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항해는 순조로웠다.
맑은 날씨에 바람도 거의 없어 갑판 위에서 본다면 마치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장장 10시간이 흐르고.
점차 하늘이 흐려지더니,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보이는 육지의 모습.
곧이어 총대장 이한역이 간부들을 소집했다.
“우선 위에서 대기하고. 동태를 살핀 뒤 1팀부터 차례로 하선하지.”
그의 말에 병력들을 소집한 간부들이 배가 접안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완벽한 접안은 불가했다.
배의 규모도 규모지만 항구가 없는 일반 해변에 정박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가까이 붙었지만 육지와의 거리는 수백 미터가량 떨어져 있었다.
이미 선장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이한역은 적당한 곳에 배가 멈춰 서자 바로 하선을 지시했다.
풍덩!
헌터들이 차례대로 바다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상당히 깊은 수심이었지만 부력 마법이 붙은 이들에게 이는 장애물은 되지 못했다.
곧이어 이동기를 전개한 헌터들이 빠르게 물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1팀이 육지에 도달하자, 참모장이 맡은 2팀이 일제히 하늘을 날아올랐다.
그가 맡은 2팀은 올 마법 부대로 이루어진 전단.
그런 그들을 순식간에 지나쳐 날아가는 이가 있었다.
“저분이 이번에 새로 부임한 지역대장님이시구나. 빠르긴 진짜 빠르네.”
“넌 오늘 처음 봤지? 저건 놀라운 축에도 못 껴.”
“맞아. 너 이태호 과장님이랑 수성 팀에 있었지. 말로는 들었는데, 진짜 괴물이냐?”
“말도 마라. 네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어야, 일개 인간이 저렇게까지 싸울 수 있구나 하는 걸 온몸으로 느꼈을 텐데.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혼자 저지했다니까.”
“나도 듣긴 했는데 그게 가능한 일이냔 말이지.”
“가능해, 저분은.”
2팀이 감탄을 하며 육지에 내려설 때 즈음.
3팀과 4팀이 차례로 하선했다.
그렇게 풀 경계 태세로 흩어져 있던 그들은 별다른 위험 요소가 없어 보이자, 계획된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팀원들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 블라스터를 접고 외골격 다리를 소환한 태정은 이한역과 나란히 달리며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 위에 저건 뭔가? 자네 꺼 같은데.”
이한역이 아까부터 보고 있던 하늘 위 소형 비행체를 보며 물었다.
“폭격기인데 정찰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상에서 보는 것보단 시야가 훨씬 넓을 것 같아서요.”
“폭격기라 별 희한한 것도 다 있군. 그럼 공격도 할 수 있나?”
“예. 원래 그런 용도로 만들어졌다더군요.”
“크기를 봐선 감이 잘 오지 않는데. 저것 역시 굉장하겠군.”
“아직 테스트해 보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자넨 정말 신기한 클래스야. 뭔가 보이는 것이 있다면 미리 말해 주게.”
“알겠습니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빗줄기는 더욱더 거세졌다.
얼마나 세차게 내리는지 눈을 뜨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결국 헌터들이 하나둘 실드를 치기 시작했고, 태정 역시 태극 1호를 소환했다.
그렇게 이백여 명에 달하는 병력이 북진을 하기도 한참.
첫 번째 집결지에 도달한 그들은 진을 치고 다음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한시가 급하니 여기서부터 크게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 포인트. 이렇게 셋으로 찢어져야 될 것 같아. 지역대장.”
이한역의 부름에 태정이 헤드를 접으며 대답했다.
“예.”
“뭔가 특별한 게 잡힌 건 없나?”
“도로 외, 반경 십 리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음. 그렇군.”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를 향해 참모장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 교신이 끊긴 장소가 정확히 어딘가.”
“기기상으로는 이곳인 듯싶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통신구로의 교신은 오차 범위가 커서 단정을 짓기는 애매한 상황입니다.”
