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태정이 노리는 것은 성이었다.
놈들이 얄밉긴 하지만 죽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그것을 떠나서도 자칫 길드 전쟁으로도 번질 수 있는 일이기에, 그는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131mm 유도탄으로 12발이면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에 있는 몬스터들까지 완벽히 제거하려면 최소 12발은 더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사거리는?”
-충분합니다.
“좋아.”
결정을 내린 태정은 디스플레이를 참고하며 천룡을 백작의 성에 조준했다.
그러자 제라드가 개입해 성의 가장 약한 부위 열두 곳을 자동 계산해 유도 좌표를 입력했다.
동시에 그의 손이 발사 버튼을 누르자, 하부 발사관에서 튀어나온 로켓이 성을 향해 차례대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슈유육! 슈유육!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로켓이 거대한 성을 강타했다.
콰콰쾅! 콰쾅!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일며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대를 뒤덮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뒤이어 날아든 추가 로켓이 중심부에 떨어지자 다시 한번 굉음이 일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이도 모자랐는지 태정은 다시 일반탄을 추가로 12발을 내리 꽂았고, 그 폭발의 여파는 공터에 있던 블루 라이언 헌터들을 덮치기에 충분한 화력이었다.
“으악!”
난데없는 폭발의 후폭풍에 수 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 블루 라이언의 헌터들은 나자빠진 채로 전방의 거대한 먼지구름을 바라봤다.
“뭐, 뭐야? 저건?”
헌터들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폭발과 지축을 울리는 굉음.
성을 가려 버릴 정도로 피어오른 무지막지한 연기와 분진은 조금 전까지 히히덕거리며 입성을 하려던 그들에게 매우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람이 불며 일대 피어오른 먼지가 씻겨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러난 처참한 광경.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던 성이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그냥 박살이 난 것이 아니라, 상부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믿을 수 없는 모습에 헌터들의 입이 자동으로 벌어졌다.
“뭐, 뭔…….”
“이, 이게…….”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영혼이 나가 버린 그들은 한동안 넋이 나간 얼굴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제트 블라스터 스킬을 획득합니다.]
블루 라이언의 헌터들이 재앙의 여파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언덕배기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우경호 등은 그들보다 놀랬으면 놀랐지 덜하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퀘스트 완료 알림음이 떴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그만큼 그들이 본 것은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웠다.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걸 본 느낌이랄까.
그것은 원래 태정의 능력을 알고 있던 서주아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 게 말이 돼?”
넋이 나간 표정의 신지수가 그보다 더 넋이 나간 얼굴의 이성호의 팔을 붙들며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이거 꿈 아니지?”
“너랑 나랑 같은 꿈을 꾸겠어?”
“하긴…….”
그들이 바보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성이 없어졌어. 통째로 사라졌다구.”
“사라진 게 아니고 날아가 버린 거야. 박살이 나 가지고.”
“이게 가능한 거야? 아니, 몬스터도 아니고 던전 자체를 날려 버렸다고.”
“혹시, 사람이 아닌 게 아닐까.”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고 있는 가운데, 태정은 기체를 비활성화시키며 바닥에 내려섰다.
그러자 사라진 성에 시선을 두고 있던 헌터들의 눈이 일제히 그를 향해 쏘아졌다.
‘좀 민망하네.’
뭐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태정은 팀의 리더를 찾았다.
“퀘스트… 다 됐죠?”
그의 어색한 물음에 우경호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 네네.”
“그럼 볼일도 끝났는데, 이만 갈까요? 여기 더 있어 봐야 얻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아. 그러셔야죠. 제가 모시겠… 아니. 제가 얼른 통솔을…….”
무언가 정신이 없는 그를 향해 태정이 괜찮다는 듯 말을 건냈다.
“천천히 하세요.”
잠시 후. 팀이 정비되자 그들은 하산하기 시작했다.
이미 쓸어버리면서 올라온 터라, 내려가면서 마주친 몬스터는 없었다.
있어도 별 의미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사냥의 후폭풍은 실로 대단했다.
성을 박살 내기 전까지만 해도 온갖 관심이 그에게 쏟아졌지만, 지금은 모두가 하나같이 태정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 타입일 때의 태정은 신기함과 놀라움의 대상이었지만, 기체 상태의 그 말도 안 되는 무력은 호기심조차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굉장한 충격이었다.
다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태정을 일반 길드원으로 보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조용한 분위기가 이상해 태정은 조금 앞에서 걷고 있는 서주아를 향해 다가갔다.
“저…….”
멈칫.
한마디를 꺼냈을 뿐인데, 파티 전원이 그 자리에 멈춰 서며 그를 돌아봤다.
“무슨 불편하신 일이라도……?”
우경호의 물음에 태정이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리곤 서주아의 곁에 붙어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근데 분위기가 왜 이렇죠?”
“뭐가요?”
“너무 조용하잖아요. 올 때랑 너무 달라서.”
“아. 그건… 아까 출발하기 전에 성호가 태정 씨 등급을 말해 버렸어요.”
“예우 등급이요?”
“네. 그래서 다들 태정 씨가 일반 길드원이 아닌 줄 알아요.”
“그건 주아 씨도 같지 않나요?”
“저는 클래스가 일반이잖아요. 아. 혹시 태정 씨가 우리 길드 유일한 히든인 건 알고 계세요?”
“제가요?”
