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일단 가는 데까지 가 보기로 한 태정은 성을 나서려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떠나면 이곳이 빈집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음. 그냥 가자니 조금 아까운데.”
기왕 들어온 거 길드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점수가 가장 적은 소형 성이지만 하나라도 가지고 있으면 그래도 랭킹 산정에 도움이 될 터.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던 그의 머릿속에 잊고 있던 스킬 하나가 떠올랐다.
“맞아. 지뢰가 있었잖아.”
지뢰.
제라드의 말을 빌리면 기습 폭탄의 일종이었다.
땅속에 묻어 일정한 압력을 가하게 되면 자동으로 터져 버리는.
하지만 그는 이 스킬을 연습은커녕, 단 한 번도 사용을 해 보지 않았다.
최근에 얻게 된 대파종 지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사가 가능한 주총과 비교해 고작 2배의 데미지에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마나.
거기에 필드 특성상 이동을 하는 사냥에서 지뢰는 무쓸모나 마찬가지인 스킬이었다.
그걸 심고 기다리고 있을 시간에, 수백 수천 마리는 더 죽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선 제법 쓸 만한 구석이 있을 수도 있었다.
“제라드, 이번에 얻은 스킬 정보나 사용법이 어떻게 돼?”
-대파종 지뢰 매설 스킬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어차피 처음에 얻은 건 파괴력도 거의 없었잖아.”
-대파종 지뢰 매설 스킬은 현대의 기술과 파라만 제도의 기술이 더해진 복합형 스킬입니다. 분당 50발을 한 번에 매설 가능하며 스마트 시스템으로 인해 시간 설정이 가능합니다. 스킬의 사용법은 활성화 후 매설 조준점을 기준 음성 명령으로 매설이 가능하며 파종 형태로 뿌려지게 됩니다. 이후 타이머 설정을 하시면 최초 반응으로부터 시간이 경과한 후 압력이 가해지면 폭발하게 됩니다.
“오호. 그러니까 네 말은 밟은 시점으로부터 타이머가 돌아가고 그게 종료되면 그때부터 상시 반응형이 된다는 거 아냐? 내가 이해를 잘한 건가?”
-정확하십니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데?”
태정은 이번에 얻은 스킬이 전에 얻었던 것과 다르게 엄청나게 발전이 되었단 걸 알 수 있었다.
같은 스킬에 심을 수 있는 수만 많아진 줄 알았는데, 듣고 보니 이건 완전히 다른 스킬이라 해도 무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상시 반응형의 경우 매우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밟으면 바로 터지기 때문에 대열의 앞쪽이 피해를 입게 되면, 그 후미는 당연히 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 원인 모를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길로 계속 밀고 들어오는 머저리들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폭발의 시간을 임의로 맞출 수 있다면?
운이 좋으면 부대 전체를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좋아. 일단 매설부터 해 보자. 제라드, 이거 매설 사정거리가 어떻게 돼?”
-기준점이 되는 곳이 30미터입니다. 초입에 놓으실 거면 성벽 위가 가장 매설을 하기 적당한 위치입니다.
“가 보자.”
성벽 위로 올라간 태정은 대파종 지뢰 매설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전방 저 멀리 빨간색 조준점이 나타났다.
조준점을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시선이 가는 대로 따라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장 먼 곳에 위치를 시킨 태정이 명령어를 외쳤다.
“매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준점을 기준으로 반경 50여 미터에 새빨간 점들이 뿌려졌다.
점들은 나타나자마자 땅속으로 스며들었고, 이내 대지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게 된 거야?”
-그렇습니다. 현재 성문을 기준으로 반경 50여 미터에 50개의 지뢰가 매설되었습니다. 타이머는 어떻게 설정하실 생각이십니까.
“다 심어 놓고 한 번에는 안 돼?”
-한 시간 이내라면 가능합니다.
“그럼 일단 전부 싹 깔아 놓고 최적의 시간을 계산해 보자.”
말을 끝으로 그가 초입에서부터 내부까지 넉넉하게 지뢰를 매설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성 안팎을 통틀어 500여 개의 지뢰가 깔려 있는 상태.
특히 내부엔 도망을 갈 수 없을 만큼 온 사방에 매설이 되어 있었다.
이제 계산만 하면 끝.
잠깐 생각을 하던 그가 제라드를 향해 물었다.
“타이머의 최대 시간이 얼마나 되지?”
-1시간입니다.
“좋아. 전부 30분으로 맞춰. 일단 병력이 모두 성 안으로 들어와야 되니까.”
-시간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지뢰 매설을 완료한 태정은 아무것도 없는 대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타이머가 종료되면, 그때부턴 한 발만 떼도 난리가 난다. 성 입구에도 깔아 놨으니 도망가다 죽는 이들도 태반이겠지. 문제는 컨트롤 타워인데, 지뢰를 밟기 전에 한 명이라도 점령 수정에 손을 대면 끝이야.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역시. 이게 좋겠군.’
콰콰쾅!
폭발과 함께 컨트롤 타워의 입구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돌과 잔해들로 완벽하게 막힌 상황.
걷어 내고 들어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들어간다고 한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타이머가 종료된 지뢰였다.
“됐다. 어지간한 고렙이 아니고선 여기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래도 뺏기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말을 끝으로 그가 블라스터를 소환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곤 곧장 본성이 있는 방향으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성을 떠난 지 채 10분이나 되었을까.
빠른 속도로 동진하고 있는 그의 시야에 2개의 성이 포착됐다.
점령지에서 봤던 가장 가까이에 있던 곳.
위에서 내려다보니 주둔하고 있는 병력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뜻이었다.
