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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50화 (50/182)

50화

죽음의 늪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지막 층은 여타의 다른 층보다 더 깊게 내려가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계단의 향연.

열심히 걷고 또 걸어 보지만, 그는 좀처럼 마지막 층의 공간을 눈에 담을 수가 없었다.

실로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깊은 지하였다.

그렇게 하염없이 내려가던 태정은 심심한 마음에 제라드를 불러냈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 좀 느껴지는 거 없냐.”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레이더를 활용해 볼까.”

-이곳에서 기체를 소환하시면 이동이 불가할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하의 구조와 감지 반경을 생각한다면 레이더 또한 무용지물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 정돈 나도 알아. 딱 봐도 공간 안 나오잖아.”

-그럼 왜…….

“그냥 해 본 말이다, 너무 지루해서.”

태정은 제라드를 말동무로 삼으려 했지만 이내 관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엔 감정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컴퓨터와 채팅을 치고 있는 느낌이랄까?

1세대 인공지능의 한계였다.

그렇게 입을 닫고 계단을 내려가기도 한참.

아래쪽으로 무언가 다른 것이 그의 눈에 포착됐다.

‘도착했나.’

서둘러 내려가자 더 이상 내려갈 계단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공간.

사실 너무 어두워 거대한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다.

라이트를 달고 있는 앞까지만 가늠이 될 뿐, 모든 게 컴컴한 심연의 공간이었다.

졸졸졸.

“어? 이 소리는?”

입구에서 공간에 대해 파악을 하고 있던 태정은 익숙한 물소리에 바닥에 라이트를 비춰 봤다.

그러자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양옆에 마련된 길과 가운데 널따랗게 흐르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

그 모습은 흡사 하수도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머릿속에는 없는 구조물이었다.

“이런 말은 없었던 거 같은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하루 종일 읽었던 공략법을 포함 모든 정보에는 이런 구조물이 나와 있지 않았다.

내려가자마자 보여야 하는 건, 연못 수준의 작은 늪이고 그곳엔 히드라가 있어야 한다.

한데, 이런 컴컴한 환경의 하수도는 대체 무얼 뜻하는 것일까.

혹시나 싶어 제라드에게 물어도 봤지만, 그 역시 본 적이 없는 공간이었다.

“뭔가 달라.”

태정은 정보가 조금씩 엇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지하의 깊이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1분이면 도달할 거리를 무려 한 시간 가까이 내려왔으니까.

자연스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돌아가서 좀 더 알아보고 와야 하는 것일까.

확실한 정보가 없을 땐 가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가 봐야 뭘 알 수 있겠냐. 볼 수 있는 건 다 들여다봤는데. 가 보자. 일단 부딪쳐 보는 거야.’

몸으로 부딪쳐 보기로 한 태정은 라이트를 어깨에 달고 야투경을 소환했다.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시야가 확 넓어지며 제법 그럴싸한 시계가 갖춰졌다.

100%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대응 사격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

“그럼 어디 들어가 볼까.”

태정은 벽 쪽의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동은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진행됐다.

정보와 현실이 다르기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

경거망동은 금물이었다.

‘왠지 저기서 나올 것 같단 말이야.’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며 나아가는 태정의 시선은 그 대부분이 옆에 흐르는 물에 가 있었다.

이 하수도(?)의 구조상 몬스터가 튀어나올 만한 곳은 중앙에 놓인 수로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을 했을까.

-전방에 몬스터로 보이는 무리가 빠른 속도로 접근 중입니다.

“수는?”

-대략 십여 마리. 아니, 이십 마리… 계속 불어납니다.

“오케이.”

제라드에게 정보를 넘겨받은 태정은 바로 어깨에 걸려 있던 직사포와 곡사포 한 발을 어둠 너머로 날려 보냈다.

쾅!

폭발과 함께 빛이 터지며 순식간에 내부가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자 보이는 하수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요상한 벌레들.

놈들은 벽이며 물이며 할 것 없이 빠른 속도로 전진을 해 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기괴한 나머지, 그는 순간적으로 머신건의 방아쇠를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타타탕! 타타탕! 탕!

9.62미리 대구경 총신에서 빛의 탄환이 무작위로 난사됐다.

퍼억!

케윽!

첨벙!

[케이라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550,000을 획득합니다.]

[케이라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550,000을 획득합니다.]

진녹색의 체액을 뿌리며 우수수 떨어지는 거미 형태의 괴수들.

몇몇은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폭죽이 터지듯 터졌고, 체액의 일부가 상체에 닿자 연기가 피어오르며 지독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치이익-!

마치 염산에 맞은 듯 부식이 되고 있는 외골격 상판.

그 모습에 낯빛이 돌변한 태정이 부스터를 소환했다.

동시에 뒤로 후진한 그가 다시 사격을 시작했다.

간간이 유탄을 섞어 주며 한참을 물러나 사냥을 하던 태정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제라드의 보고에 방아쇠를 놓으며 곧장 외골격 상판을 확인했다.

그러자 상당 부분 녹아내린 흔적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까딱했으면 골로 갈 뻔했네.”

훼손당한 상판이 문제가 아니었다.

만일 체액이 얼굴로 날아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현재 머리 방어에 대한 수단이 없으니까.

