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파파팟! 파팟!
서걱-! 팟!
“죽어라, 이놈들!”
“큰 기술은 자제해라! 최소한의 기술로 돌파하는 거야!”
“예! 알겠습니다!”
어딘지 모를 곳에 떨어진 1공대장 이한역과 이십여 명의 특전대원들은 내부 수색을 하다 이십여 명의 원정 팀을 만날 수가 있었다.
이어 탈출을 시도한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와 맞닥뜨렸고 그로 인한 전투가 한창이었다.
제닉스 최고의 부대답게 공대장을 위시한 대원들의 전투력은 가히 발군이라 할 수 있었다.
700레벨대에 달하는 에노타우르스를 별 무리 없이 가지고 놀고 있으니, 이것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강한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이따금씩 들려오는 굉음이었다.
어디에서 발생되는 소린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건물 자체에 데미지를 주고 있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압도적 강함을 가지고 있는 그들도 마음이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전투력상 우위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몬스터의 숫자가 워낙 많아 전진이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곧 일이 생길 것 같단 말이야. 다른 이들은 무사할지…….’
F구역에서 그들이 분전을 하고 있을 때, 그와 정반대 방향인 Z구역에선 참모장의 마법 부대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도 한 무리의 원정 팀을 만나 탈출을 시도하는 중이었지만, 상성이 좋지 못했다.
“범위 마법과 폭발하는 마법들은 자제들 해!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 최대한 원 타깃 마법 위주로 뚫어야 한다. 거기! 불꽃 누가 만들어 내는 거야? 원소 마법 자제하라 했잖아!”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숫자가 워낙 많아서.”
“우리도 수는 적지 않아. 힘들어도 일단 통로만 벗어나자. 다들 집중해!”
“예! 알겠습니다!”
그들이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건너편에서 새하얀 빛 무리가 퍼져 나왔다.
그러더니 후방에 있던 몬스터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럭지고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주시하고 있던 전단의 부대장이 참모장을 향해 달려갔다.
“참모장님!”
“무슨 일인가.”
“건너편에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봤어. 거리가 가까운 것 같으니, 다들 스킬 사용에 신중을 기하라고 전하게.”
“예.”
이윽고. 건너편의 몬스터들이 모두 쓰러지고 일단의 무리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러자 누군가 싶어 경계하던 참모장의 얼굴에 반가움이 피어올랐다.
“자네, 살아 있었는가?”
“참모장이셨군요.”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 이는 원정 팀의 리더였던 3공대장 박성민이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반갑구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아직도 파악을 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빨려 들어와서… 저기 저들은 저희 팀이군요.”
“어떻게 하다 보니 만났네.”
“혹 다른 팀이 더 왔습니까?”
“특공대와 특전대 그리고 우리 전단 이렇게 팀을 꾸려서 왔네만. 다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네. 연구소 앞에서 모두 찢어졌어.”
“역시. 그럼 이곳에 있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제 뒤에 있는 인원들 모두 이곳에서 찾았습니다.”
“한데, 이곳이 대체 어딘가? 출구는 찾았나?”
“확실하진 않지만 어떤 비밀 기지나 연구소 같긴 한데, 길이 개미굴처럼 엮여 있어 어디가 출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음. 큰일이구만. 자네도 알겠지만 이곳 상태로 봐선 구조물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더군다나 남아 있는 이들까지 찾아 빠져나가려면…….”
“우선은 이쪽으로 가 보시죠.”
“그러도록 하지. 그건 그렇고 이제야 좀 길이 보이는 것 같구만. 이런 곳에서 원딜은 참…….”
* * *
서주아를 안아 들고 빠르게 이동을 한 태정은 그들이 숨어 있는 격실에 도달했다.
다행히 그가 느낀 소음은 이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를 보고 벌떡 일어나는 헌터들.
“누, 누구십니까?”
그들의 물음에 태정이 간단히 자신의 소개를 했다.
“지역대장 유태정입니다.”
그 말에 헌터들의 얼굴에 작은 희망이 피어났다.
“그, 그 영지전에서 대활약을 하셨다는…….”
“우리 살았어. 살았다구!”
“지역대장님이 우리를 구하러 오셨어.”
원정 팀은 영지전 이전에 떠났기 때문에 태정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소식은 접했기에,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들어 알고 있었다.
홀로 수천의 헌터들을 막아 낸 제닉스에서 가장 핫한 인물.
구두로만 전해 들은 그들에게는 전설적인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자가 이곳에 대뜸 나타났으니, 희망이 샘솟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주아 씨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아마 주아 씨가 아니었다면 이곳으로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의 말에 헌터들이 고개를 숙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함께 용기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가 작은 입을 달싹였다.
“여러분 아니었으면 나서지도 못했을 거예요.”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다들 이렇게 만났잖아요.”
그들이 작은 해후를 나누고 있을 때, 태정은 사람들의 부상을 살폈다.
일어난 사람들은 최소 움직일 수는 있다는 뜻.
그런 그의 눈에 누워 있는 한 여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분은?”
“서연 씨예요.”
“서연 씨라면… 혹 전략사업 본부장님의 따님 아닙니까.”
“어? 그걸 태정 씨가 어떻게…….”
“지역대에 있잖아요. 그곳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요.”
태정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딸을 부탁하던 본부장의 애달픈 모습.
그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태정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서연 씨?”
“네. 대장님.”
