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푸른 행성 지구를 아는가.
이건 그곳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 * *
제1우주 일곱 번째 차원 파라만 제도.
왕좌에 정좌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사내의 정체는 7차원의 정점에 서 있는 시리우스.
차원을 관장하는 신이었다.
그런 그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여인은 3차원의 존재로, 이 역시 마찬가지로 그와 동급의 신 이리스였다.
그런 그녀가 시리우스를 보며 물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이리스의 물음에 시리우스가 모니터 속 푸른 행성을 가리켰다.
“저곳이 태왕 타이칸이 지정한 테스트 행성이라지? 시스템 코드명이 아포칼립스였던가.”
시리우스의 말에 이리스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어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건 네가 심연의 감옥에 갇히고 난 이후에 만들어진 시스템인데.”
“흥. 우주에 이 몸이 알지 못하는 일은 없지. 그 음흉한 자식, 날 처박아 놓고 잘도 이런 걸 만들었군.”
“그렇게 말을 하는 걸 보니, 너도 관심이 있구나?”
“관심이라기보단 저걸 어떻게 하면 박살을 내 버릴 수 있을지, 그걸 고민 중이지.”
시리우스의 황당한 발언에 이리스는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안 될걸? 저곳은 중앙 72좌의 힘조차 미치지 못하게 설계되었거든. 예전에 네가 건드렸던 어중간한 곳들하곤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야.”
“그 정돈 나도 안다. 아마 내가 나올 걸 대비해 그리 만들었겠지.”
“으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네가 지금까지 해 먹은 행성만 수십 개가 넘으니까.”
“그래서 나름 합법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생각이다.”
“합법적인? 네가?”
“듣자하니 차원 하나당 최고신은 클래스 하나를 출품할 수 있다더군.”
“맞아. 그런데 늦었어. 이미 웬만한 클래스는 다 들어가 있거든.”
“그건 네 생각이고.”
“설마, 저번처럼 또 이상한 걸 만들어 내려고 하는 건 아니지? 아까 말했다시피 저곳은 이전 테스트 행성과는 다르게 규격이라는 게 존재해. 마구잡이로 넣을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거지.”
“요점만 읊어 봐.”
“음. 우선 실존하는, 혹은 했던 것이 여야만 해. 물론 거기에 가공이 들어갈 순 있지만, 그 가공이 주체를 뛰어넘는 수준이면 불합격이야.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원리나 이펙트는 손을 볼 수 있지만 고유의 능력은 한계 이상으로 수정이 불가하다는 소리지. 게다가 일정 레벨까진 그 능력조차 제한이 걸려 있어. 레벨1에 소드 마스터나 워 메이지가 될 순 없으니까. 물론 이 부분은 크게 신경 쓸 거리는 아니야. 상한이 해제되기 전에 대부분의 클래스는 한계를 드러내니까.”
“그렇다면 별거 아니군. 넌 뭘 출품했지?”
“나야 우리 차원의 자랑인 마스터 테이머를 넣었지. 너도 알지? 테이머가 얼마나 대단한 직업인지.”
“다른 놈들은?”
“많아, 그것도 아주. 어지간한 클래스는 죄다 들어갔으니까. 그중에는 명칭만 다르고 겹치는 것들도 상당하지. 그래서 넌 뭐로 할 거야? 너희 차원엔 고대 마법이 성행하고 있으니, 마법 쪽으로 밀어 보는 건 어때? 그건 다른 차원의 마법하곤 또 다르니까, 네가 잘만 손보면 이번엔 명예의 전당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이리스가 그리 말하자 시리우스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명예의 전당? 아직도 그런 유치한 놀이를 하나.”
“신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니까.”
“한심한 놈들. 명색이 우주를 관장한다는 놈들이 한낱 게임 따위에 연연하다니. 역시 없애 버리는 게 좋겠어.”
“시리우스, 넌 정말… 3천 년을 살고 나왔는데도 여전하구나. 반성이 하나도 안 됐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심연에 떨어지면 100년도 버티기 힘들다고 하던데.”
“그건 네 알 바 아니고. 실존 했던 거면 뭐든 다 된다고 했나?”
“아마도? 뭐 생각하고 있는 거라도 있어?”
