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돌발 퀘스트? 이건 또 뭐야?”
태정이 창을 보며 중얼거리자 제라드가 즉각 반응을 해 왔다.
-이상하군요.
“뭐가?”
-근접 특수 무기 체계에 대한 퀘스트는 지금 오픈이 되면 안 되는 퀘스트입니다.
“왜?”
-선행 레벨이 700입니다.
“그럼 이건 뭐야.”
-아무래도 환상이공 내의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오류를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오류라. 그런데 결론은 좋은 거 아냐? 난 이제 500대인데 200이나 앞서 오픈이 된 거면.”
-인간들은 이런 걸 보고 운이 하늘에 닿았다고들 표현을 하더군요.
“횡재수라기도 하고.”
뭐가 어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에겐 재수였다.
한참 뒤에 오픈이 되어야 할 퀘스트가 미리 나왔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선행 레벨이 700이면 그만큼 보상 또한 대단하지 않을까?
기대에 부푼 마음에 바로 퀘스트 창을 띄워 봤다.
[근접 특수 무기 체계.]
기체 위주의 군사력 증강이 만연하던 시기.
효율적인 전투를 위해 정립이 된 국제 군사 무기 규격.
최초 규격은 한국의 프로젝트k였으나 이후 미국과 영국, 일본, 호주 등이 참여 프로젝트 G5로 공식 명칭이 변경 됨.
중국과 러시아 등 7개국이 함께한 z7과 더불어 양대 무기 체계로 자리를 잡음.
목표 - 세계군사과학협회 LLD에 참석한 이수영 연구소장을 찾아 근접 특수 무기 체계에 대한 문건을 확보하십시오.
보상 – 근접 특수 무기 체계의 활성화.
“이수영 연구소장이라. 아까 그 여자인가? 아니지. 남자일 수도 있어. 근데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이 퀘스트가 오픈이 된 것은 분명 그에겐 좋은 일이었지만, 상황이 별로 좋지 못했다.
구조 팀이 뿔뿔이 흩어진 것은 물론이고, 원정 팀은 어디서 어떤 위험에 처해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 알 수가 없는 일.
우선은 그들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대체 다들 어디로 사라진 거야?”
태정은 우선 연구소 내부를 샅샅이 뒤져 보기로 했다.
길드원을 찾으면서 이수영 연구소장도 찾아볼 생각.
어차피 수색은 해야 하니까.
그렇게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사방이 불규칙한 암석으로 막힌 어느 컴컴한 공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곳에 십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다른 사람들은 무사할까요?”
“글쎄요. 계속 교신을 시도해 보곤 있지만… 답이 없네요.”
쥐죽은 듯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들은 약 두 달 전 뉴질랜드로 파견을 나갔던 원정 팀이었다.
예기치 못한 악천후를 만나 배가 고장이 나 버린 그들은 살기 위해 가장 가까운 섬에 겨우겨우 배를 댔다.
그때만 해도 이들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짐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의 내해를 거슬러 막 오호츠크해(북태평양)에 접어들었을 무렵 이상이 생겼기에, 북해도의 어느 한 해변이 아닐까 하는 그저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조를 짜 주변을 탐색하려는데, 갑자기 몬스터의 급습이 이어졌다.
처음엔 그리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다.
북해도는 미개발 지역으로 일본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던전으로 통했다.
그 수준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딱히 일신상에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원정 팀의 수준도 수준이지만, 이곳엔 제닉스 서열 5위인 3공대장이 리더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번째 급습이 있고 두 번째 급습이 이어졌을 때, 그들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했다.
기술이 전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몬스터가 강해도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장 먼저 파악한 이는 3공대장 박성민이었다.
그는 붙어 보기도 전에 이미 놈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는데, 워낙 순식간에 들이닥친 탓에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결국 십여 명의 부상자가 나오고서야 명령이 떨어졌고, 그가 내린 판단은 일단 해변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명령을 내린 그조차도 판단에 회의적이었다는 것이다.
원래 낯선 곳에서는 최대한 신중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천천히 이동해야 한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인데.
당시 상황만 따진다면 그에겐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부상자도 있는 데다가 그와 몇몇 소수 인원을 제외하면 전투를 제대로 행할 수 있는 이들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길을 뚫으며 그들은 독립 탑이 있는 한 연구소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제야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있었다.
사할린.
제로 그라운드의 영역.
그들은 당초 생각보다 훨씬 북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심각함을 인지한 박성민은 잠깐 여유가 있는 틈을 타 바로 길드와 통신을 시도했다.
다행히 교신엔 성공을 했고, 빠르게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짧은 몇 마디의 대화가 끝이었고, 이어서 다시 몬스터의 습격이 이어졌다.
기이한 일은 바로 이때 발생됐다.
분투를 하던 박성민이 갑자기 전장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이들을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와해가 된 진영과 여기저기로 흩어져 도망을 가는 헌터들.
그런 그들 역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땅으로 꺼진 듯 모습을 감춰 버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이곳이었다.
그마저도 고작 열한 명이 전부.
“우릴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닐까요?”
“섣불리 움직이면 위험해요. 밖에 있던 놈들 우리가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공간도 협소해서 맞닥뜨리면 그날로 우린 끝입니다.”
“그건…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아무것도…….”
