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한설아가 떠난 직후, 사내가 태정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자네 히든이라고 했나? 클래스가 어떻게 되지?”
“메카닉입니다.”
“메카닉? 들어 본 적이 없는 직업이군. 근접 계열인가?”
“아뇨. 총이나 대포 같은 걸 사용하는 직업입니다.”
“총? 대포? 혹 쏘는 총을 말하는 건가?”
“예.”
“총이라… 듣기만 해선 감이 잘 오지 않는군. 뭐 따로 많은 걸 묻지는 않겠네. 리더께서 직접 보내신 걸 보면 그에 걸맞은 특별한 능력일 테니. 참 이름이 뭔가. 난 제닉스 길드를 이끌고 있는 양태식이라고 하네.”
“유태정입니다.”
“유태정? 같은 태자 돌림이라 그런지 친근하구만. 잠시만 기다리게.”
양태식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들어 어딘가로 연결했다.
“이태호 과장 있나? 내 방으로 좀 올라오라 그래.”
전화가 있고 얼마 뒤 30대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다, 길드장님.”
“여기 이 친구. 새로 받은 인원이네. 등급은 익스클루브에 올리고 가입과 숙소 배정 좀 도와줘.”
“예?”
양태식의 말에 이태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익스클루브란 등급은 S급 이상에나 붙는 예우였기 때문이다.
레벨로 치면 750 이상, 길드에 얼마 되지도 않는 주요 핵심 간부나 마찬가지란 뜻이었다.
“대체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히든이야. 리더께서 직접 추천하셨어.”
“아. 어쩐지. 알겠습니다. 그럼 직급은……?”
“일반으로.”
“등급이 익스클루브인데 일반이란 말씀이십니까.”
“벌써 잊은 건가. 우리 길드는 철저히 능력제야. 조건과 대우는 맞춰 줄 수 있어도 이후 자리에 올라서는 건 본인의 의지와 능력이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시죠.”
태정과 함께 사무실을 나간 이태호는 정식으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인사과장 이태호라고 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유태정입니다.”
“그럼 아직 직급이 없으시니, 태정 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예. 편하신 대로.”
“우선은 가입을 하셔야 되니, 홀로 이동 하시겠습니다.”
이태호를 따라 복도를 걷고 있는 태정은 건물의 크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충 보기에도 한라산 호텔에 전혀 뒤지지 않는 규모.
그러다 문득 바라본 창밖의 풍경에 그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이건?’
수백 채, 아니 그 이상도 되어 보일 것 같았다.
저 멀리 엄청난 높이로 둘러쳐진 방벽만 아니라면, 이곳이 도심지의 한가운데라 생각을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
그가 감탄에 젖어 있는데, 이태호가 새삼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굉장하죠? 저희 길드의 본부는 동급 길드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작은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죠. 아마 스페셜리스트와 비교를 해도 그렇게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길드원들이 얼마나 되기에 이렇게나 많은 건물을 지은 건가요.”
“정식 길드원은 7천 명 정도 됩니다. 또 그들에게 딸려 있는 식구들과 계약직들을 포함하면 3만 명에 육박하죠. 이따 따로 설명을 드리겠지만, 도심에 있는 어지간한 여가, 편의, 교육 시설은 다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혹시 태정 님께서도 가족이 있으십니까?”
“예. 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그럼 이따 배정을 받으시면, 입주 절차를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거의 다 왔습니다. 이쪽으로.”
이태호의 안내를 받아 태정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가장 마지막 층에 있는 인투로이투스란 입단 홀이었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니, 체육관과 같은 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보이는 정중앙의 마법진.
이태호가 태정을 그 위에 세웠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가입 알림이 갈 겁니다.”
이태호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앞으로 반투명한 메시지 창 하나가 떠올랐다.
[제닉스 길드에 가입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대답을 하자마자 전보다 강렬한 빛이 일며 또 다른 창이 떠올랐다.
[제닉스 길드에 가입하신 걸 환영합니다.]
[클래스는 메카닉 유저로 현재 7,122번째 가입자입니다.]
[모든 길드 게이트의 진입 권한이 부여됩니다.]
