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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57화 (57/182)

57화

화이트 라인에서 약 백여 킬로미터가량 떨어진 한 거대한 산맥.

원래 이름이 없던 이곳은 수년 전 한라산이 정찰 거점을 삼은 뒤로 명도란 명칭이 붙었다.

이곳은 남서와 동북 그리고 중앙의 경계를 가르는 주요 거점으로 중견 길드의 성만해도 200여 개가 넘었는데, 수많은 주인이 바뀌었던 다른 곳들과 다르게 딱 하나. 주인이 바뀌지 않은 성이 있었다.

바로 산맥의 핵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한라산의 중형 요새가 바로 그것이다.

길드 랭킹 16위에 랭크되어 있는 한라산은 중앙 격전지부터 서북과 남서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근방에선 절대적 제왕으로 군림을 하고 있었다.

비록 정찰 거점이긴 하나, 무려 스페셜리스트의 요새.

그 영향력이 결코 적을 수 없었다.

이곳을 건드린다는 건 척을 지겠다는 말이고, 그것은 곧 전멸을 의미한다는 뜻이니까.

그런 요새에 지금 막 한 사내가 입성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은 채 내부로 진입한 그는 초토화되어 버린 성을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중간짜리도 할 만하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성이라 할 만하지.”

목소리의 주인공은 태정이었다.

블라스터를 타고 빠르게 산맥을 넘으려던 태정은 지금까지 봐 온 성들과 다른 성 하나를 발견했다.

기존에 봤던 소형 성에 비해 최소 다섯 배 이상은 커 보이는 진짜 성다운 성.

마치 산에 틀어박힌 듯 보이는 그 성엔 실로 엄청난 숫자의 병력이 들어차 있었고, 그것을 본 그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유도 로켓 24발과 일반 로켓 12발.

도합 36발을 사용해 채 5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성 안의 모든 것을 싸그리 날려 버린 태정은 당당하게 입성해 점령 수정에 손을 올렸다.

[남서 지구 33,192 한라산 길드 소유의 중형 성을 제닉스가 차지하셨습니다.]

[성의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영지 점수 500을 획득합니다.]

[랭킹이 갱신됩니다. 79위 -> 74위]

“오 한 번에 5계단… 아니, 잠깐만. 뭐야? 한라산?”

랭킹이 갱신되는 걸 확인하던 태정은 가장 상단에 떠 있는 메시지 창에 시선을 고정했다.

한라산.

모를 수가 없는 길드였다.

“이게 거기 거였어? 어쩐지 범상치 않아 보이더니.”

태정은 보름 전 명도 호텔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스카웃을 받음과 동시에 죽임을 당할 뻔했던.

그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색다른 추억을 안겨 준 거대 길드였다.

그런 길드를 이곳에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간은 반가움마저 든다고 해야 하나?

무려 랭킹 16위의 성을 뺏어 놓고도 그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무언가 자신의 능력이 이로 인해 검증이 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가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라산인데 허술하게 해 놨겠어? 그런 곳을 고작 3분 만에 조져 버린 이 직업은… 진짜 노답일 정도로 사기야.”

원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였다.

여기까지 오며 그가 뺏은 성만 8개.

죽인 인간들의 수를 합치면 최소 5천이었다.

이게 만일 밖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대방 입장에선 그야말로 대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

반대로 아군에겐 사단급에 버금가는 전력이 되는 것이고.

“이래서 히든, 히든 하는구나. 놈들이 왜 그렇게까지 해서 영입하려 했는지, 이제야 좀 실감이 나네.”

다시 한번 직업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 태정은 지뢰 작업을 완료한 뒤 성을 빠져나갔다.

산맥을 넘어 또 다른 대지에 이른 그는 하늘 아래 수많은 성을 눈에 담을 수가 있었다.

이전과 다르게 면적당 들어서 있는 개수가 눈에 띠게 확 늘어났는데, 하나같이 다 그냥 지나치기가 힘든 것들이었다.

