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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91화 (91/182)

91화

숙소를 빠져나와 태정이 향한 곳은 건물의 옥상이었다.

현재 시각은 밤 11시 30분.

거리는 불이 모두 꺼져 쥐죽은 듯 조용했다.

“후우. 가 보자.”

블라스터를 이용해 대지에 내려앉은 태정은 장비를 해제하고 클로킹을 시전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그의 신형.

동시에 이동이 시작됐다.

이동수단은 두 다리였다.

이동 간 다른 장비는 쓰지 않을 생각.

그도 그러할 것이, 태정이 가진 대부분의 이동 수단은 모두 소음이 있는 것들이었다.

엔진이 달린 부스터나 블라스터는 말할 것도 없고, 태극 1호나 외골격 다리의 경우 바닥과 닿을 시 강철이 부딪히는 소음이 발생된다.

이러한 이유로 장비는 쓸 수가 없었다.

들키지 않으려면 최대한 맨몸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가 삼거리구나. 그럼 이쪽으로…….’

간간이 약도를 보며 간만에 기본 체력으로 밤거리를 내달렸다.

포터는 체력이 생명이라 달리기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던 태정이었다.

그만큼 운동도 열심히 했었고.

땅을 밟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곧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무거워지는 몸과 그에 비례해 떨어지는 체력.

약도상 겨우 한 구역을 지나 멈춰 선 태정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맨몸은 한계가 있어. 나름 유산소 운동은 꾸준히 했는데도 이러니.’

체력 단련장에서 30분씩은 꼭 뛰고 나왔던 그였다.

기존에 있던 체력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인간의 몸은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맨몸이 문제야, 맨몸이.’

법사나 사제 계열이 아닌 경우 대부분의 클래스는 성장을 하며 체력까지 함께 올라가는 특징이 있었다.

특히나 초근접 계열의 클래스들이 그렇다.

기사 계열이나 전사 계열의 경우 일정 조건만 갖춰진다면 한나절도 우습게 뛰어다닐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 있어 무언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태정이었다.

스탯에 영향을 받는 그들과 다르게 자신은 오직 스킬에 의존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기대해 볼 구석도 분명 존재했다.

‘제라드의 말에 따르면 아직 내 스탯은 전부 오픈이 된 게 아니라고 했어. 시리우스도 반쪽이라고 했었지. 후에 분명, 뭐가 생겨도 생길 거야.’

호흡이 돌아온 그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의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오늘 회담이 있었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폭포수같이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전방의 벙커같이 생긴 창고를 바라봤다.

‘경계는 총 넷. 거리는 대충 300m 엄폐 건물은 두 개 정도인가.’

신중해야 하는 만큼 한 번에 내달릴 수는 없었다.

태정은 일단 벙커와 가장 가까운 건물까지 이동을 하기로 했다.

그곳까지 가서 재정비를 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

그렇게 유령 같은 태정의 신형이 첫 번째 엄폐 건물을 지나 두 번째 건물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좁혀진 창고와의 거리.

‘다솜이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는데.’

현재 창고는 보안 시스템 증축으로 인해 공사 중에 있다고 했다.

그 말은 평소에 비해 보안이 취약할 수도 있다는 뜻.

하지만 마무리 단계에 들었다고 하니,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확률은 반반.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우.”

장고 끝에 결정을 내린 그가 크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동시에 클로킹을 해제하고 재시전에 들어갔다.

그러자 달빛 아래 그의 신형이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귀신처럼 사라졌다.

중요한 때에 풀리면 안 되기 때문에, 지속 시간을 풀타임으로 맞춘 것이다.

그렇게 건물을 지나 창고로 향한 그는 경비 넷을 제치고 유유히 창고 안으로 사라졌다.

내부로 들어와 가장 먼저 본 것은 임시 바리케이드와 그곳을 지키고 있는 또 다른 헌터 넷이었다.