“있지. 저 쓰레기 같은 게임의 밸런스를 완전히 뭉개 버릴 수 있는 최고의 재료가.”
이리스가 자신의 차원으로 돌아간 뒤, 시리우스는 곧장 중앙 시스템에 접근했다.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은 각 차원에서 회수되어 영구 폐기시킨 데이터의 파편들이었다.
쉽게 말해 게임의 밸런스를 붕괴시킬 수 있는 1급 위험 요소.
[과거의 잊혀진 영광]
“이곳이었던가.”
중앙에 있는 신들만 접근이 가능한 카테고리였다.
시리우스는 원래 중앙 72좌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고위급 신이었다.
3000년 전 율법을 어기고 게임에 직접 참가를 했다가 강등이 되어 버린 비운의 존재.
태생이 장난의 신이었던 그에겐 가혹한 처사였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도 심했던 것이 그렇게 깽판을 놓은 곳만 무려 100여 곳.
무료한 삶의 유일한 즐길 거리가 망쳐진 다른 신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마지막 게임을 기준으로 그는 72좌 전원의 승인을 받아 심연의 감옥에 떨어졌다.
그날 이후 모든 권한이 박탈된 그였지만, 한때 중앙 시스템을 총괄하던 그였기에 쓰레기통 하나 뒤지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1차원 33A 마도공학자] 등급1.5
[4차원 24B-1 초월 네크로] 등급1
[6차원 1-1B 대마신] 등급1
[6차원 1-7A 제네럴 소드 마스터] 등급1
[9차원 16…….]
“많기도 하군.”
여기 있는 것 중 몇 개는 그도 알고 있는 직업이었다.
폐기할 당시, 태왕과 함께 작업을 했으니 모를 리가 있을까.
문제는 여기서 폐기된 데이터를 다시 복구하려면, 해당 차원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놈들이 이걸 내어 줄 리가 없지. 가만, 테스트 행성이 우리 차원인데, 저곳엔 그런 게 없었나?”
심연에 떨어지기 전, 그러니까 3000년 전엔 그런 것이 없었다.
그가 관장하던 7차원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이라면?
기대에 찬 눈빛으로 7차원을 스캔하자, 이내 하나의 카테고리가 떠올랐다.
[7차원 1-1 메카닉]
“오. 이게 뭐야? 우리 차원에도 이런 것이 있었군. 역시 시간이 흐르면 시대도 변하기 마련이지. 어디 보자 위험 등급 레벨이… 제로? 제로라고?”
측정된 레벨을 보던 시리우스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등급 제로라니?
그가 가진 상식으론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0은 오직 신들에게만 부여되는 숫자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폐기 된 데이터 - 13,049개]
[비고: 코어 회수]
[특징 시간 회귀 1000년]
[이유 - 심각한 밸런스 붕괴]
[이유 - ???]
“한낱 게임에 코어의 힘이 사용됐다. 거기에 행성 하나의 시간을 통째로 돌려놨어? 허. 이건 금기를 깨면서까지 작업을 했다는 건데… 대체 내가 들어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시리우스가 이리도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코어.
코어란 성도의 핵을 뜻한다.
우주에 있는 것 중 유일하게 유한한 물질이자, 차원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단 하나의 힘.
흔히 말하는 전지전능이란 힘은 모두 이것으로부터 나온다.
보통 차원이 붕괴되거나 성도가 위험에 처했을 때 꺼내곤 하는데, 그 엄청난 것을 한낱 게임에 처발라 썼으니. 그가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타임 워프까지 진행됐다.
이는 단순히 밸런스 붕괴만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밑에 이유가 진짜인 것 같은데, 놈이 지웠는지 볼 수가 없군. 그보다 카테고리는 하나인데, 왜 폐기된 데이터는 만 개가 넘는 거지? 저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직업이 저렇게 많다는 건가? 고작 3천 년 사이에 시스템을 망가뜨릴 정도의 직업이 저렇게 많이 나왔다고? 그것도 행성 하나에서? 아무래도 자세히 알아봐야겠군.”
며칠 뒤.
“햐. 이게 정녕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들이란 말인가.”
사라진 정보를 복구한 시리우스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아낼 수 있었다.
메카닉.
그것은 직업 따위가 아니었다.
