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어둠을 헤치고 나타난 것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다.
중무장을 한 채 파티를 포위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헌터들.
그중 등에 대검을 차고 있는 사내가 한발 앞에 서며 입을 열었다.
“여기 리더가 누구냐.”
당당하면서도 오만함이 베어 있는 목소리.
표정 또한 그에 못지않았는데,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우경호가 앞에 나서며 대답했다.
“내가 리더요.”
“오. 롱소드 계열인 걸 보면 전사 쪽은 아닌 것 같고 기사 계열인가.”
반복된 하대에 우경호 역시 경어를 거뒀다.
“그게 당신들과 무슨 상관이지?”
“뭐야? 꼴에 리더라고 폼 잡는 거야? 하여간 별 같잖은 감투도 감투라고.”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좁혀진 중앙 무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뭐야? 저것들은? 진짜 풋내기들이잖아? 얼씨구? 한 놈은 평상복으로 왔어? 꼴을 보아하니 버스를 타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평상복은 좀 그렇지 않나? 요즘 것들은 기본이 안 됐어, 기본이.”
그 평상복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태정이었다.
다른 클래스들과 다르게 딱히 방어구라는 아이템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현재 옷 속에 있는 아머 슈트가 유일한 장비였다.
사내의 조롱에 우경호의 말투가 딱딱해졌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정체가 뭐냐.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이곳이 제닉스 길드의 소유 던전인 걸 알고는 있나.”
“잘 알지.”
“알면서도 이렇게 당당해?”
“당당할 수밖에. 우린 푸른 사자에서 왔으니까.”
“푸른 사자라면… 블루 라이언?”
블루 라이언.
제닉스 길드와 마찬가지로 제너럴리스트에 들어가는 중견 길드 중 하나였다.
평소 제닉스와 잦은 마찰을 빚던 분쟁 관계에 있는 단체.
우경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윗선에서의 분쟁이었다.
이렇게 바닥 던전까지 시비를 걸어온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기에, 그는 현 상황이 심히 당황스러웠다.
그런 그를 향해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 길드와 우리 길드의 사이를 잘 알고 있겠지?”
“그런데?”
“크게 일을 벌이고 싶은 마음은 우리도 없다는 거지. 내가 알기로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싸워 봐야 일만 키우는 꼴이 아니겠나.”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백작의 성을 가는 길이겠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시원하게 포기해라. 거긴 오늘 우리가 좀 써야 되니까.”
사내의 말에 몇몇 헌터가 바로 반응했다.
“이게 미쳤나. 누가 누굴 보고 명령질이야.”
“어이. 돌았냐? 라이언이고 x랄이고. 여기 우리 땅이야, 썩 꺼져.”
“해볼래? 어? 한번 해?”
처음 몇 명으로 시작된 욕설은 순식간에 번져 나갔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적개심은 당장이라도 칼부림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 팀의 리더는 여유만만이었다.
“너희들 기사 원 툴이지? 팔라딘에 나이트. 잘 봐줘도 전사 계열 한둘 정도가 낀 것 같고.”
“그래서.”
“보면 알겠지만 우린 완비로 왔다. 사냥에서는 몰라도 싸움에선 우리가 훨씬 유리하단 뜻이지.”
상대의 말대로였다.
장비로 보아 두 파티의 레벨은 동급.
수도 엇비슷하니,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파티의 구성원이었다.
우경호의 팀은 오로지 사냥만을 위해 꾸려진 던전 특화용이고, 상대의 팀은 사냥엔 조금 비효율적이지만, 전천후 대처가 가능한 정석적인 파티.
pvp로 치면 우경호의 파티가 불리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이쪽은 전력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다섯이나 있었다.
즉, 싸워 봐야 본전도 찾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판단 끝났으면 적당히 놀다 가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같이 먹고살아야지.”
상대는 그렇게 말하며 유유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무리가 사라진 뒤 여기저기서 불만의 말들이 튀어나왔다.
“야. 그걸 왜 그냥 보내. 엄연히 여긴 우리 땅이고 놈들은 침입자들인데.”
“너무 쉽게 보낸 거 아냐? 누가 보면 쟤들이 주인인 줄 알겠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경호야. 길드 자존심이 있지.”
친분이 두터운 이들 순으로 그를 원망하자, 우경호가 미안하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었어. 나한텐 자존심이나 정의보단 너희들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x같은 새끼를 그냥 보내야 한다니…….”
“기분 풀자. 이미 지나갔잖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정말 이대로 사냥만 하다가는 거냐? 너는 이미 클리어 해서 상관없겠지만, 여기서 대다수는 퀘스트 하나 보고 모인 건데. 이 팀 다시 모이려면, 한 달 가지고도 안 돼.”
“너무 걱정하지 마. 일정은 그대로 갈 거니까. 대신 계획을 좀 변경해야겠어.”
다시 이동을 시작한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고 보이는 끝없는 고비사막.
주변에 기물이 없으니 달빛이 그대로 내려와 시야가 확 밝아졌다.
“자. 다들 잘 들으세요. 저기 보이는 첫 번째 언덕까지 다이렉트로 달릴 겁니다. 속도는 중앙조에 맞추고, 혹시 태정 씨 직업이 어떻게 되죠?”
갑작스러운 그의 물음에 태정이 있는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
“저요? 저는… 메카닉인데요.”
“메카닉 좋아요. 메카… 잠깐, 뭐라고요?”
습관적으로 말을 내뱉던 우경호는 생소한 단어에 멈칫하며 그를 바라봤다.
“메카닉이요.”
“그게 뭡니까?”
“아. 그러니까. 기계 인간 같은 겁니다.”
