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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54화 (54/182)

54화

포털로 진입한 태정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메말라 버린 황폐한 땅이었다.

이어서 여러 메시지가 동시다발적으로 뜨기 시작했다.

[영지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제닉스 길드 리스폰 포인트가 설정되었습니다.]

[현재 파티는 0명입니다.]

[제닉스 길드의 본성 좌표는 남동 지구 e구역 129,33입니다.]

“음. 일단 들어오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박세아의 설명에 따르면 영지전 진입 후 부대는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본성 귀환 스크롤을 이용해 이동을 한다고 했다.

빠른 수비를 하기 위해서인데, 당연하게도 태정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상황.

자연스레 그가 제라드를 불러냈다.

“제라드, 좌표가 129,33이면 어디쯤에 있는 거야? 이거 볼 수 있는 창 같은 건 없나?”

-좌표를 알 수 있는 지도는 길드의 참모급 이상 되는 자들이 보유한 성에 따라 부대장급에게만 부여가 가능하게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성에 들어가야지만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럼 지금 나는 우리 성들이 위치한 장소조차 알 수가 없다는 거네, 그렇지?”

-그렇습니다.

“뭐 대충 예상은 했으니까. 그렇게 놀랍진 않은데… 뭐부터 해야 하나?”

무작정 들어오긴 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뭘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이미 들어왔던 포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상황.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끝없이 펼쳐진 대지밖에 없었다.

성은커녕 산이나 들, 심지어는 그 흔한 풀떼기조차도 보이지가 않는다.

잠깐 고민을 하던 그는 일단 움직여 보기로 했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죽을 일도 없다고 하니, 큰 부담은 없었다.

‘외골격 로봇. 부스터.’

마나가 그나마 덜 들어가는 부스터를 소환한 태정은 서서히 포인트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방이 뻥 뚫린 넓디넓은 대지.

신기할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대지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줄 정도로 고요하면서도 적막했다.

그렇게 포인트를 벗어난 지 한 시간 정도나 흘렀을까.

저 멀리 희미하게 어떤 물체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실루엣처럼 희미하게 보이던 그것은 다가가면 갈수록 그 형태를 드러냈으며, 태정은 그것이 곧 하나의 거대한 산이란 것을 깨달았다.

“이제부터 시작인가.”

한 시간 내내 지루할 정도로 같은 배경만 보던 그였기에 반가움이 느껴졌다.

사막을 뺑뺑 돌다 오아시스를 발견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정체를 모를 산은 한참을 더 달려서야 그 초입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무성하게 솟은 푸른 나무들과 익숙하게 보이는 흙과 바위들.

밖에서 보던 것과 다를 것이 없는 초목이었다.

산 내음을 맡으며 등반이 시작됐다.

올라가는 길에 딱히 위험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8구짜리 발칸을 소환해 놓은 상태였지만, 산속의 풍경은 새와 다람쥐까지 보일 정도로 매우 평화로웠다.

그렇게 중턱을 지나 순식간에 정상을 밟은 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산 아래로 보이는 거대한 호수와 우거진 정글.

그 정글을 등지고 있는 작은 성 하나가 보인다.

“저런 곳에 성이 있네. 정글에 성이라… 뭔가 안 어울리는데?”

태정은 조금 더 관찰하기 위해 하산을 하며 성을 예의주시했다.

그렇게 내려와 걷기도 한참.

성 위에 병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충 백 명 정도…….’

헌터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스태프를 가진 법사 계열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일정 간격으로 떨어져 주변을 감시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 병력들을 보던 태정은 성의 규모가 생각보다 보잘것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서 볼 땐 가늠이 잘 되지 않았는데, 호수 근처까지 다가가자 그 크기가 일반적인 성이라고 하기엔 매우 작았다.

얼마 전 그가 다녀온 대저택보다 조금 큰 정도라고 할까.

박세아가 말하길 성은 소형, 중형, 대형으로 나뉘며, 규모에 따라 중요도가 다르다고 했다.

이 정도 규모면 당연히 가장 작은 소형 성.

중요한 요충지가 될 수 없었다.

‘밀어 볼 만할 것 같은데?’

성의 규모나 위치, 헌터들의 차림새 등을 종합해 봤을 때, 한번 들이밀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소리를 죽이며 제라드를 불러냈다.

“제라드.”

-예, 주인님.

“진짜 죽는 거 아니지?”

알고는 있지만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보고 싶은 태정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잘못 알고 왔을 경우, 대량 학살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

그는 좀 더 신중하게 행동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제라드의 대답은 그의 결심을 굳히기에 충분했다.

-영지전에선 방어력에 한계치 이상의 데미지를 입게 될 경우, 리스폰 포인트로 자동 소환됩니다. 실제로 입는 데미지는 없습니다.

“좋아. 그럼… 처음이니까 안전빵으로 가 볼까.”

말을 맺음과 동시에 그가 프로텍터 기체를 소환했다.

그러자 한차례 빛이 일며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했다.

이 상태론 대형 무기를 소환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곧장 기체를 근접에서 전투형으로 변환시켰다.

그러자 두 발로 서 있던 로봇의 다리가 쏙 들어가며, 내부에 있던 태정의 모습이 조종석과 함께 툭하고 튀어나왔다.

동시에 그가 다연장 로켓포인 천룡을 소환했다.

36발짜리 거대한 포신이 장착되자, 그는 곧장 제라드를 통해 좌표를 계산했다.

