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메카닉 플레이어-70화 (70/182)

70화

[노르딕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200만을 획득합니다.]

[노르딕의 성난 눈깔을 획득하셨습니다.]

“에라이.”

보스 방으로 자리를 옮겨 놈을 가볍게 걸레로 만든 태정은 인벤토리에 들어온 눈깔을 보며 혀를 찼다.

심장이 들어와야 하는데, 쓸데도 없는 눈깔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

심장의 가격은 35억. 눈깔은 100만 원이었다.

사실상 의미가 없는 수준.

하지만 원래 이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노르딕 심장의 드롭 확률은 20분의 1.

처음 와서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기대를 했는데, 완전 꽝이네. 그나저나 오늘 약을 얼마나 썼지?”

화학탄을 이용해 효율적인 사냥을 한 그였지만, 그래도 블라스터와 초반의 총질을 생각하면 상당한 양의 포션을 사용했다.

영지전에서 길드원들이 준 포션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긴 했지만, 이렇게 수익 없이 사냥을 하다간 금세 거덜이 나고 말 것이었다.

“역시 한 방보다는 짤짤이가 좋으려나. 뭐 그래도 레벨 업은 많이 했으니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던전을 빠져나간 그는 경계조의 인사를 받으며 동네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어둑어둑한 밤이 되어 길드로 복귀한 태정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 대장님께서 왜 이 시간에…….”

“별일 없었죠? 박세아 씨는 안에 있나요?”

“네. 아까 잠시 집에 들렀다 다시 와 있어요. 그런데 대장님은 왜 다시 들어오신 거예요? 사냥 가셨다 퇴근하신 거 아니셨어요?”

“제가 그래도 여기 책임자인데, 개인 용무 보러 갔다 바로 퇴근하는 건 반칙이죠.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세요. 퇴근 일지 찍고 곧 나갈 거예요.”

“아. 네.”

직원들을 지나쳐 집무실로 들어가자, 입구에 있던 박세아가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오셨어요?”

“지금 이 시간까지 뭐 해? 아까 전화로 들어가라 했잖아.”

“회사 들어오신다고 해서요.”

“그냥 찍고만 갈 건데 뭐 하러. 너도 참 답답하다. 사람이 요령도 좀 있고 그래야지. 너 그러다 일에 치여 죽을 수도 있어, 진짜로. 이거 농담 아니야. 과로가 얼마나 무서운데.”

“보스만 하겠어요? 벌써 소문 다 퍼졌어요.”

“무슨 소문?”

“새로 온 지역대장님 일 정말 열심히 하신다구요. 강압적인 것도 없고 모르는 거 있으면 말단 직원에게도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시다고요.”

“그건 일단 맡았으니까. 일종의 책임 같은 거지. 그리고 빡세게 배워 놔야 나중에 누가 뭐 물었을 때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을 거 아냐. 길드 사업에 대해 물어봤는데, 대장인 내가 몰라서 버벅거리면 그것만큼 쪽팔린 게 또 있겠냐. 데리고 있는 직원들까지 창피지.”

“역시, 제가 보스는 잘 만난 것 같아요.”

“잘은.”

새로 들어온 사업 시안을 챙겨 박세아와 함께 퇴근을 한 태정은 그녀가 차린 늦은 저녁을 먹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튼, 사냥터를 좀 바꿔야 될 것 같아. 왠지 내일도 눈깔이 튀어 나올 것 같단 말이지.”

“그럼 어디로 가시게요?”

“등급을 하나 올려 볼까 생각 중이야.”

“괜찮으시겠어요? 8급도 오늘 처음이셨잖아요.”

“마지막에 갔던 던전을 기준으로 정한 거였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고. 내 생각엔 두 단계 정도 올려도 할 만할 것 같은 느낌이야.”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고 했는데, 일단 하나 올려서 가 보시고 그다음에 결정을 하세요. 두 단계는 조금 무모한 것 같아요. 9급만 해도 600레벨대 사냥터인데.”

