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펑! 퍼엉-!
타타탕! 타타타탕!
[경험치 239,503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239,503을 획득합니다.]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며 파죽지세로 나아가고 있는 태정의 모습은 가히 사신에 비견할 만했다.
적어도 지상에서 고깃덩이로 전락하고 있는 놈들에겐 그랬다.
한 발에 한 놈.
고폭탄이 떨어진 곳은 십수 마리가 한 번에 증발하고 있었다.
그만큼 mk4의 성능은 뛰어났다.
이제야 레벨에 맞는 무기를 찾은 느낌이랄까.
“좋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
시원시원하게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기도 잠시.
곧 그의 시야에 신전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 같으면 반의반도 못 왔을 거리를 그는 불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도착을 한 것이다.
모든 게 다 제트 블라스터 덕분이었다.
장애물이 없는 하늘에서의 쾌속 질주.
이 하나로 거의 모든 이속 스킬을 압도해 버리니, 그것은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었다.
추력을 줄이며 사뿐히 대지에 내려앉은 그는 제법 거대한 신전의 외형을 바라봤다.
이미 자료에 나온 이미지로 봤지만 실제로 본 건물은 더 웅장하면서도 때깔이 흘러넘쳤다.
어느 유서 깊은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분위기랄까.
“여기서부터란 말이지.”
본격적으로 난이도가 확 올라가는 구간이었다.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경험치도 상당할 것이다.
잠시간 건물을 바라보던 태정은 거리낌 없이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곳에서 고민을 할 만한 곳은 지하 끝 층에 있는 죽음의 늪.
다른 곳은 딱히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퀘스트에 나온 내용대로 라면, 오직 히드라만이 내성이 있는 것일 테니까.
만일 문제가 된다 해도 그에겐 부스터 스킬이 기체를 포함 3가지나 존재했고, 어떤 상황에서든 삼십육계를 시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상당히 오래된 내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무늬가 조각된 거대한 돌기둥과 훼손이 많이 되긴 했지만 정사각형의 투박한 돌들로 놓인 바닥.
그 사이에선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식물의 줄기 같은 것들이 벽이며 할 것 없이 무성히 피어올라와 있었다.
“여긴 진짜 이세계 느낌 물씬 나네.”
가볍게 감평을 한 그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신전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신전의 내부는 깊게 들어가면 갈수록 사람의 손을 많이 탄 듯해 보였다.
[제닉스 일반부 3기 다녀간다. 후배들아, 별거 없다. 쫄지 마라.]
[무적 사나이 c-3 파티. 뽀개고 돌아갑니다.]
[한선영♥이정명 3122.03.05.]
[무사 귀환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혹시 이곳에 내가 잠이 든다면…….]
[선발대 왔다 감.]
곳곳에 보이는 장난스러운 글씨들.
인기가 있는 던전인 만큼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지나갔으리라.
그렇게 구경을 하며 들어가기도 잠시.
저 멀리 개선문과 같이 생긴 거대한 입구 하나가 발견됐다.
“저곳이 내려가는 곳인가.”
태정이 그 말을 꺼낸 직후.
드드드드.
갑자기 신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귓가로 여러 알림음이 들려왔다.
[헤이그란 신전의 봉인된 전사들이 깨어났습니다.]
[곧이어 스테이지 1이 시작됩니다.]
[헤이그란의 근위병들이 출현합니다.]
알림음이 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심연과도 같이 시꺼멓던 입구에서 무언가가 줄줄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의 외형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한 손엔 방패를, 다른 한 손엔 롱소드를 들고 있는 전형적인 중세 기사의 모습.
대충 본다면 기사 계열의 헌터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투구 안이 텅 비어 있는 걸로 봐선 몬스터가 확실해 보였다.
그런 놈들이 개미 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무작위로 튀어나온 놈들이 대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전쟁을 나가는 기사들처럼 오와 열을 깔끔하게 맞추는 것이, 이전까지의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무언가 지능이 있어 보이는 행동이었다.
“멋있긴 하네. 조금만 더 모이면 시작할까.”