“아마 성을 파괴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최대한 내부에서 터질 수 있게 좌표를 좀 잡아 줘.”

-원하시는 게 인명 살상입니까.

“음. 인명 살상이라 하긴 좀 그렇고… 아무튼 그렇게 해 줘.”

-알겠습니다.

제라드가 좌표를 계산하고 그 데이터를 넘겨받은 태정이 성을 조준했다.

장전된 탄은 유도탄으로 24발.

마나를 생각한다면 비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적을 모르는 데다 처음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은 최대 화력을 퍼부어 보는 수밖에.

이윽고 태정의 입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발사.”

명령과 동시에 아래쪽에 위치한 포신에서 로켓이 차례대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슈아아악!

슈아악!

슈악!

바람을 가르며 쏘아 올려진 탄이 비행운을 그리며 순식간에 성의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경을 그제야 눈에 담은 병력들이 신기한 듯 중얼거렸다.

“저거 뭐냐?”

“어?”

“첨 보는데?”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던 그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것은 초탄이 성 중앙에 떨어지고부터였다.

콰콰쾅!

폭발과 함께 거대한 연기구름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사방에서 우왕좌왕하는 소리와 함께 비상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뒤이어 들어온 후속타에 흔적도 없이 잡아먹혔고,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이, 이게 뭔 일이야!?”

“확인. 생존자 확인해 봐.”

“구, 구십… 떠, 떨어진다 으악!”

보고를 하던 이와 보고를 받던 이들이 섬광과 함께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야. 도망가!”

“어디로 말입… 악!”

콰쾅!

쾅!

폭발이 일 때마다 한 무더기씩 모여 있던 헌터들이 그대로 증발해 사라졌다.

그것은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성 또한 파괴되고 무너져 내려 눈 한번 깜빡하고 나면, 곳곳이 박살 나 시시각각으로 환경이 변하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갑작스레 공격을 받은 헌터들은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작은 성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은 대규모 스케일의 공격.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태어나 처음 당해 보는 일에 혼이 나가려는 그때.

그들을 모두 저승으로 인도할 대량의 로켓탄이 성 중앙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콰쾅!

내각을 통째로 날려 버릴 정도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그 화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피어오른 연기가 성을 집어삼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태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왜 대응을 안 하지? 분명 날아오는 게 보였을 텐데.”

성벽 위 헌터들이 왜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던 그는 성을 집어삼킨 연기가 사라지길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바람에 의해 옅어진 연기 사이로 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성벽 위에 있던 병력은 모두 사라진 상태.

“슬슬 확인 한번 해 볼까.”

태정은 천천히 그리고 매우 신중하게 성을 향해 이동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기습에 대비해 그는 현재 완전 무장에 레이더까지 소환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철저한 준비와는 달리 위협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부서진 성문을 지나 내부에 진입한 태정은 생각보다 훨씬 처참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간단하게 말해 성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바닥 곳곳엔 크고 작은 크레이터가 형성되어 있었고, 무언가 기물들이 있던 자리에는 그 터만 남아 싹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유일하게 멀쩡한 것은 가장 후미 깊숙이 존재해 있는 성의 컨트롤 타워.

내부 역시 사람은 없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깔끔하게 싹 쓸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뭘 해야 된다고 했더라. 수정, 수정이… 아. 이게 그 수정인가 보구나.”

박세아에게 듣길 성을 차지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모든 적을 죽이고 점령 수정이란 것을 차지하면 해당 길드의 성으로 인정이 된다는 것이다.

태정이 손을 가져다 대자 수정에서 영롱한 빛이 뿜어졌다.

그러기도 잠시.

곧 내부에 여러 창들이 떠오르더니, 알림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서 지구 화이트 라인 03,161 플랜트 길드 소유의 소형 성을 제닉스가 차지하셨습니다.]

[성의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영지 점수 50을 획득합니다.]

[랭킹이 갱신됩니다. 81위 -> 81위]

“오호. 이렇게 되는 거구나. 어디 보자. 이게 지도와 현황판인가.”

활성화된 디스플레이엔 현재 위치와 주변성들의 위치 그리고 주변 지형 지대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제닉스 길드의 본성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곳이 적으로 분류되는 빨간색의 깃발.

아군의 성인 초록색 깃발은 그가 차지한 이 성이 유일했다.

“왜 지도에 우리 성은 없지? 벌써 당했을 리가 없을 텐데.”

-소형 성의 지도는 반경 50km까지밖에 정보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본성이 있는 남동 지구의 반대인 남서 지구입니다. 그 남서 지구에서도 가장 외곽에 있는 화이트 라인이란 곳이죠. 그러니 당연히 정반대 편에 있는 본성은 이 지도에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가 남서니까, 이쯤이 남동인가?”

-그렇습니다. 가리키신 부분이 정확히 남동쪽입니다.

“음. 지나쳐야 할 성이 꽤 많네. 여기 이 줄기처럼 뻗은 산맥은 무조건 넘어야 된다는 소린데. 이 산맥만 해도… 대충 30여 개가 포진하고 있는데. 안 들키고 넘어갈 수 있을까.”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상대해야 하는 길드의 네임벨류는 올라간다.

즉 고레벨은 물론이고 수비군의 규모 또한 커진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히든이라지만, 이제 갓 400레벨로 본성이 있는 곳까지 죽지 않고 도달할 수가 있을까?

희박한 확률이었다.

“이거 날아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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