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장장 10시간에 걸쳐 고성에 도착한 헌터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길드 버스에 올라탔다.
그곳엔 이미 사제를 비롯한 수많은 의료 팀이 와 있었는데, 그 수 만해도 오십 명이 넘어 보였다.
이것만 봐도 제닉스가 얼마나 길드원을 소중히 생각하는지 알 수가 있는 부분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큰 고통 없이 본부에 도착을 할 수 있었고, 이후 태정은 상황보고를 위한 간단한 회의를 마친 후 숙소로 복귀했다.
그가 집에 들어서자 막 현관을 나서려는 박세아의 모습이 보였다.
“어? 보스.”
“뭐야? 어디 가?”
“마중 나가려고요, 방금 연락을 받아서.”
“쓸데없이 뭐 하러.”
“연락이 끊어졌다고 해서 걱정하고 있었어요.”
“나? 아니면 사람들?”
“둘 다죠. 다치신 데는 없어요?”
“보다시피 아주 멀쩡해. 밥 있어?”
“금방 차릴게요.”
주방으로 향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온 태정은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익숙한 냄새와 포근한 느낌.
역시 집이 최고였다.
“여기도 벌써 적응이 됐네. 엄청 오래 된 것 같은 기분이란 말이지.”
편안한 분위기에 아무 생각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태정은 졸음이 밀려들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사할린에서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리지아에 대해서였다.
“그 여자… 대체 뭐였을까? 시리우스를 확실히 알고 있는 눈치였어.”
시리우스를 거의 동네 친구처럼 취급했던 그녀였다.
둘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어떤 이유로 그곳에 갇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자신에게 도움을 줬단 것이었다.
“딱히 악해 보이진 않았는데… 약속도 지킨 걸 보면.”
솔직히 그 상황에서 태정의 마음은 반반이었다.
선택지가 없었기에 될 대로 대란 식이었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약속을 아주 잘 지켜주었다.
덕분에 탈출은 물론이고 사람들 또한 무사할 수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궁의 아라곤도 시리우스를 알고 있었지. 그놈 그거 은근 유명한 놈인가 보네. 근데 왜 다들 비밀이 그리도 많은 거야? 아라곤도 그 여자도 그리고 제라드 이 자식까지. 숨기는 게 너무 많아.”
그가 생각하기엔 딱히 감출 것까지야 있냐는 생각이었다.
자신이 궁금한 것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일반적으로 물을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뭔가 엄청난 흑막이 있는 것처럼 다들 입을 잠그고 있으니, 더욱더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태정이었다.
“클럽에 들어가면 알 수 있으려나?”
한설아의 말에 따르면 클럽이 결성된 이유 중 하나가 미궁에서의 일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발설하지 말라는 아라곤의 경고가 있어 확실히 물어보진 못했지만, 그녀 역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단 것은 눈치로 알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보다야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들은 미궁을 이미 옛날 옛적에 클리어 했을 테니까.
“세인트 프리지아, 일단 킵 해 놓자. 그보다 이게 중요한데.”
[순항 핵미사일] [분착식]
봉인된 속도 [830km/h]
로켓탄 : 전술용 소형 핵탄두
사정거리 : [20km]
범위 : 최대 3km
열복사 - 670,000(폭심지)
충격파 - 120,000(1km 내외)
후폭풍 – 60,000-5,000(1.5-3km)
쿨타임 30일 (29/30)
소비마나 2만
*던전 사용 불가능(봉인 중).
“쿨타임이 30일이나 된단 말이지. 한 달에 고작 한 번. 게이트에서 사용은 할 수가 없고. 근데 왜… 제라드.”
뭔가 생각이 난 태정은 제라드를 불렀다.
-예. 주인님.
“그때 네가 그러지 않았어? 천룡의 2만 배라고.”
-맞습니다.
“근데 왜 중심지의 파괴력이 67만인 거야? 20배밖에 안 되는데? 아무리 제한이 걸려 있다 해도 이건 너무 차이가 심하잖아.”
-종합 파괴력은 단순 배수로 수치화되어 계산이 되지 않습니다.
“단순 계산이 안 된다니?”
