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우물우물.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는 태정을 향해 박세아가 따뜻한 물을 건냈다.
“천천히 드세요. 체하겠어요.”
“고마워. 근데 왜 따뜻한 물이야. 난 찬물이 좋은데.”
“밥이랑 같이 먹을 땐 따뜻한 물이 위장에 좋아요.”
“그래?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셨던 것 같기도 해. 밥 더 있지?”
금세 한 공기를 비운 그가 빈 그릇을 내밀자 그녀가 빈 밥통을 보며 되물었다.
“언제 들어오실 줄 몰라서 밥을 조금만 했는데, 햇반도 괜찮으세요?”
“햇반 좋지. 내가 포터로 있을 땐 햇반이 주식이었어. 상관 말고 줘.”
“대체 며칠을 굶으셨길래.”
“말도 마. 초코바 하나로 하루씩 버텼으니까. 없이 살 때도 그 정도의 배고픔은 느껴 보지 못한 거 같아.”
“미로는 어땠어요?”
“그냥, 다시는 들어가기 싫은 곳이었어. 너도 나중에 헌터가 되면, 거긴 가지 마라. 사람 갈 곳이 못 되는 곳이니까.”
“보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소문대로 위험한 곳인 게 분명하네요. 여기요.”
“엄청. 그런데 이거 뭐로 만든 거야? 꿀 바른 것도 아닌데 쑥쑥 들어가냐.”
그렇게 밥 한 공기와 햇반까지 깔끔하게 클리어 한 태정은 그녀가 내온 차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잘 먹었어, 진짜로. 얼른 자. 괜히 나 때문에.”
태정은 그렇게 말하며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울을 보는데.
얼굴에 시커먼 먼지를 덕지덕지 붙인 웬 거지꼴을 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도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아 보였다.
“예전 생각나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한창 포터 일을 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매일매일이 이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힘든 만큼 재미와 보람도 있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불쌍한 우리 아재들, 나 이렇게 잘됐는데.”
누구보다 그의 앞날을 빌어 주던 팀원들이었다.
다른 팀과 다르게 막내라 구박도 하지 않고,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넘어가 줬던.
사건이 있던 그날만 해도 그랬다.
모두가 도망가기 바쁜 그 긴박한 순간.
패닉에 빠져 있던 그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쳐 뛰게 만든 조장과 소리를 지르며 길을 트던 팀원들.
그 덕에 그는 살아남았지만, 나머지는 안타깝게도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얼마 전 익명으로 위로금도 전달한 그였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제 더 이상 그들을 볼 수가 없는데.
“성공해야지, 지금보다 더. 그들의 몫까지.”
다음 날 아침.
10여 일 만에 지역대로 출근한 태정은 길드장 이하 주요 간부들의 방문을 맞아야 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네.”
“다친 곳은 없나? 몸은 괜찮아?”
“난 자네가 납치라도 당한 줄 알았네. 이 개놈의 새끼들, 오늘도 돌아오지 않았다면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어.”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건가? 많이 걱정했네.”
“안 본 사이 얼굴이 많이 헬쑥해졌구먼. 이따 들리게. 내 먹고 있는 영양제를 좀 줄 터이니.”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간부의 방문에 태정은 그저 머쓱한 미소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르르 들어온 그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자, 그는 밀려 있는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파주에 있는 드림센터는 취소됐나. 이걸로 열한 개. 손을 대지 않은 곳이 없네.”
태정이 자리를 비운 동안 취소되거나 불발이 난 곳이 3개가 더 늘어나 있었다.
그중 이익을 배제하고 지역복지에 중점을 둔 드림센터까지 빼앗겨 버렸다.
이 말은즉. 이익을 추구하든 추구하지 않든 제닉스가 들어가는 모든 곳을 마크하겠다는 뜻이었다.
그야말로 독종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걸 보니 더욱 더 힘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았다.
“성장을 해야 해. 계속 이렇게 당할 순 없어.”
[메카닉의 길 1-4]
잃어버린 옛 유물의 흔적.
서울 송파구 옛 주소.
잠실본동 55-2번지에는 미국과 한국이 공동으로 개발한 분착식 순항 핵미사일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는 큐브 형태의 중형 마정석에 봉인되어 있으며 오직 메카닉 클래스만이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분착식 순항 핵미사일을 손에 넣으십시오.
목표
큐브 형태의 중형 마정석.
보상 - 분착식 순항 핵미사일 (s2)
“잠실본동 55-2번지라.”