태정은 일부러 놈들이 최대한 많이 기어 나오기를 기다렸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마나를 좀 아껴 보자는 뜻.
이는 다른 이들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원래 이곳의 공략법은 시작하자마자 총공격을 퍼부어야 한다.
왜? 한 놈이라도 적을 때 공격을 해야, 그 수에 맞춰 지속 가능한 전투가 유지 되기 때문이다.
한데, 이런 식으로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버리면 어떻게 될까?
전투력이 우위에 있다 한들 인당 한계치를 초과해 결국은 후퇴를 해야 하는 일이 발생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필연이었다.
스킬은 한정되어 있고 인간이 가진 신체 구조적 한계는 명확하니까.
정권을 아무리 단련하고 검을 아무리 휘둘러도 열 번, 백 번, 천 번을 한 번에 지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태정이 어떤 직업인가.
무한 연사와 무한 스킬이 가능한 메카닉 클래스다.
단일 스킬로 따지면 전투력이 조금 떨어질지 모르나, 그는 무려 일개 파티급의 화력을 무한대로 난사할 수 있었다.
즉 많으면 많을수록 그에겐 더 이득인 것이다.
어느 정도 놈들의 대열이 갖춰지자, 그가 다기능 복합 머신건을 양손으로 파지했다.
“좌표 설정.”
-설정되었습니다.
“발사.”
명령과 함께 그의 보조 방아쇠가 당겨졌다.
그러자 아래쪽에 놓인 작은 포신에서 고폭탄이 차례대로 날아갔다.
그것은 대열의 가장자리와 사각의 꼭짓점에 정확히 떨어져 내렸고, 순식간에 부대급 단위의 몬스터들이 일시에 증발했다.
[헤이그란의 근위병들을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350,000을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헤이그란의…….]
콰르르-!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사라진 수백의 몬스터.
이것이 바로 새로운 무기의 두 번째 공격 수단인 보조 유탄의 위력이었다.
“이거 좌표 설정은 진짜 신의 한 수네.”
신 무기에 달린 유탄은 파괴력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좌표 설정까지 가능해 정확도가 거의 90% 이상이었다.
바람만 없다면 100%라 해도 무방할 정도.
기존 유탄의 정확도가 30%도 되지 않던 것과 비교를 해 본다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태정이 감탄을 하며 대기를 하고 있을 무렵.
다시 하나둘 기어 나오는 몬스터들 사이로, 특이한 놈 하나가 포착됐다.
모두가 은색의 풀 플레이트를 차고 있는데, 홀로 시커먼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
첫 번째 스테이지의 보스 몬스터인 근위대장이었다.
“일찍도 나오셨구만.”
놈의 모습은 자료에 나온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특이 사항으론 행동이 재빠르고 민첩해 포위 후 공략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태정은 혼자였고 그걸 알아차린 건지 놈이 즉각 달리기 시작했다.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 들어오는 근위대장의 모습은 스테이지의 보스답게 아우라가 남달랐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일정 간격으로 내딛는 정확한 보폭.
속도마저 대단하니,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날 상대로 직진을 해?”
그의 총구가 정확히 놈을 바라봤다.
동시에 그의 검지가 방아쇠를 잡아당겼고, 순간 수십 발에 달하는 빛의 탄환이 놈에게 집중됐다.
타타타탕! 타타탕!
굉음을 뿌리며 날아간 에너지 탄이 정확히 놈의 신형을 강타했다.
그리고 나온 결과는 놀라웠다.
연사 한 번에 사라진 근위대장의 상반신.
조금 전까지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던 놈의 두 다리가 허우적대며 비틀거렸다.
타탕!
[근위대장을 해치웠습니다.]
[첫 번째 스테이지를 완료하셨습니다.]
[지하 1층으로 향하는 입구가 오픈됩니다.]
남은 하반신마저 깔끔하게 날려 버린 태정은 놀랍기보단 다소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별것도 아니잖아? 공략집은 거의 책 한 권 수준이더니.’
새벽까지 밤을 세워 가며 알아본 것에 비해 형편없는 난이도였다.
