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쿠라마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34,000을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오. 경험치 보소.”
[8단계 3/1400]
[처치한 수 3]
8단계에 이르자 들어오는 경험치가 눈에 띄게 올라갔다.
처치해야 할 몬스터의 수도 처음과 비교해 몇 배로 늘어난 상태.
레벨 업이 빠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벌써 95라. 이러다 진짜 100찍는 거 아니야?”
태정은 이곳에 들어와서 한 것이 없었다.
그냥 걷고만 있을 뿐.
그런데도 레벨 업을 무려 열두 번이나 했다.
고작 두 시간 남짓에 12업.
이보다 더한 꿀이 또 있을까.
“그런데 이 통로는 대체 어디까지 나 있는 거야.”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이었다.
이제는 긴장감마저 사라져 뭐라도 나왔으면 하는 심정.
대체 이곳에 몬스터가 있기는 한 것일까?
지루한 걸음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기도 잠시.
돌연 그의 신형에서 광채가 피어올랐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100레벨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시작의 길 퀘스트가 오픈되었습니다. - 명령어 퀘스트 오픈.]
[1세대 하이퍼 인공지능 제라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햐. 결국 100 찍었네. 드디어 나도 퀘스트가 생겼구나.”
퀘스트.
일정 레벨에 도달하면 생기는 일종의 임무 같은 것을 말한다.
헌터라면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
지금은 많은 공략과 장비들이 생겨나 의미가 없어졌지만, 예전만 해도 이 퀘스트를 기준으로 사냥터의 레벨이 정해졌다.
그만큼 헌터 생활에 있어 비중을 크게 차지한다는 뜻이었다.
“어디 한번 볼까, 퀘스트 오픈.”
태정이 시동어를 외치자 정면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시작의 길 1-1.]
지금까지 얻은 스킬의 숙련도를 올려 보세요.
경험은 노력의 산물이자 값진 재산입니다.
액티브 숙련도 0/5000
보상 - 외골격 타입 2 부스터.
“숙련도 5천이라… 사용을 많이 하라는 건가.”
특별히 어려워 보이는 퀘스트는 아니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쉽게 클리어가 가능한 수준의 단순한 작업.
그에 비해 보상은 꽤 괜찮아 보였다.
“비슷한 건가 본데.”
태정은 자신이 주력으로 쓰고 있는 외골격 다리를 떠올렸다.
솔플을 주로 하는 그에게는 목숨 줄과도 같은 스킬.
타입 2라고 적힌 걸 보면 이보다 더 상위 스킬이 분명했다.
“그보다 아까 인공지능이 어쩌고 한 것 같은데. 제라드였던가.”
태정이 스킬창을 열며 중얼거리자, 어디선가 낯선 기계음이 들려왔다.
[예, 주인님.]
“음?”
난데없이 들려온 낯선 소리에 태정은 살짝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다시 한번 들려오는 목소리.
[명령하실 게 있으십니까?]
“뭐야? 네가 인공지능이야?”
[예, 주인님. 편히 제라드라고 부르십시오.]
“허.”
태정은 자신의 말에 반응을 하는 낯선 목소리에 신기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 어디서 말을 하는 거냐.”
[저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인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래? 뭐… 일단 반갑다.”
[저도 주인님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슨 영광씩이나. 그런데 네 능력은 뭐야?”
태정의 물음에 제라드가 대답했다.
[저는 지구 행성의 전반적인 정보와 전투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보와 전투의 보조라. 예를 들면?”
[던전의 정보, 몬스터의 습성과 특성 전투력 등을 수치화하고 타깃의 위치를 계산해 정확한 좌표를 띄워 드립니다.]
“어떻게? 여기서 보여 줄 수 있어?”
[좌표와 수치는 사정거리 내 타깃이 있을 경우만 해당이 됩니다.]
“그래? 그럼 혹시 여기가 어딘지는 아냐.”
[이곳은 성장형 던전으로 정식 명칭은 리콜이며, 구역 번호는 no.69R 11y-7입니다. 현재 던전의 난이도는 2등급으로 적정 평균 레벨은 100으로 나와 있으나, 등급에 락이 걸려 있는 주인님의 전투력을 기준으로 실제는 3등급, 적정 평균 레벨은 150으로 측정이 되어 있습니다.]
“오.”
제라드의 자세한 설명에 태정은 뭔가 대박을 하나 건진 기분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컴퓨터 수준이라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감탄을 하며 혀를 내두르기도 잠시.
갑자기 의문이 하나 생겨났다.
“잠깐. 그런데 락이라니? 나한테 뭐가 걸려 있어?”
-일정 레벨 이하에서 주인님의 클래스는 공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
-그건 제 권한 밖의 대답이라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권한 밖이라.”
대답을 해 줄 수 없다는 제라드의 말에 잠깐 생각을 하던 태정은 이내 다른 질문들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 권한은 누가 주는 거야? 아니, 그보다 너 시리우스에 대해선 아냐? 그놈은 뭐 하는 놈이야? 그놈도 너처럼 인공지능인가? 각성자는 누가 만든 거지?”
뭐라도 하나 건질까 해서 던진 질문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짧고 간결했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제 권한 밖의 일입니다.
“다?”
-그렇습니다, 주인님.
“음. 전부 비밀이라. 그럼… 어? 잠깐만.”
다음 질문을 찾고 있던 태정은 무언가 잊고 있는 것이 생각났는지 멈칫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라드.”
-예, 주인님.
“아까 네가 그랬잖아. 이곳은 원래 2등급의 난이도인데 내 전투력 때문에 3등급으로 되어 있다고.”
-그렇습니다.
“그럼 2등급의 헌터들이 사냥하기는 좀 빡세나?”
