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나와 꼭 닮은 그녀석을 보면서...
* * *
뜬금없이 나타나 자신이 여자가 되어버렸다 선언을 한 친구, 안토니우스.
아니, 이제는 클레오파트라 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안토니우스가 아니고선 알 수 없는 몇몇 이야기들을 통해 아킬레스로 하여금 진실을 믿도록 만들었다.
“어때? 이쯤 하면 조금 믿을 수 있겠어?”
“으음… 뭐… 그 정도 까지 알고 있다면 오히려 의심하는 게 더 문제가 되겠지.”
과거 친우로서 오직 둘만이 알고 있던 비밀을 물 흐르듯이 이야기한 클레오파트라.
이에 대해서 아킬레스는 진한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결국 눈앞에 있는 남자가 그가 알고 있던 안토니우스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자 그럼, 간만에 만났는데 술이나 한잔 할까? 여기에 온 목적도 그것이고 말이지.”
“…하긴 너라면 그렇게 말하는 게 정상이겠지. 그런 점에선 여자가 되었어도 의외로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군.”
“후후,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나는 나이니까.”
그렇게 자신을 보며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친구의 모습.
이를 보면서, 아킬레스는 그가 변한 것은 단순히 성별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일단은 가져온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럼, 어디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 수 있겠는가?”
“물론이지, 안 그래도 근황보고를 할 생각으로 온 것이니 하나하나 전부 말해주지.”
그 말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안토니우스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같은 아문의 신도로서 그에 대한 소식이 끊긴 시점,
셰계수를 처리하기 위한 계획 진행하기 위해 엘프 교국 교황의 딸 옥타비아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결국 실패한 때부터였다.
그곳에 있던 마족 친위의 일원인 엘리사에게 잡혀 무자비한 고문을 받은 안노티우스.
그리고 그 끝은 결국 그녀에 의해 여성의 몸이 되어 이런 저런 잔혹하면서도 너무나도 농밀한 방식의 쾌락을 경험하는 것이었으며, 그 결과 그는 결국 몸도 마음도 엘리사에게 완벽히 굴복하고 말았다.
그렇게 듣는 입장에선 절대로 좋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친구의 근황 보고에 자동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된 아킬레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었을 것이라 추측했던 벗을 이런 식으로라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더불어 진한 씁쓸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일단… 그래도 어쨋든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게 점은 다행이다만, 그래도 그렇지 그 엘리사라는 마족도 정말로 악취미로군, 아무리 고문을 위해서라지만 설마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버릴 줄이야.”
단순히 고통을 받는 수준이 아닌 전반적인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어 버린 클레오파트라의 삶.
성별의 변화와 함께 외모가 완벽하게 바뀌면서 지금까지 이뤄왔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삶의 방식 또한 그 근본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 그녀의 삶은, 오랜 친구인 아킬레스로 하여금 여러모로 무거운 기분을 느끼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아킬레스에 대해 클레오파트라는 오히려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예전보다 더 좋아졌는걸?”
“뭐?”
의외의 이야기를 하는 클레오파트라의 말.
이에 아킬레스의 얼굴에는 의문의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고…
그런 그를 향해서 클레오파트라는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친우에게 말을 했다.
“사실이야, 지금 난… 과거에 비하면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어. 무거웠던 의무감에서 벗어나 오직 욕망에만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생… 지금까지 강제적으로 얽매여야 했던 모든 틀에서 해방된 기쁨이 얼마나 큰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거야.”
“그… 그런가?”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하는 클레오파트라의 말.
지금껏 복수심과 증오 그리고 이에 대한 의욕만을 지니고 있던 때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으며 입가에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이글거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선 심상치 않은 광기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르는 장면.
그러나,
그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킬레스는…
비록 종족은 다르지만 오랜 시간 뜻을 함께했던 동지이자 가장 친한 친우이며,
동시에 자신은 그자와 같은 동류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아킬레스만큼은,
단순히 그녀의 모습을 모진 고문의 결과 나타난 광기 같은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심한 고문을 당했다 해도 안토니우스의 마음이 그렇게 쉽게 꺾였을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가 당했던 짓들이 정말로 그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이라 할 수 있겠지. 지금의 나하고는 달리…’
삶의 목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공허함과 괴로움 속에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아킬레스.
