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다음 날 아침.
“죄송해요. 제가 깜빡 잠이 들어서…….”
민망한 얼굴로 식탁 앞에 마주 앉은 박세아가 고개를 숙이며 뱉은 말이었다.
“그럴 수도 있죠. 신경 쓰지 마요. 그보다 먹고 호세의 밀림 지대 좀 알아봐 줄래요? 될 수 있으면 혼자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요.”
“통으로 사용하시게요?”
“밀림 지대까진 딱히 상관없는데, 신전을 써야 할 거 같아서요.”
“네. 알아볼게요.”
늦은 오전.
예약을 하러 나갔던 그녀가 희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마침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 중 비는 곳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등급 빨로 전세를 내게 됐으니, 퀘스트를 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다.
“이번엔 그냥 있어요. 혼자 다녀올게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오후 동생분 학원 문제로 일정이 잡혀 있어서요. 어제 말씀을 드린다는 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아, 그래요? 뭐 배우는 곳이에요?”
“국문학이요.”
“국문학이라. 원래 전공은 그게 아닌데, 왜 갑자기 국문학이지?”
“작가가 되어 보고 싶다던데요?”
“음. 작가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닌데. 일단 알겠어요. 잘 좀 봐줘요.”
“네.”
그녀에게 동생에 대한 일을 맡긴 태정은 도시락 하나를 챙겨 들고 밖을 나섰다.
그러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김형식이 차를 대며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죠?”
“네. 날씨가 무척 좋습니다.”
“가을이 오긴 오나 봐요. 몇 달 내내 더워 죽겠더니. 참. 목적지는 전달받으셨나요?”
“네. 박세아 씨에게 전달받았습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게이트가 있는 곳은 충북제천의 한 마을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통제된 구역.
여기저기 부서진 건물의 잔해들을 보자, 그는 처음 헌터가 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갑자기 습격을 받아 호랑이 굴인지도 모른 채, 들어왔던 폐건물이 가득했던 마을.
사실 그때 그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사람을 종이 찢듯 찢어 버리는 괴물들을 뚫고 어떻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마침 그 건물에, 그것도 화장실 천장에 각성의 돌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엄청난 천운이 아닐 수가 없었다.
처한 상황에서부터 히든으로의 각성까지.
솔직히 일반으로 각성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원거리 공격이 가능했던 총이었기에 망정이지, 전투력이 거의 없는 버프 계열이나 붙어 싸워야 하는 근접 계열이었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가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며 추억에 젖어 있는데, 차가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근무 중 이상 무! 안녕하십니까! c-3반 김태호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수고하십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고생하세요.”
과도한 인사에 부담스러움을 느낀 태정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바로 게이트에 진입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배경이 뒤바뀌며, 울창한 밀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햐. 날씨 봐라. 숨도 못 쉬겠네.”
기분 나쁠 정도로 높은 습도와 몇 도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고온.
미리 알고 들어왔지만, 이건 생각보다 더한 환경이었다.
벌써부터 땀이 줄줄 흐르고 있는 상황.
신전에 도달하기 전까진 줄곧 이렇다고 하니, 그는 이곳에서 맛만 본 뒤 바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일단 슈트를 좀 입고.”
태정은 곧장 외골격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얼굴을 제외한 그의 몸이 강철 로봇으로 뒤덮였다.
동시에 부스터를 소환한 태정이 m60을 꺼내 들었다.
“그럼 가볍게 출발해 볼까.”
부스터 액셀에 힘을 가져가자, 그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상 이곳은 별 부담이 없다 생각을 하고 있는 그였기에, 딱히 탐색은 필요치 않았다.
그렇게 바람을 가르며 전진하고 있는 그의 앞을 처음 막아선 놈은 꼬리에 쇠뭉치를 달고 있는 사족 보행의 도마뱀이었다.
놈의 정식 명칭은 케우로스.
밀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몬스터로 딱히 명성이 있는 놈은 아니었다.
바로 사냥에 돌입한 태정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투두두두! 투투투투!
투박한 소리와 함께 손가락 마디만 한 빛의 탄환이 무수히 쏘아졌다.
그것은 그대로 놈의 동체를 가격했고, 고통에 젖은 놈이 발작을 하며 괴성을 질러 댔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죽지는 않았는데, 버티고 버티던 놈이 결국은 화력을 뚫고 전진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의외라는 듯 난사를 하던 태정의 공격이 놈의 대가리로 집중됐다.
효과는 확실했다.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은 놈의 신형.
순간 앞쪽으로 실금 같은 균열이 가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통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케우로스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239,503을 획득합니다.]
‘좀 빡세긴 하네. 레벨이 깡패라 그런가. 하긴 이 총도 얻은 지 꽤 됐지.’
오래된 총이라 그런지 살짝 버거움이 느껴지는 전투였다.
그나마 명예 버프와 무적 속성이 가진 이점으로 이 정도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이걸로 사냥이 가능하긴 했을까.
순간, 기체를 꺼내야 하나 생각을 하던 태정은 좀 더 사냥을 해 보기로 했다.
메인 던전도 아닌데 벌써부터 패를 다 오픈하기엔 기분이 좀 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놈을 처리한 태정은 속력을 높이며 다시 전진을 하기 시작했다.
[케우로스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239,503을 획득합니다.]
