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태정의 사냥은 계속됐다.
[경험치 13,5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13,500을 획득합니다.]
한계에 봉착한 듯 점점 레벨 업이 더뎌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정이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는 하나.
가지고 있는 무기와 스킬을 최대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적정 레벨 90인 다음 던전에서 조금이나마 편하게 사냥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클래스: 메카닉
등급 [측정 불가]
LV.69 경험치 540,000
공격력 [770] 방어력 [n]
관통력 [10%] 명중률 [12%] 마력 [6,100]
장갑 [0] 실드 [0]
“아직도 꽤 남았네.”
이틀간 풀로 사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업밖에 하질 못한 태정이었다.
이제 진짜 다음 사냥터를 물색해 봐야 할 때.
“그건 그렇고 상태창이 뭔가 부실하단 말이야.”
태정이 알기로 헌터들의 스테이터스 창은 이 정도로 간단하지가 않았다.
적어도 이것의 두 배는 되어야 한다.
하지만 태정에겐 가장 기본적인 근력이나 민첩 따위도 없었다.
뭔가 허술하면서도 알맹이가 빠져 있는 느낌이랄까.
“아직 미완성이라 그런가?”
태정은 처음 각성을 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시리우스는 분명 그렇게 말을 했었다.
이것은 미완성의 클래스라고.
많은 것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그래서 반드시 완성형에 도달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 아직 초반이니까. 열심히 하다 보면 조금씩 바뀌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태정은 다시 사냥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 싶을 즈음.
태정은 이곳에 와서 처음 보는 몬스터를 발견했다.
은색 갑옷에 양손엔 반월형의 거대한 도를 들고 있는 근육질의 괴물.
‘그놈이다.’
태정은 본능적으로 놈이 이곳의 대장임을 알아챘다.
평원의 대전사, 아실리우스.
90레벨 이하는 꿈도 꾸지 말라던 굉장히 위험한 놈이었다.
‘어떻게 할까.’
커뮤니티에서 워낙 악명이 자자한 놈이라,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그래. 저 정도는 잡아야 다음 던전도 있는 거지.’
상당한 거리에서 놈을 지켜보고 있던 태정은 들고 있던 m60을 TRG와 스위칭 했다.
그리곤 주변을 꼼꼼히 살핀 뒤 슬며시 바닥에 엎드렸다.
“후읍.”
심호흡을 하며 놈의 머리에 조준점을 겨눴다.
동시에 격발.
탕!
총성과 함께 발사된 빛의 탄환이 정면을 향해 쏘아졌다.
패시브로 인해 한층 올라간 스피드.
당연히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펄쩍.
빛이 닿기 직전, 놈이 점프를 하며 좌측으로 비켜났다.
‘이걸 피한다고?’
고정된 타깃에 한 번도 실패가 없었던 저격이 무효로 돌아가자, 태정은 내심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실제 총에 비해 떨어지는 스펙이라지만, 탄환의 속도는 시속 500km를 상회한다.
인지를 했다 해도 피하기는 힘든 속도.
더군다나 이 총기는 마력을 이용하기 때문에 거리에 비례해 속도가 줄어들지 않는다.
사정거리 내에선 운동에너지를 전혀 잃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 말인즉.
‘설마 듣고 피한 거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 격발을 한 그 시점에 움직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시속 500km에 육박하는 속도의 탄을 소리만 듣고 피하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 일이었다.
혹시 우연인가 싶어 다시 조준을 한 태정이 두 번째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탕!
펄쩍!
“말도 안 돼.”
아실리우스는 두 번째 공격 역시 손쉽게 피해 냈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확실히 듣고 피한 것이었다.
이어서 놈이 주변을 훑더니, 그가 있는 방향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있었다.
그걸 본 태정은 외골격 로봇 다리를 소환해 무기를 m60으로 스위칭 했다.
동시에 바로 코앞까지 접근을 한 놈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투투투퉁! 투투퉁! 투퉁!
초당 십수 발에 달하는 에너지 탄이 무작위로 쏘아졌다.