“음. 그럼 일단 자네 말대로 찢어지지. 우리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저들은 생사를 다투고 있을지도 모르니. 얼른 지시를 내리게.”
그의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주억거린 그가 유심히 지도를 바라봤다.
그리곤 이내 명령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2공대장이 이끄는 4팀은 이곳 길을 따라 동쪽으로. 쭉 들어가게 되면 비스크라는 옛 시가지가 나올 거야. 사할린스크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이니, 이곳을 집중적으로 한번 수색해 봐. 그리고 특공대장은 서쪽으로 빠져서 배가 좌초되었을 걸로 생각되는 a포인트의 해변을 맡아. 그곳에서 습격을 받았다고 하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할 거야. 작전 중 특이 사항이 생기면 바로 보고를 하고.”
“예.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참모장님의 2팀과 저희 1팀은 이곳 유즈노사할린의 중심지인 다운타운을 수색하게 될 겁니다.”
“그리하도록 하지.”
“자, 그럼 서로 교신 확인하며 작전지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렇게 3방향으로 팀이 흩어졌다.
태정은 이한역과 함께 1팀이었다.
인원이 줄은 만큼 이동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이제는 외골격 다리만으론 쫓아갈 수가 없는 속도.
결국 그는 부스터를 소환해 팀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빠르게 속도를 내며 다운타운으로 향하던 태정의 귀에 돌연 제라드의 음성이 들려왔다.
-전방 3km앞. 작은 둑이 하나 있습니다.
“둑?”
-예. 둑을 넘게 되면 도시로 추정되는 곳이 나오는데. 중앙에 우뚝 솟은 탑을 봐선 아마도 이곳이 말씀하신 다운타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람들이나 몬스터는?”
-현재로선 보이지 않습니다.
“좋아. 변동 사항이 있으면 즉각 말해 줘.”
-알겠습니다.
제라드에게 정보를 전달받은 태정은 이한역에게 곁으로 가 들은 그대로를 전했다.
“확실한가?”
“예. 특이 사항이 있으면 전달해 주기로 했으니, 즉각 보고드리겠습니다.”
“알겠네.”
태정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를 가둬 둔 것 같아 보이는 작은 둑이 하나 발견됐다.
그 모습에 이한역이 2팀을 향해 손짓했고, 백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몸이 순간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대로 점프를 하자 마치 중력이 사라진 듯 헌터들의 신형이 순식간에 둑을 뛰어넘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부양 마법.
그리해서 눈에 들어온 것은 완전한 폐허가 되어 버린 옛 시가지의 모습이었다.
얼마나 방치가 되었는지, 도저히 도시였다고는 믿어지지가 않는 상태.
얼마 전 다녀온 제주도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마지막 교신이 온 것으로 추정되는 독립 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 여기서부턴 8인 1조로 움직이지. 다들 erg(범용 위치 표시기) 켜고 탑을 기준으로 반경 4km를 벗어나지 않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태정에겐 7명의 특전대원이 배치됐다.
그런 그들과 함께 움직인 그는 고립된 길드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가장 의심이 되는 곳은 건물이었다.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다면 밖에 나와 있는 것은 자살행위와도 같은 일.
구조를 위해 정찰을 돌릴 순 있겠지만, 그 많은 인원이 다나와 있을 필요는 없었다.
결국 살아 있다면 어딘가에 은신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
그 첫 번째 장소로 그는 건물을 생각했다.
“이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정보에 의하면 이곳에 멀쩡한 건물은 채 10여 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방향으로 사람들이 찢어졌으니, 그가 수색해 볼 만한 곳은 다 허물어져 가는 연구소밖에 없었다.
그렇게 2km 즈음을 이동하자 전달받은 대로 제법 거대한 연구 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찰을 다녀올까요?”
특전대원 중 한 명이 그렇게 묻자 태정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건물의 규모가 크니 함께 이동하겠습니다.”
적의 강함을 모르기 때문에 여기서 더 찢어질 순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소한의 전력인데.