“왜? 걱정돼?”

“당연하죠.”

“날 걱정하는 거야. 아니면 내가 죽어서 없어질 네 각성의 꿈이 걱정되는 거야?”

“둘 다요. 그런데 하나만 꼽으라면 당연히…….”

“당연히?”

“사람이죠. 사람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땡. 틀렸어. 네가 했어야 할 대답은 내가 아니라 각성이어야 돼.”

“왜요?”

“나는 나고 너는 너니까. 몇 년을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네 잇속부터 챙기는 게 당연한 거지. 왜냐면 나도 그럴 거거든.”

“말만 그런 거죠? 보스 인성 좋잖아요.”

“넌 날 뭘 믿고 그런 말을 하냐. 우리가 안 지 얼마나 됐다고.”

“거의 두 달은 됐는걸요?”

“고작 두 달 가지고… 어? 잠깐, 벌써 그렇게 됐어? 그럼 서바이벌 얼마 안 남았잖아.”

“그렇지 않아도 내일 말씀드리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참가하실 거죠? 위엣 분들이 다들 기대하고 계시던데.”

“지금 있는 버프 유지하려면 가야지. 그럼 제주도는 서바이벌 이후에나 가야겠구나.”

다음 날.

오전 업무를 본 태정은 등급을 한 단계 올려 블루 9급으로 사냥을 나섰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그것은 현재 그에게 딱 들어맞는 난이도였다.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는 적정 레벨의 사냥터.

박세아의 조언대로였다.

물론, 최고 무기인 다연장 로켓포나 요격미사일을 사용한다면 여유가 그래도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주력 무기가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무난하게 사냥하기엔 이곳이 딱 마지노선이었다.

“여기가 600레벨대 사냥터라고 했던가. 확실히 딜이 덜 들어가긴 하네.”

답답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시원하지도 않은.

하지만 불만은 있을 수가 없었다.

600레벨대 수십 명이 파티를 맺어 오는 사냥터를 400초중반대의 헌터가 혼자서 조진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직업적으로 어마어마한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영혼의 푸른 보석을 획득하셨습니다.]

[영혼의 붉은 보석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래도 아이템 하나는 잘 나오네.”

사냥은 서바이벌이 있기 전까지 계속 됐다.

그간 업무와 사냥을 병행하며 460레벨을 찍은 태정은 그간 벌어들인 돈으로 넉넉히 포션을 충전했다.

그리하고도 남은 돈이 무려 20억.

확실히 등급을 올린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서바이벌이 있는 바로 오늘.

[뭐야별게다있네 님이 명예의 전당 왕좌에 등록되었습니다.]

[제닉스 길드에 왕좌의 명예 버프가 주어집니다.]

[해당 길드원의 통합 전투력이 30% 상승합니다.]

[해당 길드원의 경험치 획득량이 20% 증가합니다.]

[버프 적용 기간 5월 31일 ~ 6월 30일]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서바이벌 역시도 그는 압도적인 1등을 차지하며 제닉스에 버프를 가져다줬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부동의 30단계가 깨졌다는 것 정도.

이는 다른 이들 역시 서바이벌의 비밀을 알아챘다는 뜻이었다.

뭐 그래 봐야 태정이 압도적 1등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양태식에 의해 서바이벌의 고수가 태정인 것이 밝혀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길드원들은 더더욱 지역대장을 찬양했고, 이제 어딜 가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역대의 어깨가 자부심으로 한층 올라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달이 밝은 새벽.

태정이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밖에서는 박세아가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그 양이 평소와 다르게 만만치가 않았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것일까.

“아직 멀었어?”

“거의 다 됐어요.”

“대충 하지, 에너지 바나 한 박스 챙겨 가면 되는데.”

“그런 거 먹고 어떻게 힘을 내요. 됐다. 이제 올리기만 하면 돼요.”

대형 도시락 통에 먹기 좋은 음식들이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김밥에, 초밥에, 떡갈비에, 김치, 잡채, 돈까스, 탕수육까지.