“저도 알아요. 조금만 더 생각을 해 보고 움직이자구요.”
그들이 의미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없어요.’
몇몇이 동시에 말을 내뱉었다.
“사람?”
“맞죠? 사람 목소리 맞죠?”
“근처에 있나 본데요?”
그들이 들은 것은 사람의 음성이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게 들려왔다.
“아무도 없어요! 박성민 대장님! 아무도 없습니까!”
척.
가장 선두에 있던 사내가 일어섰다.
“저 목소리 알아요. 통신 부대장입니다.”
“그럼 가 봐야죠.”
“다들 라이트 켜세요.”
여기저기서 빛이 솟아나며 공간이 환하게 밝혀졌다.
그러자 물 맞은 생쥐처럼 온몸이 젖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미에 넷, 선두에 넷, 나머지는 알아서 경계해 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위치에 섰다.
이후 서로를 한 번씩 쳐다본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대체 다들 어디 있는 거냐.’
연구소를 구석구석 살피고 있는 태정은 과연 이곳에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치 혼자서 다른 세상에 떨어진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제는 보고 있는 것이 실체고 자신이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꼭 내가 귀신이 된 것 같잖아.”
태정은 이곳에서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못한다.
신체적인 접촉 또한 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오며 별의별 짓을 다해 봤지만, 마치 유령이 된 것처럼 죄다 통과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또 건물은 그게 아니었다.
생생하게 만져지는 벽의 감촉과 냉기 그리고 특유의 냄새까지.
하나하나가 다 실체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우리 길드원들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 게다가 입구도…….”
이곳을 돌며 태정은 한 가지 사실을 더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건물의 입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곳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제라드를 통해 입구로 안내를 받아 봤지만 그곳엔 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거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내 코가 석 자네. 나가지도 못하고 평생 뺑뺑이나 돌다 죽는 거 아냐?”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현상에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구조에, 퀘스트에, 자신의 안위까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답이 없다고 해서 불평만 늘어놓고 있을 순 없는 일.
다시 심기일전해 수색에 박차를 가하던 태정은 어느새 3층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반가운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다.
“이수영 소장님 보셨어요?”
“아마 본인 방에 있을 거야.”
“숙소요?”
“그렇겠지. 그런데 왜?”
“태풍 때문에 미국에서 비행 지연이 있었대요. 그 때문에 오찬이 1시간 뒤로 늦춰질 거라고 해서. 바뀐 내용 좀 알려 드리려구요.”
“전화를 하면 되지.”
“안 받으시네요.”
“그럼 한번 가 봐. 방에 있을 거야. 참, 이번에 일본은 불참이라며.”
“아무래도 러시아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이곳에서 한다고 할 때부터 반발이 심했잖아요.”
“참나.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뭐 일본이 좋아서 협력하나. 글로벌 시대에 맞춰 어쩔 수 없이 함께 가는 거지. 하여간 쓸데없는 기 싸움은. 그러다 국제 왕따 되는 거야.”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요. 그냥 분위기가 그래요.”
“아무튼 가 봐.”
“네. 나중에 뵐게요.”
남자가 먼저 자리를 뜨고 여자도 곧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역시, 어둠 속에서도 빛은 존재해.’
이수영의 거처를 찾고 있던 태정에겐 한 줄기 빛과도 같은 대화였다.
어쩌면 하나는 해결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르는 상황.
바로 여자의 뒤를 밟았다.
그렇게 그가 도착한 곳은 미처 발견을 하지 못한 지하층이었다.
상당히 깊게 내려가 한 복도에 이른 그는 방마다 걸려 있는 국기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 태극기가 걸려 있는 방 앞에 선 여자가 벨을 눌렀다.
띵동. 띵동.
그러자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던 한 여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 자기 어쩐 일?”
“미국 대표 측 비행 지연으로 오찬이 한 시간 뒤로 미뤄졌다고 해서요. 전화를 안 받으셔서 내려왔어요.”
“아. 나 씻고 있었어. 한 시간?”
“네. 여기 프로그램표 다시 뽑아 왔어요.”
“음. 일단 알겠어. 우리 쪽 대표단은 전부 도착했지?”
“네. 아까 막 도착하셨어요. 주최 측 관계자들이랑 인사 나누고 있던데요.”
“그래. 수고하고. 이따 봐.”
“네.”
여자가 자리를 뜨고 문이 막 닫히려는 순간.
태정이 몸을 들이밀며 불쑥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오케이. 일단 입성은 했고.’
방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그 옛날 포터 시절 자취방으로 쓰던 원룸 정도나 될까.
하지만 구성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급스러웠는데, 한 나라의 대표가 머물기에 모자람이 없는 객실이었다.
‘어디 보자…….’
태정은 곧장 프로젝트 파일로 생각되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상부터 훑어가는데.
“처음처럼. 유후. 널 기다렸던 거야. 그날이 생각나는 이 밤…….”
여자가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태정이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무시를 하며 다시 책상을 살피려는데, 갑자기 여자가 몸에 감은 수건을 훌러덩 벗어던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벙쪄 버린 태정의 앞으로 그녀가 민망한 포즈를 취해 보였다.
“어때? 이 정도면 나 아직 안 죽었지?”
“헉.”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녀의 나신.
무방비 상태로 어택을 당한 그의 심장이 팔딱팔딱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