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신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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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디 대화를 나눈 끝에 그대로 황제를 끔살 해버린 아문.
말 그대로 신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 한 그의 가차없는 위용과 더불어 순식간에 지도자가 사라져버린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 용기를 쥐어 짜내 황도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더 이상 저항할 여력을 잃은 채 그대로 자리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시… 신… 이시여…”
“부… 부디 저희에게 자비를…”
하늘 위에 떠있는 붉은 용을 향해서 간절함을 담아 기도를 올리며 애원하는 인간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기도에 일절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아문은 그대로 자신의 몸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며 광오한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세상이 정한 올바른 정도를 거스른 추악하고 어리석은 자들,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심판을 내리겠노라!"
그 말과 함께 아문의 몸에선 그대로 빛 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에서 뿜어져 나온 그것 하나 하나의 크기는 거의 사람 만한 정도.
이어서 그 무수한 빛의 덩어리들은 지상에 가까워 지면서 하나의 형체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마치 날개 달린 사자 혹은 늑대와 같은 신수의 모습을 지니게 된 빛 덩어리들.
그렇게 지상에 내려 앉은 무수한 짐승들은 마치 먹잇감에 이끌린 사냥개와 같이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
황도에서 사냥꾼으로 일하고 있는 인물 암피테리온.
과거 수많은 짐승들을 사냥해왔으며, 오늘만 해도 평소보다 일찍 사냥감들을 잡아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그는,
이 순간 사냥꾼이라는 직업답지 않게 자신의 앞에 있는 처음 보는 짐승들에게서 도망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제길! 뭐 저런… 괴물들이.”
황제를 죽인 뒤 여전히 하늘에 떠있는 무시무시한 붉은 용.
그것이 만들어낸 짐승들이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가 봐도 뻔한 일이었으며, 이에 암피테리온은 어떻게 해서든 이 짐승들을 막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집에 있는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짐승들을 공격한 암피테리온.
그러나, 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피테리온은 짐승들의 몸에 일절 상처를 내지 못한 채 도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화살도 창도 전혀 먹혀 들지 않는 단단한 몸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재빠른 몸놀림으로 눈 앞에 서 있던 사람의 목을 물어 뜯어 버린 빛의 짐승들.
이에 암피테리온은 저것은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으며, 결국 그에게 남은 길은 한가지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저런 괴물을 이길 방법은 없어, 그렇다면 결국 남은 것은 도주뿐. 아내와 함께 당장 이 도시를 벗어나는 것이다. 어디가 되었든 일단 사랑하는 그녀와 도망을 칠 수 있다면…’
비록 이후로 고생길이 훤히 펼쳐질 것이 자명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살아 남아야 뒤가 있는 법.
이에 암피테리온은 온 힘을 다해 달려간 끝에 마침내 집에 도착했고.
곧바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여보! 어디 있소! 지금 밖에 괴물들이…?”
가족과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정신 없이 방으로 뛰어들어간 암피테리온.
그러나 그 순간.
암피테리온은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장면으로 인해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 여…. 여…보? 다…당신이… 이 시간엔 어떻게…”
“…아…”
침대 위에 누워 속옷 한 장만 걸칠 채 반쯤 나체 상태로 있는 아내.
그리고, 그녀와 함께 몸을 포개고 있는 이웃집 남자 자우스.
그들의 모습을 본 순간,
암피테리온은 목숨이 오락가락한 이 상황조차 잊어 버릴 정도로 밀려오는 끔찍한 배신감에 그대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 여..보.. 그… 그게 말이지요. 이… 이건 이 사람이 저를 강제로 범하려 든…”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당신이 먼저 나를 유혹했지 않소! 이제 와서 그런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오?”
“여보! 이 남자 말 듣지 마세요! 전 어디까지나 피해자라고요! 이 추악한 남자가 갑자기 집안으로 들어와서 저를 끌어 안더니 억지로…”
“방금 전까지 사랑한다 했으면서 정말 이러기요? 분명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남편 따위는 버리고 나와 함께 도망치기로 하지 않았소!”