하지만 이중 적중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놈이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공격을 모두 피해 버렸기 때문이다.
‘뭐야, 이 패턴은?’
처음 보는 몬스터의 움직임에 태정은 적잖이 당황했다.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패턴에 맞춰 그 역시 총구를 이리저리 돌려 보지만, 따라가는 속도가 애매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직진 돌격만 하던 바보들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
그렇게 생소한 패턴으로 거리를 좁히던 평원의 대전사는 거대한 날이 선 도로 태정의 머리를 쪼개려 들어왔다.
“이런.”
순간적으로 오른발을 박차고 튀어 오른 태정은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바로 코앞에서 도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총구를 틀어 다시 놈을 조준했다.
하나 그의 행동보다 놈의 공격이 더 빨랐다.
총구가 자리를 잡기도 전, 전 2차 공격이 날아들었다.
휘익!
“아! x발.”
욕설과 함께 나자빠질 뻔했던 그의 신형이 좌측으로 빠르게 빠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보이는 놈의 두 다리.
본능적으로 그가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투두두두두! 투두두!
대지를 뒤흔드는 총성과 함께 수십 발에 달하는 빛의 탄환이 허공을 가르며 쏘아졌다.
하지만 이번 역시도 빛이 날아든 자리에 놈의 모습은 없었다.
다시금 그의 우측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튀어 나오며 서슬 퍼런 도가 날아들었다.
쉬익!
“억!”
비명과 함께 허리를 숙이던 태정의 몸이 전방으로 기울어졌다.
균형을 잡기엔 늦은 상태.
‘여기서 엎어지면 끝장이다.’
태정은 앞으로 쏠리는 탄력을 이용해 앞구르기를 시도했다.
동시에 전력을 다해 일어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달음박질을 쳤다.
그러자 등 뒤로 무언가가 닿으며 시원한 바람이 등줄기를 타고 전해 들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잘려 나간 옷과 함께 두 토막이 났을 위험한 상황.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약간의 거리를 벌리며 포션 하나를 섭취한 태정은 다시 난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 전과 전혀 달라 질것이 없었다.
정말 미세한 차이로 그의 공격을 다 빗겨 내는 평원의 대전사.
‘너무 빨라. 아니, 이건 맞아야 정상 아니야?’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 정도의 지근거리에서 타깃을 맞출 수가 없다니.
예측 샷도 날려 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희망 고문만 오지게 당하던 태정은 다시 거리를 벌리며 화염방사기를 꺼내 들었다.
“죽어라, 좀.”
화아아아악-!
분사구를 타고 나온 화염이 부채꼴로 퍼지며 전방을 장악했다.
평원의 대전사는 그것마저도 피해 버렸다.
하지만 아까와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좌우로 격하게 흔드는 태정의 몸짓에 화염이 꼬리를 물며 뱀처럼 흐물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범위가 확장되며, 좌측으로 피한 대전사의 몸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화르르륵!
“이게 정상이지, x발 새끼. 얼른 뒈져라.”
흥분한 나머지 욕이 절로 흘러나왔다.
십 년 묶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바로 그때.
화아악!
화염을 뚫고 시커먼 얼굴이 튀어나왔다.
‘이 자식 불사신이야, 뭐야?’
순간 흠칫했지만 그는 몸을 뒤로 빼며 계속해서 화염을 분사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졌을까.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태정을 괴롭히던 놈의 신형이 일순 자리에 멈춰 섰다.
시커멓게 그을려 미동도 하지 않는 대전사 아실리우스.
태정은 이때다 싶어 m60으로 무기를 교체한 뒤, 대가리에 대고 영점사격을 가했다.
투두두두두! 투두두!
시원한 총성과 함께 대전사의 머리가 통째로 사라졌다.
동시에 놈의 사망 선고를 알리는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평원의 대전사 아실리우스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550,000을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R타입 직사포 스킬이 오픈됩니다.]
[L타입 곡사포 스킬이 오픈됩니다.]
[신소재 아머 슈트 스킬이 오픈됩니다.]
