을 했던 곳이었다.
지금은 던전화되어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기도 한 이곳은 국내에서 태평양으로 빠지는 유일한 이동 경로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쪽은 폭풍으로 인해 비행이 불가능하고 일본을 가로지르려면 방공망을 거쳐야 한다.
그들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절차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걸리면 발이 묶이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길드에 통보가 가게 될 것이고 자신이 제주도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런 것을 감수하고 갈 바엔 조금 돌아서 가는 것이 현명한 일.
동해 상공을 지나 북상하던 그의 시야에 하나의 거대한 대륙이 눈에 들어왔다.
보기엔 대륙처럼 보이지만 사실 저곳은 얼마 전 그가 구조 활동을 다녀온 사할린이란 섬이었다.
당시와 다르게 섬은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태정에겐 그 모습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보니 또 다르네.’
섬에 대한 기억은 별로 좋지 않았다.
빠져나갈 수 없던 이상한 연구소와 상식을 파괴하는 기현상들.
수천, 수만에 이르는 몬스터들이 지상, 하늘 할 것 없이 덮치는데, 사실 그때 태정에게 핵이 없었다면 어찌 될지 몰랐던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해변을 새카맣게 물들이며 배를 향해 무지성으로 달려드는 괴수들.
제닉스의 화력으론 도저히 감당을 할 수가 없는 물량이었다.
물량전에 특화가 되어 있는 그의 무기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아마 핵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배는 그대로 망가져 엄청난 인명 피해와 함께 대부분 바다에 수장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이런 걸 보면 그때 도박을 한 게 잘 한 일이었어.”
금사자에서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소 무리수가 따랐던 그 퀘스트는 결국 자신은 물론이고 수많은 이들을 살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태정은 그걸 완수할 수 있게 도와준 최다솜이 떠올랐다.
그녀가 없었다면 턱도 없었을 일.
만일 그때 최다솜이 자신의 편에 서지 않고 길드에 고발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태정이었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밥이라도 한번 사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는 어느덧 사할린을 지나 오호츠크해(북태평양)에 진입을 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가면 쿠릴열도에 도달하고, 그곳만 벗어나면 진정한 대양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사실 인간의 기준으론 동네 앞바다조차도 가늠이 되지 않을 거대한 규모기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속은 다르겠지만 위에서 보면 그곳이 그곳인 것이다.
물론, 육지와 인접해 있는 얕은 연안은 색이 좀 화려하겠지만 말이다.
-곧 태평양에 진입합니다.
“섬이 안 보이네? 지나왔나?”
-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 보이지 않으실 겁니다. 막 통과했습니다. 경로 수정하겠습니다.
태평양에 막 진입한 태정은 제라드의 좌표대로 신형을 선회했다.
이제는 이틀 내내 직진만 하면 되는 상황.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초코바 하나 먹을까.”
배가 출출해진 태정은 인벤토리를 열어 초코바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막 헬멧을 오픈 하는데.
“와라라라아아랄.”
강력한 맞바람이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의 강풍이었지만 먹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다.
얼굴에 처바르듯 초코바를 입안에 구겨 넣는 그가 다시 헬멧을 내렸다.
“음. 먹을 만한데?”
초코바 하나를 우물우물 삼키던 그는 부족했는지 다시 초코바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막 헬멧을 오픈 하려는데.
돌연.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바다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자신의 바로 아래서 엄청난 속도로 따라오고 정체불명의 물체.
한데,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저거… 프리지아 아냐?”
무서운 속도로 헤엄을 치고 있는 그것은 다름 아닌 프리지아였다.
어이가 없어진 태정이 제라드를 불렀다.
“저거 프리지아 맞지?”
-그렇습니다.
“쟤 저기서 뭐 하냐?”
-잘 모르겠습니다.
제라드에게서 답을 얻을 수가 없자 그가 고도를 낮추며 아래로 하강했다.
“이봐. 너 뭐 하냐, 지금?”
태정이 묻자, 헤엄을 치던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보면 몰라? 수영하잖아, 수영.”
“그러니까 왜?”
“왜는 무슨 왜야. 오랜만에 밖에 나왔으니까 자연을 만끽하는 거지.”
“너 힘 찾아야 된다고 안 했냐?”
“했지.”
“그럼 짱 박혀서 힘이나 찾을 것이지. 왜 나와서 이상한 짓을 하고 그러냐. 이럴 힘 있으면 빨리 나가.”
“걱정 마. 이거 조금 논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모처럼의 나들인데 귀찮게 하지 말고 넌 올라가서 네 볼일이나 봐.”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헤엄을 치는 그녀.
그런 그녀를 두고 고도를 높인 태정은 팔짱을 낀 채 프리지아를 내려다봤다.
“저거 진짜 힘없어서 있는 거 맞아?”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재 그의 속도는 200 이상.
아무 장애물이 없는 비행 시 나오고 있는 속도였다.
한데, 물을 가르고 헤엄을 치면서 그 속도를 따라온다는 것은 이미 그녀의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저 정도 속도를 맨몸으로 낼 수 있는 헌터가 과연 몇이나 될까.
당장 그의 머릿속엔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수상하단 말이야. 이미 힘을 찾은 것 같은데, 왜 붙어 있는 거지? 다른 이유가 있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차피 이 부분에 대해선 생각을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제라드를 향해 물었다.
