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오랜만이야 에일린
* * *
마왕의 측근들과 마주한 채 자리에 앉은 카산드라.
그 직후, 카산드라가 마왕에게 들은 내용은 앞서 그녀가 고민하고 있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팔콘 제국을 공격하고 있는 저들을 어떻게 몰아내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 쿠데타… 반란이 성공한 지금 시점에서 팔콘 제국은 안정화를 갖출 시간과 이를 위한 명분이 필요하겠지. 이를 위해서라도 카산드라 자네는 저 침략자들을 상대로 큰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말일세.”
“정확히 짚으셨습니다 폐하.”
현재 어린 황제를 끼고 있는 카산드라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명분이었다.
제국의 침략자들을 몰아낸다는 것은 단순히 국가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 이상으로, 어렵게 잡은 그녀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다진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상황.
그러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마왕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허면, 그 점에 대해서 우리가 도움을 주도록 하지. 우선 엘프 교국에 대한 부분은 우리들 쪽에서 외교적으로 손을 쓰도록 하겠네.”
“그… 그것이 가능 하겠습니까?”
현재 엘프 교국이 마왕국의 비 공식적인 속국 신세가 되었다는 것은 공공연연하게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실상 이 전쟁을 일으킨 주역인 저들이 이 시점에서 마왕의 이야기를 들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마왕은 진한 확신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말 했다.
“충분히 가능하네. 그 점에 대해선 우리를 믿고 기다려 보도록.”
흔들림이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마왕.
여기에 대해서 카산드라는 여전히 현실 적인 부분에서의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일단은 마왕을 믿어 보기로 하였다.
한 나라의 수장이 허언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동시에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마왕에게서 느껴지는 묵직한 카리스마는 그녀로 하여금 이 일이 성사될 수 있다는 신뢰를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엘프들을 폐하께서 처리해 주신다 친다면 남은 것은 마도국과 수인국일 것입니다만... 이들에 대한 마왕 폐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수인국의 경우는 그렇게 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어차피 녀석들은 엘프들의 도움이 없으면 공성전을 이어나가는데 여러모로 무리가 따를 테니까.”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저희들의 다음 목표는 마도국이 되겠군요.”
“쉽지 않은 상대이지만 지금 우리의 전력으로는 충분이 해 볼만 하겠지.”
현재 북쪽에서부터 빠르게 남진을 이어가고 있는 마도국.
지금까지 제국에 비해 한 단계 아래로 평가 받아 왔던 사실이 무색하게, 그들의 군세가 보여주고 있는 힘은 절대로 만만하게 여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
“현재 제국 영토에 침입한 마도국의 병력은 총 병력은 3만. 그 중 일부는 주변으로 흩어져 작은 마을 이나 개척지들을 점령하고 있고, 본대는 여기 이곳 마케도니아를 향해 내려오고 있는 중입니다.”
마케도니아.
제국 제 2의 도시이자 황도로 통하는 가장 큰 관문으로, 이곳이 뚫리면 그때부터 이곳 울림푸스로 통하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된다 할 수 있었다.
“역시 이곳에서 일전을 벌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방어에도 용의하고 그 중요성 또한 말할 필요가 없는 곳이니까요.”
“알았네. 그리 하도록 하지.”
그렇게 앞으로의 일에 대한 방향성을 정한 직후,
카산드라는 그대로 이를 행동에 옮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놈들이 도착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렇다 해서 여유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상황.
거기다 이 순간, 카산드라는 자신의 또 다른 동업자의 불만을 가능한 빨리 해소해 줘야 하는 것도 있는 만큼 가급적 빨리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리고, 한가지 더.”
“네?”
일 순간 무언가 분위기가 바뀐 목소리로 카산드라에게 이야기를 하는 마왕.
이에 대해서 카산드라는 자동적으로 의문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런 그녀를 향해서 마왕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무언가 진한 한기가 느껴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내 개인적으로,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된 자네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고 싶네만. 가능 하겠는가?”
“부탁… 말입니까? 그게 무엇인지요?”
부탁이라는 말로 운을 때기 시작한 마왕.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순간 카산드라는 자동적으로 자신이 여기에 대해 거부할 권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까지 손을 써주고 있는 상황에서 마왕이 무언가 요구를 한다는 것은 그 정도의 무게가 담겨 있다는 뜻이기도 하였기 때문.
그렇게 혹 정말로 엄청나게 무모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카산드라는 마왕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를 향해서,
마왕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묵직한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그렇게 긴장할 것은 없네. 난 단지 한 사람의 신원을 넘겨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니까. 개인적으로 볼일이 있는… 어떤 계집의 신원을.”
