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9월의 늦은 오후. 그라운드 화이트 지역.
올해 28살의 청년 유태정은 포터였다.
포터.
흔히 헌터들을 따라다니며 몬스터의 사체를 수거하는 잡부를 뜻한다.
그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돈.
전문 기술이 없는 일당직치고는 제법 많은 돈을 주기 때문이다.
“아저씨, 이쪽에 한 덩이 남았는데, 저는 꽉 차서요. 남는 자리 있어요?”
“어. 이리 줘. 어이! 김씨, 이거 좀 받아.”
해체된 마지막 가죽을 팀원에게 넘긴 유태정은, 지게에 올려진 거대한 사체 덩어리들을 바라봤다.
오늘도 만만치가 않은 물량.
원래도 빡센 노동에 속하지만, 오늘은 더 빡셀 예정이었다.
생각보다 사냥감이 없어, 계획보다 훨씬 더 깊숙이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자자. 정리됐으면 다들 모이세요.”
팀장의 지시에 유태정을 비롯한 포터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후 간단한 인원 점검이 이어졌다.
“5팀까지 인원 이상 무! 1팀부터 출발하겠습니다!”
인솔자의 외침에 가장 선두에 있던 팀이 헌터들의 엄호를 받으며 필드를 빠져나갔다.
뒤를 이어 유태정이 속한 팀과 나머지 팀들이 움직였고, 그들의 모습은 점차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도시를 빠져나와 거점과 다리 역할을 하는 산을 타기도 잠시.
포터들의 얼굴에선 벌써부터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비교적 젊은 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우, 어깨야.’
수개월을 부지런히 다니며 이제는 적응이 될 만도 한 그였지만, 40kg 이상의 지게는 평범한 인간인 그에게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지금은 요령이 생기고 체력이 늘어 이 정도지, 처음에 그는 몇 번이고 낙오를 할 뻔했다.
“힘들지?”
후방에서 들리는 친근한 소리에 그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어? 아저씨, 오늘은 뒤에서 안 오시네요?”
“요즘 보약을 먹고 있거든.”
“보약이요? 보약이 그렇게 효과가 좋아요?”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좋긴 해. 이따 알려 줄 테니까, 생각 있으면 너도 한번 시켜 먹어 봐.”
“아유. 저는 괜찮아요.”
“인마, 돈 그렇게 벌어서 뭐할래. 먹는 게 남는 거야.”
그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걷기도 잠시.
태정은 드디어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산의 초입 부근에 도달했다.
그렇게 짐차에 지게를 실은 유태정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근데 왜 차가 이것밖에 없지?”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일이 마무리되기 전 모든 차량이 집결을 해야 정상.
한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태정은 인원들을 통제하고 있는 조장 김근태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그런데 왜 차가 이것밖에 없어요? 다 타려면 한참 모자라겠는데요?”
“아. 나도 방금 들었는데, 배차에 문제가 있었나 봐. 듣기론 다른 팀 실어다 주고 온다는데, 두 번으로 나눠서 갈 참인 모양이야. 일단 팀장이 알아보러 갔으니까, 곧 얘기가 있겠지. 그건 그렇고 너 이번 일이 마지막이지?”
“예. 동생 대학도 보냈고 빚도 다 갚아서요. 저도 이제 공부 좀 해서 직장을 가져 보려구요.”
“직장? 하긴 네 나이면 아직 창창하지, 이런 데서 썩기엔.”
“여기도 나쁘지는 않은데, 솔직히 이 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그래. 어제도 뉴스에 나왔더라, 여섯 명인가 죽었다고. 에휴. 나도 얼른 돈 모아서 작은 가게나 하나…….”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조율을 보러 갔던 팀장이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에이, x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잔뜩 화가 난 듯한 팀장.
그런 그를 향해 김근태가 다가가 물었다.
“또 무슨 일이에요?”
“에이전시에서 2중 배차를 했나 봐. 우리보고 후발대로 오라네.”
팀장의 대답에 이번엔 태정이 입을 열었다.
“후발대요? 그럼 우리 경호는요?”