‘일단 공사 중인 건 확실한 거 같은데…….’

태정이 확신하는 이유는 수동형 바리케이드 때문이었다.

수동형은 보안용 건물을 증축할 때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시스템으로 최소안의 안전장치라고 볼 수 있었다.

입구가 뻥 뚫려 있기 때문에 기물로 막아 놓는 것인데, 경비까지 따로 둘 정도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구축용 알람 마법의 경우 보통은 문에 설치가 되기 때문에, 지금 그림으로만 봐선 그냥 통과를 해도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는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바리케이드 바로 앞에 놓인 보안 지지선 때문이었다.

일회성 알람이 설치되는 지점.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3급 이상의 마법이 걸려 있으면 바로 발각이 되고 말 것이다.

그가 어찌할지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경비를 서던 헌터 하나가 너무나도 쉽게 보안 지지선을 넘었다.

“어디 가?”

“오줌 싸러.”

“딴짓하지 마라. 알지? 저번에 4부 애들 구경하다 쫓겨난 거.”

“걱정 마. 오줌만 싸고 올 거니까.”

그렇게 한 명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정이 바로 바리케이드를 넘어섰다.

당연하게도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좋아. 첫 관문은 통과. 초반 분위기 나쁘지 않은데?’

첫 번째 바리케이드를 지나자 조금 전 사라진 헌터가 노상방뇨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으으. 이런 곳에서 뜩 한번 치면 소원이 없겠다. 시원하고 시간도 잘 갈 텐데.”

개소리를 시전하는 그를 뒤로 하고 계속 안으로 들어간 태정은 첫 번째 계단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곧장 아래로 내려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잘 만들어진 밀실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보이는 진열대들.

그 위엔 갖가지 아이템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그 모습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제라드.”

-예. 주인님.

“이것들 다 뭐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화이트 홀에서 블루 10급까지의 던전에서 나오는 재료 아이템으로 보입니다.

“역시.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야. 왜 이딴 걸 여기다가…….”

최다솜이 말하길 이곳은 길드의 보물 창고와도 같은 곳이라 했다.

한데, 이런 잡템들을 왜 여기다 박아 넣은 것일까.

아무리 1층이라고 해도 명성에 비해 퀄리티가 너무 떨어져 보였다.

‘위장인가? 그런 것치곤 너무 허술해.’

딱히 볼만한 것이 없자 태정은 바로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2층 역시도 보안 시스템을 증축시킬 만한 고가 아이템은 보이지 않았다.

3층은 아예 텅 비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상황.

4층은 밀실이 아닌 널찍한 복도였다.

기체를 풀로 소환해도 충분이 오고 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

곳곳에 보이는 공사 자재들과 다 쓰고 버린 잔해들이 보였다.

그렇게 슬금슬금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기도 잠시.

곧 동굴같이 생긴 입구와 함께 상당한 레벨로 보이는 헌터들이 태정의 눈에 들어왔다.

‘여기도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굴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헌터들의 수는 열 명이 넘었다.

레벨 또한 앞에서 본 이들보단 더 높아 보였는데, 장비를 보아하니 암살 계열의 헌터들이 분명해 보였다.

“대체 이놈의 공사는 언제 끝나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왜 멀쩡하게 설치된 마법들을 다 뭉개고 새로 구축한다고 난리인 건지, 원. 이렇게 되면 기존에 있던 마석만 버린 꼴이잖아? 하여간 x나 이해가 안 간다니까. 비효율의 끝판왕이야.”

“너무 열받지 마라. 고매하신 윗대가리들의 생각을 우리 같은 천민이 어찌 알겠냐. 난 그것보다 이 근무에서 언제 빠지는지나 좀 알고 싶다. 사냥 못 간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어.”

“B급 이상 어쌔신이 귀하다잖냐. 그렇다고 A급을 세우긴 부담스러울 테고.”

“하여튼 만만한 게 우리라니까. 조또 단체로 이적해 버릴라.”

