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수많은 사람이.
아니, 이건 조금 전이라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몇 초. 단 몇 초 만에 앞뒤로 있던 백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대장님? 참모장님?”
의미 없는 부름에 들려온 것은 제라드의 음성이었다.
-환상이공에 걸려든 것 같습니다.
“환상이공이라니?”
-환상으로 만들어진 공간으로의 이동을 뜻합니다.
“그럼 이게 환상이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설명을 해 봐.
-환상이공은 드러나지 않은 3.5차원의 공간을 뜻합니다. 이 세계의 3차원과 게이트로 빠지는 4차원 사이에 존재하는 아공간으로 두 차원을 연결시켜 주는 통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통로?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왜 내가 이곳에 들어온 거지?”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환상이공의 마법진이 발동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조금 전 봤던 그 기둥으로 추측이 됩니다.
“그걸 알면서 말을 안 해 줬던 거야?”
-저도 이곳에 들어와서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함께 이동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내 눈엔 보이지가 않는 거지?”
-아공간 안에서의 일은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3차원에 남아 있는 b6-1에 사람들이 잡히지 않는 것을 보면, 함께 이동이 된 것이 분명합니다.
“뭐야, 그럼? 스킬은 아직도 현 세계에 남아 있다는 거야?”
-반경 안에서 벗어나 있어 휩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나의 주입이 없으니, 곧 소멸될 것입니다.
제라드의 말에 태정은 하나하나 그 설명을 곱씹어봤다.
3차원이 지구면 4차원은 던전.
이곳은 그 사이에 있는 어딘가였다.
그리고 이것을 만든 원흉으로 추정되는 것은 연구소에 있던 기둥.
그렇다면 그것을 박살 내면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을까.
“혹시 기둥을 부수면 원래대로 돌아오나?”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두 공간의 코어 중 하나를 파괴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니 말입니다.
“그럼 당장 해 봐야지.”
하며 돌아선 그의 눈엔 기둥이 없었다.
“없네? 다 똑같은데 기둥만 없어.”
무너진 연구소며, 들어가는 정문이며, 흐린 날씨며 이질감 하나 없이 다 똑같은데 오직 기둥만 보이지 않았다.
다시 제라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환상이공은 누군가를 가둘 때, 혹은 끌어들일 때 사용을 하는 진법입니다.
“그래서.”
-쉽게 파괴할 수 있으면 진법의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꼭꼭 숨겨 놨다? 잠깐. 그럼 지금 3차원에 있는 내 b6-1로 원점 타격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마나의 주입 없이는 공격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 그 말 할 줄 알았다.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어디 보자. 그럼 뭐부터 해야 한다? 사람들을 찾는 게 먼저인가.”
일단은 주변을 뒤져 보기로 했다.
함께 이동을 했다면 전부는 몰라도 몇 명 정도는 근방에 같이 소환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우선은 하나둘 사람을 모아 보기로 한 태정은 블라스터를 이용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시야가 확 트이며 다운타운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밑으로 내려가 볼까.”
우선은 남쪽부터 뒤져 보기로 했다.
연구소를 넘어 북으로 넘어가면 지역이 바뀌기 때문에, 벗어나더라도 일단은 익숙한 다운타운을 수색해 보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고 보면 원정 팀도 이곳에 끌려왔을 수 있겠는데…….’
아주 없는 확률은 아니었다.
정황상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
그렇게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수색을 이어 가던 태정의 눈에 누군가 포착됐다.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형태의 장비를 찬 사내 둘.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들은 이번에 함께 온 팀원들이었다.
“여깁니다!”
반가운 마음에 태정이 소리치자 사내들의 얼굴이 하늘로 향했다.
동시에 지상으로 내려앉은 태정을 향해 그들이 다가왔다.
“지역대장님.”
“두 분이 전부입니까?”
“예. 갑자기 다들 사라지셔서…….”
“소속이 어떻게 됩니까.”
