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날이 밝았다.
새벽까지 커뮤니티를 샅샅이 뒤져 보던 태정은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린 그는 어제 계획한 대로 차를 몰아 북한산으로 향했다.
‘오래 걸릴지도 모르니까, 김밥이나 몇 줄 싸 가지고 가자.’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과 생수를 챙겨 산에 도착한 그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운 뒤 폐쇄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그렇게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발견된 새하얀 빛을 띠고 있는 게이트.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햐. 영롱하다, 영롱해.”
필드는 많이 다녀봤지만, 게이트는 생전 처음인 태정이었다.
애초에 이곳은 각성자만이 출입 가능한 곳이니까.
하지만 마냥 감동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완전 처음이기 때문에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사냥을 해야 할지 간단히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던 태정은 곧 게이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 순식간에 배경이 뒤바뀌며 이국적인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확히 설명을 할 순 없지만 외국의 고산지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넋을 잃고 풍경을 바라보던 그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진짜 마법 같네. 헌터들은 이런 세상을 보고 살았구나.”
솔직히 말해서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 현상이었다.
몬스터도 보고 각성도 해 보고 스킬이란 것도 써 봤지만, 여기에 비한다면 신기한 것도 아니다.
배경이 통째로, 그것도 찰나의 순간 바뀌어 버리다니.
그만큼 비현실적이란 뜻이었다.
하나 이것 또한 그가 앞으로 밥 먹듯 겪게 될 현상.
감동은 여기까지였다.
[이중 소환 -베레토 스팅.]
[미니건 발칸 소환.]
스킬을 이용해 양손에 권총을 한 자루씩 잡은 태정은 이어 왼팔에 미니건을 장착하고 이동을 시작했다.
던전의 분위기는 처음 그가 생각한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상쾌한 공기와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새파란 하늘과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들은, 정녕 이곳이 무시무시한 던전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칙칙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필드와는 전혀 딴판인 세상.
그래서인지 모르게 그의 기분도 한층 더 좋아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처음 보는 형태의 몬스터가 눈앞에 나타났다.
굽은 등에 뾰족한 귀, 앙상한 팔의 녹색 괴물.
어제 커뮤니티에서 본 것이 맞다면, 이놈은 고블린이란 몬스터였다.
“생각보다는 귀엽네? 다 몇 마리냐.”
태정은 사방으로 눈을 돌리며 놈들의 숫자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허접해 보여도 처음인 만큼 만전에 만전을 기하는 그의 모습.
그렇게 태정의 눈에 포착된 고블린은 총 열한 마리였다.
즉시 총구를 겨누며 전투에 들어갔다.
탕! 탕!
선제공격으로 날린 두 발의 탄이 멀뚱멀뚱 서 있던 고블린의 심장을 그대로 꿰뚫었다.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200을 획득합니다.]
[고블린의 귀를 획득합니다.]
‘고블린의 귀? 벌써?’
커뮤니티에서 본 대로라면 10만 원짜리 아이템이었다.
값은 저렴하지만 벌써 1개.
기분이 좋아진 그의 권총이 다시 빛을 뿜어 댔다.
탕! 탕! 탕!
연달아 울려 퍼진 작은 총성에 세 마리에 달하는 고블린이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그러자 나머지 고블린들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괴상한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어떠한 공격도 접근도 하지 않고 놈들은 계속해서 소리만 질러 댔다.
그리고 다시 한 마리의 고블린이 즉사하자, 남은 놈들이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기도 잠시.
재빨리 다시 총을 겨눠 보지만, 이미 놈들은 자취를 감춘 이후였다.
“뭐야? 이놈들 쫄보였어?”
태정이 얻은 정보엔 이런 상황이 없었다.
약체긴 하지만 고블린은 공격성이 짙어 인간을 보면 바로 공격을 한다고 적혀 있었다.
한데, 소리만 꽥꽥 지르다 도망을 가 버리다니.