대화 내용을 들어 보니 그들은 B급 이상의 어쌔신인 듯했다.

태정에게는 별로 좋지 못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어쌔신은 예민함이란 패시브 스킬이 따로 있을 정도로 주변 변화에 민감한 직업이었다.

은신 계열의 스킬을 별도의 마법 없이 감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클래스.

클로킹 역시 그 범주에 들어간다.

기척은 숨길 수가 없으니까.

‘입구가 너무 빡빡한데… 이대로 들어가면 무조건 걸리겠어.’

하필이면 횡으로 서 있는 이들.

앉아서 노가리를 깔 만도 한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줄을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헌터들이었다.

태정은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인간인 이상 틈은 반드시 존재할 터.

그렇게 10분이나 흘렀을까.

도무지 흩어질 생각을 하지 않자, 결국 그가 주변에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것만큼은 하기 싫었는데.’

지금 그가 하려고 하는 일은 헌터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해답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어쌔신을 배치했다는 것은 은신 계열의 침입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

즉 소리가 난다는 것은 자칫 침입자로 인식이 될 확률이 있었다.

흔히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시선 끌기가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야만 된다.

목표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천장이었다.

눈으로 식별이 가능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연출을 할 수 있는.

그의 손이 허공을 향해 펴졌다.

툭.

투툭. 툭.

“뭐야!?”

천장에 맞은 돌이 바닥을 때리자 바로 반응을 하는 헌터들.

“다들 경계 태세 유지해라. 뭔가 있다.”

리더로 보이는 자가 그리 말하자 헌터들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그 모습에 일이 틀어졌음을 느낀 태정이 슬그머니 뒤로 발을 뺐다.

바로 그때.

“야. 돌이잖아.”

“뭐?”

“천장에서 그냥 부스러기 떨어진 거잖아.”

“그게 어디 있는데?”

“저기 저거 안 보여?”

말을 꺼낸 이가 돌멩이가 떨어진 곳으로 걸음을 옮기자 너도나도 그의 뒤를 쫓았다.

그 순간.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인 태정이 재빠르게 굴 안으로 진입했다.

동시에 들려오는 희미한 말소리.

“이 새끼들 공사 완전 개판이구만. 마감이 왜 이래? 이러다 무너지는 거 아냐?”

“겨우 돌 한 조각 가지고 호들갑은.”

* * *

한편, 태정의 방에서는 박세아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띵동. 띵동.

“순검 나왔습니다.”

퉁퉁퉁.

“순검 나왔습니다. 문 좀 열어 주십시오.”

방문 밖으로 들리는 목소리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박세아의 모습.

불과 몇 시간 전에 순검이 있었건만, 또 올 줄은 생각지도 못한 그녀였다.

“열지 않으면 따고 들어가겠…….”

비상 키로 문을 따려던 사내를 향해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건가.”

그는 제닉스 길드 1공대장 김한수였다.

“인원 체크를 해야 하는데 문을 열지 않아서 말입니다.”

“진짜 해도 너무하는구만.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괜히 자는 사람 깨우지 말고 돌아가게.”

“그럴 순 없습니다.”

“뭐? 자네,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건가?”

“제닉스 길드 공대장님이 아니십니까.”

“그걸 알면서 그래?”

“이건 저희 길드장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입니다. 방해하신다면 상부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어허. 이 사람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대장까지 와 있는 모양이었다.

‘어떡하지? 이대로 들어오면 없다는 걸 알게 될 텐데.’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던 박세아는 태정이 나가기 전 했던 말을 떠올렸다.

‘믿는다, 박세아.’

어딘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말이었다.

전장으로 따지면 자신의 뒤를 맡긴 것이나 다름없는 일.

벌떡.

무언가 결심을 한 듯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해. 보스를 난처하게 만들 순 없어.”

주먹을 불끈 쥔 그녀가 곧 겉옷을 훌훌 벗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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