딱히 뭐라 설명을 할 수 없었던 태정은 대충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그러자 우경호의 표정이 더욱더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잠깐 태정을 바라보더니, 이내 서주아를 바라봤다.
“맞아. 기계…….”
서주아까지 그리 말하자 우경호는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턱을 주억거리며 질문했다.
“그렇군요. 그럼 그 메카닉이라는 직업엔 이속 스킬이 있습니까?”
“있죠.”
“속도는요?”
“아마 그렇게 느리진 않을 겁니다.”
“그럼. 무조건 저 언덕까진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세요. 뭐가 나오든 말든 호위는 저희가 할 테니, 무조건 앞만 보고 뛰시는 겁니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알겠어?”
“응. 알았어.”
태정을 비롯해 다섯 명에게 확답을 받은 우경호는 팀으로 돌아와 계획을 알렸다.
“최대한 사냥을 배제하면서 갈 거야. 나오는 놈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떨굴 수 있는 놈들까지 굳이 상대하려 하지 마. 그놈들 목표가 성이라 했으니, 우리가 먼저 도착하려면 한 포인트씩 목표점 잡아서 전력으로 돌파해야 해. 중앙조는 속도가 떨어질 테니까 세심히 좀 봐주고.”
“오케이. 가 보자고!”
그렇게 모두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을 때, 태정은 외골격 다리를 소환해 장착한 상태였다.
실로 오랜만에 사용하는 스킬.
이 넓은 곳을 이 많은 사람과 뛰어 보려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태정이었다.
“자, 출발합니다! 고!”
우렁찬 우경호의 명령에 모두가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첫 번째 목표점은 이 사막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해발 200미터의 가장 높은 언덕.
높이만 따지면 뒷산 수준도 되지 못하지만, 길이가 수 킬로미터에 걸쳐 있기 때문에 결코 쉬운 등반은 아니었다.
그렇게 달린 지 채 1분이나 됐을까?
대지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수십 마리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들은 등장과 동시에 몸이 해체됐고, 대열의 속도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게 진짜 파티 사냥이구나.’
실시간으로 좌우 전투 상황을 구경하며 속도를 맞추고 있는 태정은 이것이야말로 상상만 하던 레이드의 한 장면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질주하는 수십 명에 달하는 헌터들이 칼 같은 진형을 갖춰 나오는 놈들을 가차 없이 베어 버린다.
그 모습은 마치 무협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할 만큼 생생했고, 자신이 그 일원 중 하나라는 사실에 왠지 모를 벅참이 끌어 올랐다.
혼자서 사냥을 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샘솟는 순간이었다.
‘직업도 오픈 됐는데, 거들어?’
태정은 전투에 참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달리고만 있으니 손이 근질근질해 미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오는 족족 순식간에 정리되는 몬스터들을 보니, 쉽사리 스킬에 손이 가질 않았다.
전투력 1,000에 1을 더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첫 번째 목표였던 언덕의 정상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다들 할 만합니까.”
“우린 문제없어.”
“그럼 휴식 없이 오아시스까지 달리겠습니다.”
다행히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남은 헌터들은 바로 제2목적지인 오아시스를 향해 이동했다.
이 던전의 딱 절반 지점.
그곳까지만 가면 약간의 체력을 비축해 성까지 다이렉트로 달릴 생각이었다.
이동을 하면서 수많은 몬스터가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 어떤 놈도 단 한 방이면 목이 떨어졌고, 비교적 속도가 느린 놈들은 이속으로 따돌리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전진에 전진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두 번째 목적지였던 오아시스에 발을 들일 수가 있었다.
“헉. 헉. 여기서 잠시 휴식을 하겠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우경호의 말이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헌터들이 너도나도 바닥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한 번의 휴식도 없이 엄청난 거리를 달려왔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녹초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레벨이 한참 떨어지는 서주아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파티 유일하게 숨소리 하나 내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태정이었다.
“하아, 하아, 근데, 어떻게 태정 씨는 멀쩡한, 하아, 거예요?”
거의 넘어갈 듯 숨을 헐떡이고 있는 신지수의 말이었다.
그 물음에 태정이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예전에 포터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숨이 별로 안 차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가 숨이 차지 않은 이유는 외골격 다리의 특성 때문이었다.
자신의 힘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몇 배의 힘을 낼 수 있는 첨단 테크놀로지의 결정체.
마나의 힘을 빌려 신체가 강화되는 것과는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잠깐 쓰러져 휴식을 취하던 헌터들은 곧 가지고 온 음식들로 배를 채우며 체력을 보충했다.
태정 역시도 박세아가 준비해 준 도시락을 오픈 했다.
그러자 흰 쌀밥 위에 콩으로 만든 힘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하여간.”
한차례 피식 웃으며 밥을 먹기 시작한 태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그렇게 한데 모인 이유는 하나였다.
“저. 아까 그거 뭐예요?”
“그거 스킬이에요?”
“효과는 어떻게 돼요?”
“직업이 메카닉이라면서요? 뭐 하는 거예요?”
“좀 보여 줄 수 있어요?”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질문 세례에 태정은 뭐부터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백번 말로 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보여드릴 건 외골격다리라는… 음. 다른 직업으로 치면 이속 스킬 같은 건데…….”
장비를 소환하기에 앞서 설명을 하려는 바로 그때.
“어!”
가장 뒷줄에 앉아 있던 헌터 하나가 허공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 시선은 태정의 눈높이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고, 자연스레 그를 포함한 모두의 고개가 하늘로 올라갔다.
동시에 한 헌터의 입에서 맥 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 달이… 변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