-쉽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슈퍼 발칸포와 mk4는 수치상 파괴력 차이가 3천 정도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실제 전투에선 슈퍼 발칸포가 압도적인 위력을 보입니다. 이를 단순 배수로 계산하면 열배, 아니 던전에 따라 수십 배까지도 차이가 나는 거죠.
“그렇게나 난다고? 그 정도까진 느끼지 못했는데.”
-주인님께서 에너지 탄 만 발을 사용해서 상처도 내지 못하는 걸 강화 에너지 탄 한 발에 죽일 수 있다면, 그건 과연 몇 배의 위력일까요?
“그야…….”
-아마 쉽게 답을 하시기가 어려울 겁니다. 좀 더 쉽게 설명을 드리자면, 재래식 수류탄의 경우 tnt 100g의 폭약을 지니고 있습니다. 살상 범위는 5-15m 정도가 되죠. 1kt일 경우 tnt 1,000톤이니 약 수류탄 천만 개가 한 번에 터지는 것과 같은 위력을 지닙니다. 분착식 순항 핵미사일의 경우 3kt의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류탄으로 치면 삼천만 개가 한꺼번에 터지는 위력이죠. 이를 단순 살상 범위로 계산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어떻게 되는데?”
-15만 km가 나옵니다. 이는 지구를 약 4바퀴나 돌 수 있는 어마어마한 범위입니다. 하지만 이건 수류탄을 일렬로 세워 놓고 터뜨렸을 때를 가정한 것이고, 만일 삼천만 개의 수류탄을 공 하나에 겹쳐 놓을 수 있다 가정을 하고 일시에 터뜨린다면 그 범위는 약 5km 내외로 줄어들 것입니다. 이처럼 폭발력이나 파괴력은 단순히 계산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분명히 알아 두셔야 할 것이, 스킬의 원천이 되는 힘은 화약이나 우라늄 따위가 아닙니다. 현재는 시리우스의 에너지가 그 원천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정해 놓은 수치가 현재로선 정답입니다.
“음.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겠는데. 하긴 수치가 무슨 상관이냐. 내 눈으로 그 엄청난 광경을 봤는데.”
태정은 아직도 그 모습들이 생생했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던 그때의 광경들이.
“참. 그건 그렇고 이거 봉인인지 제한인지 풀리면 던전에서도 사용 가능한 거지?”
-그렇습니다.
“언제가 될 진 몰라도 개꿀이겠는데?”
* * *
다음 날 오전.
간부 회의가 소집된 가운데, 전략기획 본부장 한지만이 태정을 먼저 찾아왔다.
딸을 구해 줘서 고맙단 뜻에서였는데, 손에는 진귀한 포션 등 아이템이 주렁주렁 들려 있었다.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 적어서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이런 걸 바라고 간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저만 간 것도 아니라…….”
“참모장님께 들었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큰일이 났을 거라던데. 받아 주게. 그냥 성의일 뿐이야, 성의.”
“진짜 괜찮습니다. 정 마음에 걸리시면 나중에 밥이나 한번 사 주십시오.”
“밥? 겨우?”
“그거면 충분합니다. 곧 회의 시작이군요. 가시죠.”
태정이 전략본부장과 함께 회사를 빠져나간 뒤 사무실을 정리하던 박세아는 탕비실의 모자란 물품을 채우기 위해 비품 창고로 향했다.
막 복도를 빠져나와 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총무 팀 팀장 김지수였다.
“세아 씨.”
“앗. 팀장님.”
“휴게실 가는 길이야?”
“아뇨. 비품 창고에요. 물품이 떨어져서. 팀장님은요?”
“난 그냥 밖에 나왔다가 세아 씨가 보여서. 알려 줄 것도 있고.”
“어떤……?”
“어제부로 세아 씨 수습 기간 끝났잖아. 다음 주에 활동비 나갈 텐데. 계좌가 없더라구.”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그럼. 들어온 지가 언젠데. 인사 팀에 말해서 미리 등록해 놔. 우리도 그래야 제때 처리를 할 테니까.”
“제가 그럼 은행을 다녀와야 하는데. 내일, 아니 모레 등록을 해도 될까요?”
