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다굴에는 장사가 없다
* * *
“진격하라!”
“팔콘 제국을 주춧돌 하나 남기지 말고 파괴하라!”
“사악한 악의 무리를 몰아내라! 우리가 바로 정의다!”
목소리를 높이며 팔콘 제국으로 진군해 나가는 군세.
엘프 교국과 수인국 죠의 연합군은 마치 파도와 같은 기세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궁술과 마법에 능통한 엘프 들이 후방에서 포격을 가하며.
동시에 수인 특유의 굴강한 육체를 지니고 있는 수인국의 전사들이 선봉에서 진격을 하는 상황.
이에 팔콘제국의 국경 수비대는 어떻게 해서든 이를 막아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그들의 상황은 너무나도 어렵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제길! 지원군은! 황도에 요청한 지원군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 그것이…”
“죄송합니다. 지원군은… 없습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침통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 부하의 말, 이에 수비를 맡고 있던 장수는 당혹감에 사로잡힌 채 그에게 물었다.
“지원군이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상대는 우리의 네 배에 달하는 대군이다! 저런 녀석들을 지원군도 없이 어찌 막으란 말인가!”
“그… 그것이.. 지금 북쪽에서 이어지고 있는 마도국의 공세가 워낙 매서운지라..”
“아무래도, 황실에선 이곳을… 엘프 교국의 옛 영토였던 이 성을 포기한 듯싶습니다.”
“큭….”
절망이라는 감정밖에 안겨주지 못하는 이야기.
이에 수비를 맡고 있는 대장은 이쪽이 살아남을 방법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그대로 절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성벽에… 백기를 걸어라.”
“네?”
“하… 하지만… 제국의 신하로서 어찌…”
“시끄럽다! 저들이 우리를 버린 마당에 우리가 이 이상 무엇을 한단 말이더냐! 어차피 포위되어 도망칠 수도 없는 마당에 차라리 엘프들의 노예가 되어 사는 게 낫지, 이대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으음…”
“제길…”
“엘프… 노예…”
무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자가 한 명 섞여있는 듯 했지만, 어찌되었든 그렇게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살길을 고르기로 결정한 그들.
그리고 잠시 후 한 동안 격렬한 전투가 이어진 그곳에는 백기가 내걸렸고, 그대로 천천히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
전면적으로 항복을 선언한 팔콘제국의 국경 수비대.
그들을 보면서, 엘프 장군 스키피오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항복을 하겠다 이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부디 저희의 목숨만을 살려주십시오.”
“그래, 알았다. 포로를 정중히 대하는 것은 넬타리온님의 규율. 이에 따라서 네놈들의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마. 단, 앞으로 다시는 그분을 배신하고 악신을 믿는 일 따위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서약을 맺어야 할 것이다.”
솔직히 악신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있는 그들이었으나, 여기에 대해서 눈치 없이 말을 꺼냈다간 더욱 귀찮은 꼴을 당하게 될 터.
이에 그들은 군말 없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명세하겠습니다. 다시는 넬타리온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좋다. 허면 일단 부상이 심한 이들은 수용소로 보내라. 사지가 멀쩡한 자들은 재 배치하여 우리 병사로 삼을 수 있도록 하라.”
“네 장군님.”
그렇게 항복한 제국군을 노예 병사로 재배치 시키며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스키피오.
비록 중요한 방어거점을 점령하긴 했지만,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이런 작은 승리 따위는 안중에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 기회에 잃어버렸던 영토를 모두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팔콘 제국에도 회생 불가능한 타격을 입혀야 한다. 이렇게 한 번 칼을 뽑아 든 이상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어.’
수백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인간들의 국가가 얼마나 무시무시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봐온 스키피오인 만큼,
그는 모처럼 찾아온 이 찬스를 이용해 확실하게 팔콘제국의 기세를 꺾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들 서둘러라! 우물쭈물 거릴 시간이 없다. 곧바로 다음 장소로 진군해 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하라!”
“예 장군!”
*
사방을 뒤흔드는 요란한 폭발음.
그 속에서, 두 무리의 군세는 서로를 향해 거침없이 무기를 휘두르며 격렬한 충돌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도국의 개들을 쓸어버려라!”
“악신에게 현혹된 저 팔콘 제국 놈들을 모조리 처치하라!”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있는 이들을 향해 거침 없는 적의를 내보이며 격돌하는 두 세력.
그리고 중심에는,
팔콘 제국 최강의 3기사 중 한 명인 카산드라와 그녀를 상대로 지팡이를 마치 창과 같이 휘두르고 있는 4마희중 한 명. 요크가 치열한 혈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큭!”
“하하하하!!! 겨우 이 정도인가? 듣자 하니 제국이 자랑하는 최강의 성기사 라더니 이 정도 실력이면 그 이름값이 아까운걸?”
