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이게… 나?
* * *
자신을 여성으로 만들어 달라며 머리를 숙이고 있는 아킬레스.
제국 최강의 전사 중 한명인 그의 부탁을 들으면서, 엘리사는 당혹감이라는 감정을 어느 정도 정리한 뒤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 녀석이 제법 불쌍한 삶을 살았다는 건 나도 인정해야겠지. 하지만 단순히 동정심 만으로 일을 진행하기엔 이 기회가 너무 아까워.’
눈 앞에 있는 사람은 팔콘 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
순수한 전투력만 따지면 엘리오스 보다도 강했으며, 냐단 조차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못해도 전 대륙 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힘을 지닌 실력자, 그런 녀석의 부탁을 이대로 순순히 들어줄 수는 없지.’
비단 그녀 개인의 이익 때문만이 아닌, 국익을 위해서도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그렇게 결정을 내린 직후,
엘리사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그 남자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널 여자로 만들어주지. 하지만 그 대신, 넌 앞으로 우리 마왕국의 백성이 되도록 해.”
“마…마왕국의?”
엘리사의 말에 살짝 당혹감을 내보이는 아킬레스.
그러나, 이내 그는 그녀가 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즉… 앞으로 나보고 마왕국의 일원으로서 마족들을 위해 살아가라는 뜻인가… 과연 세상에 공짜는 없다더니 조건 자체가 만만치 않군.’
과거에 마족들을 상대로 가차없이 검을 휘둘러왔던 그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아니,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듣는 즉시 상대의 머리를 쳐버렸을 지도 모르는 말 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여러모로 인생 전반에 걸친 환멸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인 아킬레스에게 있어서 엘리사의 이야기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어차피 난 제국에 삶을 정리할 생각으로 이 자리에 왔다. 그렇다면 기본적인 국적부터 다르게 하는 것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겠지.’
마족들의 국가인 마왕국에서 소수이지만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거기다 대중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마왕국 내부에서 마족과 인간의 차별 같은 것이 의외로 전무하다는 사실은 제국 3기사의 일원이자 황제의 최 측근이었던 아킬레스 입장에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마족들은 인간들에 비해 교활할 지언 정 신의를 저버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게 기왕 과거를….
자신의 권력과 명성.
그리고 지금도 바지 사이에 달려 있는 소중한 것까지 모두 버리기로 한 것 이 참에,
팔콘제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까지 완전히 내던지기로 결정하면서,
아킬레스는 눈앞이 있는 엘리사를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다. 너의 말대로. 나의 성별이 바뀌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마왕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겠다.”
“좋아. 그럼 바로 준비하도록 하지. 작업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지만 그 전에 처리해야 할 것들이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계약 성립의 의미에서 손을 내미는 엘리사와 이를 붙잡는 아킬레스.
비록 한때는 서로의 목을 노리는 적이었으나, 이처럼 기묘하기 그지 없는 이유에서 손을 잡게 된 이 상황에서,
그들의 머릿속에는 공통적으로 다시 한 번, 세상 일이라는 것이 참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무수한 사선을 넘어온 그에게 있어서도 너무나 이질적이기 그지 없는 감각.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기묘하면서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순간이 끝난 뒤.
그대로 아킬레스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던 인물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으음…기분이어때?”
어쩐지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하는 시술자.
엘리사.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킬레스는 혹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자신의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인식된 것은 어쩐지 허전하기 그지 없는 아래쪽의 감각.
실제로 이 순간 그의 소중한 그곳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으며,
그곳에는 아킬레스도 익히 알고 있는 작은 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느껴지는 것은 일전에는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묵직한 감각.
그 감각의 근원은 고개를 내려다 보면 배꼽이 안보일 정도로 큼직한, 마치 수박 같은 과실을 연상시키는 것 같은 한 쌍의 거대한 덩어리였다.
‘…그래도 나름 여자 가슴은 좋아 했다만… 설마 이런 식으로 가지게 될 줄은 몰랐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슬쩍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기 시작하는 아킬레스.
아무래도 타인의 무언가가 아닌 자신의 것을 직접 만져보는 것인 만큼 그 느낌은 사뭇 달랐으나.
그럼에도 일단 남자였던 입장에서 봤을 땐 상당히 훌륭한 가슴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몸에 대한 확인이 끝난 뒤,
아킬레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눈앞에 있는 엘리사를 보며 말했다.
