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해가 지고 밤이 깊어졌다.
자연스레 귀가 밝아지고, 조그만 소리에도 몸이 예민해진다.
혹시 통화가 될까 싶어 몇 번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버려진 사냥터는 서비스 미지역으로 당연히 통신이 될 리 없지만, 그냥 가만히 있기엔 상황이 너무 절박했다.
그렇게 한참을 시도하던 태정은 배터리가 한 칸으로 내려가자, 전원을 아예 꺼 버렸다.
그리곤 집 안 가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내가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벌써 수십 번을 묻고 또 물은 말이었다.
자신의 대한 생사도 생사지만, 정작 큰 걱정은 따로 있었다.
부모도 없이 혼자 남게 될 동생.
그걸 생각하니 더욱더 심사가 복잡해지는 태정이었다.
어린 시절 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여동생과 단둘이 살게 된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장의 책임을 져 왔다.
그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동생만큼은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싶었다.
그것은 책임감이란 큰 짐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불우한 환경에 놓여 있던 그의 삶의 유일한 버팀목이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되어 이제는 성인이 되었지만, 애기 때부터 키워 온 동생은 태정이 보기에 아직까지도 지켜 줘야 할 존재였다.
‘안 돼. 아직은 죽을 수 없어, 절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태정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움찔.
경기라도 한 듯 몸이 한차례 들썩이며 그의 감긴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소리마저 먹힌 고요한 어둠.
한참을 그렇게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던 그는,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깜빡 졸았네.”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소변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볼일을 보고 있는데, 무언가 굉장히 이질적인 기운이 그의 감각을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엄청난 긴장감과 함께 심연 바닥으로부터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x 됐다. 뭔가 있어.’
한동안 굳은 석상처럼 가만히 있던 태정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빛?’
다행히도 그가 느낀 것은 몬스터 따위가 아니었다.
빛. 매우 미세한 빛이 천장의 틈 사이로 삐져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미약해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겨우 인지가 될 정도였다.
몬스터가 아님을 확인한 그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바지를 잡아 올렸다.
그리곤 조금 물러나 저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했다.
‘아까까진 없었던 것 같은데. 이런 폐건물에 어떻게 저런 빛이 있는 거지?’
한참을 고민해도 별다른 답이 나오지 않자, 그는 좀 더 가까이 가서 그것을 관찰했다.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정확한 위치는 천장에 붙어 있는 배관의 점검구였다.
큰 놈은 몰라도 작은 몬스터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
다시금 밀려드는 두려움에 발을 빼려던 그 순간.
어디선가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다.
“읍.”
너무 놀란 나머지 태정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동시에 식은땀이 흐르며 눈알이 사정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향해 다시금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겨울비 맞은 개처럼 떠는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군.
“다, 당신은…….”
-난 시리우스의 분신이다.
“시리우스… 의 분신? 그, 그럼 몬스터?”
태정은 인생 처음으로 바지에 오줌을 지릴 뻔했다.
조금 전 소변을 보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랬을 것이다.
마치 거미줄에 걸려 먹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나방이 된 기분이랄까.
‘어떡하지? x 됐다. 진짜 x 됐다고.’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누비는 가운데, 다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멍청하긴. 이 몸을 그런 하등 생물에 비교하다니.
“예?”
-잘 들어라. 걸려 있는 제약 때문에 자세한 소개는 할 수가 없지만, 난 널 해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 점검구를 열어 내부에 있는 초요석을 꺼내라.
“초요석이라뇨?”
-여기선 각성 물질이라고 하더군.
“그, 그럼 저 안에 각성의 돌이 있는 겁니까?”
-그래. 그러니 어서 열어라.
사내의 말에 태정은 다시금 점검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드는 자연스러운 생각 하나.
‘개구라 아니야?’
충분히 일리가 있는 생각이었다.
괜히 멋도 모르고 열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
그런 그를 향해 짜증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그냥 꺼져라. 너 같은 겁쟁이 놈에게 줄 바엔, 좀 더 기다리는 게 낫겠지. 내가 보니 너는 일찍 뒈질 팔자가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내 평생 숙원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겠지. 하필 가드에 막혀 떨어진 곳이 이런 냄새 나는 곳이라니, 재수 한번 더럽게 없군.
태정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었고, 은근히 말을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몬스터가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 저는…….”
-열지 않을 거면 말도 걸지 마라.
“아니, 그래도 서로 조금은 알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야 이, 멍청한 새끼야. 그냥 열라면 열지 뭔 말이 많아. 이 등신 같은 새끼가, 이 기회가 얼마짜리 기회인데. 네놈이 만 번을 죽어 만 번을 살아도 다시 없을 기회란 말이다.
이제는 욕설까지 하는 사내.
태정은 이 대화로 어느 정도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은 겁니까?”
-당연하지. 이 안에 들어 있는 초요석은 너희가 흔히 아는 보통의 초요석이 아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우습지만, 초우주의 역대급 걸작이라고 할 수 있지. 이것만 있으면 세상을 발아래로 두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그렇게 좋으면 당신이 쓰면 되지 왜 저한테…….”
-쯧쯧. 띨띨한 놈. 내가 초요석 그 자체인데,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것이냐.
“아. 그럼 진작에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지. 그건 그렇고 말도 걸지 말라더니, 보기보단 친절하시군요.”
태정의 느긋한 말에 시리우스의 분신은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인적이 없는 곳에 배치돼, 반포기 상태에 이르러 만난 인간.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해 금제까지 풀며 말을 걸었다.