‘내가 너무 강해서 감히 덤빌 엄두가 안 난 건가?’
태정은 굳이 놈들을 쫓지 않았다.
지금 달려 봐야 놈들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외골격 다리를 소환하면 일도 아니겠지만, 최대한 마나를 아껴야 하는 입장에서 저 3마리를 잡자고 그걸 쓰는 것은 낭비 중 낭비였다.
어디까지나 이 스킬은 목숨에 위협을 받을 때만 써야 하니까.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좌측 수풀에서 웬 덩치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제야 태정은 왜 고블린들이 도망을 갔는지 알 수 있었다.
‘오크인가.’
조금 전 놈들보다 훨씬 큰 덩치에 무기까지 들고 있는 녹색 괴물.
그의 생각이 맞다면 저것은 100프로 오크였다.
이 던전에서 중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놈들.
숫자는 둘이었다.
“두 마리 정도야.”
아까와 같이 태정의 총구에서 빛이 뿜어졌다.
오크니까 넉넉하게 두 발씩.
탕탕! 탕탕!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탄이 오크의 머리통과 가슴팍을 강타했다.
그러자 두 놈의 신형이 동시에 쓰러지며 알림음이 들려왔다.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600을 획득합니다.]
‘알림이 하나?’
의문을 갖기도 잠시.
죽은 듯 쓰러졌던 오크 한 마리가 벌떡 일어나며 태정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바로 2타를 준비했다.
탕탕! 탕!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600을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태정은 대자로 뻗은 오크를 유심히 바라봤다.
가슴팍에 한 발 그리고 어깨에 두 발, 머리통에 한 발이었다.
하지만 가슴은 뚫지 못했고, 어깨도 피를 흘리곤 있지만 유의미한 상처는 아니다.
놈을 죽인 건 눈알을 뚫고 들어간 한 발.
나머지 한 놈도 자세히 보니 비슷한 위치였다.
태정은 확인을 해 보기 위해 놈의 이마에 한 발을 가격했다.
탕!
역시나 뚫리지가 않는다.
그로부터 몇 번의 격발이 더 있었다.
탕! 탕!
세 번.
오크의 머리통은 권총을 기준으로 같은 곳 세 발을 맞고서야 함몰이 됐다.
즉. 원 샷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
“생각보다 단단하네. 여기 가슴에 상처는 거의 들어가지도 않았어.”
구멍이 송송 뚫렸던 고블린과는 차원이 다른 근육이었다.
오크까지는 한 방일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예상이 빗나가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냥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얼굴 위주로 쏘면 되지, 뭐.”
한 번의 전투로 놈들의 내구성을 파악한 태정은 다시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방을 경계하며 걷던 그의 시야에 무리 단위의 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충 봐도 십여 마리.
부담스러운 숫자에 태정은 바로 로봇 다리를 소환했다.
그렇게 기동력을 확보한 그는 바로 사격을 개시했다.
탕! 탕탕! 탕!
취익!?
태정은 최대한 놈들의 머리통을 위주로 사격을 가했지만, 사방에서 덤벼드는 터라 정확한 타깃을 노릴 수가 없었다.
“이크.”
어느새 들어온 오크의 방망이가 태정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런 뻔한 공격에 당할 그가 아니었다.
울프와 동고동락하며 괜히 난전을 치뤄 왔던 것이 아니다.
다리의 기동력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물러난 태정의 총이 다시 한번 빛을 뿜기 시작했다.
탕탕! 탕!
열심히 쏘고 있는 그였지만 달려드는 오크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대로라면 런을 해야 되는 상황.
결국 그는 나중을 위해 아껴 놨던 발칸을 활성화시켰다.
타타타타탕! 타타타탕!
굉장한 소음과 함께 빛의 탄이 사방으로 난사되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속사포에 다가오던 오크들이 벌집이 되어 쓰러진다.