“!”
*
테베에서 거주하고 있는 대신관 에일린.
이 순간, 갑작스럽게 내려진 황제의 부름에 대해서 그녀는 일단 서둘러 말을 몰아 황도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으나…
그렇게 이동을 하는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녀의 이 선택에 대한 의문의 감정이 깊게 자리잡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소환이라니…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며칠 전 황도에서 벌어진 한 바탕의 소동에 대해선 그녀도 어느 정도 아는 바가 있었다.
실제로 이곳 테베에서도 황도 상공에 나타난 붉은 용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그 여파로 인해 황도 내에서 황제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나마 그 직후 군대를 이끌고 온 카산드라 장군이 상황을 수습하고 새로운 황제를 즉위시키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이 혼란스러운 정국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이 완전히 가라 앉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내려진 에일린에 대한 소환 명령.
황제의 인장까지 찍혀 있는 칙령에 에일린은 일단 복종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에 그녀는 의문과 불안,
그리고 생각할수록 점점 더 커져가는 기대감을 품은 채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객관적으로 카산드라 장군과는 그럭저럭 괜찮은 사이였잖아? 이 시점에서 그녀가 나에게 해코지를 할 이유 같은 것은 없지. 그런 점에서 보면 어쩌면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 중책을 맡기려 드는 게 아닐까? 지금 같은 상황에선 한 명이라도 더 유능한 인재가 필요한 법이니까…’
비록 과거에 비해 많이 쇠하긴 했지만, 대신관으로서 나름대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에일린.
그런 만큼, 그녀는 불안정한 최고 권력자가 된 카산드라가 그녀를 이용해 민심을 다잡으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내 입장에선 잘된 일이야. 기왕 이렇게 된 거 권력자에게 빌붙어서 못 이룬 부귀 영화를 누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되면 분명 토라레도…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멋진 남자도 만날 수 있을지 몰라.’
그렇게 불안감을 뚫고 나오는 진한 기대감에 사로잡힌 채, 에일린은 점점 더 빠르게 말을 몰기 시작했다.
저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행복을 한시라도 빨리 잡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렇게, 일반적인 시간 보다 반나절 정도 일찍 황도에 도착한 에일린.
그 직후 그녀는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곧바로 황성으로 향하였다.
“대신관 에일린이다. 카산드라 장군님을 뵈러 왔으니 안내하도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말에서 내린 에일린을 보면서 정중하게 안내를 하기 시작하는 병사.
이에 그녀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의 곁을 따라 황성 안으로 들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진한 기대감.
처음의 불안감은 오간대 없이, 이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행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에일린은 그대로 병사가 안내해준 장소의 방문을 열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
다음 순간, 뒤쪽에서 문이 굳게 닫힘과 동시에
그곳에서 그녀가 마주하게 된 인물들을 보면서 에일린의 얼굴은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방안에서 자리를 잡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절대로 그녀가 처음 본 이들이 아니었으나… 동시에 그들이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겐 어마어마한 위화감을 안겨 주기 충분했다.
“뭐… 뭐야? 네… 네놈들은 마족? 너…너희들이 어떻게 여기에? 거…거기다… 너…넌…설마..?”
검은 갑주를 입은 채 흉흉한 기척을 발하고 있는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의 곁에 함께 서있는… 익숙하지만 동시에 이질적인 느낌을 안겨주고 있는 인물.
그녀의 얼굴을 알아봄과 동시에, 에일린의 입에선 그대로 떨리는 목소리로 그 사람의 이름이…
그녀가 내 버렸던 옛 동료의 이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멜….다?”
“오랜만이야 에일린. 그 동안 잘 지냈는지 모르겠네?”
“네… 네가 여긴 어떻게… 거기다 그 모습은… 설마 다크엘프?”
이미 죽은 것이라 여겼던 존재가 너무나도 다른 모습으로 서 있는 상황.
그 사실에 진한 충격을 받은 에일린은 그대로 몸을 떨기 시작했으나…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아멜다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겨우 이 정도로 그렇게 충격을 받으면 안되지. 안 그래도 이 자리엔 너한테 볼일이 있는 사람들이 더 있는걸?”
“무…. 무슨…소리를…!!”
이해할 수 없는 아멜다의 말에 한층 더 진한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 에엘린.
그리고 다음 순간,
그런 에일린의 눈 앞에선 한 사람이 천천히 착용하고 있던 투구를 벗기 시작했다.
“!! 무… 무슨…”
“크르르르릉….왈! 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