이 인간을 놓치면 이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인간 아니랄까 봐 놈은 의심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제 허락된 시간이 얼마 없는데…….’
초조한 마음에 속이 타들어 가기도 잠시.
무언가 결정을 했다는 듯 태정의 입이 열렸다.
“좋습니다. 한번 믿어 보죠. 어차피 저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잘 생각했다. 너는 아마 나한테 고마워서 하루에도 백 번씩 절을 하게 될 것이다.
“살아남기만 한다면야.”
그 말을 끝으로 태정은 과감하게 점검구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엄청난 광량이 쏟아지며, 욕실 내부가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보이는 선명한 빛을 뿜는 자그마한 물체.
각성의 돌이었다.
“진짜였어…….”
무언가에 홀린 듯 돌을 바라보고 있던 태정은 손을 가져가 그것을 집었다.
그러자 돌에 서린 빛이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더니, 이내 알림음 하나가 들려왔다.
[메카닉 클래스로 각성에 성공하셨습니다.]
-드디어 됐군. 하마터면 기껏 만든 게 그대로 날아갈 뻔했어.
시리우스의 중얼거림에 태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이제 저도 헌터가 된 겁니까?”
-그런 셈이지.
“내가 헌터가…….”
-그런 감상에 젖을 시간 없다. 잘 들어라. 네가 각성한 직업은 사실 미완성의 클래스다.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힘이 봉인되어 있지. 하지만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한 편이니까.
“그… 제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런데, 봉인은 뭐고 구조적 문제는 또 뭡니까.”
-그것까지 설명할 시간이 없다. 이것 한 가지만 명심해라. 죽지 말고 살아남아라. 그리고 힘을 키워라, 최대한 완성형에 도달할 때까지.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특이점을 맞게 될 것이다.
“특이점요?”
-그래. 그리고 그때가 바로 억겁 숙원 역사의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예? 억겁 뭐요? 저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이해가… 좀 더 자세히 알려…….”
-내 말을 명심해라. 모든 건 네 손에 달려 있다. 모든 건…….
“저기요. 저기요?”
몇 번이나 그를 불러 봤지만, 더 이상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적막감만 맴도는 욕실.
“이게 대체…….”
비현실적인 대화 내용과 다시금 느껴지는 현실의 고요함.
괴리감이 너무 심한 나머지 슬며시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신이 미약해져 헛것을 본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드는 가운데, 그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스테이터스.”
클래스: 메카닉
등급 [측정 불가]
LV.1 경험치 200
공격력 [1~5] 방어력 [1~5]
관통력 [1] 명중률 [1] 마력 [200]
장갑 [0] 실드 [0]
“…진짜잖아.”
반투명하게 떠 있는 생생한 상태창.
의심할 여지없는 각성이었다.
안도를 하기도 잠시.
곧 그의 머릿속에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그런데 메카닉이란 클래스도 있었나?”
태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포터 짬 1년이면 모르는 클래스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등급과 레벨에 따른 차이만 있지, 분류되어 있는 직업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데 메카닉은 그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긴, 그게 대수냐. 지금은 모르는 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어디 보자. 장비부터 확인해야 하나? 인벤토리!”
평소 헌터들이 하는 걸 봐 왔기 때문에 그는 바로 장비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보이는 이질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물건 하나.
손을 가져다 대자 그에 따른 정보창이 떠올랐다.
베레토56 [권총류]
봉인된 속도 [156km/h]
탄환: 9mm 에너지 탄
사정거리: [10m]
기본 파괴력 - 120
“뭐야? 총… 이잖아?”
태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장비의 형태가 총을 닮아 혹시나 했는데, 진짜 총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화기의 가장 기본이 되었던 무기.
하지만 백여 년 전 이미 현대 화기는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두 번째 몬스터 아웃 브레이크가 발발했던 그날.
현대 문명이 자랑하던 모든 군사 장비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으로 인해 일시에 증발을 해 버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연스레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회귀.
문명이 통째로 회귀를 한 것이다.
3020년에서 2020년으로.
세상에 존재하던 첨단 이기들이 모두 사라지고 인류는 퇴보했다.
날고 긴다는 천재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 원인을 파악하려 해 봤지만, 누구도 이에 대한 단서를 잡지 못했다.
인류는 급한 대로 몬스터에 대항할 무기부터 복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리해서 나온 무기들은 작동을 하지 않았다.
그 흔한 재래식 소총마저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사용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현대 무기는 원인도 모른 채, 각성자들의 등장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벌써 회귀가 있던 시점으로부터 백여 년 전.
한데, 이 시점에 총이라니?
“이걸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만화에서만 본 것 같은데. 작동은 되는 건가?”
태정은 인벤토리의 총을 꺼내 손에 쥐어 봤다.
제법 묵직한 것이 보기보단 무게가 있었다.
총을 들고 있으니 우측 상단에 자그마한 창이 하나 떠올랐다.
[최초 격발 시 상단의 슬라이드 후퇴 전진]
[스킬 lv1 권총류 에너지 탄 활성화]
[방아쇠 격발]
철컥.
“이렇게 하는 거구나. 스킬 데이터.”
장전법을 익힌 태정은 곧장 스킬 창을 오픈했다.
[에너지 탄] lv1 [권총류]
마력을 이용한 탄알.
1탄: 10mp
*스탯에 따라 파괴력 증가.
“활성.”
[에너지 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적용 화기 - 베레토56]
“오. 그럼 이걸로 이제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