“누… 누가 그런 소리를… 암피테리온! 저를 믿으세요! 이번에는 진짜에요! 당신의 아내인 제 말을 믿으셔야 해요! 전 정말 아무 잘못도…”
“…”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 하면서 누가 봐도 헛소리임을 할 수 있는 구질 구질한 변명을 늘어 놓는 아내의 모습.
이를 보면서, 암피테리온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진한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비바람을 맞으며 사냥감은 찾아 다닐 때도, 눈보라에 휩쓸려 하마터면 목숨이 위험했을 때도, 암피테리온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꿋꿋이 이를 극복해 왔으며, 그녀를 위해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냥감을 잡아 왔었다.
심지어 방금 전 신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만들어낸 짐승들과 싸움을 건 것 조차도 오직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순간,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쭉.
아내는 지금까지 그가 가정을 위해 해온 모든 노력과 사랑을 비웃듯이 이웃집 남자와 눈이 맞아 따뜻한 침대에서 서로 사랑을 속삭여 왔던 것이었다.
‘이걸… 위해서.. 고작 이런걸 위해서… 난… 난 지금까지…’
그렇게 수년 간의 시간과 노력이 모조리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버린 듯 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그저 공허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암피테리온.
그런 그를 보면서 아내는 여전히 되도 않는 변명만을 늘어 놓으며 어떻게 해서든 자우스를 팔아먹는 것으로 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크르르르릉…]
“헉!”
“뭐… 뭐야.. 저건?”
“!...”
다음 순간, 그런 암피테리온의 등 뒤에서 나타난 빛나는 짐승의 모습.
이에 암피테리온은 그대로 힘 없이 뒤를 돌아 보며 그 짐승을 향해 허탈하기 그지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방금 전까지 아내를 데리고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차라리 이대로 이 짐승에게 머리가 뜯겨 죽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뿐.
그렇게, 모든 것은 체념한 채 암피테리온은 이쪽을 보며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이고 있는 그 짐승이 자신을 씹어 삼키길 기다렸고.
여기에 응하듯 그 짐승은 그대로 그 육중한 몸을 날려 암피테리온이 있는 곳을 향해 순식간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암피테리온의 눈 앞에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
반투명한 빛으로 이루어져 있어, 무언가 신성하면서도 일 순간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그것을 보면서, 암피테리온은 이런 신성한 것에 죽임을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
이어진 순간, 그대로 암피테리온의 몸을 관통하면서 순식간에 뒤쪽으로 사라져 버린 짐승.
그리고 그 직후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바로…
“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악!!!”
암피테리온의 귓가를 후려 치는 듯한 아내와 자우스의 목소리.
이어서 그의 등에는 따스한 감각을 안겨주는 핏방울이 튀기 시작했다.
“…사… 살려.. 살려..줘! 제… 제발 살려…”
“자… 잘못 했어요! 여…여보! 여보! 제발 저좀 구해 커허어어억! 커….. 커…”
돌아선 자세로 앉아 두 눈으로 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듯한 등 뒤의 상황의 모습.
계속해서 느껴지는 붉은 선혈의 감각과, 끔직한 비명 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들려오는, 사냥꾼인 암피테리온에게 있어선 제법 익숙한.
짐승이 뼈째로 사냥감을 씹어 삼키는 목소리.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암피테리온의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 퍼지던 두 사람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으며.
그의 귓가에는 오직 식사를 마무리 지어가는 짐승의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크르르릉…”
낮은 울음 소리를 내며 그대로 상황을 종결 짓는 짐승.
이어서 여전히 제자리에 주저 앉아 있던 암피테리온은 문득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기 시작했다.
따스하면서도 평온한.
방금 전까지 그의 마음속에 가득 담겨 있던 절망의 감정을 잠재워 주는 듯한 감각.
그것을 남겨둔 채, 그 짐승은 그대로 천천히 암피테리온의 몸을 스치며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암피테리온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않은 채 천천히 집 밖으로 사라져 버리는 짐승.
그것의 뒷모습을 보면서, 암피테리온은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은 채 그대로 천천히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 그의 뒤쪽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선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감정에 사로잡힌 채.
동시에, 이런 식으로 그의 복수를 해준 저 짐승의 행동에 진한 의문과 더불어,감사라 할 수 있는 감정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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