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나만…….”
다음 단계가 진행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한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가 고민하는 사이, 이미 석실은 몬스터 무리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동시에 제라드의 음성이 들려왔다.
-인식된 것 같습니다.
“알아.”
쏟아져 나온 아울들이 태정을 향해 일제히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볼 것도 없다는 듯 그의 레프트 핸드에서 무수한 에너지 탄이 쏘아졌다.
타타탕 타탕! 타타탕!
속사포처럼 쏘아지는 태정의 공격에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던 아울 무리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반경 20미터 안으로는 아예 접근도 불가한 상황.
이미 놈들의 레벨을 알고 있는 태정은 굳이 다른 무기를 섞어 쓰지 않았다.
발칸포만으로도 가지고 놀아 버리는 수준.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내부에 있던 생체 신호가 모두 사라졌다.
1위 3단계 (완) [뭐야별게다있네]*
2위 2단계 (완) [질풍]
3위 2단계 (완) [외로운 늑대]
…
3390 2단계 (완) [김종혁]
순위를 확인하던 태정은 아직 시작도 못한 아래 순위의 사람들을 보며 헛웃음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의 시선이 전방 석벽으로 향했다.
“하나 더 해 볼까?”
* * *
대한민국 공식 길드 랭킹 3위에 빛나는 아레나의 현상태는 다음 스테이지를 준비하던 중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1등에 자리하고 있던 자신의 닉네임이 어느 순간 2등으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같은 단계에서의 변동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무시를 하려 했지만.
문제는 새롭게 올라온 이의 스테이지 단계가 계속 올라가고 있단 것이었다.
“뭐야? 왜 이래? 왜 이놈은 벌써 4단계야?”
3단계도 모자라 이제 4단계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위 5단계 (진) [뭐야별게다있네]*
2위 2단계 (완) [질풍]
3위 2단계 (완) [외로운 늑대]
이내 5단계를 시작한 의문의 헌터.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뭐야? 이거 뭐냐고!?”
뚫어지게 순위 창을 바라보고 있는 현상태는 지금의 상황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아레나에서 밀고 있는 서바이벌 전용 헌터였다.
서바이벌 전용 헌터란 길드 버프를 위해 키워지는 특정 구간의 헌터를 뜻한다.
무조건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서바이벌 기계 혹은 도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질풍이란 닉네임을 가진 현상태는 무려 4회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서바이벌엔 그야말로 이골이 난 인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역시도 그는 1등을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른 톱 티어의 경쟁자들이 있긴 했지만, 사실상 이 구간은 아레나가 꽉 잡고 있기 때문에 2등을 위한 싸움이 치열하지 왕좌는 고정이었다.
한데, 기존에 알던 헌터들도 아니고 생전 처음 보는 닉네임의 헌터가 1위로 치고 올라왔다.
그것도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이한 방법으로.
“아니, x발. 장난하나. 대기시간 10분 어디 갔어? 왜 저놈은 바로바로 넘어가는 거냐고. 이게 말이 돼?”
현상태가 충격에 빠져 있을 때, 그 뒤를 잇고 있는 타 길드의 다른 랭커들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왜 벌써 5단계야? 미친 거 아니야?”
“질풍이 1위가 아니네? 저 인간은 뭐지?”
“이거… 일단 찍어야겠다. 나가서 좋아요나 x나게 받아야지. 이번엔 조졌네.”
“아. 시부랄. 하나 밀리면 큰일인데. 갑자기 어디서 저런 게 나타난 거야?”
대부분이 불평 가득한 말이었지만, 특히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상위 5위권의 헌터들은 문제가 좀 크게 다가왔다.
5위까지가 길드 버프를 받는 만큼, 기존 순위에서 하나만 밀려 내려와도 바로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격.
특히나 이런 헌터들은 간부들을 비롯해 길드 전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기 때문에,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x발 놈이네, 저거. 안 그래도 빡센데, 왜 하필 오늘이야!? 아… 돌아가면 뭐라 말하냐.”
* * *
타타탕! 타탕!
두두두두두!
화아아아아-! 화아악!
[코로사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80,000을 획득합니다.]
[코로사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80,000을 획득합니다.]
예기치 못한 꼼수를 발견한 태정은 신나게 벽을 부수며 나오는 족족 방을 쓸어버렸다.
이미 2위와는 4단계 이상의 차이가 나고 있었지만, 그는 한 단계라도 더 올리기 위해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유리한 상황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열을 올릴 필요가 있을까?
있었다.
재미가 붙어 버렸으니까.
압도적이지만 더 압도적이게.
태정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 보고 싶었다.
과연 이 서바이벌이 끝났을 때 자신은 어디까지 올라가 있을까.
그는 그것이 너무 궁금했다.
게다가 스테이지가 올라가면서 경험치 또한 늘어났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이미 레벨 업도 간간이 되고 있는 상황.
유일하게 걸리는 것이 있다면 포션이 어디까지 버텨 주느냐였다.
길드 가입 때 받은 포션과 한설아가 떠나며 주고 간 포션 등 아직까진 여유가 남아 있었지만, 서바이벌이 얼마나 오래가는지에 따라 조절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좋아. 일단 풀 마나다.”
레벨 업으로 인해 마나가 가득 찬 태정은 전방으로 로켓 한 발을 날려 보냈다.
쾅!
