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던전에 진입한 태정은 즉시 주변을 경계하며 양손에 총을 소환했다.
이제 권총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지만, 실험을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대평원은 그 이름답게 광활했다.
드넓은 초원에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지평선.
거기에 새파란 하늘은 정녕 이곳이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던전인가 싶을 정도로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갇힐 수도 있으니까.”
몬스터도 몬스터였지만, 나가는 것도 걱정을 해야 했다.
이런 특징이 없는 대평원에선 조금만 방심을 해도 길을 잃어버리게 되니까.
모든 게 같은 배경에 나무 하나 없는 초원이니, 들어왔던 게이트를 찾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오직 한길 직진으로만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천천히 이동이 시작됐다.
은·엄폐물이 없는 대신 시야는 굉장히 좋았다.
좌우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태정이 생각하기로 이것은 굉장한 이점이었다.
시야에 제한이 생기면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많아지고, 그만큼 급습을 당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꼭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몸을 숨길 수 없다는 단점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그에겐 강력한 무기가 있었고, 여차하면 튈 수 있는 외골격 다리가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을 했을까?
저 멀리 무언가 물체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처음에 점 따위로 보이던 물체들은 다가가면 갈수록 형체가 뚜렷해졌고, 그것이 몬스터라는 것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뭘까? 제법 큰 놈 같은데.’
몬스터와 삼백여 미터를 남겨 놓은 태정은 TRG를 소환했다.
스코프를 통해 확인한 결과, 몬스터의 정체는 요릭이라 불리는 몬스터였다.
난이도로 따지면 중간급 레벨.
모습은 긴 다리를 가진 양과 닮아 있었는데, 말이 양이지 덩치는 황소에 버금가는 놈이었다.
“일단 가볍게 한 방 놔 볼까.”
초반에 권총으로 간을 보려 했던 태정은 기왕 TRG를 꺼낸 김에 놈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거리가 거리다 보니 굉장히 흔들림이 심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동으로 조준점이 맞춰졌다.
이윽고 그의 검지가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탕!
슈아악!
한차례 총성과 함께 빛의 탄환이 직선으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아간 탄환은 정확히 요릭의 머리통을 관통했고, 줄 끊어진 인형처럼 놈의 동체가 풀썩 하고 주저앉았다.
[요릭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14,000을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뭐야?”
쏟아지는 레벨 업 알림음에 그는 상태창을 열어 레벨을 확인했다.
[lv43]
“3업이나 했어?”
태정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작 한 마리를 해치웠을 뿐인데, 레벨이 3이나 올라 버리다니.
많이 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건 그의 예측 범위를 한참이나 뛰어넘은 것이었다.
“아무리 등급을 건너뛰고 왔다지만… 좋은데?”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그저 경험삼아 온 것인데, 이 정도 경험치라면 폭풍 성장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아무리 저격이었다곤 하지만 던전의 중추가 되는 놈이 한 방에 사살됐다.
이 말은 곧 자신의 전투력이 먹히고도 남는다는 뜻이었다.
“굳이 다른 무기 쓸 필요도 없겠는데.”
사실 저격이란 것은 그가 취할 수 있는 보조 옵션 중 하나였다.
마나 소비가 굉장히 큰 데다 조준을 하는데 있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야가 넓고 금방 레벨 업을 할 수 있다면, 주력으로 사용할 만큼 충분히 메리트가 있는 무기였다.
레벨 업이 즉각 된다는 전제하에, 마나는 무한으로 회복될 테니까.
“좋아. 이걸 주 무기로 하고 나머지를 보조로 쓰자.”
사냥의 방식을 바꾼 그는 다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기도 잠시.
태정의 시야에 또 다른 몬스터 세 마리가 포착됐다.
양옆으로 뿔이 달린 이족 보행의 몬스터.
흡사 캥커루와 같이 생긴 놈의 정체는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도치라는 괴물이었다.
거리가 충분히 있지만 세 마리다 보니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조심스레 태정의 총구가 첫 번 째 놈을 조준했다.
탕!
풀썩.
[도치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13,000을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가볍게 1업.
한 놈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놈을 다시 정조준 했다.
탕!
풀썩.
[도치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13,000을 획득합니다.]
[도치의 털을 획득합니다.]
두 번째 놈이 죽고 나서야 남은 한 놈이 태정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이내 전력으로 그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태정이 재빨리 다시 조준에 들어갔다.
그리고 격발.
탕!
‘아.’
세 번째 공격은 불발이었다.
움직이는 놈을 쏘려다 보니, 아주 대차게 빗나가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놈을 보며 태정은 즉시 TRG를 회수한 뒤, 양손에 권총을 소환했다.
동시에 그의 허리 아래로 외골격 로봇 다리가 형성됐다.
뒤이어 몸을 좌측으로 빼며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도치를 향해 그의 쌍권총이 빛을 뿜어 댔다.
탕! 탕탕!
정통으로 들어간 세 발의 에너지 탄.
하지만 피만 흘릴 뿐, 전혀 기세가 죽지 않고 그대로 돌진해 들어온다.
예상을 했다는 듯 태정은 놈과의 거리를 벌리며 계속해서 총을 난사했다.
생각 같아선 바로 화염방사기를 꺼내 통구이로 만들고 싶었지만, 어디까지 먹히는지 알아보고 싶은 태정이었다.
탕! 탕탕! 탕! 탕탕!
순식간에 여섯 발의 에너지 탄이 도치의 옆구리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하지만 이번 역시도 작은 상처만 냈을 뿐, 놈의 기세는 꺾지 못했다.
대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크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의 내구력이었다.
