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던전의 내부는 달빛이 어수룩한 스산한 밤이었다.
주변에 나무와 풀이 무성한 것이, 일단은 숲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첫인상이 나쁘지 않은 가운데, 일행들이 모두 라이트를 몸에 달았다.
태정 역시도 어젯밤 박세아가 준비해 온 라이트를 어깨에 달았다.
“자. 그럼 4조까지 대열 갖춰서 이동하겠습니다.”
리더인 우경호의 말에 서서히 이동이 시작됐다.
대열은 중규모 팀이 기본적으로 차용하는 방어 형태인 다이아몬드 진형이었다.
서주아 등 레벨이 떨어지는 이들과 태정이 중앙에 서고, 나머지가 동서남북으로 찢어져 그들을 보호하는 형태.
인원이 부족해 8방위가 4방위로 축소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지금의 사정에선 최고의 진이라 할 수 있었다.
이동을 하며 주위를 살피던 태정은 생각보다 시계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가 성능 좋은 라이트를 달고 있었지만 어둠은 그 이상으로 짙었고, 과연 이들이 이 어둠 속에서 어떻게 대처를 할지 궁금증이 이는 태정이었다.
반면 그를 제외한 중앙 팀은 으스스한 분위기에 기분이 많이 다운된 상태였다.
말이 많던 이성호는 말수가 확 줄었고,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신지수는 그의 옆에 꼬옥 붙어 팔을 잡고 있었다.
그나마 서주아와 조용석이 나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도 이런 분위기의 던전은 처음인지 잔뜩 긴장을 한 모습이었다.
‘얼었구나.’
리콜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들의 모습에 태정은 충분히 이해를 한다는 표정이었다.
이곳의 적정 레벨은 250.
그들의 레벨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치였다.
뿐만 아니라 첫 경험이라는 미지의 수와 그로 인해 생기는 불안감.
더 나아가 잘 보이지도 않는 이런 갑갑한 현장감은 아무리 지켜 주는 사람들이 있다 한들 두려움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 증거로 그들은 모두 의미도 없는 무기들을 부셔져라 들고 있었다.
“꼭 어릴 때 극기 훈련 하는 거 같네요.”
긴장을 풀어 주려 태정이 서주아에게 건낸 말이었다.
그러자 주변을 경계하던 그녀가 깜짝 놀란 듯 대답했다.
“네?”
“어릴 때 이런 거 안 해 봤어요? 밤에 산에 올라가서 나무에 깃발 꽂고 오기 같은 거.”
“아, 저는…….”
“전 몇 번 해 봤거든요. 그땐 지금보다 더 안 보였어요. 이렇게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친구랑 둘이서 그 조용한 산을 올라가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내 발소리에 내가 놀라고. 그런데 딱 한 번이 그렇더라고요. 매년 하다 보니 두려운 건 없고, 풀벌레 소리, 밤하늘의 별, 나무 냄새, 옆에 있는 친구.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던 소중한 것들만 보이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이죠, 뭐.”
“그런 추억이 있다는 게 부럽네요.”
“주아 씨는 그런 추억 없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만 자라서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어요.”
“아. 제가 혹시 말실수를 한 건가요?”
“아뇨. 재밌는데요. 그러고 보니 느껴지네요. 이 소리, 냄새, 분위기. 해 보진 않았는데, 꼭 해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게 말의 힘인가.”
“너무 긴장하지 마요.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제가 지킬 테니까요.”
“너무 든든한데요.”
그들이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뒤에 있던 이성호가 다가와 끼어들었다.
“뭐야 이거? 분위기 왜이래?”
“뭐가?”
“뭐가라니, 뒤에서 다 들었는데. 이거 이거 위험해. 여긴 던전이지 모텔이 아니라구.”
이성호의 말도 안 되는 궤변에 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게 대체 모텔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도 잠시.
곧 그의 담당 일진인 신지수가 이성호의 귀를 잡아당겼다.