“어디를 다쳤습니까? 일어날 수 없습니까.”
“발목을 접질러서…….”
그녀가 자신의 발목을 가리켰다.
그러자 상세를 확인한 태정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접지른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부축을 받아도 걷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약은 이미 다 썼는데.’
그가 다시 사람들을 돌아봤다.
“혹시 케어 가능하신 두 분 있습니까?”
그가 묻자 단번에 알아들은 헌터 둘이 손을 들었다.
하지만 둘 모두 상태가 좋지 못했다.
한 명은 팔이 부러져 천으로 응급처지가 되어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팔이 고무줄처럼 늘어나 있었다.
그렇다고 나머지는 괜찮으냐.
그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이 탈골 아니면 골절.
걸을 수는 있으나 그 상태가 정상이 아닌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래 가지곤 한 세월이야.’
결국 태정은 멀쩡한 자신이 둘 모두를 케어하기로 했다.
힘을 아예 쓰지 못하는 서주아는 앞으로 안고, 팔은 쓸 수 있는 하서연을 뒤로 업었다.
어차피 메인 룸의 모든 몬스터는 그가 정리를 했기 때문에, 있어 봐야 코어로 통하는 길에 있는 자잘한 놈들이 전부일 것이었다.
그 정도면 이레이저 건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서둘러 준비를 한 태정은 사람들을 이끌고 밖을 나섰다.
하지만.
“이, 이게 뭐야?”
코너를 돌고 돌아 마지막 통로에 이르렀을 때, 태정은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메인 룸에 다시 몬스터가 가득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개고생을 해서 잡았더니. 다시 원점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나오려는 사람들을 태정이 제지했다.
“거기 가만히 계세요. 놈들이 있습니다.”
한차례 주의를 준 그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저곳을 깔끔히 정리하려면 최소한 한 시간은 있어야 했다.
사람들이 있어 생화학 수류탄을 사용할 수 없으니,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다시 방에 두고 올 수는 없었다.
그사이 또 리젠이 된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테니까.
‘전투를 하면서 이들을 모두 케어할 순 없어. 더군다나 수류탄도 사용을 할 수가 없으니… 이전 코너에 있던 그 방에 몰아 넣는다 해도. 그 짧은 순간에 리젠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잖아.’
총체적 난국이었다.
더불어 다시 의문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르르.
떨어지는 잔해와 자욱이 쌓이는 흙먼지들.
점점 더 불안함이 밀려드는 태정이었다.
결국 그가 다시 빽을 외쳤다.
“돌아갑니다.”
태정의 말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격실로 돌아온 태정은 그녀들을 내려놓곤 지도를 펼쳤다.
‘코어 층은 C-7에서 4번째 우측에 존재하고 있어. 다행히 격벽을 공유하고 있어 뚫기만 하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메인 룸이 막힌 이상 남은 것은 하나였다.
그의 주특기인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
지도에 나오는 것이 100% 정확하다면 4개를 격벽을 부수면 바로 코어 층에 도달을 할 수가 있었다.
문제는 격벽을 부수려면 다연장 로켓포를 사용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 폭발의 충격은 물론이고 부서진 구조물에 대한 데미지를 과연 이 낡은 건물이 버텨 낼 수 있을까.
이곳에 빨려들기 전 연구소가 무너졌을 때를 생각해 본다면 쉽게 확률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정말 순식간에 폭삭 주저앉아 버렸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메인 룸을 거쳐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지금도 곳곳에서 붕괴의 조짐은 시작되고 있었다.
갈등을 하던 태정은 오랜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다들 복도로 빠져 주세요.”
뚫겠단 것이었다.
태정의 지시에 서주아가 물었다.
“어쩌시려는 거에요?”
“부상자를 데리고 메인 룸을 돌파하는 건 무리입니다. 격벽을 파괴해 코어 층으로 내려갈 생각입니다.”
“코어 층이요?”
“자세히 설명을 할 순 없지만. 그곳에 도달해 이 진법의 핵을 파괴해야 우리가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아.”
태정은 그렇게 말하며 서주아와 하서연을 복도 밖 안전한 곳에 내려놨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 바로 기체와 다연장 로켓포를 소환했다.
“제라드.”
-예, 주인님.
“이게 잘하는 짓일까.”
-죄송합니다. 환상이공의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아 확률을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알아. 그냥 좀 불안해서. 말이나 걸어본 거였어. 만에 하나라도 이곳이 붕괴되면 내가 저지른 짓이 되잖아.”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이 일에 대한 실패에서 오는 불안함이라면 이것 하나는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뭔데?”
-주인님은 항상 잘 해내셨습니다. 이번 역시도 해내실 것이라 믿습니다.
“햐. 너도 가끔은 사람 같은 말을 하는구나. 기특한데?”
-지금까지 주인님의 벽뚫 성공 데이터를 기반, 확률로 계산했을 때의 수치를 말씀드린 겁니다.
제라드의 말에 태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그럼 그렇지. 네가 무슨 감정을 이해하겠냐. 그래도 멘트는 좋았어. 네가 그렇게 말해서 실패한 적이 없었잖아? 한번 해 보자.”
태정은 그렇게 말하며 다연장 로켓포로 벽 한가운데를 조준했다.
제발 성공하기를 기도하며.
“그럼 간다.”
말을 끝으로 그의 손이 콘솔로 향했다.
동시에 버튼이 눌러지며 24개의 포신에서 로켓이 쏘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