이 정도 인원으론 함께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자 서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건물 내부는 심각하게 훼손이 되어 있었다.
천무 한 방만 떨어뜨려도 폭삭 주저앉을 것 같은 상태.
그가 대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건물이 많이 삭았으니, 어지간하면 큰 기술은 지양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저희는 지역대장님께 배속된 병력입니다.”
“임시인데요. 익숙하지도 않고요.”
지역대에서도 그랬지만 그는 아직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의 레벨은 이제 겨우 500이고 따라붙은 특전대원들의 레벨은 평균 650 이상.
레벨이 모든 걸 대변하진 않는다곤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이들을 수하 부리듯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존중을 해 줘야 한다는 뜻.
그 모습에 의외라는 듯 대원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인간성 좋은데?’
‘사람이 됐잖아.’
‘이러면 믿고 따를 만하지.’
그렇게 수색을 해 나가던 그들은 어느 덧 정체불명의 거대한 기둥이 있는 메인 룸에 도달했다.
알 수 없는 문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재질을 알 수 없는 기둥.
그것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솟아 있었는데.
연구실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구조물이었다.
“다들 이게 뭔지 아십니까?”
태정의 물음에 대원들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그런데 좀 이상하군요. 주변 기물들을 보면 첨단 기지였던 것 같은데, 이런 투박한 기둥이라니. 사람이 세웠을 거 같진 않은데 말이죠.”
대원의 말에 태정도 공감을 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바닥을 유심히 살폈는데, 깔아 놓은 타일이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다.
‘세운 게 아니라. 땅을 뚫고 올라온 것 같은데. 솟아난 건가?’
일단은 사람들을 찾는 것이 우선 이었기에 다음 방으로 이동을 하려 했다.
바로 그때.
지이잉-!
고막을 때리는 공명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둥에 박혀 있는 문자에 빛이 서리더니, 바닥으로 시커먼 무언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하나의 괴생명체를 만들어 냈고,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무기를 빼들었다.
태정 역시 mk4를 장전하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이 레이저 건을 소환했다.
그 시점에 메인 룸에 등장한 몬스터는 200여 마리까지 늘어 있었다.
정말이지, 찰나의 순간 일어난 일이었다.
놈들의 정체는 바울이란 몬스터였다.
블루 15단계에서 볼 수 있는 매우 강력한 괴수.
특전대원들은 한 번씩 본적이 있기 때문에 긴장을 하며 태정에게 보고했다.
“적정 레벨 650 이상의 바울이란 놈입니다. 밖이라면 모를까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지역대장님.”
650이라는 말에도 태정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속으론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가 맥시멈으로 땡기면 딱 걸쳐지는 레벨이 600~650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데다 이곳에선 큰 기술을 사용할 수가 없기에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숫자가 워낙 많고 공간이 좁아 아군과 함께 싸울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다.
그가 가진 무기의 특성상 아차 하면 대원들까지 휩쓸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태정은 곧 명령을 하달했다.
“북쪽 4번 게이트로 나갑니다. 제가 백업을 할 테니, 뛰세요.”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대원들의 검에 형형색색의 빛이 새겨졌고, 전방을 향해 튀어나갔다.
동시에 몬스터들이 일제히 거리를 좁혔고, 앞쪽에서 작은 전투가 벌어졌다.
다행히 몇 놈 되지 않아 순식간에 처리를 한 대원들이 먼저 4번 게이트로 빠져나갔다.
뒤이어 온갖 어그로를 다 끌며 시간을 벌던 태정이 부스터를 풀로 돌렸고, 순식간에 놈들을 따돌리며 4번 게이트에 무사 안착했다.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던 대원들이 태정을 향해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갑니까?”
“안 갑니다.”
“예?”
“조지고 가야죠.”
말을 끝으로 거대한 기체가 소환됐다.
동시에 4번 게이트 입구를 막아선 그가 대포 구멍처럼 큰 화염 방사포와 슈퍼 발칸포를 조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