“약 먹었냐?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와.”
“아아. 이거 놔라? 이게 심심하면 오빠 몸에 손을 대.”
“오빠가 오빠다워야지.”
“너 저번에 리콜에서 나한테 울면서 안기… 억!”
“그. 만. 해. 라. 진짜.”
둘의 티격태격에 조용석이 손가락을 입에 대며 소리를 낮췄다.
“제발 좀 조용히 하고 가자. 민폐야, 민폐.”
한바탕 작은 소란에 제법 긴장이 풀린 그들은 한층 여유롭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기도 잠시.
전방 1조에서 팀을 이끌던 우경호가 주먹을 들어 보이며 통신을 전파했다.
“모두 전투 준비!”
우경호의 지시에 일제히 멈춰 선 헌터들이 검과 창 등을 꺼내 들었다.
동시에 각자의 무기에 빛이 솟구쳤고, 그걸 기다리기라도 한 듯 사방에서 시커먼 것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중앙 사수하고 빈틈 주지 마!”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삽시간에 몬스터들과 어우러진 헌터들은 각자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며 곧장 전투에 돌입했다.
그런 그들과는 다르게 중앙에서 보호를 받고 있던 태정은 혹시 난입할지도 모를 놈들을 대비해 야투경을 소환했다.
그러자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한 것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팀을 덮친 것은 리플이라는 식물형 몬스터였다.
2미터 신장에 키만큼 긴 촉수가 4개나 달린 식인 몬스터.
자료에 나와 있길, 1급에 해당 되는 괴수로 이곳에서는 고레벨에 속하는 상당히 강한 놈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리플이라. 어디 얼마나 잘 잡나 한번 볼까.’
그가 관심을 가지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데, 옆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뭐 좀 보여?”
“전혀. 뭔가 펄럭이는 것 같긴 한데.”
“아직 초입이니까, 아카노나 벵가가 아닐까.”
그들은 아직 몬스터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런 그들을 위해 태정이 본 것을 그대로 말해 줬다.
“리플이에요.”
태정의 말에 신지수가 놀란 표정을 하며 되물었다.
“리플요? 벌써? 아니, 그보다 그게 보여요?”
“그냥 대충…….”
“몇 마리나 되어 보여요?”
“대충 2~3배. 한 70마리 정도?”
“뭐라구요? 70마리!?”
태정의 대답에 그들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리플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몸은 강철처럼 단단하고 재생 능력까지 겸비해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놈 중 하나.
그들로서는 감히 한 마리도 상대하기가 힘든 괴물이었다.
하지만 우경호의 파티는 달랐다.
평균 레벨이 300 이상에 수많은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는 실력자들.
형형색색 피어오르는 빛의 검에 들러붙었던 리플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생각보다 잘하네. 이러면 굳이 내가 거들 필요는 없겠는데?’
종이 찢기듯 찢겨 나가는 리플 무리를 보며 태정은 헌터들의 전투력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흡 또한 얼마나 많이 맞춰 봤는지, 인원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중앙으로 흘리는 놈들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이는 이 진에 대한 이해와 실전 경험이 무수히도 많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여기엔 또 다른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번에 태정이 따낸 명예 버프가 전투력 상승에 크게 기여를 했다는 점이었다.
무려 통합 30%.
이 수치는 팀 평균 전투력을 거의 배 이상 끌어 올려 줄 만큼 어마어마한 버프였다.
그렇게 전투는 불과 5분이 채 되지 않아 싱겁게 끝이 났다.
“다시 이동하겠습니다.”
별도의 인원 점검도 없이 바로 출발을 알리는 1조의 신호.
이것만 봐도 그들에게 리플이라는 몬스터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후의 사냥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실 사냥이라 하기엔 민망할 정도였다.
나오는 족족 쓸어버리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숲에선 당할 놈이 없다는 리플을 초반부터 박살 내 버렸으니, 그 외의 놈들은 볼 것조차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의 사냥이 이어지고, 태정을 제외한 중앙 팀은 차례대로 레벨 업을 하기 시작했다.