굉음과 함께 백여 마리에 달하는 이족 보행형 몬스터가 일시에 피떡이 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후. 오직 발칸포로만 나머지 놈들을 처리한 그는 처음 한 방을 쏘아 보낸 벽으로 가 기체를 특수 근접형으로 전환했다.
동시에 그의 양 주먹이 균열이 간 석벽을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한 방 한 방이 꽂힐 때마다, 강한 진동이 일며 벽이 심하게 들썩거렸다.
쭉 무기를 사용하느라 그도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이 거대한 강철 덩어리의 주먹은 그야말로 살인 병기가 따로 없었다.
이전 스테이지에서 나왔던 중대형 몬스터인 트롤거인을 한 방에 잠재울 정도였으니, 급할 때는 이 또한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수차례 두들기던 석벽이 드디어 쪼개지기 시작했다.
쩌어억-!
와르르! 후두두!
순식간에 허물어진 석벽 너머로 똑같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7단계 스테이지가 시작됩니다.]
“좋아. 이것만 해도 최소 로켓 2발은 아낀 거야. 이거 좋네, 근접형. 때리는 맛도 있고.”
마나를 아껴 기분이 좋아진 태정은 다시 기체를 다인전 모드로 전환했다.
동시에 부스터를 운용해 정면으로 파고든 그는 수많은 타깃에 집중하며 신중히 사격을 진행했다.
연사 속도가 엄청난 슈퍼 발칸포의 특성상 낭비되는 탄이 없을 순 없지만, 최대한 마나를 아끼려면 마구잡이식 난사는 피해야 했다.
그렇게 8단계, 9단계, 10단계를 이어 나가던 그는 11단계에 이르러 새로운 몬스터를 만나 볼 수 있었다.
거대 달팽이.
기체만 한 달팽이들이 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조금 기다릴까. 한 번에 조지는 게 나을 테니.”
한 발도 허투루 낭비하기가 싫은 태정은 어느 정도 물량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정비를 하며 중간 점검에 들어갔다.
“포션은 아직까지 넉넉하고. 순위는…….”
1위 11단계 (진) [뭐야별게다있네]*
2위 4단계 (완) [질풍]
3위 4단계 (완) [외로운 늑대]
…
3390위 4단계 (진) [김종혁]
…
5000위 3단계 (완) [Clara]
5001위 3단계 (완) [Amelia]
“2등이 이제 4단계 완료했어? 3천대부터는 이제 진행 중인 거 같고… 뭐야? 5천대는 이제 3단계밖에 안 돼?”
스크롤을 쭉 내리던 태정은 생각보다 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1만 4천 명 중 벌써 1만 명 이상이 상위 25%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상위 1%에 해당되는 대부분의 헌터가 죄다 한국인이란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3-400에선 꽉 잡고 있구나. 왠지 기분 좋은데?”
어딘지 모르게 뿌듯함이 느껴지는 태정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스크롤을 내려 보던 그는 어느 정도 달팽이가 모인 것 같자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이번 역시도 사냥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m61 슈퍼 발칸포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쏘는 족족, 맞는 족족 무엇이 됐건 걸리는 순간 사정없이 찢어 버린다.
그로 인해 아직까지도 방 하나가 정리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채 2분이 되지 않았다.
처음 1단계와 비교해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수준.
실로 놀라운 사냥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누구도 직접 보지 않고는, 아니 보고도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테이지가 올라가면 갈수록 몬스터의 레벨은 물론이고 개체도 100씩 늘어난다.
11단계의 클리어 킬 수는 1,300.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차이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지닌 화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몬스터들을 때려잡고 있던 태정의 귀에 레벨 업을 알리는 알림음이 들려왔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새로운 스킬 131mm 유도 로켓탄이 오픈됩니다.]
[천룡 – 다연장 로켓 24관이 추가로 오픈됩니다.]
“오. 이게 제라드가 말한 그건가.”
중얼거리던 태정은 나머지 몬스터들을 모두 정리한 뒤, 바로 스킬 확인에 들어갔다.
[천룡-1] lv1 [다연장 로켓]
봉인된 속도 [520km/h]
구경: 131mm 에너지 유도 로켓탄
사정거리: [3.2km]
살상 범위: 반경 110m
기본 파괴력 8,800-14,000
소비 마나 5천
분당 최대 24발
스킬의 성능은 기존 일반 탄에 비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사정거리도 늘어나고 살상 범위 역시 늘어났다.
무엇보다 좋은 건 발사관이 추가로 24개나 오픈되어 총 36발을 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걸 사용하기 위해선 그걸 뒷받침해 줄 엄청난 양의 포션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차차 해결해 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현재 그의 전투력 정도면 포션값 정도 버는 거야 일도 아닐 테니까.
스킬 확인을 마친 태정은 다음 방으로 넘어가기 위해 기체를 전투형으로 전환했다.
이미 작업을 해 놨기 때문에, 몇 번만 후려치면 벽을 부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수차례 벽을 두드리자 여지없이 석벽이 무너지며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막 진입을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알림이 들려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살피려는 찰나.
그의 좌측 전방에 무언가가 포착됐다.
‘뭐야?’
그가 본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넋이 나간 듯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한 여자.
그런 여자와 뻘쭘하게 서 있던 태정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동시에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의 로봇 손이 허공을 향했다.
“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