[게이트 전용 명성치가 오픈됩니다.]
가입이 완료되고 뒤를 이어 퀘스트 알림음이 들려왔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경험치 디버프가 해제됩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오픈됩니다.]
“된 것 같은데요?”
“몇 번째라는 창도 뜨셨습니까?”
“예. 7,122번째라고 뜨네요.”
“그럼 정상적으로 가입이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건 누가 만드는 건가요?”
처음 보는 마법진이 너무 신기한 태정이었다.
이게 뭐라고 길드를 가입시켜 주는 것일까.
“이 마법진은 길드장님께서 만드신 겁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런 건 처음이라 궁금해서.”
“물론입니다. 레벨 400이 넘으면 길드를 생성할 수 있는 전용 스킬이 생깁니다. 이걸 사용하면 길드가 만들어지고 개인이 개인에게 가입 권유를 할 수가 있죠. 하지만 길드장 외에는 권한이 없습니다. 일정 레벨까진 일일이 마스터가 가입을 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죠. 그리고 800레벨이 넘어가면 이렇게 자동 가입진이란 스킬이 따로 생깁니다. 이때부터는 길드장이 임명한 사람에 한 해, 허가가 없어도 자동으로 가입을 시킬 수가 있는 거죠”
“그럼 이게 스킬이란 말입니까.”
“예. 영구적 스킬이라 보시면 될 겁니다.”
몰랐던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던 태정은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혹시 길드에 800이 넘으신 분들이 몇 분이나 계실까요.”
“아마 50명은 넘을 겁니다.”
“50명요? 그럼 그 이상은 몇 분이나…….”
“그 이상이라… 음. 길드장님을 제외하고 다섯 분 정도가 될 것 같군요.”
“그분들은 엄청 강하시겠네요.”
“S+ 등급이시니까요. 어딜 가도 한 자리씩 꿰차실 분들이죠.”
태정은 이곳에 오기 전 한설아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자신을 잡기 위해 왔던 한라산과 레인저 간부들의 레벨이 S급.
그보다 높은 이들이 넷이나 된다는 소리였다.
“그렇군요. 그럼 이제 뭘 해야 하나요?”
“우선 방을 배정해 드리겠습니다.”
본부를 나와 그들이 향한 곳은 중앙에 큰 도로를 기준으로 좌측에 크게 솟아 있는 거대 빌딩이었다.
내부로 들어가자 상당히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엔 이태호를 보며 아는 척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을 지나쳐 도착한 곳은 가장 꼭대기에 있는 5개의 방 중 마지막 방이었다.
“여깁니다. 들어가 보시죠.”
내부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피스텔 구조의 단순한 방이지만, 인테리어나 가구 등은 고급 주택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퀄리티가 매우 훌륭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38층에서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이태호가 카드키를 내밀었다.
“이걸 사용하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이건 기숙사 안내도입니다.”
카드키와 코팅된 종이 한 장을 받아든 태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길드원들은 다 내부에서 지내는 건가요?”
“보통 B급까진 근무가 있어 그렇지만, 태정 님께선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익스클루브라는 예우 등급은 S급에 준하는 효력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생활하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아까 동생이 한 분 있으시다고…….”
“예.”
“이따 비서를 통해 말씀해 주시면 바로 입주를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드릴 겁니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는 그럼 전산망에 등록해야 할 일이 있어서. 참, 이건 태정 님의 길드 신분증인데, 어디든 출입하실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편안한 하루 되십시오.”
이태호가 방에서 나간 뒤 태정은 식탁에 앉아 괜히 주위를 한번 둘러봤다.
이젠 정말로 헌터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멀뚱히 앉아 있던 그는 곧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퀘스트 오픈.”
[시작의 길 1-3]
길드에 가입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헌터의 길에 접어드셨습니다.
길드원과 함께 파티 사냥을 해 보세요.
혼자일 때보단 여럿일 때가 강력한 법입니다.
목표
초승달 대지 백작의 성.
파티 사냥 클리어 0/1
보상 - 제트 블라스터
“파티 사냥이라.”