“괜찮은 것 같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익숙치 않은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
그것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면서 아킬레스는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고.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혹 문제가 있으면 말하도록 하고.”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방을 나선 엘리사.
평소 그녀를 알고 있는 입장에선 이 순간 엘리사의 행동에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겠으나,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아킬레스는 그대로 별 생각 없이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거울을 들어 그의 모습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게… 나?”
*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아킬레스가 사라졌다니.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 그것이… 죄송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말 그대로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유하고 있던 재산조차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분해버렸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 황도를 완벽하게 떠난 것 같습니다.”
“으음…”
부하들의 보고에, 카산드라는 그대로 인상을 찌푸리며 사뭇 불안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일시적으로 손을 잡긴 했지만 사실상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아킬레스.
사실상 중간에 꼽사리를 끼면서 어부지를 취한 입장인 그녀와는 달리,
아킬레스는 처음부터 저 아문이라는 자를 숭배해왔으며 황도를 장악하는데 까지 성공한 장본인이었다.
이미 지금까지의 행적을 통해 그 명석함과 교활함이 충분할 정도로 입증된 인물이자, 제국 내에서도 여전히 따르는 이들이 많은 장본인.
카산드라의 입장에선 이런 아킬레스가 아무리 권력에 관심이 없는 듯 보이고 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늦출 가 없었다.
‘설마… 이대로 다른 지역으로 숨어 들어가 세력을 키운 뒤 나를 몰아낼 생각을 하는 건가? 하지만 황도를 점령하고 있던 시점에서 딱히 그런 귀찮은 짓을 할 이유는 없는데…’
그렇게 아킬레스와 관련해서 여러모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 카산드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산드라는 자신이 아킬레스의 일에 오래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팔콘 제국의 눈 앞에는 당장 처리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놓여 있다는 것을, 이제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된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지, 여러모로 찝찝하긴 하지만, 마지막에 직접적으로 권력을 놓아 버린 만큼 그를 신경 쓰는 건 나중으로 미루는 수밖에. 지금을 일단 저 녀석들을… 마도국 놈들과 엘프 교국, 그리고 수인국을 몰아내는 일이 집중할 수밖에 없겠어.’
비록 황제는 죽임을 당했고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긴 했지만, 여전히 팔콘 제국은 사방에서 공격을 진행하고 있는 적들을 막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 아문이라는 사기적인 힘을 지닌 존재를 이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재 카산드라에게 있어서 저것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도, 하늘로 승천한 그것에 연락을 취한 수단도, 아울러 그에 대한 정확한 지식도 전무한 상황이었다.
‘아킬레스가 있었다면 어느 정도 방법을 짜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선 무리겠지. 솔직히 저자가 불륜을 싫어하고 그것을 자행한 녀석들을 몰살 시키는 힘을 지녔다는 사실 이외엔 나로서도 아는 바가 없으니까.’
그렇게, 아문 신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보류한 채, 카산드라는 현재 그녀가 운용할 수 있는 힘만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거느리고 있는 병력은 총 2만, 거기다 마왕국의 지원군과 헬레나까지 합할 경우 순수한 전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야. 문제는 이 병력으로 어떻게 저들을 몰아내느냐 하는 것인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적들이 사방에서 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것.
어느 한쪽에 힘을 기울일 순간 반대쪽이 빠르게 무너질 우려가 있는 이 시점에선 섣부르게 병력을 이동시키는 것 가체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아울러 비록 꼭두각시를 세운 덕에 반란 까지는 아니더라고, 당장 황제의 죽음으로 인해 흉흉해진 민심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
그렇게, 카산드라가 여러모로 고민에 사로잡혀있던 그때였다.
“장군님, 마왕 폐하와 그의 측근들께서 오셨습니까?”
“마왕이? 안으로 모시도록 하라.”
약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마왕의 방문.
이에 카산드라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들을 맞이하였다.
'응?... 어쩐지 한 명이 더 늘어난 것 같은데...'
마왕과 그의 측근들 사이에 보이는,일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같은 여성조차도 놀라게 만들 정도의 미색을 지니고 있는 인간 여성.
이에 카산드라는 약간의 의문을 느끼면서, 혹 그사이에 마왕이 이곳에서 첩이라도 한 명 들인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일단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마왕 폐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