공격력은 약하지만 연사가 커버를 치니, 아무리 질긴 근육을 가진 놈들이라 해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태정은 왼팔로 발칸을 돌리면서,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난 다른 두 놈에겐 권총을 난사했다.
타탕! 탕!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600을 획득합니다.]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오크를…….]
수많은 알림음이 찰나의 시간 지나갔다.
그 주변엔 방금까지 기세등등하던 오크들의 사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오크 한 개 무리를 박살 내 버린 것이다.
“햐. 이거는 거의 치트키네.”
발칸의 성능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대단했다.
관통력은 권총과 비교해 별 차이가 없지만, 연사력이 가히 경악적인 수준이었다.
그것은 사체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머리통이 완전히 사라진 놈부터 뱃가죽이 통째로 뜯겨 내장이 다 튀어나온 놈까지.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 와중에 포션 3개 들어간 거 실화냐. ”
그 짧은 시간 그가 사용한 포션은 3개.
돈으로 따지면 150만 원이었다.
사기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비용 소모 또한 크다는 뜻.
“여기서 돈 못 벌어 나가면 파산하겠는데?”
어지간한 숫자가 아니면 아껴야겠다 다짐한 그는 또다시 길을 나섰다.
이후 사냥은 아주 평탄하게 진행됐다.
고블린들은 최대한 마나를 아끼며 총으로 상대했고, 오크 역시 두세 마리 정돈 컨트롤을 통해 총으로 해결을 했다.
간간이 무리 단위의 몬스터가 나올 땐 발칸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 시간은 이전에 비해 매우 짧았다.
그렇게 묵묵히 사냥을 해 나가던 태정은 어느새 29레벨이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사냥도 얼마 안 한 거 같은데, 9업을 했냐.”
휴식을 취하고 있던 태정의 말이었다.
시야가 뻥 뚫린 언덕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있던 그는 인벤토리를 열어 지금까지의 수확물을 확인했다.
[고블린의 귀×62]
[오크 발톱×25]
[오크 연한 가죽×8]
“많이도 먹었네. 고블린 귀가 620만 원, 오크 발톱이 20만 원이니까, 500. 연한 가죽이 하나에 40, 320만 원. 총… 1,440?”
화이트 그라운드에 비해 확실히 괜찮은 수입이었다.
하지만 남은 포션으로 계산을 해 본다면, 태정이 생각한 만큼 크게 와닿는 수익은 아니었다.
현재 그에게 남은 포션은 7개.
복귀에 필요한 포션을 뺀다면, 4개 정도밖에 사용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 나가면 겨우 본전에서 약간의 이득을 가지는 정도.
마나가 너무 부족했다.
“이것만 해결해도 밤새서 사냥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안 되나?”
현재로서는 부질없는 고민이었다.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하던 태정은 다시 사냥을 하려고 일어섰다.
그리고 막 걸음을 움직이려는데.
그의 시선이 언덕의 아래를 향했다.
“음? 뭐야? 사람인가?”
태정의 시선은 골짜기에 가 있었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위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그 공간에, 십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물체.
미간을 좁혀 자세히 들여다보니, 성인 남성 몇 배는 되어 보일 법한 몬스터였다.
‘오거다.’
태정은 커뮤니티에서 본 놈의 생김새를 떠올렸다.
거리가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가리가 전투적으로 생긴 것이 분명한 오거였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걸 이렇게 보네. 좋겠다. 뿔 하나가 5천이라 했으니, 두당 500씩은 떨어지겠네.”
구경을 하기도 잠시.
‘근데… 왜 보고만 있는 거지? 설마 저거 위험한 건가?’
사람들에게선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열 명 정도면 진즉에 토막을 내도 냈어야 하는 상황.
그 말은 곧 그들이 위험에 처해 있단 뜻이었다.
“별수 없네. 내가 구해 줘야겠다.”
결심을 한 태정은 인벤토리에서 TRG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계획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