진한 녹색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섬뜩한 웃음소리를 날리는 요크.
그러나, 이에 대해서 카산드라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실제로는 상대에게 거의 밀리지 않는 힘을 발휘하며 거의 막상막하의 전투를 이끌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챙!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한 순간 카산드라의 검을 두드린 뒤 그대로 뒤쪽으로 몸을 빼는 요크.
그 직후, 그녀는 지팡이에 한 가들 모아 두었던 마력을 이용해 불타는 듯한 녹색 구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아아앗!”
쾅!
그대로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면서 카산드라를 향해 날아가 폭발하는 구체.
그러나 그 직후, 요크의 눈에는 방패를 앞세워 흙먼지를 뚫고 나타난 카산드라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칫.”
캉!
다시 한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요크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 하는 카산드라.
그때…
부우우우우!!!!
“!!”
“이런…”
다음 순간 갑자기 들려오는 거친 뿔피리 소리.
이에 카산드라는 그대로 공격을 중지한 채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으며, 반면 요크의 입에는 그대로 진한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후훗, 아무래도 이전 전투는 우리가 이긴 것 같은데. 자 우리들간의 승부도 마저 끝을 보자고!”
“…제길… 다음에 보자!”
“다음이라니 그럴 수는 없지, 전사가 한 번 검을 뽑았으면 끝을 봐야 하는 게 상식 이잖아!”
“다음에 보자꾸나!”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순식간에 아군 진영 안으로 사라져 버리는 카산드라.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요크는 그대로 이를 갈며 주변에 있는 병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제길!전군 진격하라! 적장이 도망쳤다!”
그녀의 말에 한층 더 사기를 끌어 올리며 앞으로 진격해 나가는 마도국의 병사들.
그렇게 마도국과 제국의 국경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는 마도국의 승리로 끝이 났으며, 그들은 곧바로 기세를 몰아 남쪽으로의 진군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팔콘 제국의 황도 울림푸스.
그곳의 중심에 위치한 황성에선 제국의 고위백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또다시 패배라니 대체 이 상황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제길…설마 저 더러운 엘프 놈들이 일을 이런 식으로 끌고 나갈 줄은..”
“이건 너무나도 크게 한방 먹었습니다. 설마 저 녀석들이 마왕국을 공격 할 때 사용했던 프레임을 이런 식으로 응용해 먹을 줄이야.”
“악신 아문? 대체 그자가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이지 않은가! 우리가 그런 자를 믿고 있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남과 북에서 동시에 진격을 개시하고 있는 엘프 교국과 수인국 그리고 마도국의 연합.
말 그대로 사방에서 공격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들로 인해 팔콘 제국은 커다란 곤혹에 처해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제국의 국력은 세 나라보다 명확히 한 수 위였으나. 그렇다 해서 두 개로 나뉘어진 전선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나마 지난 전쟁의 여파로 인해 엘프들의 힘이 약화되어 있기에 망정이지만 그럼에도 전선은 불리하게만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전쟁에서 엘프 교국에게 빼앗은 영토들이 속속들이 항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지원병도 없는 그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당장 그들의 역할은 그런 식으로라도 시간을 끌어주는 것 외엔 방법이 없네. 엘프 들과 수인들이 제국 본토까지 밀고 들어오기 전까지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 해서 전황이 뒤집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시간을 버는 것 만으로 승리의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단은 기다려보게. 듣자 하니 황제 폐하와 아킬레스공이 무언가 또 다른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지 않은가.”
“엘프 교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그일세. 분명 이번에도 무언가 또렷한 계획이 있겠지.”
그렇게 도통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지금가지 여러 문제를 해결해 왔던 유능한 인물의 행보에 기대를 거는 그들.
한편,
그 순간. 문제의 그 아킬레스는 자신의 앞에 있는 황제.
크라토스 3세에게 이 상황을 보고하고 있는 중이었다.
“또 패배했단 말인가?”
“예 폐하, 말씀 드렸다시피. 아무리 저희 팔콘 제국이라 해도 세 나라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소신이 건의한 것 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것은 황실의 보물이자 이 세계를 수호하는 힘 중 하나이다. 그러다 자칫 문제라도 생긴다면…”
아킬레스의 제안에 우려를 표하는 황제.
그러나 이에 대해서, 아킬레스는 진중하면서도 단호함이 담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제국을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일이 실패한다면 소장의 목을 베셔도 좋습니다.”
“으음…”
타인에게 줄곧 신용을 주어왔으며 실제로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는 신하의 말.
이에 황제는 짙은 고민을 한 끝에 마침내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알았네. 허면… 그렇게 하도록.”
“예 폐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