혼자하는 사냥에 익숙해진 태정이었지만, 딱히 파티 사냥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론 혼자일 때보다 여럿일 때 얻는 이득이 많을 때도 있으니까.
“일단 이건 차차 생각하고. 지금은…….”
퀘스트 창을 닫은 태정은 시계를 한번 확인한 뒤 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오빠, 무슨 일이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사실 내가…….”
태정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소영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처음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지만, 진지한 그의 설명에 이내 이것이 농담 같은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줘.
“걱정할까 봐. 그래서 말 못 했어.”
-걱정하지. 내가 아니면 오빠를 누가 걱정해. 어디 다치고 그런 건 아니지?
“그런 건 없어. 아무튼 지금 당장 짐 싸. 이쪽으로 이사할 거야.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줄게.”
-응. 알았어.
태정은 소영을 길드로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
한라산에서의 일을 겪은 뒤로, 생각보다 이 바닥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것부터 해결을 해 볼까.”
가장 걸리는 것부터 해결을 하기로 마음먹은 태정은 곧장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그러자 보이는 수많은 사람과 건물들.
규모가 너무 커 길을 찾기 힘들자, 그는 지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을 붙잡았다.
“저, 혹시 여기 밖으로 나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어디 밖이요?”
“서울이요.”
“서울은 북문으로 가셔야죠.”
“제가 오늘 처음이라 길을 잘 몰라서요.”
“아하. 북문은 저쪽 방향으로 한 5km 쯤 가시면 있어요. 차 있어요?”
“아뇨. 서울에 놔두고 와서.”
“음. 걸어가시긴 좀 먼 거린데. 요 앞 정류장에서 셔틀 타세요. 아니다. 제가 데려다드릴게요.”
기숙사 앞에서 만난 친절한 여자를 따라 도착한 곳은 바깥과 다름이 없는 전광판이 세워진 정류장이었다.
“길드증은 있죠? 그거 찍고 타시면 돼요.”
“고맙습니다.”
여자가 떠난 직후 전광판으로부터 셔틀이 도착한다는 알림이 울렸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중형 버스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정차를 한 버스에 올라타니, 바로 앞 카드를 찍는 곳이 보였다.
“여기에 길드증 찍으면 되나요?”
그의 물음에 기사로 보이는 사내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태정은 아무생각 없이 길드 증을 센서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기기에서 알림음이 흘러나왔다.
띠리리-! 띠디딩! 띠-이잉!
[귀하는 익스클루브 등급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요란한 알림음에 피식 웃기도 잠시, 운적석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거리던 그가 벌떡 일어나며 태정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예?”
“여, 여긴 무슨 일로…….”
“예? 저는 그냥 버스 탈려고…….”
“아! 예! 알겠습니다. 편히 모시겠습니다.”
갑자기 군기가 바짝 들어간 사내의 태도에 태정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리를 잡으려는데.
셔틀 안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다 얼이 빠진 표정으로.
하지만 그건 찰나의 순간이었고,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의 고개가 동시에 창밖을 향했다.
‘뭐야? 초짜인 게 티났나?’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빈자리에 착석했다.
그러자 앞자리에서 우렁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다시 한번 사람들의 시선이 태정을 향했다.
‘뭐야? 왜 날 봐?’
이상함에 다시 앞을 보자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출발해도 괘, 괜찮을까요?”
“혹시 저보고 물어보신 건가요?”
“예. 혹시 아직 준비가 안 되셨다면…….”
“버스 타는데 무슨 준비까지나요.”
“아. 옛.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기사의 과한 친절에 이상함을 느끼기도 잠시.
곧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야야. 앞에 부대장 맞지?’
‘익스 등급이니 부대장이거나 그 이상이겠지.’
‘와. 미쳤네. 그럼 중앙 간부란 말이잖아. 저런 분이 여긴 왜 탄 거야?’
‘혹시 그런 거 아냐? 서민 체험 같은 거. 곧 있으면 위원회 선거 있잖아.’
‘아아. 하여간 요즘도 이런 연기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말조심해. 인생 망하고 싶냐.’
‘미안 미안. 쉿. 이제 조용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