-2등급의 경우 7단계까진 강화 몬스터라 큰 무리가 없을 테지만, 그 이상은 몬스터의 레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8단계에서 100% 확률로 전멸입니다.
“뭐야? 그럼 지금 사람들이…….”
* * *
“헉. 헉. 다들 포션 상황 어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조용석의 물음이었다.
그 말에 옹기종기 붙어 있던 팀원들이 상황을 보고했다.
“6개 정도 남았어.”
“난 3개.”
“이게 마지막이야.”
팀원들의 말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대로 가면 몰살이야.’
약 20분 전.
8단계가 시작되자마자 조용석을 비롯한 파티원들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현 등급에서 나와선 안 될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놈들의 정체는 쿠라마.
블루급 던전의 몬스터로 최소 적정 레벨이 130부터인 괴물이었다.
이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놈들.
그래도 초반에는 그런 대로 전투를 팽팽하게 이어 나갈 수가 있었다.
아무리 레벨이 있는 몬스터라도 일대일로는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비교적 장비가 뛰어났던 서주아의 활약으로 단숨에 밀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물량이었다.
스킬이 가지는 쿨 타임과 딜레이.
그로 인해 죽이는 놈들보다 나오는 놈들이 더 많아진 그들은 현재 감당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이제는 목숨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지? 누구 대책 없어!?”
땀을 비오듯 흘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던 이성호의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누구도 현 상황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모두가 그와 같은 수준의 헌터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그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x발. 아까 그냥 내뺐어야 되는 건데.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어.”
그의 투덜거림에 조금 떨어져 우측을 맡고 있던 서주아가 전방에 스킬을 난사하며 입을 열었다.
“후회해 봐야 늦었어. 그리고 어차피 도망갔더라도… 끝내 잡혔을 거야.”
“누가 몰라!? 한 명이라도 더 모아 힘을 보태 보자는 거지.”
아직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신지수가 플레어(화염계)를 쏘아 보내며 대답했다.
“생각 좀 하고 말해. 등급 0을 만나서 무슨 보탬이… 앗.”
말을 내뱉던 신지수의 앞으로 쿠라마의 낫과도 같은 발톱이 들이닥쳤다.
그대로 찍혔다 싶은 순간.
어느새 들어온 서주아의 검이 놈의 머리통을 통째로 베어 냈다.
서걱-!
툭.
“집중해, 신지수.”
“미, 미안.”
다시 태세를 고쳐 잡은 신지수를 뒤로 하고 서주아는 우측 상단의 작은 창을 바라봤다.
[8단계 198/1400]
[처치한 수 198]
‘여기까진가.’
백 번을 생각해 봐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진 포션을 돌려 꾸역꾸역 버텼지만 더 이상은 무리.
의연히 대처하던 그녀의 눈에 작은 슬픔이 내비쳤다.
자신이 죽게 되면 몹시 슬퍼할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안하단 말도 못 했는데.’
그녀가 다가오는 마지막을 준비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을 때, 나머지 인원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이미 신지수는 엄마 아빠를 부르느라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고, 이성호는 연신 욕설을 내뱉으며 광기를 내비쳤다.
팀의 리더인 조용석은 그저 체념을 한 얼굴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표정.
그렇게 점점 열세를 면치 못하던 그들은 밀리고 밀려 코너에 들어섰다.
어느새 밀착 대형을 유지하고 있는 4명의 남녀.
“지수, 뒤로 와.”
원딜 유저인 신지수를 후방에 놓으려는 조용석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싫어. 나더러 맨 마지막에 죽으라고?”
“죽긴 누가…….”
반사적으로 말을 뱉던 그가 입을 다물었다.
뻔히 끝장이 나고 있는 게 보이는데 입발림으로 희망 고문을 한다는 게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한심했기 때문이다.
안타깝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던 조용석은 이내 서주아를 바라봤다.
“주아야, 미안하다. 너까지 이런 일을 당할 필요는 없었는데, 괜히 사냥 얘기를 꺼내 가지고.”
의미심장한 그의 말에 그녀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했다.
“내 선택이야, 그런 말 할 거 없어.”
그런 서주아와 조용석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성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들을 나무랐다.
“x발. 너희 뭐 하냐, 지금? 우리 아직 안 죽었어. 빨리 잡으라고 빨리!”
광분한 이성호의 외침에도 그들은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마나가 바닥을 보인 이상, 공격을 해도 상처 하나 주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호는 억울했다.
“고작 이런 곳에서 죽으려고 내가…….”
허탈한 표정으로 검에 실린 기운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사정권에 들어온 쿠라마 둘을 깔끔히 베어 냈다.
이로써 그 역시 모든 마나가 바닥을 드러낸 상황.
다시 모여드는 놈들을 보며 체념한 그가 일행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곤 무언가 결심에 찬 눈빛으로 겁에 질려 있는 신지수를 불렀다.
“지수야.”
난데없는 부름에 그녀가 눈물을 닦아 내며 답했다.
“어?”
“한 번만 안아 보자.”
“…….”
뜬금없는 소리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잠시.
그녀가 말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조, 좋아해, 지수야.”
“닥쳐. 좀.”
그렇게 전투력이 바닥난 그들 주위로 쿠라마 무리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제 단 몇 초면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세상과 작별을 고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다들 천국에서 만나자.’
바로 그때였다.
쾅!
돌연 석실이 흔들리며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눈을 감고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조용석 등이 깜짝 놀라며 나자빠졌다.
“뭐, 뭐야!?”
“지, 지진이야?”
“다들 엎드려!”
“뭐라구?”
채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
바닥에 그림자가 생기더니 그들 앞으로 무언가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양쪽 어깨에 괴이한 물체를 얹고 나타난 사내.
그는 바로 유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