“나도 몰라. 최대한 어필을 했는데도 그냥 막무가내식이네. 뭐 별일이야 있겠어? 여긴 그래도 사냥터랑 거리가 좀 있잖아.”
태정은 팀장의 대답에 뭐라 한마디를 하려 했지만 이내 마음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더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몇 명의 사람이 항의를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헌터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있는 수밖에는.
그렇게 모두가 떠나고 남은 건 이번 작업에 참가한 포터들뿐이었다.
유태정이 속한 1팀과 또 다른 업체에서 나온 2팀.
그 수가 무려 80여 명이었다.
“팀장님, 그런데 대충 언제 온대요?”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태정이 팀장을 향해 물은 말이었다.
“글쎄? 못해도 한 시간 안에는 오지 않을까? 그래도 시간만큼 연장 수당 받기로 했으니까 너무 인상 쓰고 있지 마라.”
“에이, 인상은요. 그냥 뭐랄까. 저희를 너무 무시하는 거 같잖아요. 얼마나 우스우면 우리가 타야 할 차를 다른 곳으로 돌려써요.”
“뭐, 그게 오늘내일 일이겠냐. 꼬우면 우리도 헌터를 해야지. 그래도 이번 에이전시는 큰 업체라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나구만.”
그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이 가길 기다리고 있을 때, 돌연 어디선가 고성이 울려 퍼졌다.
“악!”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모든 포터의 고개가 일시에 돌아갔다.
서로 말들은 안 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극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있던 상태.
그런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시커먼 촉수에 머리가 뚫려 죽은 사람의 시체였다.
“뭐, 뭐야?!”
“모, 몬스터다!”
경악을 하기도 잠시.
“뛰어!”
어디선가 들려온 외침에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체를 봄과 동시에 바로 반응을 했던 그는 비교적 다른 사람들보단 앞쪽에서 뛰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조장 김근태도 있었다.
“아저씨! 더 빨리 뛰어요! 이러다 죽어요!”
“가! 나 신경 쓰지 말고 일단 가!”
“아저씨!”
“가라고! 금방 쫓아간다니까!”
조금씩 뒤처지는 김근태를 보면서도 태정은 도저히 속도를 줄일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괴물의 발톱이 등 뒤에 내다 꽂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x발.’
태정은 작금의 현실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그 전에 자신들을 사지에 놓고 간 헌터들이 원망스러웠다.
지금 보이는 놈들은 가드 대여섯 정도만 남기고 갔어도 충분히 처리를 할 수 있는 놈들.
그런 놈들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x발 개같은…….”
철푸덕!
한차례 욕설을 내뱉던 그는 공중에서 떨어진 무언가에 흠칫하며 속도를 줄였다.
피투성이가 된 채 짓이겨진 사람의 시체.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본 그의 눈에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으악!”
“사, 살려……!”
“크악!”
함께 달린 인원들이 가장 후미에서부터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황망한 얼굴을 하기도 잠시.
바로 턱밑까지 쫓아온 김근태가 태정의 어깨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뭐 해! 인마. 달려! 죽고 싶어!?”
그의 고함 소리에 정신이 번뜩 든 태정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좌측 두렁에서 시커먼 것이 튀어나오더니 앞서가던 김근태의 신형을 순식간에 낚아채 갔다.
그렇게 하반신만 남기고 사라진 그의 신형.
“아, 아저씨.”
충격적인 광경에 순간 몸이 굳어 버린 그의 좌우로 또 다른 포터 둘이 추월해 앞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역시 발을 굴리려는데.
서걱-!
바로 코앞에서 피분수가 일더니, 막 앞을 나섰던 사내의 신형이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보이는 시커먼 괴수의 촉수.
“어. 어어…….”
그대로 굳어 버린 태정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운이 좋은 건지 눈앞에서 일렁거리던 촉수는 나머지 사내 하나를 향해 쏘아졌고, 그 틈을 타 태정은 발길을 돌려 우측 길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오직 살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을 반복했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게 자신의 끝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 그저 앞만을 보고 계속 내달렸다.
“헉. 헉.”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다리에선 경련이 일어난다.