“저희는 참모장님이 이끄는 2팀 마법부의 대원들입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도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진법에 당한 것 같습니다.”
“진법이요? 그럼 함정이란 말씀이십니까?”
“비슷하지요. 마법부면 플라이 마법이 가능하겠군요.”
“예.”
“사람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 공중에서 수색을 한번 해 보도록 하죠. 참, 혹시 가지고 계신 통신기는 작동이 되고 있습니까? 제 건 먹통이라.”
“저희 것도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일단 다운타운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한 바퀴 돌고 이곳에서 다시 모이도록 하죠. 그리고 비상 상황 발생 시 가장 큰 마법을 터뜨리세요.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그렇게 셋은 남쪽에서 찢어져 각각 세 방향으로 찢어졌다.
“제라드.”
-예. 주인님.
“아직도 b6-1은 돌아오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대체 뭘로 유지를 하고 있기에 아직도 그곳에 있는 거야? 이럴 때 있으면 딱 좋으련만.”
-아무래도 강제 소환으로 인해 데이터에 오류가 생긴 듯싶습니다.
“오류라. 그건 그렇다 치고,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네 말대로 다 함께 넘어온 것이 분명한데. 문제는 누가 그런 걸 만들어 놓은 거지? 목적이 대체 뭘까? 여기서 뭘 하려는 거야?”
-이 정도 진법을 구사하려면 초고도의 지능이 있어야 합니다. 아마 평범한 몬스터는 아닐 겁니다.
“대충이라도 짐작이 가는 놈이 없을까.”
-현재로선 추정이 불가능합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수색을 하기도 잠시.
‘저 사람은…….’
그의 눈에 또 다른 한 사람이 포착됐다.
홀로 쓸쓸히 돌아다니고 있는 헌터.
근접 계열로 보이는 그는 연구소를 함께 수색했던 특전대원 중 하나였다.
“여… 음.”
그를 부르려던 태정의 입이 도로 다물어졌다.
걷고 있던 사내가 무언가에 흡수가 되듯 사라졌기 때문이다.
“뭐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사라진 사내의 모습에 태정이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곤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는데.
순간적으로 사위가 빙그르르 돌더니, 순식간에 배경이 뒤바뀌었다.
“여긴…….”
그가 서 있는 공간은 어떤 한 건물 안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사방에 널려있는 기계 설비와 전자 장비들.
그것은 매우 낯설었지만 이 공간만큼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언젠가 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잠깐. 여긴…….”
주위를 둘러보던 태정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하며 지나갔다.
이곳에 온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불과 바로 한 시간 전에.
“연구소잖아?”
내부가 너무 깔끔해서 처음엔 알아보지를 못했다.
사방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led 빛과 새것처럼 보이는 각종 설비들.
바닥 역시도 지금 막 닦아 놓은 것처럼 번질번질한 것이 조금 전 그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180도 환골탈태가 되어 있었다.
“아까 전에 봤던 그 연구소 맞지?”
태정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제라드가 즉각 대답했다.
-구조상 같은 건물이 맞습니다.
“구조상 같은 건물이면 2호점, 2호기 뭐 이런 건가?”
-그것까지는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본 연구소의 설계 구조와 이곳의 설계 구조가 일치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 뭐 그건 좋아. 그런데 여긴 또 어떻게 끌려온 거야? 또 진법이 발동 됐나?”
-환상이공의 진법은 매우 복잡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으음. 이렇게 되면 또 원점인데. 일단 좀 돌아 볼까. 아까 그 사람은 어디로 간 거야?”
태정은 일단 내부를 좀 돌아 보기로 했다.
두 번 정도 겪어 보니, 이곳 역시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 있던 방에서 나와 복도로 나오자, 그의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 포착됐다.