‘내려가자.’
바로 하강에 들어간 그는 앞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곳에 은폐해 기체와 다연장 로켓포를 소환했다.
이번엔 12발이었다.
24발로 성이 걸레가 되어 버렸으니, 반만 해도 충분하지 않겠냐는 판단이었는데, 그것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남서 지구 화이트 라인 03,198 파샤트 길드 소유의 소형 성을 제닉스가 차지하셨습니다.]
[성의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영지 점수 50을 획득합니다.]
화력이 두 배로 줄었지만 성의 병력을 날려 버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앞서 증발을 해 버린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헌터들.
그다음 성은 10발이었다.
콰쾅! 쾅!
[남서 지구 화이트…….]
[랭킹이 갱신됩니다…….]
“왜 이렇게 반응이 없는 거지? 죄다 병풍만 세워 놨나.”
성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은 약해도 너무 약했다.
처음 긴장을 해 마나를 있는 대로 퍼부었던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이쯤 되니 태정은 자신이 강한 건지, 적이 약한 건지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히든이라 해도 고작 400레벨에서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후 2개의 성을 6발로 추가 점령한 태정은 그제야 비로소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곳에 있는 헌터들의 수준이 영 아니올시다라는걸.
“다 쪼렙들이었구만.”
* * *
남서 지구 F구역 리스폰 포인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헌터가 무더기로 소환이 되고 있었다.
어디 큰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일까.
벌써 6개의 길드가 한곳에 모인 상태.
그중 가장 첫 번째로 리스폰 당한 플랜트 길드의 부대장 김용태는 아직도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컨트롤 타워에서 밥을 먹다 울려 퍼진 폭음과 비명.
무슨 일인가 싶어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갔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대지였다.
바로 이곳.
죽은지도 모르게 죽은 것이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벌써 두 시간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김용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한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무언가가 성 내부에서 대폭발을 일으켰다고.
문제는 그게 무엇인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폭발은 마법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파괴력이 크면 클수록 눈에 잘 띄는 것이 정상.
한데, 동서남북으로 깔아 놓은 병력 중 이를 본 이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대급 병력이 어떻게 죽은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죽었어. 이 정도 파괴력이면 적어도 B등급 이상은 될 텐데. 그 많은 놈 중에서 어떻게 한 명도 그걸 못 본 거야?”
그가 답답함에 속이 터지고 있는데, 지휘관 중 한 명이었던 한명식이 누군가를 이끌고 그에게 다가왔다.
“부대장님.”
“왜?”
“여기 이들이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말? 뭔데 해 봐.”
김용태의 말에 사내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폭발 직전에 저희가 뭔가를 본 것 같습니다.”
“뭐라고? 그걸 왜 이제 말해?”
“그게… 저희가 본 게 딱히 관련이 있는 것 같진 않아서…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뭔가 단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본 게 뭐야.”
“그… 너무 빨라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무언가 기둥 같아 보였습니다.”
“기둥?”
“약간 전봇대 느낌도 있고 돌기둥 같기도 하고… 후방에선 연기가 꼬리를 물고 있었구요.”
“전봇대? 돌기둥? 그러니까 네 말은 전봇대가 날라와서 우리 모두가 이렇게 뒈졌다? 지금 장난하냐? 그런 것도 보고라고… 전봇대로 대가리를 깨 버릴라.”
“허억. 죄, 죄송합니다. 제가 허, 헛것을…….”
사내가 움찔하며 물러서자, 이번엔 옆에 있던 다른 사내가 튀어나와 말을 이었다.
“저,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다르게 봤다? 말해 봐.”
“그러니까… 그게, 제가 볼 때는 엄청 커다란…….”
“커다란?”
“좌약 같았습니다.”
“좌약이라니?”
“그 왜 있잖습니까. 똥구멍에 넣는…….”
“이런 미친 새끼가.”
어이가 없다는 듯 사내를 바라보던 김용태가 이들을 데리고 온 한명식을 향해 물었다.
“이것들 뭐 하는 놈들이야?”
“죄송합니다. 추, 충격을 심하게 받아서 정신착란이 온 것 같습니다.”
“얼른 치워, 골 아프니까.”
“예!”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자리를 벗어나는 그들을 보며 김용태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쯧쯧. 저런 얼빠진 것들도 길드원이라고. 그러니 이 꼴이나 당하고 있지.”
한참이나 그들을 향해 욕을 퍼붓던 김용태는 이내 근심 가득한 표정이 됐다.
지금쯤 대노했을 길드장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근무까지 빼면서 믿고 맡겨 달라며 자신 있게 들어왔는데, 가장 허들이 낮은 소형 성도 지켜 내지 못했다.
이는 문책을 떠나 징계까지도 갈 수 있는 매우 큰 사안이었다.
특히나 이번 영지전의 경우 월드 워 승급전이 걸려 있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이것으로 인해 랭킹이 밀려난다면, 그는 그야말로 길드에 대역적이나 다름없었다.
“괜히 설레발을 쳐 가지고, 그냥 근무나 설 것을.”
그가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을 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작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악!”
“똑바로 안 서!?”
“죄, 죄송합니다!”
“다시 말해 봐라. 뭘 봤다고?”
“그게…….”
“말해.”
“애기들 또, 똥구멍에 넣는… 으악! 잘못했습니다!”
“이 새끼가 장난도 때가 있는 거지. 지금 상황 심각한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정강이를 연신 걷어차이고 있는 타 길드의 헌터와 화가 잔뜩 나 보이는 간부.
그런 그들을 보는 김용태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신 나간 놈이 저기도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