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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26화 (26/182)

26화

“누구……?”

당황한 태정의 물음에 직원이 낯빛을 바꾸며 대답했다.

“한라산 길드 본부 정찰대장 차민수라고 하네.”

“예? 그게 무슨…….”

“일단 거기 앉지.”

사내가 접객실의 소파를 가리켰다.

“이게 대체 뭡니까. 이 사람들은 또 뭐고.”

불쾌하다는 그의 태도에도 차민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소파에 몸을 기댔다.

“아. 여기 이들은 혹시 몰라 대동한 내 수하들이니 걱정 말게. 당황스럽겠지만 일단 앉아서 얘기하지. 뭐 그럴 리야 없겠지만 자네가 대화를 하지 않겠다면 난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네. 어쩔 텐가. 지금부터 나와 신사적으로 차분히 대화를 나눠 보겠나?”

누가 봐도 협박성 멘트에 태정은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길드와 무장을 한 헌터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 것일까.

뭐가 뭔진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뒤에 도열한 헌터들의 장비가 심상치 않다는 것.

솔직히 저렇게 화려한 장비를 걸친 헌터는 그의 인생을 통틀어 본 적이 없었다.

나름 고레벨이 많았던 에이전시에서도 저 정도 급의 장비는 보지 못했으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 리는 없을 테고. 설마 내가 히든 클래스인 걸 알고 있는 건가.’

정황상 가장 유력한 생각이었다.

한 길드, 그것도 본부의 정찰대장이면 상당한 위치에 있는 고위급 간부다.

그런 간부가 병력을 대동하고 일개 객실의 손님을 찾는다는 건, 다른 이유를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들어는 보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태정이 소파에 자리하자 차민수가 등을 살짝 떼며 말을 이었다.

“방금 내 소개는 마쳤으니, 이제 우리 길드에 대한 소개를 해 보도록 하지. 한라산. 정부 승인 공식 랭킹 16위. 약 9천 명의 헌터들과 10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스페셜리스트에 속한 길드야. 뿐만 아니라 재계 순위도 항상 20위권에서 밀려나 본 적이 없지.”

차민수의 소개에 태정은 오전에 얼핏 봤던 한라산 길드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톱 텐 위주로 보다 보니, 깊게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상위권에 위치해 있던 길드였다.

“그런데 그 대단한 곳에서 왜 저를…….”

“우린 자네가 히든이라는 걸 알고 있네.”

“히든이라뇨?”

“기계를 사용하는 헌터는 흔하지가 않지. 아니, 자네가 유일하다고 해야 하나. 다 알고 왔으니, 굳이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마. 피차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니.”

차민수의 말에 태정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음에도 놀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철저하게 혼자 움직이며 조심 또 조심을 하며 사냥을 했던 그였다.

게이트에 들어설 때도, 나올 때도 던전 안에서도 그는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았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한 명의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조용석이? 아니야. 거긴 제닉스잖아. 혹시 그 산에 있던 놈 중 하나가 한라산이었나.’

태정이 이런저런 추측을 해 보는데 다시 차민수의 말이 들려왔다.

“길게 말할 것 없이 본론만 얘기하지. 우리 길드에 들어오게.”

“한라산에 말입니까.”

“조사를 한 바로는 자네가 아직 소속이 없다고 알고 있네. 어차피 길드 없이 성장은 불가능할 것이고, 우리 길드 정도면 빠지는 길드도 아니니. 자네로선 괜찮은 제안이 아닌가.”

차민수의 말은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전체 서열 16위면 톱 텐엔 못 미치지만, 언제든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는 길드.

조건 역시 들어 봐야 알겠지만, 다른 곳에 그리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미안한 얘기네만 이미 우리와 접촉을 한 이상 지금 여기서 결정을 해야 하네.”

“혹, 제가 거절을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거절이라. 내가 왜 저들을 대동하고 왔을 것 같나?”

차민수가 뒤로 도열한 헌터들을 바라보며 묻자, 태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확실하진 않지만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뜻.

‘결국 여기로 해야 하는 건가.’

달리 방법은 없는 듯했다.

“조건은 어떻게 맞춰 주실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업계 최고 대우로 맞춰 줘야지. 물론. 그 전에 자네에 대한 연구를 좀 해 봐야겠지만. 결정이 선 건가?”

“딱히 다른 방법도 없는 것 같으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탁월한 결정이네.”

차민수가 일어나 악수를 건내자 태정 역시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바로 그때였다.

철컥.

무언가 입구에서 소란스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그러자 차민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제법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내 분명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 했거늘.”

그의 짜증 섞인 말에 입구로부터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가 그 유명한 한라산 명도의 펜트하우스인가.”

“뭐?”

무언가 이상한 낌새에 차민수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무장한 헌터들이 거실을 점거해 들어오고 있었다.

동시에 차민수의 병력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웬 놈들이냐!?”

그런 그들의 말에 리더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그를 본 차민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너, 너는?”

“오랜만이군, 정보과장. 아니, 지금은 정찰대장으로 불러 줘야 하나?”

“이무배? 네놈이 여길 어떻게?”

이무배.

레인저 길드의 정보참모로 무력 랭크 S에 위치한 특급 헌터였다.

차민수와는 2년 전, 신 용산 사옥 부지를 놓고 대립을 했던 관계.

그런 그가 다른 곳도 아니고 어떻게 적진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네놈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차민수의 노기 띤 음성에 이무배가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왜? 우리도 줄 돈 다 주고 들어온 고객이야. 그렇게 말을 하면 섭섭하지.”