대충 보이는 것만 먹더라도 십여 개가 추가로 들어오는 상황.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봐, 제라드. 여기 있는 성을 싹 다 먹고 본성까지 가려면 마나가 부족하겠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기체를 소환한 상태로 로켓을 쏜다면 지금 있는 포션으론 부족할 겁니다.

“총을 사용하면?”

-한 방이라는 전제하에 소비 마나는 절반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당할 수도 있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주인님이 가지신 화력은 보신 대로 매우 막강하지만, 기체 없이 슈트 하나로는 적의 스킬을 막아 낼 수 있단 보장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만일 죽기라도 하신다면 처음부터 다시 올라오셔야 되기 때문에, 시간은 물론이고 절약한 마나가 의미 없게 될 지도 모릅니다.

“대충 내가 가진 방어력이면 몇 레벨까지 버틸 수 있냐.”

-400레벨 기준 기본 스킬은 그럭저럭 버티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스폐셜 무브나 그 이상의 스킬이 날아온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도 내 레벨까진 버틴다, 그 말인데… 근데 이것만 해도 엄청난 거 아냐? 무슨 내복이랑 슈트 하나로 남들 풀 세트 방어력이 나오냐. 이게 그렇게 좋은 거였나?”

-지금 착용하고 계신 슈트는 신 우주 물질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단단하면서 내구성이 강한 소재로 만들어진 슈트입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어찌 됐든 다 먹고 가긴 힘들단 소린데, 결국 그럼 가성비로 가야 되나?”

-어떤 가성비를 말씀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큰 성을 말하는 거지. 소형 성에 비해 중형 성이 10배나 점수를 더 주니까. 대충 때려 봐도 마나 효율이 배는 더 나오잖아. 게다가 중형은 그리 많은 것 같지도 않아 보이고.”

결정을 내린 태정은 그때부터 오직 중형 성만을 찾아 점령을 하기 시작했다.

진행은 매우 순조로웠다.

압도적인 사거리와 화력.

이 둘의 조합은 공성에 있어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줬고, 생전 처음 보는 공격수단에 헌터들은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나둘 거대 길드의 성들이 제닉스 휘하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편 태정이 온 동네 성을 초토화시키고 있을 무렵.

중남부 지역엔 초비상사태가 걸린 상태였다.

불가침조약으로 인해 항상 평화로웠던 이곳에, 중부 연합 소속의 성들이 하나같이 다 개박살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인해 연합의 리더를 맡고 있는 오릭스 길드의 본성엔 수많은 길드의 간부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오릭스 본성 대회의 장.

상석의 오릭스 수장 김병태를 포함 일곱 개 연합의 길드 책임자들이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다 표정이 굳어 있었는데, 겉으로 말만 하지 않을 뿐 모두 서로를 의심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들의 눈치를 읽었는지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김병태가 먼저 운을 띄웠다.

“다들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병태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을 한 것은 오릭스와 형제 결연을 맺은 피아트 길드의 총책임자 유연석이었다.

“생각하고 말 것이 있겠습니까. 외부 침공입니다. 지난 1년간 이곳은 너무 평화로웠습니다. 게다가 월드 워를 앞둔 상황이니, 당연히 주변 하이에나들이 끼어들 수밖에요. 항상 이 시즌이 되면 돌발 상황이 오곤 했으니까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별것 아니라는 그의 말에, 서열 세 번째에 있는 스타게이트 길드의 공대장 백성현이 불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하나도 아니고 여기 있는 길드 대부분이 털렸는데, 이게 단순 돌발 상황입니까?”

“그럼 자네는 뭐 알고 있는 게 있나?”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알지요. 총책임자께서 몸담고 계신 피아트는 피해가 없었다는 걸 말입니다.”

다소 공격적인 말투에 유연석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은 꼭 우리가 무슨 일을 벌이기라도 했다는 걸로 들리는군.”

“그렇게 들렸습니까?”