“네. 히든은 톱 티어에 있는 길드에서도 굉장한 대우를 받아요. 이미 영입 이전부터 요직을 부여받죠. 그러니 저들이 생각하기에 보통 인물로는 보이지가 않는 거예요.”
“그렇군요.”
태정은 별 쓸데없는 것에 사람들이 신경을 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간부들과 일반 길드원의 차이는 넘사벽일 정도로 심했다.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사적인 말 한번 건내기가 어려운 상대.
물론 그렇지 않은 간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거리를 두려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야 기강이 유지된다는 간부들의 말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으니까.
대화의 흐름이 끊어질 때 즈음.
서주아가 태정을 향해 물었다.
“클럽에 들어가실 생각이죠?”
“그걸 어떻게?”
“클럽에 들어가려면 바닥부터 시작을 해야 되거든요. 그게 룰이기도 하구요. 길드 유일의 히든인데도 불구하고 큰 직책이 없다는 건, 그것밖에 더 있겠어요?”
“확실히 서진 님의 동생이라 그런지 알고 계신 게 많네요.”
“저도 그 과정을 밟고 있으니까요. 물론 전 희박하겠지만.”
“그런데 들어가서 뭘 하려구요?”
“그러는 태정 씨는 뭘 하실 생각이에요?”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 다시 그대로 날아오자, 태정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쓸데없는 질문을 했군요.”
“그냥,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태정은 순간 그녀의 눈에서 두 가지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슬픔과 분노 혹은 분노에 찬 슬픔.
하지만 그것은 이내 사라졌고, 태정은 그 일이 무엇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는 걸음이 계속됐다.
붉은 달이 비추는 사막을 지나 어느덧 파티는 숲에 진입을 하고 있었다.
한 번을 쉬지 않고 내리 걸은 강행군.
누구라 할 것 없이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서 잠깐 쉬고 가는 게 어떨까요?”
태정의 건의에 기다렸다는 듯 헌터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사실 성에 이르기 전부터 이미 한계에 다다른 행군이었기에, 아무리 별다른 마찰 없이 복귀를 하고 있는 그들이라 해도 휴식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다만 오늘 역사의 주인공이 이동 내내 너무나도 편한 얼굴이었기에, 차마 쉬고 가자고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운전기사일 땐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오히려 버스를 타고 있는 상황.
그런 실정에서 태정의 쉬었다 가자는 말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이 달콤한 말이었다.
“죽는 줄 알았네. 어떻게 한 번을 안 쉬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몇 시간을 걸은 거냐.”
“태정 씨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표정 하나 안 바뀐다니까? 하루 종일도 걷겠어.”
녹초가 된 이성호와 그의 단짝(?) 신지수의 말이었다.
조용석과 서주아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이 넷은 칭찬을 해 줘도 모자람이 없었다.
경험도 체력도 다른 이에 비해 모든 것이 한참 부족한데, 낙오 한번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그만큼 정신력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과 조금 떨어져 외골격 다리를 비활성화시킨 태정은 나무에 기대 신음을 뱉어 냈다.
“으어. 이제 좀 살 것 같네.”
다른 이들이 볼 땐 멀쩡하게 보인 태정이지만, 그도 아주 정상인 상황은 아니었다.
외골격 다리의 특성상 들어가는 힘이 거의 없어 체력엔 문제가 없었지만, 장비에 따른 구동 범위가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나름대로 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디, 뭐가 들어왔나 좀 볼까.’
태정은 사냥을 하며 얻은 아이템들을 확인하기 위해 인벤토리를 오픈했다.
[초승달의 붉은 정수×1]
[리플레의 덤불×18]
[벵가의 꼬리×21]
[기사의 부러진 검]
[백작 정실의 실타래]
제법 여러 가지 아이템이 들어와 있었다.
자료에서 봤던 익숙한 재료들.
그중엔 보지 못한 낯선 것도 존재했다.
루비같이 생긴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작은 타원형의 물체.
“붉은 정수. 이게 그 벌레 떼에서 나온 건가. 보석 같기도 하고… 뭔지 모르겠네.”
궁금함이 생긴 태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멀지 않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우경호를 향해 다가갔다.
“경호 씨.”
“아. 네. 출발하시려구요?”
“아뇨. 그게 아니라, 혹시 붉은 정수가 뭔지 아십니까.”
“…설마 드신 겁니까?”
“하나가 들어와 있네요. 뭐 좀 좋은 건가 해서…….”
“그건 마정석입니다.”
“마정석요? 그 에너지 동력원으로 쓰는 그 마정석요?”
“네. 맞습니다. 붉은 정수는 양이 적어서 에너지 동력원으론 쓰지 못하지만, 포션 정제에 사용이 가능한 미니 마정석입니다.”
“그럼 가격이 대충 얼마나…….”
“저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 10억은 가뿐히 넘길 겁니다. 왜냐하면 그 정수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포션 가격만 해도 10억이 훌쩍 넘거든요. 다른 상위 던전에서도 정말 극악의 확률로 나오는 아이템인데, 축하드립니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태정은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오직 퀘스트 하나였다.
성장은 물론이고, 돈벌이는 아예 생각지도 않고 왔기 때문에 갑작스레 생긴 소득은 당연히 기분을 좋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런 불로소득이라도 있어야지. 아니, 결국 사냥해서 먹은 거니 불로소득은 아닌가?’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는 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