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우르르! 콰콰쾅-!
콰콰콰쾅!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하늘을 찢어 울렸다.
악마의 포효 소리가 이러할까?
순간적으로 일어난 분진이 반경 200여 미터를 잠식했고, 그 모습은 마치 사막의 거대한 모래폭풍처럼 비현실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고막이 울릴 정도로 쉼 없이 떠든 알람 끝에 들어온 레벨 업 메시지.
연구소에서 레벨 업을 하고 또 한 번의 레벨 업을 한 것이니, 최소한 500마리 이상을 쓸어버렸다는 뜻이었다.
분진이 너무 심해 확인을 할 순 없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단 한 놈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란 걸 말이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1만 화력에 달하는 자탄이 무려 만 발.
그런 괴물 같은 놈이 6발이나 떨어졌으니, 고작해야 500마리 안팎인 놈들이 그 폭발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다, 다들 괜찮아?”
“방금 그건 뭐였냐.”
“충격파가 여기까지…….”
“저길 봐.”
대원 중 한 명이 넘어왔던 둑을 가리키자, 시커멓게 피어오른 연기와 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대체 무슨 스킬을 사용한 거야?”
“자, 잠깐. 저 정도 폭발이면 대장님이…….”
한눈에 보기에도 굉장한 폭발이었다.
넘어온 둑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 위로 수십 미터에 달하는 분진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었다.
광역기를 펼치는 시전자의 경우 대부분 안전거리를 준수하지만, 이건 상식 밖의 범위였다.
과연 지역대장은 그만한 거리를 확보했을까.
당연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들이 막 통신기를 통해 교신을 시도하려는데 태정의 음성이 들려왔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저희는 괜찮습니다. 대장님은 괜찮으십니까.”
“저도 무사합니다. 다들 무사한 것 같으니 바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사하다는 말에 대원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그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그의 능력에 대한 감탄이자 황당함이었다.
말로는 들어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수준일 줄은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문이 너무 축소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그들의 느낌은 틀린 것이 없었다.
영지전에서만 해도 그가 가진 무기 중 가장 강력한 무기는 천룡이었으니까.
이렇게 메가급 범위를 가진 광역기는 실제로 이곳에서 처음 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들었던 소문과는 당연히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둑이 사라졌네.”
“이것 봐. 소문이 축소됐다니까. 몇 천 명을 혼자 상대했다는데… 이 정도면 그 이상도 가능하겠다. 그보다 놈들은 다 죽었나?”
“이렇게 무지막지한 폭발에서 살아남았을 리가 없지.”
“경험치 확인해 봤냐? 60억 빠졌더라.”
“그럼…….”
“최소한 600마리였다는 거지. 혼자서 바울 600마리면, 진짜 사냥할 맛 나겠다, 나겠어. 나도 히든으로 각성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냐. 그보다 우린 진짜 행운아들이야. 언제 이런 분이랑 이렇게 다녀 보겠냐. 좀 더 가까이서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 정도 화력이면 메테오 스트라이크에도 뒤지지 않을 거야.”
“야. 3부 애들이 직접 봤다잖아. 메스도 혼자서 막아 내셨다고. 난 그거 솔직히 과장인 줄 알았거든? 근데 이거 보니까 이제야 이해가 간다.”
“다들 그만 노닥거리고 움직여. 폐급 모습 보이지 말자. 그리고 다른 조가 아직 위험하다잖아.”
분진이 있는 곳을 통과해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하늘에 떠 있는 태정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을 한 이들은 대규모 전투 현장을 목도할 수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와 그에 맞서 분투를 하고 있는 헌터들.
그중엔 총대장도 있었는데, 그는 제닉스 최강 인물 중 하나답게 엄청난 무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의 창에 서린 푸르스름한 형태의 오러.
800레벨 이상에서 오픈이 되는 창천의 오러였다.
일반 오러에 비해 몇 배나 강력한 것은 물론이고, 개인 컨트롤에 의해 원거리 공격까지 가능한 근접 계열에선 명성이 자자한 스킬.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슈아악-!
창질 한 번에 바울 십여 마리가 일시에 토막이 났다.
두 번째 창질엔 블레이드가 형성돼, 반월형의 형태로 날아가 한 무더기가 그대로 폭사했다.
세 번째는 채찍처럼 늘어난 오러가 회오리를 형성하더니, 다가오는 놈들을 믹서기처럼 그대로 갈아 버린다.
명불허전이 따로 없었다.
그 외 나머지 인원들도 선전을 하고 있었다.
뒤늦게 합류한 태정의 조도 그들을 거들었다.
그리고 그 즈음, b6-1의 시야에 잡히지 않던 조들이 속속들이 합류했다.
그렇게 다시 완전체가 된 팀은 순식간에 주변을 정리하고 총대장을 기준으로 모였다.
“다친 이들은 없나?”
총대장 이한역의 물음에 각 조장 및 팀장이 인원 보고를 올렸다.
“이상 없습니다.”
“3조 무사합니다.”
“7조…….”
“전원 무사하네.”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모두 무사하자, 어둡던 그의 안색이 곧게 퍼졌다.
“우선 허기를 달래면서 체력을 비축하도록 하지. 여기까지 오며 한 번도 쉬질 않았어. 워낙 튼튼한 이들이라 걱정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럴 때 컨디션을 회복해 놓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일단 이 일대의 수색은 끝난 것 같으니 말이야. 자네 생각은 어떤가.”