지금까지 잡아 본 대장급 중에 가장 쓰레기였다고나 할까.
“이렇게 되면 사실 히드라도 별거 아닌 거 아냐? 뭐, 아직 스테이지 1이긴 하지만… 음?”
중얼거리던 태정의 시선이 입구의 상단으로 향했다.
“저게 아까도 있었나?”
그가 보고 있는 것은 한 기사가 그려진 벽화였다.
고급스러운 갑옷을 입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백발의 노인.
분명 조금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그림이었다.
“방금 생긴 건가?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이내 지하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 또 다른 방에 도달한 태정은 다시 스테이지를 이어 갔다.
두 번째 스테이지 역시 근위병이었다.
첫 번째와 다른 것이 있다면 갑옷의 문양이 달라졌다는 것이고, 이 역시 태정에게는 준비운동 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근위대장을 해치웠습니다.]
[두 번째 스테이지를 완료하셨습니다.]
[지하 2층으로 향하는 입구가 오픈됩니다.]
손쉽게 스테이지를 클리어 한 태정은 또다시 입구의 상단을 바라봤다.
이번엔 시커멓게 색칠 된 벽에 두 개의 샛노란 눈동자가 그려져 있었다.
[근위대장을 해치웠습니다.]
[세 번째 스테이지를 완료하셨습니다.]
[지하 3층으로 향하는 입구가 오픈됩니다.]
세 번째는 기사들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눈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 했을 때, 그는 비로소 그 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샛노란 눈동자에 머리가 셋 달린 괴물.
그것은 태정도 익히 알고 있는 몬스터였다.
“이놈이 히드라구나. 근데 왜 이런 그림이 자꾸 나오는 거지? 뭔가 장치 같은 건가?”
이상한 일이었다.
스테이지가 클리어 되면 나타나는 고대 벽화들.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골똘히 생각을 하던 그는 일단 마지막 스테이지까지는 진행을 해 보기로 했다.
다음 층으로 내려가자 역시 웨이브가 시작됐다.
몬스터들 역시 갑옷의 문양만 바뀌고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똑같은 외형에 똑같은 이름.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단 몇 방에도 죽어 나가던 놈들이 이번엔 꽤나 잘 버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버틴다는 것과 이겨 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제법 시간이 걸려 스테이지를 클리어 한 그는 마지막 벽화를 바라봤다.
쓰러진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를 들고 있는 노인과 환호를 하고 있는 기사들.
그걸 유심히 쳐다보던 태정은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
“혹시 가운데 대가리가 약점인가.”
그럴듯한 추리였다.
아니, 지금은 망상이라 하더라도 모든 걸 다 대입해 봐야 한다.
공략법에도 딱히 놈의 약점이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다른 뜻이 더 있을까 꼼꼼히 살펴보던 태정은 이내 제라드를 불러냈다.
“이봐, 제라드.”
-예, 주인님.
“어제 그 공략법에 놈의 약점이 뭐라고 되어 있었지?”
-약점이라 할 건 따로 없었습니다. 다만 화염 계열의 스킬이 효과가 좋으니, 이를 잘 활용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독을 조심하라고도 되어 있었고… 좋아. 일단 방사포로 조져 보고 안 되면 저 두 번째 대가리를 한번 노려 보자. 그것도 안 되면 다연장 로켓으로…….”
-다연장 로켓도 안 통하시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천룡의 화력이 안 통한다고? 그럼… 그땐 도망쳐야지. 이게 내가 가진 스킬 중 가장 강한 스킬인데.”
태정이 그리 말하자 제라드가 최악의 조건을 달아 다시 질문했다.
-도망도 칠 수 없는 상황이면 어찌하실 겁니까.
다소 부정적인 제라드의 질문에 태정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농담하냐. 지금까지 도망 나온 사람들이 몇인데, 부스터 있겠다, 블라스터 있겠다. 내가 그들보다 느릴 이유가 없잖아? 이따 전투가 벌어지면 좌표나 잘 찍어 줘.”
말을 끝으로 그가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