현재 테스트 진행 중인 지구란 곳에 존재했던, 첨단 무기의 집합체였던 것이다.
그 성능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중앙의 72좌가 왜 측정 불가, 즉 등급 제로를 매겼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음속을 뛰어넘는 속도라니. 이거 하나만 있어도 거의 S등급이군. 그 잘난 소드 마스터도 이건 피할 수가 없지. 믿을 수 없는 건, 이게 가장 기본적이고 흔한 무기란 거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인간이 이 정도의 과학기술을 보유할 수 있었던 거지? 이건 마법의 발견보다 더 대단한 일인 것 같은데.”
솔직히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 일이었다.
여기 나와 있는 정보가 모두 사실이라면, 전 차원을 통틀어 지구의 인간들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특히 회수당하기 직전의 문명은 반신에 근접할 정도였는데, 이 당시 이들이 가지고 있던 대우주의 이론들은 정말 놀라웠다.
신인 자신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이론뿐인 허상이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것이 실체화된다면 이는 충분히 성가신 일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성도의 72좌가 판단하길 인간이 1억 년 안에 신의 지위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은 70조분의 1.
이 정도면 신들인 그들 입장에선 두려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굉장히 높은 확률이었다.
“이거였어. 놈들이 코어의 힘을 써 가면서까지 인간들의 힘을 뺏은 건. 도전을 해 올까 두려웠던 거야. 멍청한 놈들, 하지만 큰 실수를 하나 했군. 타임 워프까지 쓸 정도로 껄끄러웠으면 행성 자체를 날려 버렸어야지. 70조분의 1이라… 흥. 이 몸이 100단위로 끊어 주지.”
벌써부터 싱글벙글해진 시리우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가장 걸리는 것은 능력치였다.
이 능력 그대로 부활시켰다간 1차 가드도 통과하지 못할 확률이 컸다.
규격이 대폭 강화되었다고 했으니까.
아마 능력을 대폭 낮추고 시스템에 맞게 개조를 해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그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심연에 갇혀 지내며 굉장한 것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가 감옥에서 풀려난 지 5년.
“으하하하핫! 됐다. 드디어 완성했다. 드디어 이놈이 완성됐어. 이봐! 밖에 누구 없나?”
내성을 뒤흔드는 쩌렁쩌렁한 소리에, 대기 하고 있던 사내 하나가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 하리마, 마침 있었군. 지금 당장 중앙에 기별을 넣어라. 7차원의 주인 시리우스가 테스트 행성에 클래스를 출품한다고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뭐지?”
“차원의 균형이 무너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리마의 보고에 시리우스가 짜증이 난다는 듯 그를 노려봤다.
“그래서?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아, 아닙니다. 저는 그냥…….”
“쓸데없는 소리 말고, 기별이나 넣어. 한시라도 빨리 이걸 등록해야겠으니까.”
“예, 옛.”
잠시 후.
중앙의 승인을 받은 시리우스는 차원을 넘어 단숨에 성도에 도착했다.
성도는 클래스 등록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는 곳.
관리자의 안내를 받아 해당 룸에 입장한 그는 시스템 창에 자신이 만들어 온 데이터를 이식했다.
[클래스 등록에 대한 절차가 시작됩니다.]
[행성 지구.]
[코드명 아포칼립스]
[상태: 테스트-1]
[출품 차원: 1-7]
[전 우주의 데이터를 읽고 있습니다.]
[시험자의 데이터가 존재합니다.]
[통과 테스트가 진행 됩니다.]
[…72%의 데이터가 일치합니다.]
[…81%의 데이터가 일치합니다.]
[최대 수치로 인해 각성의 돌 1개가 선택되었습니다.]
[시험자의 데이터가 아포칼립스 메인 코드에 복사됩니다.]
[오픈 상점에 ***계열의 아이템이 추가 됩니다.]
[몬스터가 가지는 재료와 아이템이 새롭게 추가됩니다.]
[클래스 등록을 완료하셨습니다.]
[해당 클래스가 상용화됩니다.]
[각성의 돌이 랜덤 배치되었습니다.]
“역시 한 번에 통과군. 어떤 놈이 될진 몰라도 부디 살아남아 마음껏 휘저어 보거라, 그 날갯짓이 전 우주에 멸망을 도래할 수 있도록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