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시커먼 것의 정체는 블랙 가고일이었다.
현존 하는 가고일 중 유일하게 언데드가 아닌 순수 암흑 속성의 특이 변종.
스스로 존재하는 변종답게 놈들은 일반 가고일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는데, 추정 레벨이 무려 750에 육박할 정도로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물론. 이곳에 있는 인원들이 상대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여기 있는 헌터들은 명색이 제닉스의 최고 전력.
문제는 던전에서 기껏해야 서너 마리 정도 볼 수 있는 놈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단 것이었다.
수백, 아니 그 이상도 되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 대장님! 저길 좀 보십시오!”
누군가 경악을 한 듯 소리쳤다.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고, 거기엔 믿을 수 없는 일이 또 한 번 일어나고 있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연구소 부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에노타우르스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에 정신이 번뜩 든 이한역이 간부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이동기 전개해서 해변까지 뛴다. 참모장님께서 위에 있는 놈들 엄호를 좀 맡아 주십시오.”
“글쎄.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네만…….”
말끝을 흐리는 참모장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그가 곧 전방에 일어난 사태를 뒤늦게 알아챘다.
“어느 틈에…….”
후방의 에노타우스르 부대와 거의 맞먹는 숫자의 소 대가리들이 어느새 그들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점점 세를 불려 순식간에 사방을 에워싼 에노타우루스들.
이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래도 그냥 벗어나긴 힘들 것 같습니다.”
특공대장의 말에 이한역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원형진을 펼쳐라! 마법 부대는 공중 백업하고 부상자를 제외한 나머진 합격진으로 맞선다.”
그의 명령에 헌터들이 순식간에 진을 형성했다.
태정은 훈련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참모장의 부대에 귀속됐다.
이미 그의 기체엔 공중 요격미사일인 아이언 스피어가 소환되어 있었다.
모두가 스킬을 장전한 채, 숨을 죽이고 있는 그때.
까마귀처럼 공중을 배회하던 가고일들이 지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지금!”
참모장의 명령에 수십 명에 달하는 헌터들의 무기에서 시뻘건 빛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곧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의 창이 되었고, 이내 가고일들을 향해 쏘아졌다.
화르륵!
퍼억! 퍽!
[블랙가고일을 해치웠습니다.]
[파티 경험치 50만을 획득합니다.]
[블랙가고일을 해치웠습니다.]
[파티 경험치 50만을 획득합니다.]
첫 타는 대성공이었다.
역시 제닉스 최강의 마법 전단이다.
이어 그들의 신형에서 시릴 듯 차가운 한기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머리 위로 발현되는 거대한 빙 창.
다시금 참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지금!”
하늘도 뚫어 버릴 듯 날카롭게 연마된 빙 창이 무서운 속도로 쏘아졌다.
턱. 터턱. 턱!
그대로 관통되어 얼어 버리는 가고일들.
차갑게 굳은 놈들의 신형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바로 그때.
준 간부 한 명이 소리쳤다.
“우측 45도 방향 비었습니다!”
그 말에 태정이 우측 방향에 포를 대고 대답했다.
“제가 맡겠습니다.”
동시에 그의 요격미사일이 힘찬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가고일들을 향해 발사됐다.
슈우욱-! 쾅!
굉음과 함께 허공 일대에 폭발이 일어났다.
단 두 발에 불과했지만 범위가 있다 보니, 직격을 당한 반경 십수 미터 내의 가고일들이 모두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 엄청난 파괴력에 마법을 재장전하고 있던 헌터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와! 역시.”
“저거 그거잖아. 메테오 스트라이크 저지한 기술.”
“맞아. 그때 대단했지.”
“나도 있었어, 그 자리에.”
영지전에서의 위용을 떠올리던 헌터들이 다시 참모장의 명령에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마법 부대가 허공의 가고일들을 맞아 선전을 하고 있을 때, 지상에서는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난다 긴다 하는 제닉스의 톱 랭커들이 다 모인 자리였지만, 듣도 보도 못한 대물량 공세에는 당할 재간들이 없었다.
“대체 얼마나 더 있는 거야?”
슈악! 서걱-!
눈앞에 있는 십여 마리의 에노타우르스를 일 검에 양단한 이한역이 사방을 살피며 중얼거린 말이었다.
벌써 그가 베어 넘긴 몬스터만 해도 족히 수백은 넘어가는 상황.
어디 그뿐인가.
특전대원들이 잡은 놈들도 그 배는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다른 방위를 잡고 있는 2, 3공대장을 포함 특공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자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대장님, 이대로는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동쪽을 보고 있던 특공대장이 이한역에게 친 통신이었다.
“아직도 많은가.”
“끝이 없습니다. 방금 3공대장과도 교신을 했는데 줄어들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소모전만 계속될 뿐, 저희에게 불리합니다. 지상 병력만 가지곤 어렵습니다.”
“그렇긴 하네만. 지금 저쪽도 그렇게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야. 그나마 지역대장이 있어 저 정도 버티고 있는 거지, 아니었다면 벌써 무너졌을 거야. 그마저도 겨우 호각인 상태인 것 같고. 저 상황에 도움을 받는다는 건 공중을 버리겠다는 뜻인데, 그럼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이지 않은가.”
이한역의 말에 특공대장은 달리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고일은 에노타우르스에 비해 등급이 높은 몬스터였다.