깊은 한숨을 내쉰 그는 다시 수로의 구조를 살펴봤다.

안전빵으로 기체를 이용해 볼까 해서였는데, 그리 넉넉한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기엔 왠지 불안함이 앞섰다.

‘일단 해 보자. 안 되면 마는 거지.’

잠깐 생각하던 태정은 곧장 기체를 소환했다.

다행히 기체는 무리 없이 소환됐고, 동시에 그가 제라드를 향해 물었다.

“위에 공간이 얼마나 남지? 다연장 로켓 달 수 있겠어?”

-불가합니다.

“로켓 런처는?”

-오른쪽 핸드에 달게 되면, 벽에 쓸릴 확률이 높습니다. 발칸포는 사용 가능합니다.

“그럼. 무기는 방사포랑 발칸포밖에 쓰지 못하는 거네, 그렇지?”

-그렇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2가지였다.

슈퍼 발칸포와 화염 방사포.

이것만 해도 인간 형태일 때보단 막강하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일이 벌어질 확률은 매우 적었다.

이윽고 방사포까지 소환한 태정이 기체에 출력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등판 하부에 붙은 부스터에서 빛이 일며 거대한 기체가 힘차게 앞을 뻗어 나갔다.

이후의 사냥은 사냥이라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대학살극이었다.

레이더에 잡히면 잡히는 대로 무한 연사를 갈겨 버리니, 태정은 놈들의 형체조차도 눈에 담을 수가 없었다.

쏘는 족족 죄다 녹아버리는 상황.

걱정을 했던 것이 심히 무색할 정도였다.

혹시나 해서 소환해 놨던 방사포가 장식으로 전락을 했으니, 가히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 전투력이었다.

[케이라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55,0000을 획득합니다.]

[케이라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55,0000을 획득합니다.]

[케이라의 독니를 획득합니다.]

추풍낙엽, 아니 불면 날아가는 먼지처럼 사라지고 있는 몬스터들을 보며 태정은 다시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다.

계획에 없던 것들이 연이어 터지다 보니,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게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전진을 마음먹었고, 나름대로 적응을 하며 길을 헤쳐 나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 멀리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 왔나?”

어둠을 뚫고 나온 샛노란 빛에 그는 속도를 줄이며 서서히 멈춰 섰다.

경계를 하며 내부로 들어가자 줄지어 늘어진 횃불과 함께 거대한 밀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중앙에 서 있는 거대한 조각상 하나.

“저건 또 뭐야?”

이 역시 공략법에선 나와 있지 않은 구조물이었다.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

가까이 가서 보니, 조각상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떠 있었다.

천장에 달린 수많은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 형태의 석상.

그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었는데, 태정은 이내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거 아까 그 벽화에 있던 노인이잖아?”

석상의 주인공은 전 층의 모든 벽화에 나왔던 노인이었다.

갑옷이며 투구며 모든 것을 빼다 박은 모습.

특이한 것은 석상이 차고 있는 투구와 갑옷 그리고 검이 진짜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흡사 살아 있는 것과도 같이 섬찟했다.

“그런데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 이게 뭘까? 아는 것 좀 있어?”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볼 때 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게 뭐 네 잘못이겠냐. 그런데 이건 진짜 장비 같은데, 누가 이런 걸 입혀 놨을까?”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석상은 그렇다 쳐도 이 거대한 장비들은 대체 뭘까?

구조상 이렇게 입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용접을 해서 붙였나? 한데, 있어야 할 히드라는 어디 가고 왜 이런 게…….”

말을 중얼거리던 태정은 주변을 둘러보다 내부에 또 하나의 입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저쪽인가.”

자연스레 기체가 그곳을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와 함께 흙으로 뒤덮인 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곳곳엔 이름 모를 풀들과 나뭇가지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공간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굉장히 이질적인 환경이었다.

‘여기가 늪으로 향하는 곳이구나.’

누가 봐도 이곳은 죽음의 늪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높은 습도와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는 젖은 흙.

멀지 않은 곳에 늪이 있다는 증거였다.

놈의 본진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자, 태정은 정신을 바짝 차리며 조금씩 전진을 시작했다.

레이더 창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그의 눈과 방사포 버튼에 손이 계속 가고 있는 긴장된 모습.

그렇게 조심스레 전진을 하던 태정은 어느덧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뭐야? 벽이야? 아무것도 없잖아?”

잘못 들어왔나 싶기도 잠시.

꾸룩. 꾸룩.

기체 하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순간적으로 그가 바닥을 바라봤다.

그러자 언제 들어왔는지 기체의 최하단부가 물에 잠겨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그의 귓가로 생소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메카닉 클래스 전용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헤이그란 신전이 봉인되었습니다.]

[외부와의 모든 접촉이 차단됩니다.]

[지상으로 가는 모든 입구가 닫힙니다.]

[죽음의 스테이지에 돌입하셨습니다.]

“차단? 봉인은 또 무슨…….”

무의식적으로 말을 되뇌던 태정은 순간 주변이 어두워지자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크르르.

삐익-! 삐익! 삐익!

후방에서 느껴지는 살기와 미친 듯이 울려 퍼지는 레이더 경고음.

이는 무언가 위험한 것이 초근접 거리에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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