참모장의 말에 이한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력들을 모아 휴식을 취하게 한 이한역은 참모장 김한수 그리고 태정과 함께 다음 계획을 논의했다.
“가신 곳은 어땠습니까.”
“우리가 간 곳은 아무것도 없었네. 2팀의 6조 전원이 같은 상황이었어. 뭐가 있어야 수색을 할 텐데, 고작 발견 한 것이 기숙사로 추정되는 건물 하나였어. 자네는 어땠나.”
“저희도 딱히 단서를 찾진 못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태정이었다.
“저희 조는 연구소를 수색했습니다. 수색 도중에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는데.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 위험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혹시 남쪽에서 울려 퍼진 굉음이 자네의 것이었나?”
“예.”
“그렇군.”
“그리고 이상한 것 하나를 봤습니다.”
“이상한 것 하나?”
“땅에서 솟은 기둥 같은 것이었는데, 이름 모를 문자들이 적혀 있더군요. 특이한 것은 그곳에서 불빛이 일고 난 뒤에 놈들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했나?”
“연구소가 워낙 낡아서 내부에선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일단 나와서 보고를 드리려 했는데, 바울이 떼로 나타나는 바람에 그럴 겨를이 없었습니다. 혹 집히시는 게 있으십니까?”
“얘기만 들어서는 뭔지 모르겠구만. 이따 다 함께 같이 가 보세.”
둘의 대화가 마무리 될 무렵. 참모장 김한수가 이한역을 향해 물었다.
“동쪽 해변으로 갔던 특공대장이나 서쪽의 3공대장은 연락이 없나?”
“아. 조금 전에 연락이 닿았는데. 3공대장은 도시를 수색 중에 있고 특공대장이 이끄는 4팀은 아직 배를 발견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특이점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주기로 했으니, 뭔가 있다면 다시 연락이 올 겁니다. 우선 간단한 요기라도 하시죠.”
“그러지.”
간부들이 흩어지고 태정도 적당한 곳에 앉아 배에서 배급을 받은 도시락을 꺼냈다.
순식간에 물이 차 흥건해진 도시락 용기.
비는 내리는데 피할 곳이 없었다.
기체를 이용해 비교적 편하게 밥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빗물이 흥건한 음식을 꾸역꾸역 입으로 집어넣었다.
모두가 비를 맞고 있는데 혼자서 편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모양새도 모양새지만, 그의 성격상 맞지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섬 어딘가에서는 지금도 사투를 벌이고 있을 수십 명의 길드원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비하면 이 물에 젖은 도시락조차도 그에겐 사치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이 지나가고, 다시 모인 그들은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 연구소로 향했다.
내부로 들어간 이는 이한역과 김한수 그리고 태정과 십여 명에 달하는 특전대원들이었다.
나머지는 외부에서 경계를 하며 대기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들어선 메인 룸에는 아직도 처음 본 기둥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분명 수천 발의 에너지 탄이 들어갔을 텐데, 티끌만 한 상처 하나 없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런 건 처음 보는 것 같군요. 혹시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한역이 김한수를 향해 묻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글쎄. 뭔가 고대 유적 같기도 하고.”
“혹 봉인석은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이곳은 던전이 아닌 필드인데. 필드에 봉인석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어.”
“저도 그렇게 알고 있지만, 제로 그라운드라면 뭔가 좀 다르지 않겠습니까.”
“으음. 만일 봉인석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
“그냥 놔둬야 되지 않겠습니까. 뭐가 나올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참모장님은 어떠십니까.”
“내 생각도 다르지 않네. 이런 건 될 수 있으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지.”
끼이이-!
기둥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를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곧 무너질 모양이야. 나가야겠어.”
“다들 철수한다.”
건물이 붕괴 조짐을 보이자 헌터들이 빠르게 밖을 향했다.
그렇게 나와 막 연구소 정문을 벗어나는데.
우르르. 콰콰쾅!
천둥소리와 함께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산채로 매장 당할 뻔했군.”
“건물이 워낙 삭아서 먼지 정도나 뒤집어썼겠지. 그런데… 저기 저건 뭐지?”
말을 내뱉던 김한수가 무너져 내린 연구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푸른색의 무언가가 빛을 내고 있었는데, 먼지가 걷힌 후 드러난 것은 메인 룸에서 봤던 거대한 기둥이었다.
빛은 그곳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태정이 이한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까와 똑같습니다. 저렇게 빛이 보이고 나서 몬스터들이…….”
그 말에 이한역이 짧게 명령을 내렸다.
“전투태세.”
척.
단 한마디였지만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무기를 빼들었다.
그렇게 사방을 경계하며 기둥을 지켜보기도 잠시.
문자를 밝히던 빛이 사라졌다.
이후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이한역이 검을 갈무리 하며 입을 뗐다.
“아무래도 저 기둥… 기분이 나빠. 서둘러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지.”
다시 명령이 떨어지고 헌터들이 지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태정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을 따라나섰다.
그렇게 연구소 정문을 막 벗어났을 때였다.
멈칫.
“엇?”
사람들을 따라 나오던 그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동시에 눈을 의도적으로 수차례 깜빡인 그가 고개까지 흔들며 주변을 살폈고, 이내 황당한 얼굴을 한 태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게 뭐야? 다들 어디로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