[미스트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240,000을 획득합니다.]
집중사격을 가하며 한 마리씩 놈들을 때려잡고 있는 태정은 이곳의 경험치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반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마리당 20만.
초승달 대지의 변종이 이것에 고작 4분의 1에 불과했으니, 괜히 이곳이 C등급 헌터들의 성지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때는 25인 파티였고 지금은 솔플이지만, 그렇다 해도 변종의 난이도를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정말이지 굉장한 경험치가 아닐 수 없었다.
마에 극성을 띠는 진이란 속성의 이득을 봐서 그렇지, 실제론 변종들이 더 강하다고 나와 있었으니까.
해서 그는 신전을 최우선 도달 목표로 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것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깡그리 때려잡았다.
그렇게 달리기도 한참.
사냥을 이어 가던 태정은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졌다.
달려온 거리에 비해 잡은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너무 빨라서 어그로가 안 끌리는 건가.’
전진한 거리에 비해 나온 몬스터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길 직선 주파라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는데, 그렇다고 사방을 뒤지며 가기엔 갈 길이 너무 먼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블라스터를 활용하기로 했다.
곧장 부스터를 비활성화시킨 그는 블라스터를 소환했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날개가 붙더니, 이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기의 사거리를 생각해 고도는 20미터에 고정시켰다.
그것만 해도 그의 시야는 굉장히 넓어졌고, 곧 지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몬스터 무리들이 태정의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그래. 이게 맞지.’
흡족한 미소를 짓던 그의 총구가 다시 빛을 뿜기 시작했다.
투투투투. 투투투투.
쾅! 콰쾅!
[케우로스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239,503을 획득합니다.]
[미스트를 해치웠습니다.]
[아틀리우스의 꼬리뼈를 획득합니다.]
[미스트의 복주머니를 획득합니다.]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빛의 세례에 몬스터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총은 잘 통하지 않지만, 그의 양어깨에 달린 직사포와 곡사포는 거의 미사일 수준으로 대지를 초토화시켰다.
개중에 제대로 맞지 않은 몬스터들이 하늘 높이 떠오른 태정을 씹어먹을 듯 쳐다봤지만, 안타깝게도 놈들에겐 떠 있는 그를 공격할 수단이 없었다.
그저 쳐 맞고 뒈지는 것이 놈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수많은 몬스터를 사냥하며 태정은 이 던전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많이 획득했다.
가장 흔하게 나오는 복주머니부터 아이템 제련에 필수인 꼬리뼈까지.
그 외에도, 갖가지 재료가 차곡차곡 쌓였으며 얼마 가지 않아 레벨 업 알림음까지 들려왔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새로운 무기 mk4 다기능 복합 머신 건을 획득합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해 주세요.]
“오. 새 무기다.”
m60 이후로 정말이지 오랜만에 들어오는 지급형 장비였다.
그간 스킬만 주야장천 얻느라, 더 이상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잊을 만하니 아이템이 들어온 것이다.
더욱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총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에, 현 시점에 들어온 이 무기는 거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 이상이었다.
태정은 바로 인벤토리를 오픈해 장비를 확인했다.
mk4 다기능 복합 머신건.
봉인된 속도 [450km/h]
주 탄환: 9.62mm 대구경 에너지 탄
사정거리: [40m]
주 탄환 파괴력 – 1,050
보조 유탄: 40mm 특 강화 에너지 고폭탄
보조 유탄 파괴력 – 2,900
유탄 범위: 30m
분당 최대 발사 수 10발.
마나 소비 15/1,000
“뭐야? 왜 이렇게 좋아?”
손을 대보며 확인한 장비의 능력치는 생각 이상이었다.
주 탄의 파괴력이 1,050.
인간형일 때 주로 쓰는 m60에 비해 무려 3배나 되는 수치였다.
거기에 보조로 달려 있는 유탄의 파괴력이 압권이다.
무려 2,900.
이 수치는 순정 상태의 로켓 런처와 비교가 될 정도였고, 직사포나 곡사포는 가뿐히 뛰어넘을 정도로 굉장한 공격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60 기관총보다 슬림하게 빠진 모습.
비교를 해 보던 그는 곧장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인벤토리 내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간지가 철철 흘러넘친다.
“햐. 생긴 것도 멋지네. m60처럼 너무 길쭉하지도 않고. 소재도 약간 쇠보단 마그네슘? 그런 쪽인 거 같고. 그러고 보니 마나 소비도 오히려 더 적잖아?”
연신 감탄을 하던 태정은 곧 무기의 성능을 체감하기 위해 실전에 돌입했다.
마침 지상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케우루스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하늘에 떠 있는 그를 보며 이빨을 드러내는 무지몽매한(?) 괴수.
그런 놈을 향해 그의 mk4가 빛을 뿜어냈다.
탕!
퍼억!
[케우로스를 해치웠습니다.]
“뭐야?”
파괴력을 볼 겸 딱 한 번의 방아쇠를 당긴 태정은 놈의 머리통이 흔적도 없이 증발하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 무기를 감안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나 차이가 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단 한 발.
그 한 발에 m60 강화 에너지 탄, 수백 발을 쏟아부어야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던 놈의 머리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대가리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만큼 공격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는 뜻이었다.
“야… 이 정도면 앞으로 또 100업은 거뜬하겠는데?”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그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