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새벽녘이 밝아 오고 있었다.
스킬까지 활성화시킨 태정은 자리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무리 각성을 했다 한들 무작정 움직일 수는 없는 일.
냉정하게 따져서 이곳의 몬스터들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클래스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전사 계열의 헌터들은 각성을 한 직후에도 한두 마리쯤은 거뜬히 사냥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가 들고 있는 총에 대한 능력치였다.
“그런데 이 속도는 뭐지?”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총의 속도는 심각할 정도로 다운그레이드된 상태였다.
물론 그가 총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역사 시간에 스쳐 가며 들은 것이 전부니까.
하지만 속도가 음속을 돌파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데 156km/h라니?
더군다나 사정거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10미터 남짓의 사거리는 더욱더 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과연 이 정도로 몬스터의 무지막지한 근육을 뚫을 수가 있을까.
“사정거리가 고작 10미터… 그럼 바로 코앞에서 쏴야 한다는 건데.”
계산을 해 보던 태정은 조금 전 시리우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대부분의 힘이 봉인되어 있을 것이라 했다.
성능이 이러한 것도 그것과 연관이 되어 있진 않을까.
“일단은 테스트를 한번 해 보자.”
고민해 봤자 답이 없음을 깨달은 태정은 날이 완전히 밝기를 기다렸다.
이후 조심스레 빌라를 나와 주차장으로 향한 그는 창문이 다 깨진 낡은 자동차 한 대를 발견했다.
‘타이어 정도는 찢어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건물을 빠져나오기 전부터 장전을 마친 그는 양손으로 총을 감싸 쥔 뒤, 총구를 바퀴에 정조준 했다.
거리는 눈대중으로 9~10미터.
만일 바퀴가 뚫리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고, 뚫리지 않으면 다시 생각을 해 봐야 한다.
그렇게 숨을 고르기도 잠시.
그의 검지가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꽝!
제법 큰 소음과 함께 총구에서 빛의 탄환이 쏘아졌다.
동시에 정확히 가격을 당한 타이어가 뻥 하며 소리를 냈고, 차가 들썩이며 차체 한 곳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대성공이었다.
‘오. 이렇게 간단하게 뚫려? 마법탄이라 그런가.’
총구에서 쏘아진 빛의 탄환은 그가 언젠가 봤던 전쟁 영화에서 본 것과는 많이 다른 이펙트였다.
아무래도 마나를 이용한 탄이라 그런지 일반적인 총알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파괴력도 보잘것없는 성능에 비해 괜찮은 편이었다.
몬스터의 가죽이 얼마나 질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고무로 된 타이어가 터질 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있지 않을까.
총의 위력을 확인한 태정은 자신에게 남은 마나가 얼마나 되는지 체크했다.
[190/200]
‘한 발에 10이니까, 현재 열아홉 발 남은 건가?’
이곳까지 들어오면서 본 몬스터의 숫자를 생각했을 때 빠듯한 마나였지만, 달리 다른 선택은 없었다.
“좋아. x발 한번 가 보자.”
결심이 선 그가 곧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첫 번째 골목에 진입한 그는 최대한 주변 기물을 이용해 은밀히 움직였다.
가뜩이나 쏠 수 있는 탄의 횟수가 열아홉 번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이보다 더 위험한 개활지를 거치려면 최대한 마나를 아끼며 이동을 해야 한다.
다행히 태정의 바람대로 시가지에선 몬스터를 마주치지 않았다.
문제는 사방이 뻥 뚫린 개활지.
여기서부턴 몸을 숨길 곳이 없기 때문에, 움직임에 있어 더욱 신중을 기해야 했다.
‘저쪽이었지, 아마.’
길은 하나였다.
그가 오고 갔던 길.
스윽.
손에 찬 땀을 바지에 닦은 태정은 다시 총을 단단히 고쳐 잡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해 뛰면서도 그는 사방을 경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남은 거리는 대략 3km.
이후엔 길이 끊어져 산을 타야 한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태정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시커먼 4족 보행의 괴물.
‘블락.’
초급 헌터들이 주로 사냥하는 놈 중 하나로, 이 레벨에선 제법 빠른 기동력을 가진 몬스터였다.
남아 있던 포터 중 다수가 놈에게 작살이 났으니, 태정으로선 두렵고도 부담스러운 놈이 아닐 수 없었다.
‘침착하자, 침착.’
점차 속도를 줄이던 그와 블락의 거리가 50미터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 정도면 제법 먼 거리에서의 대치였지만, 태정에게는 지옥의 문턱 앞에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말이 헌터들에게나 쉬운 놈이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포터였던 그에겐 무시무시한 괴물.
아차 하는 순간 끝장일 것이 분명하기에, 그는 최대한 놈의 행동을 주시하며 손에 든 권총을 꽉 움켜쥐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블락이었다.
근육질의 뒷다리를 바탕으로 땅을 박차며 달려오는 놈의 모습은, 가히 지옥의 사신이나 다름없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기괴해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럼에도 태정은 내심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총을 들어 놈을 정조준 했다.
‘한 발만 빗나가도 끝장이다.’
장비 정보에 의하면 이 총의 사정거리는 10미터.
최소한 그 반경 안으로는 들어와야 승산이 있단 뜻이었다.
더군다나 마나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사용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최소한 두세 발 안에는 승부를 봐야 한다.
탕!
한차례 소음이 일며 그의 총구가 들썩였다.