“닥쳐라. 이건 명백한 도발이다. 지금 네놈들이 하는 짓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는 있나.”

“뭐 끽해 봐야 전쟁 아니겠나?”

“뭐라고?”

“사실 나도 네가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어. 기껏해야 과장급 정도나 있을까 했는데, 병력을 꾸려 오길 정말 다행이군.”

“원하는 게 뭐냐.”

“원하는 거라. 그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인가. 적대 관계에 있는 길드에서 S급 헌터가 병력까지 대동해 이곳에 들어왔다는 건 뻔한 일 아니겠나. 네놈 뒤에 있는 그 청년. 우리한테 좀 넘겨야겠어.”

이무배의 말에 차민수의 안색이 굳어졌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군. 저놈이 직접 왔다는 건, 무력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뜻인데…….’

차민수 역시 S급에 오른 헌터기 때문에 일대일로는 딱히 밀릴 것이 없었다.

문제는 이무배가 데리고 온 병력.

수도 앞서 있지만 구성도 자신의 정찰대보다 좋았다.

등급은 비슷해도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부대와 정보 수집을 주로 하는 부대는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까.

즉, 이 상태로 붙는다면 패하는 것은 차민수 쪽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걱정을 떨친 눈빛이었다.

‘이곳이 접객실이라 다행이군.’

그의 손이 은밀히 벽에 놓인 스위치로 향했다.

유사시 호텔 근처에 있는 병력을 부를 수 있는 비상소집 버튼.

그들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

“이봐, 이무배.”

“포기인가?”

“포기라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 다만. 저 친구를 데려가려면 조건을 내걸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시간을 끌 작정이군.”

“자신 있으면 들어와 보든가. 어차피 우리가 충돌하면 너희도 무사하진 못해.”

“그래서?”

“네놈들 조건이 더 좋으면 저 친구 의사에 맡기도록 하지.”

“좋아. 그럼 우린 네놈들이 건 조건에 소원 하나를 추가하겠다. 원한다면 길드장 자리도 내어 줄 수 있지.”

“뭐, 뭐라고?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개수작을…….”

“개수작은 지금 네놈이 하고 있지. 쳐라!”

이무배의 명령에 헌터들이 바로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차민수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추가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려 했는데, 너무나도 쉽게 간파를 당해 버린 것이다.

쇄도해 들어오는 병력을 보며, 차민수 역시 검을 빼들고 뛰쳐나갔다.

그 뒤를 따라 도열해 있던 헌터들이 모두 전투에 참여했다.

까앙-! 깡!

슈아악!

쿵!

순식간에 어우러져 난전을 벌이고 있는 헌터들의 모습은 가히 놀라웠다.

눈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의 빠른 검세와 움직임, 스킬 하나하나의 파괴력은 이미 거실에 있는 모든 기물을 죄다 박살 내 버린 상태였다.

어지간한 운동장보다 넓은 공간이 몇 초 만에 초토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을 실시간으로 바라보고 있는 태정은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한라산에 레인저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길드가 자신을 찾아온 것도 놀라운데, 서로가 생사를 걸고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무력으로.

‘이게 길드끼리의 싸움인가.’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감탄을 하기도 잠시.

곧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라산과 싸우고 있는 레인저는 악명이 높기로 자자한 길드였다.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 할 길드 중 하나가 바로 저곳.

적어도 커뮤니티 내의 여론은 그러했다.

만일 한라산이 진다면 자신은 꼼짝없이 레인저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

자연스레 그의 시선이 현관으로 향했다.

‘부스터를 쓰면 나갈 수 있을까?’

생각을 하자마자 고개를 젓는 태정이었다.

저 난전 사이를 뚫고 나간다는 건 자살을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

결국 그는 기다리는 일밖엔 할 수가 없었다.

전투가 일어난 지 약 십 분.

차민수의 헌터들이 하나둘 부상을 입으며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몇 명은 전투 불능에 이른 상황.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차민수는 아직도 오지 않는 지원 병력을 원망했다.

지금쯤이면 오고도 남았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와 검을 맞대고 있는 이무배가 포기하라는 듯 말을 내뱉었다.

“그냥 넘겨. 이 상태면 네놈들 오 분 안에 전멸이다.”

“개소리.”

“추가 병력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지? 우리는 손을 놓고 있었을 것 같나.”

“뭐?”

“이미 끝난 게임이다. 더 이상 사태를 악화시키지 마라.”

이무배의 말은 사실이었다.

현장이 그렇게 말을 해 주고 있었다.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차마 떨어지지 않는 그의 입이 고민 끝에 열렸다.

“이 부장! 제거해라!”

차민수의 명령에 우측 후방에 있던 헌터 하나가 빠르게 접객실로 쏘아졌다.

적 길드에 빼앗길 바엔 없애는 것이 더 낫다는 이 바닥에서만 통용되는 룰을 따르려는 것이다.

그 모습에 다급해진 차민수가 큰 소리로 외쳤다.

“막아!”

“늦었어.”

“이놈이!”

이무배가 아차 하고 있을 때, 태정은 자신에게로 쏘아지는 거대한 검을 바라봤다.

전신을 압도하며 들어오는 빛의 거검.

도저히 피할 수가 없는 공격이었다.

‘이 새끼들이 더 쓰레기였어.’

끝이라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으려는 그때.

돌연 태정의 앞으로 붉은색의 무언가가 불쑥 솟아났다.

동시에 날아오던 검이 수천 조각으로 부서지며 흩어졌고, 그의 앞엔 적발을 길게 늘어뜨린 한 여인의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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