태정이 아는 송파구의 잠실이 맞다면 오래전 도시화 개발이 끝난 지역이었다.
던전이라곤 있을 수가 없는 민간 구역.
“꿀 미션이려나? 제라드, 여기 주소에 대한 데이터가 있나?”
-해당 주소는 1차 아웃 브레이크가 있기 전에 사용하던 것으로 남아 있는 데이터가 없습니다.
“그럼 엄청 오래됐다는 거네. 뭐, 좋아. 이건 따로 알아보면 되는 거니까. 그럼 분착식 순항 핵미사일이란 어떤 거지?”
-분착식 미사일은 기체에 달 수 있는 미사일 모듈을 말합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미사일 사일로를 축소해, 사용이 가능케 만든 장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발 초기 단계에 있던 터라 지지대가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 보통은 따로 떼어 놓고 사용을 했었습니다.
“그래? 미사일 파괴력은?”
-s2 순항 핵미사일은 미니 전술 핵무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NT 15킬로톤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죠. 이는 인류가 실전에서 최초로 사용한 핵무기에 버금가는 위력입니다. 물론, 현재 주인님에겐 봉인과 화력에 대한 제한이 걸려 있어, 실제 파괴력은 5킬로톤 안팎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알 수가 없잖아. 파괴력으로 환산은 안 되나?”
-다연장 로켓의 2만 배 정도 되는 위력입니다.
“뭐라고!? 2만 배!?”
태정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배도, 20배도, 200배도, 2,000배도 아닌 2만 배라니?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위력이었다.
“진짜 2만 배야? 진짜 2만 배가 맞냐고.”
-맞습니다.
“그 정도면 지역 하나가 없어지겠는데.”
-5킬로톤의 핵미사일이 정상 고도에서 폭발을 하게 되면 폭심지인 500m 내의 모든 것이 일시에 증발. 2km 내의 구조물은 완전 파괴, 반경 5km미터 내의 생명체는 복사열과 후폭풍으로 살아남기가 힘들다고 보시면 됩니다.
“뭐야, 2만 배인데 겨우 그거야?”
생각보다 적은 위력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위력임은 분명했다.
“맞아. 내가 그때 그 썩은 저택 하나 날리는데 24발을 사용했지. 2만 배라는 게 너무 허황되게 느껴져서 판단이 안됐어. 반경 1킬로미터만 해도 엄청 넓은 건데 말이야. 당장 여기만 해도 주요시설은 다 없어진다는 거잖아.”
-원래 핵무기는 화력도 화력이지만 방사능에 의한 피해가 훨씬 큰 무기입니다. 하지만 주인님이 가지는 무기의 동력은 아시다시피 마력 에너지기 때문에 방사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방사능은 나도 알아. 그때 화학무기 검색하면서 얼핏 봤어. 그게 퍼지면 인류 재앙이라지. 그럼 없는 게 낫지. 아니, 그보다 이거 하나 있으면 최강 아니야? 내가 가진 기술 중에 이게 몇 위 정도나 될까. 열 손가락 안엔 들겠지?”
-개별로 놓고 본다면 1,000위 밖입니다.
“이 정도나 되는데 1,000위 밖이야? 그럼 인류는 얼마나 강했던 거야?”
-1차 아웃 브레이크 때 들어왔던 몬스터들은 대부분 인간의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 말씀드렸던 S2급 화력을 가진 무기는 소형화가 되지 않았을 뿐 이미 1940년대에 개발이 완료 된 무기였습니다. 이때 이미 인류는 몬스터에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인류 발전의 역사로 본다면 이제는 유물에 지나지 않는 무기가 말입니다.
“유물이라. 그런데 이 모든 게 어느 날 한순간에 사라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제 권한 밖입니다.
“알아. 혼잣말이야. 어쨌든 그럼 앞으로 저것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게 많이 나올 거란 얘기잖아? 햐. 이거 성장 의욕이 몇 배로 치솟는데.”
제라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의 스킬이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500레벨에 천룡의 2만 배라면.
그리고 그게 겨우 1,000번째에도 들지 못하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태정이었다.
“좋아. 금사자, 무적 이놈들. 두고 보자. 고개도 쳐들지 못할 정도로 강해져서 바닥을 기게 만들어 줄 테니까.”
오전 업무를 모두 처리한 태정은 박세아를 호출했다.
“부르셨어요?”
“알아볼게 있어. 송파구 잠실본동 55-2번지가 어디에 있는 건지 좀 알아봐 줘.”
“번지면… 요즘 쓰는 주소는 아니네요?”