“와. 까닥했으면 뒤질 뻔했네.”
전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태정의 몸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첫 전투 이후 맛본 죽음의 위기.
빠르고 날랜 놈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글로 보는 것과 현실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특히 지그재그 패턴에 대한 생소함이 그를 크게 당황시켰다.
얼핏 보면 별거 아닌 움직임이지만, 빠른 스피드가 더해져 원딜류 헌터들에겐 그야말로 쥐약이었다.
후딜이 없는 메카닉이어서 이 정도지, 한 방 한 방을 노리는 법사 계열이었으면 벌써 찢겨도 찢겨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원래 아실리우스는 최소 8인에서 14인까지 파티를 맺고 잡는 소규모 레이드 몹이었다.
적정 레벨에서는 솔플 자체가 불가능 한 놈.
그걸 어거지로 조진 것이었다.
어찌 됐건 이번 전투는 태정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이런 게 진짜 실전이지. 멍청하게 앞만 보고 오는 놈들 백날 잡아 봐야 별 의미도 없던 거였어.’
지금까지 숙달이니 연습이니 하며 만족을 했던 것들이 새삼 부끄럽게 느껴지는 태정이었다.
“참. 스킬이 있었지.”
마음이 좀 진정되니 뒤늦게 알림음이 생각났다.
[L타입 곡사포] [60]
봉인된 속도 [400km/h]
탄환: 60mm 에너지 고폭탄
사정거리: [90m]
살상범위: [20m]
기본 파괴력 - 1,900
*분당 최대 3발
[R타입 직사포] [90]
봉인된 속도 [420km/h]
탄환: 90mm 에너지 고폭탄
사정거리: [70m]
살상범위: [25m]
기본 파괴력 - 2,200
*분당 최대 3발
[신소재 아머 슈트]
첨단 보병의 군사 의복.
소환과 동시에 착장.
물리 방어력 [600]
전체 근력 [30]
지속 시간 [반영구적] 소비 마나 [2,000]
“오, 이것 봐라. 심상치 않은데?”
새로 오픈된 스킬은 총 3개였다.
무기로 보이는 것 2개와 방어구로 보이는 것 하나.
수치가 상당한 것이 대충 봐도 좋아 보였다.
그중 태정이 좀 더 관심 있게 본 것은 신소재 아머 슈트란 것이었다.
“한번 써 볼까.”
태정은 즉시 스킬을 활성화시켜 봤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한차례 빛이 일더니, 순식간에 옷이 변경됐다.
짙은 회색의 상하의가 이어져 있는 쫄쫄이(?) 형태의 슈트.
명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였다.
“이게 뭔…….”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어떻게 봐도 쫄쫄이 형태의 내복이었다.
소변 구멍까지 적나라하게 나 있는 것이, 도저히 밖에서 입고 다닐 만한 수준의 옷은 아니었다.
한데 재질이 참 특이했다.
“면 같은데 왜 이렇게 단단하지?”
태정이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촉감이었다.
면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기는 거의 강철에 버금간다.
그래서 괴리감 또한 심하게 느껴졌다.
강철을 입고 있는 것 같은데 면처럼 부드러우니 말이다.
게다가 두께 또한 매우 얇았다.
“이렇게 단단한데 움직여도 아무렇지도 않네.”
신기함에 팔도 굽혀 보고 허리도 돌려 보고 다리도 들어 봤다.
그냥 평범한 옷을 입은 것과 다름이 없는 신축성과 편안함이었다.
“어쨌든 이게 방어력 600짜리란 말이지. 게다가 반영구적이고. 겉모습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개꿀이지.”
움직임에 전혀 제약이 없는 방어력 600의 반영구적인 슈트.
마땅한 방어구 하나 없던 그에겐 정말로 꼭 필요한 스킬이었다.
더군다나 마켓에서 봤던 억 소리 나는 장비들의 썩은 방어력을 생각해 본다면, 600이란 방어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움직여 보던 그의 시선이 스킬창 상단으로 향했다.
“자. 그럼 이제 나머지를 한번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