“왜? 쓰는 계좌 없어? 아, 맞다. 클래스 비서들은 급여가 없다고 그랬지. 그래도 전에 쓰던 건 있을 거 아냐. 돈은 맡겨야 되니까.”
김지수의 말에 박세아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가지고 있는 돈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이다.
헌터였던 그녀의 아버지가 죽기 전 남긴 유품은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는 사회 불신론자로 은행의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인벤토리에 모든 것을 보관하고 다녔다.
사실 헌터들에겐 이것만큼 안전한 것도 없었는데, 문제는 자신 외에 이것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해서 사고가 난 당시 시체도 제대로 보존을 못 했던 그가 그녀에게 남길 수 있는 재산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후 길드의 지원안이 마련됐지만 지원을 받으려면 길드를 나가야 했고, 당시 갓 스무 살이 된 그녀는 사회로 나갈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찾은 것이 바로 지금의 비서 일이었다.
길드에 남아 있을 수 있으면서 급여는 없지만 각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어차피 비서로 있는 기간 동안 의식주는 제공이 되니까 돈은 필요가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드디어 첫 급여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무려 5년 만에 말이다.
“내가 너무 들어갔나? 하긴. 계좌야 없을 수도 있지. 꼭 있으란 법도 없으니까. 아무튼 알았어. 그럼 모레까진 등록을 좀 해 줘.”
“네. 알겠습니다.”
태정이 사할린에서 돌아온 지 만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간 돌아오지 못한 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합동장이 치러졌고, 추모 행사와 함께 애도 행렬이 이어졌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갈 때 즈음.
수도 서울에서는.
한산도 본청 원수궁 앞.
코스모스가 만개한 정원을 두 사내가 거닐고 있었다.
“그게 정말인가.”
“예. 연해주에 나가 있는 작전 팀이 전해 온 정보입니다.”
“필드에서 기가노톤급의 에너지라. 이게 말이 되나? 가상전도 아니고 필드에서?”
“마력 측정기의 자료가 넘어와 있습니다. 조금 부족하긴 하나 1기가 노톤에 근접하는 수치는 확실합니다.”
“발원지는?”
“사할린 남부로 추정됩니다.”
“제로 그라운드군.”
“예. 순간적으로 일었다 사라진 것을 보면, 아무래도 하이 레벨에 근접한 이가 움직인 것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그럴 테지. 그 정도 마력을 일시에 뿜어내려면 아무래도… 한데, 그곳은 이미 우리가 다녀온 곳이 아닌가. 별로 특별 한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그런 고급 인력이 그곳에 나타난 거지? 러시아인가? 아니면 일본?”
“그것까진 확인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해 보게.”
“얼마 전에 은밀히 고성항을 떠난 배가 한 척 있었다고 합니다.”
“그게 그리 특별한 일인가. 내륙은 복잡하니, 배를 이용해 넘어가는 이들은 흔해. 우리만 해도 함흥 청진 블라보스톡까지 대부분 내륙의 길보단 배를 이용해 들어가지 않나.”
“맞습니다. 하지만 고성항은 폐쇄된 지 오래라. 그곳을 통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 배가 떠난 이후에 자취를 감추었다는 겁니다. 이북과 연해주 그 어느 항에서도 그 배는 들어오질 않았다고 합니다. 한데, 그 배가 얼마 전 다시 고성항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아직 일본 쪽 정보가 넘어오진 않았지만 그쪽도 아니라면. 국내 단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하여…….”
“글쎄. 국내의 톱 티어들은 대부분 한 번씩은 사할린을 찍어 봤을 텐데. 그들이 왜 그런 미련한 짓을 하겠나. 얻을 거 하나 없는 그 황폐한 땅을. 그래서 알아는 봤나?”
“그게 하나같이 다 입들이 무거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인 건 밝혔고?”
“그건 아닙니다. 괜히 말이 나올 것 같기도 해서 그냥 민간 협회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혹시 모르니 우리인 걸 밝히고 다시 알아봐. 가능성은 낮겠지만 또 이것들이 무슨 작당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는 일이니까. 수도 사령부에 일러 톱 티어들의 최근 동향도 좀 알아보고.”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