“맞아. 1차 아웃 브레이크가 있기 전에 쓰던 거 같은데. 옛날 자료까지 싹 쓸어서 한번 봐 줘.”
“네.”
“그리고 나 외출이니까, 급한 일 아니면 호출하지 말고.”
“어디 가시는데요?”
“강해지러.”
길드를 빠져나와 태정이 향한 곳은 블루 12급의 실라리온의 호수였다.
게이트 안으로 진입을 하자 끝없이 펼쳐진 호수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밀림도 아니고 정글도 아닌, 약간은 오아시스의 낙원처럼 생긴 배경.
그 주변으론 이름 모를 꽃들이 만개해 있었는데, 감히 던전이라곤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물 투명한 거 보소. 바닥까지 다 보이잖아.”
호수의 물은 마치 유리처럼 투명했다.
물과 내부의 경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
그래서 더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선은 새로 얻은 스킬부터…….”
태정은 이번 퀘스트로 얻게 된 태극 1호와 레이저 건을 동시에 소환했다.
그러자 영롱한 홀로그램이 형성되더니 순식간에 갑옷 같은 장비가 떡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오호. 이거였어?”
태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신형을 전부 가린 기계 갑옷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제라드에게 들었던 것처럼 행동에 제약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가벼움과 신축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뜻 보기에는 강철같이 되어 있었다.
“이게 그렇게 방어력이 단단하단 말이지. 좋은데?”
태정은 태극 1호가 심히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근접형 기체가 아니면 얼굴은 보호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사냥 시 항상 불안해야 했던 것이 사실.
그것이 이 장비로 인해 해결이 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이 개발했다고 하니, 더욱 정감이 가는 태정이었다.
여러 방향으로 움직여 보던 그는 곧 오른쪽에 장착되어 있는 레이저 건을 바라봤다.
“이건 생각보다 짧네.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앞쪽으로 주먹을 말아 쥐시면 됩니다. 단발은 쥐었다 펴고 최대출력으로 사용을 하시려면 계속 말고 계시면 됩니다.
“좋아. 어디 뭐 없나?”
태정은 뭔가 적당한 타깃이 있나 물색을 해 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귀차니즘이 발동한 그가 꽃밭을 향해 주먹을 말아 쥐다 힘껏 폈다.
그러자 총구에서 뿅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빛이 발사됐다.
치이이-!
화르륵!
“오. 빨라 빨라.”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꽃들을 보면서 태정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는 것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었다.
약간은 흥분을 한 그가 좌우 사방을 향해 레이저를 쏘기 시작했다.
뿅! 뿅! 뿅뿅! 뿅!
적중하는 족족 시커멓게 재가 돼서 사라지는 꽃들.
그 옆에 나무들 역시 이미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괜찮은데? 파괴력은 실전에서 써 봐야겠지만, 뭔가 무척 가볍고 송곳 같은 느낌이야. 어디 그럼 이번엔 최대 출력으로 쏴 볼까.”
대충 조작법을 익힌 태정이 거대한 고목을 조준했다.
그러자 단발로 쏠 때와는 다르게 총구에서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빛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렬해졌고, 이어 공명음까지 발생되며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들었다.
“아직 멀었어?”
-현재 출력 60%입니다.
“오래 걸리는구나.”
-70%…….
미리 들은 대로 최대출력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난전에서는 사용하기가 힘들 정도.
그렇게 90%를 넘어 드디어 100%를 알리는 제라드의 음성이 들려왔다.
-최대출력입니다.
“좋아.”
대답과 동시에 그가 말아 쥔 주먹을 힘껏 폈다.
그러자 기이한 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무시무시한 레이저 빔이 쏘아졌다.
피잉!
순식간에 구멍이 나 버린 거대한 나무.
놀라운 것은 그 빛이 꺼지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총구에서부터 나무에 이르기까지 십수 미터의 길이로 뻗어진 빛의 레이저.
그대로 좌우 사방을 흔들자 순식간에 나무가 쪼개지며 처참한 내부를 드러냈다.
위력에 놀라기도 잠시.
그 옆의 바위로 손을 옮기자 바위의 단면이 두부 썰리듯 깨끗하게 잘려 나간다.
실로 어마어마한 절삭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어 빛이 사라질 새라 온 사방으로 팔을 휘두르자 주변이 순식간에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화려한 폭발이나 폭음은 없지만, 닿는 족족 모든 것을 잘라 버리는 무시무시한 빛의 플라즈마.
“좋다. 좋아.”
태정의 입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