‘역시 단단해.’
레벨 업으로 스탯이 꽤 오른 상태기에 총의 위력도 상당히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상처를 내는 것이 고작.
그렇게 거의 백여 발의 탄을 때려 박던 태정은, 오른팔에서 발칸을 소환했다.
“이건 어떠냐.”
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탕!
바삐 돌아가는 총열 속, 수십 발의 탄환이 도치의 대가리에 그대로 처박혔다.
이번 건 효과가 있는지 쫓아오던 놈의 신형이 멈칫하며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그걸 본 태정은 달리는 것을 멈춘 뒤, 왼손엔 권총을 오른손엔 발칸을 있는 대로 난사했다.
타타타탕! 탕탕! 타타탕! 탕!
엄청난 흙먼지와 함께 에너지 탄을 온몸으로 받아 내던 놈은 몇 번이고 일어나려 애쓰다, 결국 그대로 축 늘어졌다.
[도치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13,000을 획득합니다.]
[도치의 털을 획득합니다.]
“음.”
걸레가 되어 쓰러진 도치의 사체를 보며 태정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죽이긴 죽였는데, 효율이 너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사냥을 하려면 화염방사기를 꺼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되면 권총은 이제 의미가 없어지는 건가.”
발칸이 겨우 효과를 봤을 정도면, ka-1역시 이곳부턴 별 효과를 보지 못할 공산이 컸다.
가진 무기 중 3개가 고물이 된 것이다.
장비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많이 썼다.”
다시 TRG를 소환한 태정은 처음 잡았던 놈들을 기준으로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냥은 매우 순조로웠다.
사거리가 긴 만큼 저격의 이점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도드라졌다.
파괴력도 대단해 들어가기만 하면 무조건 한 방.
근거리로 들어오는 놈들은 모두 화염방사기로 정리했다.
오크나 트롤처럼 순식간에 죽는 것은 아니었지만, 총으로 쏴 대는 것보단 훨씬 효과가 좋은 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사냥하던 태정은 레벨 55를 코앞에 두고, 조심스레 전방을 바라봤다.
‘대충 10마리 정도 되려나?’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히라마라는 몬스터 무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저격을 이용해 먼 거리에서 잡았지만, 레벨 업이 느려져 효율이 많이 떨어졌다.
이제는 마나가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몰아서 화염방사기로 조지는 게 더 나은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전에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자신의 왼팔에 달린 유탄 발사기.
워낙 까다로워 아직 실전에선 써 본 적이 없는 무기였다.
‘이 각도인가? 아니, 좀 더 들어야 하나?’
태정은 팔을 이리저리 조절하며 최적의 각을 보기 위해 계산에 들어갔다.
하나 불행히도 그것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유탄발사기의 경우 정확한 거리와 각을 재는 것이 관건인데, 그것은 경험과 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름대로 그림을 그리며 조준을 끝마쳤다.
‘빗나가도 돼. 화염방사기로 조지면 되니까.’
이윽고 40mm 구경 총구에서 덩어리 하나가 툭 하고 튀어 나갔다.
그것은 하늘 높이 올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정말 거짓말처럼 히라마 무리 정중앙에 떨어졌다.
‘오?’
쾅!
한차례 굉음과 함께 작은 섬광이 일어났다.
동시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알림음이 다발적으로 들려왔다.
[히라마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13,500을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경험치…….]
[레벨 업…….]
“와. 효과 뒤지네.”
단 한 방에 전멸을 맞이한 히라마 무리를 보며 그는 흥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탄의 위력이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바위 산맥에서 연습 삼아 쏠 때만 해도 그는 딱히 위력을 체감하지 못했었다.
타깃이 없었으니까.
해서 막연히 상상만 하고 있었는데, 유탄의 위력은 생각보다 더 강했다.
“많을 땐 이걸 써야겠네. 한 방이면 마나도 화염방사기보다 적게 들고. 여태 나 뭐 했냐.”
그의 눈빛이 희열과 흥분으로 활활 타올랐다.
이것만 있으면 뭐든 다 될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철저한 오판이었다.
이후 진행된 사냥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유탄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이전 사냥에서의 성공은 정말 단순한 뽀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더럽게 안 맞네. 거리 조절이 이렇게 안 되나?”
이렇게 좋은 무기를 두고도 제대로 쓰질 못하는 자신이 저주스러운 태정이었다.
하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무기의 사용이 반복되면 될 수록, 감은 잡힐 것이고 그때 가서 효율적으로 쓰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계속 사냥을 해 나가던 그는 어느덧 59레벨에 이르러 있었다.
하루 만에 19업.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만큼 말도 안 되는 레벨 업이었지만, 워낙 레벨이 낮았던 데다 상위 몬스터들만 상대하다 보니 얻어진 결과였다.
그리고 지금.
“잘 안 죽네, 이제.”
무적을 자랑하던 화염방사기로도 잘 죽지 않는 놈들이 등장했다.
이 던전의 대장을 제외한 최고 레벨의 몬스터.
도루마라는 메머드를 닮은 대형 몬스터였다.
무려 10초 이상을 지져야 뒈지는 놈들.
이 또한 다른 이들이 보면 복에 겨운 소리였지만, 무기의 특성상 마나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에 한 마리에 10초면 그로서는 손해를 보는 사냥이었다.
화아아아아-!
쿠아아악!
마지막 놈을 정리하고 있는 태정은 슬슬 돌아가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남아 있는 포션도 이제는 거의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
이윽고 화염에 뒤덮여 있던 거대한 도루마가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동시에 너무나도 반가운 알림음이 들려왔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m60 파워 기관총이 지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