“나 이번이 두 번째야.”
“왜 너만 두 번이야? 난 이제 한 번인데.”
“난 거의 경험치가 없었으니까, 뭐 그런 걸 또 따져.”
“아니, 뭐 따진 건 아니고…….”
여전히 유치한 이성호와 꼬박꼬박 대꾸해 주는 신지수를 뒤로 하고 조용석이 태정과 나란히 하며 걸음을 맞췄다.
“괜히 저희 때문에 경험치도 못 드시고… 죄송하네요.”
“죄송은요, 말은 제가 먼저 꺼냈는데. 그래도 퍼센트로 따지면 한 0.1%는 먹고 있어요. 이 정도면 공짜 경험치치곤 훌륭하죠. 하하.”
“그래도. 저희끼리 왔으면 몇 배는 더 드셨을 텐데.”
“경험치 같은 건 딱히 상관없어요, 퀘스트가 목표라. 그런데 좀 불안했죠?”
“네? 어떤?”
“이곳을 저희끼리 온다 했을 때요.”
“아.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뭐 못 할 말이라고요.”
“저는 사실 반대했습니다. 전부 반대였죠. 아무래도 레벨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다 보니. 적정 레벨에서 두 배나 떨어지는데, 과연 이게 가능할까 싶더군요. 물론, 태정 씨의 능력을 믿지 못 한건 아니었지만,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네 명이 짐짝인데. 그런데 주아가 고민을 하더라고요. 호의로 제안한 건데, 거절을 못 하겠다고.”
“제가 히든이라서요?”
“아뇨. 그건 아닐 겁니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뒤를 한번 돌아보던 조용석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주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위로 올라갈 수가 있는 아이예요. 저 아이의 오빠가 굉장히 유명한 헌터거든요. 그래서 길드장님도 함부로 못 하시죠.”
“아. 그래요?”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는데, 바보같이 도움을 안 받으려고 해요. 자세한 내막은 저도 모르는데, 자기 오빠를 무척이나 뭐랄까. 싫어한다고 해야 하나?”
“그렇군요. 그런데 용석 씨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나요.”
태정은 이미 그녀가 서진의 동생인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클럽과 길드의 몇몇 핵심 인물만 알 정도로 극비 사항이었다.
한데, 일반 길드원인 조용석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주아 부모님 기일에 잠깐 들렀는데, 거기서 길드장과 오빠란 자의 대화를 우연히 들었어요. 그 대단하게만 보이던 길드장님이 쩔쩔매면서 모시고 있더군요. 뭔가 지시도 하는 것 같았고. 그 정도 인물이면 당연히 유명한 헌터가 아니겠습니까. 또 제가 주아한테 물어보니, 딱히 반박을 하진 않더군요.”
“그럼 정확히 누군지는…….”
“그건 모르죠. 다만 길드장님보단 한 체급 높은 헌터가 아닐까. 싶은 거죠. 길드 내에서의 주아에 대한 대우도 그렇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되고요. 아시다시피 주아는 히든도 아니고 일반 클래스잖아요.”
“얘기를 들어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혹시 태정 씨는 뭐 아시는 거 없습니까? 같은 익스 등급이신데.”
“글쎄요. 저는 옆집에 사는 것도 최근에 알아서…….”
그들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전진하고 있을 때, 또다시 한 무더기의 몬스터 무리가 그들의 앞길을 막아섰다.
아카노라 불리는 사족 보행의 괴수.
약체로 평가되는 만큼 순식간에 정리가 되려나 싶은 그때.
번쩍.
정체 모를 붉은빛이 사방에서 피어올랐다.
동시에 아카노의 목이 일시에 날아갔고, 전투를 준비 중이던 우경호 등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을 뚫고 한 줄기 선명한 음성이 들려왔다.
“뭐야? 이 풋내기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