반면, 궁극적인 목적은 이루었다 할 수 있지만,
개인적인 부분에 있어선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행복하기 그지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던 마음에 맞는 친구의 이런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아킬레스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삶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저.. 안토니우스… 아니, 클레오파트라. 지금의 그 삶이 그렇게나 행복한가?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성별마저 바꾼 채 살아가는 것이?”
“그래,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자잘한 것에 얽매여 왔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이다. 비록 아문님의 일을 완벽히 수행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그분의… 엘리사님의 은총을 받으면서 얻게 된 행복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때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너에게도 권유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지.”
“…그런...가…”
비록 성별도 외모도 바뀌긴 했지만, 자신과 동류였던 그 사람의 말은 아킬레스의 마음 속에 쐐기와 같이 깊게 박히기 시작했다.
특히, 지금과 같이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선.
차라리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황제와 아내였던 여자가 죽으면서 더 이상 복수를 할 대상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딱히 권력을 잡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피를 뿌리고 다니는 것도 지겨워 졌으며, 다시 여자를 만나는 것은 이제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이대로 방탕하게 술에 찌들어 서서히 망가져 가는 폐인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사양하고 싶은 것.
아울러,
비록 그가 철저히 권력과 담을 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해도,
상황에 따라선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자신을 카산드라가 제거하려 들지 모른다는 생각을 아킬레스는 아주 안 할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면서 위험하기만 한…
오직 불행만으로 얼룩져 있는 그의 인생.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킬레스의 머릿속에 깃들기 시작했으며,
이에 그는 그렇게 길을 잃어 버린 상황에서 행복이라는 것을 잡은 듯한 친구의 모습을 보며.
자신 또한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결심이 마음 속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설령… 이 뒤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불행이 있다 해도. 말라 죽어가는 고목과 같은 인생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결단을 내린 직후,
아킬레스는 그대로 조심스럽게, 눈 앞에 있는 친구에게 말을 하였다.
“저기… 클레오파트라. 혹시 말인데.”
*
“….뭐?”
마왕국의 사천왕 중 한 명이자 친위대장인 엘리사.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는 제국 3기사의 일원인 아킬레스를 보면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아니… 잠시만, 그러니까 지금 뭐라고 그랬어? 그러니까… 나보고 당신을… 여자로 만들어 달라고?”
“…그렇다. 할 수 있겠는가?”
“…미친거 아니야?”
“확실하게 제정신이다. 다만 지금 당장이라도 죽어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삶이 지긋지긋해졌다는 점에서 아주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
농이나 다른 떠보기 같은 것 따위가 아닌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하는 아킬레스.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제국 3기사라는 인간이 어쩌다 이리 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자신의 노예 2호인 클레오파트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야, 니 친구라며. 어디 설명 좀 해봐. 이 인간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데?”
“그것이 말입니다 주인님.”
엘리사의 명령에 따라 상황 설명을 하기 시작하는 클레오파트라.
나름대로 아킬레스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이어진 그녀의 서술에,
엘리사는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그렇게 정상은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자의 사정을 고려하면 아주 공감이 안가는 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불륜이라는게 남자 속을 완전히 찢어놓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을 줄이야. 뭐… 사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아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긴 하지만 서도…’
당장 엘리사 본인만 해도 얼마 전 용사로부터 실연 아닌 실연을 당한 입장에서 사랑의 아픔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그것은 일방적인 짝사랑이었으며, 채 열매를 맺어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 버린 만큼 어느 정도 치유는 가능했으며, 아울러 배신감 같은 감정도 일절 없었다.
그러나,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는 기껏 사랑을 이루어 결혼까지 했음에도 그것이 갈기갈기 찢겨져 버리는 참혹한 경험을 하였다.
그 아픔은 분명 엘리사의 그것보다 몇 배는 더 끔찍하기 그지 없을 터.
그렇게, 살짝 맛이 간 것과는 별개로 일단 여러모로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엘리사는 잠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내 마음 속으로 이런 저런 계산을 끝낸 결과 결정을 내린 엘리사는.
눈 앞에 있는, 자신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전사인 이 남자를 보며 말했다.
“…좋아.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아!”
“하지만, 그 전에 조건이 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