“내가 강해지면 시리우스를 비롯해 모든 걸 알 수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얼마나 강해져야 하는 거지?”
-첫 번째 특이점을 맞게 되면 일부 의문은 풀릴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특이점이 오면 아마 대부분의 궁금하신 것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두 번의 특이점이라. 그게 언젠데.”
-정확한 건 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첫 번째 특이점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겁니다.
“…멀지 않다. 그것도 네 기준이겠지? 일단 계속 성장해 보지, 뭐. 그러다 보면 특이점인지 뭔지가 오는 날이 오겠지.”
비행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날씨도 맑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금세 지루함이 느껴졌다.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5시.
길드를 떠나온 지 10시간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이거 잘 가고 있는 건지 구분도 안 가네. 근데 이 여자는 다시 들어왔나? 아까부터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조금 전까지 펄쩍펄쩍 뛰며 바다를 질주하던 프리지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있을 땐 몰랐는데 사라지고 나니 뭔가 심심함이 느껴지는 태정이었다.
하늘과 바다 그 외에는 볼 것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바로 그때.
태정의 시야에 무언가 시커먼 것이 잡히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그의 시선은 바다에 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닷속이었다.
새파란 바다 색깔이 시커멓게 물들여지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영역을 확대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무엇을 느낀 찰나 하나의 신형이 물속을 튀어나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주인공은 프리지아였다.
긴 머리를 한쪽으로 넘기며 온몸으로 햇살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
그 모습이 마치 한 편의 cf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튀어나온 바다로부터 무언가 거대한 것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솨아아아-!
엄청난 물보라와 함께 등장을 한 것은 체고 5미터 정도 되는 대형 몬스터였다.
새의 부리를 가진 외눈깔의 생선 대가리.
몸통엔 날개까지 달려 있었다.
딱 거기까지 눈에 담은 태정은 순식간에 놈을 지나쳤다.
그러자 옆으로 프리지아가 따라붙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태정이 눈짓을 하며 물었다.
“저건 뭐야?”
“아. 별거 아니야. 놀고 있는데 뭐가 걸려서 발로 찼더니 그게 저놈 눈깔이더라구. 화났나 봐.”
별일 아니라는 듯 머리의 물기를 짜내고 있는 프리지아를 태정이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신과 속도를 맞추며 그 와중에 몸단장까지 하고 있는 그녀.
“너 솔직히 힘 찾았지?”
“아니?”
“우리 길드에 기동 속도로만 따지면 나보다 빠른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오지? 이게 말이 되나?”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아무리 힘이 없기로서니, 2차 각성도 하지 못한 너보다 느리면 그게 죽은 거지 살아 있다고나 할 수 있겠어? 이건 내 힘의 극히 일부도 아니야. 뭐랄까. 그냥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거지. 그보다 지금 나랑 노닥거릴 시간이 없을 텐데? 쟤, 지금 좀 많이 화난 것 같거든.”
프리지아의 손짓에 태정이 뒤를 슬쩍 돌아봤다.
그러자 날개 달린 생선 대가리가 무서운 속도로 뒤를 쫓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숨을 쉰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네가 저지른 일을… 얘 어디 갔냐?”
사라진 그녀를 부르자 그의 내면에서 한 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난 피곤해서 좀 자야겠으니까. 알아서 잘해 봐. 그리고 고철, 이리 와서 다리 좀 주물러 봐라.]
-저는 데이터로 이루어진 인공지능이라 프리지아 님의 다리를 만질 수가 없습니다.
[쯧쯧. 쓸모없는 것.]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mk4를 소환했다.
“그렇지 않아도 심심했는데 잘됐네.”
신형을 돌린 태정은 쫓아오는 생선 대가리를 향해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그러자 총성과 함께 수십 발의 에너지 탄이 직선으로 쏘아졌다.
그것은 그대로 생선 대가리를 강타했고, 잠시간 놈의 날갯짓을 멈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내 사격을 뚫고 맹렬한 속도로 접근하는 거대한 생선 대가리.
“역시 덩치가 있어서 그런가 요건 아예 통하질 않네. 보자. 천무는 맞추기가 힘들 것 같고. 이걸로 해 볼까.”
잠깐 생각을 하던 태정의 손에 이레이저 건이 소환됐다.
피융-! 핑! 피융!
기계음과 함께 쏘아진 시뻘건 레이저가 놈의 동체를 연이어 강타했다.
이번엔 효과가 있는지 몸 곳곳이 그을려지며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다.
그 모습에 신이 난 그가 연신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머리. 몸통. 날개. 대가리. 아가미. 다시 대가리. 그래도 쫓아와? 대가리. 대가리. 대가리.”
머리통을 3연타로 맞은 놈이 결국 하강을 하기 시작했다.
그걸 그대로 보내 줄 태정이 아니었다.
출력을 최대로 올린 그의 오른손에 광선검이 소환됐다.
즈앙-!
동시에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그가 세로로 검을 내리그었다.
촤아아악-!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4미터가량의 거대한 자상이 생기며 내용물이 폭발하듯 튀어나왔다.
[새끼 벨라모스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400만을 획득합니다.]
“오. 경험치 보소? 대양이라 그런지 이런 놈도 400만씩이나 주네.”
생각보다 많은 경험치에 좋아하기도 잠시.
깜빡했다는 듯 프리지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 근데 쟤 부모도 있는 것 같더라. 참고하라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발아래로 거대한 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