“이봐, 자네. 지금 뭔가 나한테 불만이 많은 모양인데…….”

탁!

“거, 말씀 중에 죄송한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와 피아트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만 당했을까요?”

끼어든 이는 중남부 연합의 축을 맡고 있는 크라시온 길드의 대표였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미 피아트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있었다.

근거도 충분했다.

“피아트의 이번 랭킹이 어떻게 되십니까.”

“42위네.”

“빠듯하겠군요.”

“그게 무슨 뜻이지?”

“월드 워 참가 랭킹은 50위까지입니다. 이건 헌터 밥 먹는 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42위면 솔직히 안심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자네는 지금 우릴 의심을 하는 건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텐데.”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하지만 거기에 더한 찬물을 끼얹는 이가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여기 있는 이들 모두 마찬가지 아닙니까?”

줄곧 입을 닫고 있던 가장 마지막 서열인 프린스 길드의 간부.

그의 말에 크라시온의 대표가 심기 불편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희 길드를 제외하면 모두가 50~60위권의 예비 승급 길드인데, 욕심이 나지 않겠냐 그 말입니다. 더군다나 50위권부턴 순위 하나에도 보상이 달라지는데, 거기에 가장 근접한 길드가 크라시온 아닙니까?”

“뭐야!? 이 자식이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우린 2개나 빼앗겼어!”

“그거야 직접 확인이 안 되니 모르는 일이지요.”

“오호. 그래. 이제 막 나가자 이 말이지? 어디 촌구석에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길드를 연합으로 받아 줬더니, 이런 식으로 칼을 꽂아? 각오는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저희도 랭킹 올리자면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저력이 있는 길드입니다. 딱히 관심이 없었을 뿐이죠. 전쟁하시려면 하시죠. 근데 그거 아셔야 할 겁니다. 저희는 절대 혼자 망하지 않습니다.”

“이… 이런 근본도 없는 놈이…….”

회의 분위기가 주먹다짐까지 오갈 위기에 처하자, 오릭스 김병태가 중재에 나섰다.

“다들 흥분 좀 가라앉히십시오. 이러려고 모인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연합이 고작 이 정도로 서로를 헐뜯고 의심할 수준입니까? 물론 빼앗긴 성을 놓고 보자면 나름 타격이 큰 곳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나중에 밝혀질 사실인데, 여기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도박을 감행할 곳이 있겠습니까.”

김병태의 말에 다시 한번 크라시온의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럼 리더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중남부 지구엔 저희 연합에 대항할 곳이 딱히 없는데. 대체 누가 감히 이런 짓을 벌인단 말씀입니까.”

“그래서 저도 생각 중입니다. 북쪽에서 치고 내려왔으면 분명 정보망에 걸렸을 텐데, 그런 낌새가 전혀 없었으니… 일단 주요 성에 정찰을 보내 놨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별다른 진전 없이 회의가 늘어질 때 즈음.

누군가 급히 회의장에 들어온 이가 있었다.

“참모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큰일 난 거 같네.”

“큰일이라뇨?”

“연합에 선전포고 전문이 날아왔어.”

뜬금없는 오릭스 참모장의 말에 좌중이 소란스러워졌다.

연합이 결성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선전포고? 누가 감히 저희 연합에 그딴 걸 보낸단 말입니까.”

“그게…….”

“말씀을 해 보십시오.”

“한라산이야.”

“뭐, 뭐라고요? 한라산이 왜…….”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남서 지구 명도 산맥에 있는 정찰 기지 말일세.”

“그 기지라면 몇 년 전에 한라산이 알박을 해 놓은 곳 아닙니까.”

“거기가 털렸다는군. 우리가 용의선상에 오른 것 같아.”

참모장의 말에 김병태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중얼거렸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고작 중형 성 하나 먹자고 한라산과 척을 진다는 게.”

“그 성에 상당히 수준 높은 헌터들이 있었나 봐. 아무튼 지금 당장 대비를 해야 할 것 같네만.”

“이 대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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