그런 놈들을 상대로 특전대보다 적은 수의 마법 전단이 이만큼이나 선전을 하고 있는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것도 전단 하나에 맞먹는 화력을 가지고 있는 태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고서도 승기는 잡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빡빡하다는 뜻이었다.
“차라리 기술 제한을 풀면 어떻겠습니까.”
특공대장의 제안에 그가 단호히 대답했다.
“그건 안 될 말이야. 적의 군세도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데, 최후의 보루를 막 쓸 순 없네. 그러다 감당 못 할 위협이 닥치면 그땐 어쩔 텐가. 4급 이상의 스킬은 재시전까지 최소한 30분이야. 운이 좋으면 폭발적인 공세로 치고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독이 될 수도 있어. 더군다나 4급부터는 체력을 갉아먹는 기술이 대부분이라 육체적 데미지가 쌓이면 그땐…….”
현재 이들은 최소한의 스킬만 가지고 전투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피니쉬 무브나 스페셜 무브는 전혀 사용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적들의 군세를 가늠할 수가 없다는 것.
분명 고급 스킬들이 난무하면 활로가 뚫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적의 세를 확실히 알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써 봐야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적의 세가 많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 연출될 수가 있었다.
대부분의 고급 스킬이 가진 특성상 체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공용 채널에 태정의 음성이 들려왔다.
“제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지역대장인가? 자네가 이탈을 하면 본대가 위험할 거야.”
“b6-1로 확인하면 됩니다.”
“B6-1이라니? 혹 그 비행체를 말하는 건가.”
“예.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당최 줄지 않는 놈들의 공세에 대체 얼마나 많은 놈이 있는지 의문이 들던 태정이었다.
곧장 b6-1을 상공에 띄운 태정은 제라드를 향해 지시했다.
“우측 레이더 디스플레이로 띄워 줘.”
-알겠습니다. 디스플레이 전송 중. 전송완료되었습니다.
“좋아. 이놈들 대체 얼마…….”
컬러로 바뀐 디스플레이 창을 바라보던 태정은 이내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지상을 새까맣게 물들인 흑백의 점들.
반면 그 사이에 보이는 헌터들의 군세는 한 줌 재로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확대를 해 보니 까만 점들은 몬스터가 맞았다.
“이게… 우리의 바깥 상황이라고? 말도 안 돼.”
족히 수만은 되어 보이는 군세였다.
막말로 놈들이 일시에 몸만 들이밀어도 끝장이 나는 상황.
진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느새 깔린 짙은 안개로부터 계속해서 증원이 되는 몬스터들.
그 수만 해도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지역대장, 확인은 됐나?”
이한역의 통신에 태정이 잠깐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그게… 좀 많은 것 같습니다.”
“얼마나 돼 보여? 남쪽으로 활로가 나오겠어?”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수만은 되어 보입니다.”
“뭐, 뭐? 수만?”
당황한 그의 음성이 들리고 이어 교신을 듣고 있던 간부들이 하나둘 끼어들었다.
“그게 정말인가?”
“수만이라니?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아직 살아 있나.”
“그 정도 병력이면 발만 내밀어도 끝장이야.”
그런 그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수만이라는 물량은 일시에 해결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강해 봐야 의미가 없는 숫자였다.
여기 있는 이들이라고 해봐야 부상자들을 제외하면 200명 남짓.
놈들이 동시에 한 동작만 취해도 싸그리 몰살이 되는 그야말로 한줌 재밖에 되지 않는 병력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일정 범위가 아니면 어그로가 끌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가.”
“문제는 계속 증원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증원?”
“예. 지금 반경 수 킬로미터 일대에 얕은 안개가 깔려 있는데, 그곳으로부터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 범위가 너무 넓어 원점 타격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럼 뭐야. 영원히 이곳에서 싸우다 죽으란 소리야? 무슨 방법이 없겠나? 지금 바깥 상황을 볼 수 있는 건 자네밖에 없어. 가장 세가 적은 곳이 어디야?”
“이게… 어딜 봐도 몬스터 천지라 딱히 나은 곳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일났군, 이거.”
사태를 직시한 이한역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지역대장의 말이 맞다면 사실상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다.
수만 군세에 둘러싸여 거기에 계속 증원이 되고 있는 상황.
지금 있는 병력가지곤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라곤 마법 부대와 특전대 전원이 일시에 스킬을 개방해 한곳으로 전투력을 폭발시키는 것.
하지만 그게 실패로 돌아가면 뒤는 볼 것도 없이 몰살이었다.
그들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태정 역시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이걸 뚫으려면 어줍잖은 화력으론 절대 불가능해. 한 번. 단 한 번에 조져야 해. 그래 봐야 순식간에 복구 되겠지만…그래도 어쩌면.’
생각을 하던 태정이 결심을 한 듯 허공을 바라보며 통신을 날렸다.
“대장님,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뭘 만인가.”
“활로 말입니다. 뚫어 보겠습니다.”
“뭐라고? 자네가 어떻게… 아무리 자네라도 이건 불가능해.”
“해 보겠습니다.”
“자신 있나? 만일 이게 잘못되면…….”
“알고 있습니다.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아니, 하겠습니다.”
확신에 찬 그의 말에 이한역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지역대장은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 자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해 보게. 한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 우리도 뭘 알아야 돕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이한역의 물음에 태정은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이내 답을 내놓았다.
“싹 다 날려 버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