담이 오고 쥐까지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극도의 공포심에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리던 태정은, 어느덧 헌터들이 사냥을 했던 곳까지 도달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려 산을 하나 넘어온 셈이었다.
‘아. 하필이면.’
쫓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태정은 이 절망적인 현실에 자신의 판단을 저주했다.
이 정도면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숨을 고르던 그는 이내 하늘을 바라봤다.
‘해가 지고 있어. 이제 어떡하지?’
이 일대를 쓸어버렸다곤 하지만, 사냥터는 사냥터였다.
초입에서처럼 또 어떤 변수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혹시 자신과 같이 생존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의 패닉 상태에 이르러 발만 동동 굴리던 그는 곧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몸을 숨겨야 돼.’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안전 확보가 시급했다.
마침 그의 시야에 적당한 건물 하나가 들어왔다.
다 부서지고 폐허가 된 이곳에서 그나마 상태가 좋은 빌라 건물.
조심스럽게 내부로 진입한 그는 2층부터 탐색에 들어갔다.
‘잠겼어. 여긴 문이 날아갔고.’
오래 방치된 사냥터의 폐건물답게, 내부는 몬스터의 침입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든 숨을 곳을 찾아야 했다.
태정은 최대한 은밀히 움직이며, 안전한 곳이 나오길 기도했다.
그렇게 탐색을 하기도 잠시.
3층에 올라서자마자 반쯤 문이 열린 곳 하나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숨마저도 죽인 채 거실을 슬쩍 훔쳐본 그는, 생각보다 내부가 멀쩡해 보이자 조심히 안으로 진입했다.
‘제발, 제발 없어라.’
다행히 그가 들어간 집은 몬스터의 침입 흔적이 없었다.
가구는 물론이고 TV조차도 깨진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래도 몰라 방 구석구석을 살핀 그는 내부에 위험 요소가 없자 다시 현관으로가 조심스레 문을 걸어 잠궜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안도의 한숨.
“후우. 일단 살았나.”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한 태정은 가장 먼저 방과 거실의 커튼을 모두 쳤다.
이후 먼지 가득한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그는 괴로운 듯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x발. 이제 어떻게 하냐.”
몸을 숨길 곳을 찾긴 했으나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조금 있으면 헌터들이 도착을 하겠지만, 과연 이곳까지 수색을 감행할까?
냉정하게 말해 확률이 희박했다.
이미 초입엔 시체가 깔렸을 것이고, 몰살당했다 판단을 내릴 게 불 보듯 뻔한 일.
“진짜 큰일이다. 여긴 이미 클리어 구역이라 다른 팀이 오지도 않을 텐데.”
절망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팀에 구조가 될 수 있단 희망이 있어도 문제였다.
그때까지 버틸 식량은 고사하고 마실 물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싱크대로 가 물을 틀어 봤다.
당연히 반응이 있을 리 없었다.
“나오는 게 이상하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정은 선반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였는데 이미 10년이 넘은 폐가에 먹을 것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걸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것이 확정 났다.
이제 말라 죽든, 굶어 죽든, 몬스터에게 죽든 그냥 죽는 일만 남은 것이다.
‘물 없이는 며칠도 버티기 힘들어. 여기서 초입까지가 십 리. 몬스터가 장악을 했다 가정했을 때, 다음 안전지대는 사거리 지나 큰 길이야. 최소한 삼십 리는 가야 한다는 소린데… 내가 맨몸으로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이 보통의 걸음으로 한 시간에 평균 5km를 걷는다.
조금 빨리 걷는다 해도 6~7km가 고작.
물론 죽자고 뛰면 한 시간 만에도 주파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로 태정은 포터 시험에 있는 3km 달리기를 13분에 주파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그 체력이 나올 거란 보장도 없거니와, 자세한 길도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가든 시간은 반드시 지체가 될 것이었다.
게다가 와중에 단 한 마리의 몬스터라도 마주친다면?
그길로 황천행 특급열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정은 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체력이 남아 있을 때 움직여야 된다는 사실을.
“생각을 하자,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