별의별 음식들이 5단 도시락 통에 가득 채워졌고, 미역국과 된장국이 각각 보온 통에 담겨졌다.

그것을 온도 조절용 박스에 담은 그녀가 이마에 맺힌 땀을 팔로 닦아 내며, 태정을 향해 물었다.

“들어가나 한번 넣어 보실래요?”

“이건 너무 큰 것 같은데, 일단 줘 봐.”

인벤토리를 열어 각을 재고 밀어 보던 태정은 놀라울 정도로 딱 들어맞는 박스 크기에 감탄을 하며 입을 열었다.

“뭐야, 이런 것까지 계산한 거야?”

“저도 들어갈 줄은 몰랐어요. 마켓에 가니까 인벤토리 규격에 맞게 팔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냉큼 사 왔죠.”

“별의별 걸 다 파네. 아무튼 고마워. 잘 먹을게.”

“그런데 정말 혼자 가셔도 돼요? 너무 멀잖아요.”

“같이 가 봐야 개고생이야. 아랫동네는 미수복지라 지켜 줄 사람도 없고. 그리고 넌 여기 남아서 나 대신 해야 할 일이 있잖아. 내가 없는 동안 잘 부탁할게. 무슨 일 있으면 메시지 남겨 놓고.”

“그럼 조심히 다녀오세요. 여기 일은 걱정 마시구요.”

“그래. 다녀와서 보자.”

만반의 준비를 갖춘 태정은 숙소를 빠져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이번 원정 같은 경우 미수복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차를 들고 갈 수가 없었다.

보나마나 수차례 습격을 당할 것이 뻔하고, 그렇게 되면 분명히 박살이 나 시간만 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그는 이번 원정에 김형식도, 박세아도 제외를 시켜 버렸다.

그런 상황에선 짐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이 직업은 진짜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구나.’

이 시점에서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이 메카닉 유저라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그에겐 이동 수단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 태정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갈 수 있는 블라스터를 택했다.

다른 장비에 비해 마나의 소비가 크긴 하지만, 그만큼 큰 이점이 있으니 현재로선 제격인 스킬이었다.

블라스터를 소환한 그는 천천히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곤 제라드를 향해 간단한 질문을 했다.

“남쪽이 어디야?”

-보고 계시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45도 트시면 정남향입니다.

“여기? 여기?”

-거깁니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가 보자.”

말을 끝으로 그의 신형이 무서운 속도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달빛을 가르며 자유롭게 순항 중인 태정은 순식간에 경기권을 벗어났다.

비행기나 차에 비하면 느린 속도지만 길에 대한 제약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충청권에 접어든 그는 천안과 대전을 벗어나 어느덧 전라북도에 이르렀다.

그러자 간간이 보이던 불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달빛만이 남아 칙칙한 대지를 밝히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미수복지를 보게 된 태정은 곳곳에 보이는 처참한 현장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파괴된 도로와 기능을 상실한 도시들.

멀쩡한 건물이 하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황폐화된 이곳은 더 이상 인간들의 터전이 아니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사이를 오가는 정체 모를 거대 벌레와 뼈만 남은 건물 옥상에 모여 있는 중형급 괴수들.

한때는 활발한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을 이 지역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곳은 강원 이남을 시작해 경상권과 부산, 광주에서 전남에 이르기까지, 국토의 3분의 1이상이 버려져 있는 상태였다.

벌써 백여 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충청권까지만 수복을 한 상태.

그나마도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는 완전히 수복을 했다 보기에도 어려웠다.

식량 때문에 길드가 관리만 하고 있을 뿐이지, 도시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

그만큼 인류가 지난날 입은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초기엔 인구의 80% 이상이 사라졌으니까.

‘내가 죽기 전에는 이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려나.’

무거운 마음을 가지며 계속 전진을 하던 그는 어느덧 전북을 지나 전남권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에 희미한 수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제라드의 음성이 들려왔다.

-완도에 접어들었습니다.

“다 왔네.”

그가 출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