첫 발은 아쉽게도 불발이었다.
뒤이어 두 번의 총성이 더 울려 퍼졌다.
탕! 탕!
크앙!
운 좋게도 세 번째 탄이 놈의 몸에 정통으로 때려 박혔다.
하지만 피만 흘릴 뿐, 놈의 움직임은 전혀 멈추질 않았다.
그대로 블락의 동체가 태정을 덮치고 들어왔다.
순간 그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x발!”
탕탕탕! 탕탕!
쿠에엑!?
이번엔 효과가 있었는지 달려들던 놈의 신형이 철푸덕하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그리고 보이는 뒤통수의 주먹만 한 구멍.
동시에 낯선 알림음이 들려왔다.
[블락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20을 획득하셨습니다.]
“허억. 허억. x발. 죽는 줄 알았네.”
불과 1미터 앞에 놓인 사체를 바라보던 태정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1초만 늦었더라도 시체의 주인공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던 상황.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그가 사체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머리가 약점인가? 그보다 낭비가 너무 심했어. 대체 한 마리에 얼마를 쳐 바른 거야.”
뒤늦게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간발의 차로 목숨을 구한 그는 다시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달한 산의 초입.
‘이제 여기만 넘으면…….’
한 고비만을 남겨 놨다는 생각에 희망을 가지기도 잠시.
그는 곧 사방을 경계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개활지와 다르게 산속은 숨을 곳도 많지만, 반대로 시야가 좁아져 어떤 면에선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특히 상대가 몬스터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인간보다는 특화가 되어 있을 테니까.
그렇게 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앞에 한 몬스터 무리가 나타났다.
수십 가닥의 촉수가 넘실거리는 시꺼먼 괴물.
조장 김근태를 두 동강 냈던 미믹이란 놈이었다.
‘아저씨.’
순간 김근태의 푸근한 얼굴이 태정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챙겨 줬던 사람.
삼촌처럼 따르던 사람이기에 감정이 치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 현실은 별개였다.
미믹은 블락과 다르게 원거리형 몬스터.
블락보다도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놈이기 때문에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집중을 해야 한다.
‘놈의 촉수는 길어 봐야 3미터 남짓이야. 사거리만 따지면 내가 우위에 있어.’
정확히 쏴서 맞추기만 한다면 승산이 있는 싸움이었다.
주위를 한번 쭉 둘러본 태정은 먼저 선공에 나섰다.
그것은 실로 의외의 행동이었다.
쌩초짜인 그의 담력으론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
하지만 태정은 이것이야말로 최선이라 생각했다.
괜히 시간을 끌다 다른 놈들이 튀어나오면 그땐 정말 끝이기 때문이다.
탕!
첫 번째 탄환이 가장 앞서 있던 미믹의 머리통에 정통으로 틀어박혔다.
그대로 고꾸라지나 싶기도 잠시.
휘청거리던 놈이 촉수를 나풀거리며 태정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뒤에 두 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당황한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탕탕! 탕탕! 탕! 탕!
사력을 다해 뒷걸음질 친 그는 전력을 다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남은 탄이 얼마나 될지,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이미 그의 머릿속을 떠난 상태였다.
극한의 공포.
그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총을 난사했다.
다행히 그런 그의 간절한 공격에, 세 마리에 달하던 미믹이 시커먼 체액을 뿜으며 차례로 쓰러졌다.
[미믹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40을 획득합니다.]
“허억. 허억. x발! 개x같은 새끼야! 악! x발! 왜 내가 이런…….”
악에 받친 듯 그가 욕설과 함께 울분을 토해 냈다.
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태정은 이 상황이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실수 한 번에 자신의 목이 달아날 것이라 생각하니, 매 순간이 공포와 패닉이었다.
갑자기 누가 나타나 구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그만큼 절박하고 그의 심신은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로 인해 지쳐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할 일이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힌 그가 즉시 남은 탄을 체크했다.
[4/20]
“네 발? 이게 다야?”
뒤늦게 난사한 것을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괜히 재면서 쐈다간 골로 갈 수도 있는 일.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건 레벨 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마리만, 딱 두 마리만 잡으면 다시 마나가 풀로 찰 거야.”
평소 헌터들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리던 태정은, 이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산의 규모가 크지 않아 금세 정상을 찍은 태정은 곧장 한 길로 내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을 했을까.
드디어 그의 눈앞에 사람들과 처음 흩어졌던 집결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함께 미믹 2마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 한 마리씩 나오지.’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7미터, 아니 무조건 5미터까진 들어와야 안전빵이야.’
남아 있는 탄으로 놈들을 확실히 해치우려면 최대한 가까이 붙었을 때 쏴야 한다.
그만큼 위험은 하겠지만, 이후 탄이 떨어졌을 때를 생각한다면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즈음.
미믹과의 거리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좀 더, 조금만 더.’
손발이 떨리고 전신이 사시나무 떨 듯 요동쳤다.
당장이라도 총을 갈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는 공포심을 누르며 최대한 놈이 가까이 붙길 기다렸다.
단 한 발이라도 빗나가면 끝장.
그렇게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는, 정말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놈들이 근접했을 때 참고 있던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지금.’
탕! 탕!
시원한 총성과 함께 사납게 달려들던 미믹의 신형이 연이어 고꾸라졌다.
동시에 태정의 귓가로 반가운 알림음이 들려왔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ka-1소총이 지급됩니다.]
[새로운 스킬이 오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