하얀 가운을 입은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또 뭐야?”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상황이라 순간 벙쪄 있는데, 그의 옆으로 몇몇 사람이 자연스레 지나갔다.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갑자기 그의 코앞으로 사람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이것만 해도 놀랄 노자인데, 그 손이 달린 팔이 자신의 가슴에 붙어 있었다.
황당한 상황에 뭐라 말을 내뱉기도 전.
그의 신형에서 남자 하나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앞을 걸어가는 사내.
본능적으로 태정의 손이 가슴을 향했다.
“방금 뭐지? 지금 뭔가 내 몸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중얼거리던 태정은 이어 앞에서 다가오는 한 사람의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이 길을 막고 있음에도 그대로 들어와 버리는 사람들.
움찔하며 옆으로 비켜서는데, 그들의 걸음이 더 빨랐다.
그리고 또다시 보게 된 기이한 광경.
서로의 몸이 부딪혔는데도 불구하고 충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뒤를 돌아본 그는 그제야 뭔가를 느끼곤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대로 통과되는 자신의 손.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말이 돼? 만져지지가 않아.”
살면서 가장 황당한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지금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간이 자신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지나간다.
눈을 몇 번이고 씻어 봐도 홀로그램 따위가 아니었다.
피부의 생생한 질감, 생기가 넘쳐흐르는 눈동자.
굴곡진 주름부터 시작해 얼굴에 낀 기름과 꿀렁이는 목젖,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까지.
이건 그냥 살아 있는 인간 그 자체였다.
그래서 더 황당했다.
“제라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무엇이 말입니까.
“넌 이게 안 보이냐? 사람들이 그냥 통과가 되고 있잖아. 만져지지가 않아.”
-주인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져지지 않는다니까? 실체가 없다고, 실체가.”
-죄송합니다. 주인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이 사람들 안 보여? 이거 보라고 손이 그대로 통과되잖아.”
-죄송하지만 제 눈엔 주인님이 말씀하신 인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뭐? 이게 안 보여? 그럼 뭐가 보이는데?”
-낡은 복도와 부서진 벽면. 그리고 어지럽게 널려 있는 잔해들이 보이는군요.
“…….”
제라드의 말에 태정은 인공지능도 농담을 하나 싶었다.
티끌 하나 묻어 나올 것 같지 않은 이 깔끔한 복도가 그의 눈엔 그렇게 비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넌 이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복도는 다 낡아서 박살이 나 있다, 그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아까 처음에 있던 방은 어땠냐.”
-뼈대가 다 상해 곧 무너질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럴 리가. 분명 내가 봤을 땐…….”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복도 끝 익숙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머리에 그와 비슷한 형태의 외모.
‘한국인? 일본? 중국?’
정확하진 않지만 확실히 서양인은 아니었다.
그들은 차트 같은 것을 들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곧 태정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리는 반가운 말소리.
“이번 프로젝트 김 대표가 발표하기로 했다면서요?”
“네. 개발만 된다면 기존 기체 위주의 무기 체계를 탈피한 기술 혁신이 될 겁니다.”
“그럼 차라리 개발이 되고 발표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괜히 다른 나라에 아이디어만 제공해 주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네요.”
“저희 쪽 정보에 의하면 이미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곳이 몇 있어요. 곧 발표가 있을 거란 소문도 있고요. 이럴 땐 먼저 선수를 쳐야죠.”
“그거 연구 팀 생각이 아니라 그분 생각이죠?”
“뭐 아니라고는…….”
“하여간 어떻게든 임기 내에 업적 하나 남기겠다고.”
“어디 정치인치고 안 그런 사람이 있나요.”
웃고 떠들던 그들이 막 태정의 옆을 지나쳐 갈 때였다.
“저기요.”
반사적으로 손을 내민 그의 팔이 사내의 어깨에 닿았다.
바로 그때.
사내는 멀어지고 그의 눈앞으로 반투명한 창 하나가 떠올랐다.
[돌발 퀘스트가 발생됩니다.]
[근접 특수 무기 체계의 프로젝트 문건을 확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