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또 다른 기회
* * *
엘프 교국의 권력자 키케로.
그는 근래 들어 진한 초조함을 느끼면서 줄곧 안절부절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제길… 어째서냐, 대체 어째서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것이지?’
안토니우스를 포함한 그의 동지들 중 최강의 실력자들만을 모아서 암살대를 구성한 키케로.
그렇게 파견된 암살자들은 마왕국에 사로잡혀 있는 옥타비아를 처치해 이번 화친을 끝내도록 유도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금 엘프들과 마왕국의 사이가 험악해지고,
특히 마왕국 측에서 이번 사태에 크게 분노하여 엘프 교국에 그 검은 불꽃을 풀어놓아 세계수 유피테르를 잿더미로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그가 그분에게 받은…
아문에게 받은 1차적인 목표는 성공적으로 완수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안토니우스에 대한 소식은… 정확히 말하면 옥타비아가 암살되었다는 소식은, 충분한 시간이 지난 지금조차도 일절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설마 안토니우스 그자가 당해버린 건가? 아…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안토니우스는 엘프 교국 최강의 전사이자 아문님의 직접적인 축복을 받은 존재. 마왕국에서 그런 안토니우스를 이길 수 있는 상대는 마왕밖에 없어. 그런 그가 임무에 실패 했을 리가…’
그렇게,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불안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하는 생각 사이에서 그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키케로였다.
그때.
쾅!
“! 뭐… 뭐냐? 무슨 일이냐?”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문을 박차고 그의 집무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한 무리의 병사들.
이에 키케로는 짙은 당혹감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병사들은 그런 그의 주변을 삽시간에 포위한 채 그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네놈들! 어디서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 것이냐! 네가 누구인지 알고 감히…”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키케로님. 저희 엘프 교국의 대의원이시자 명명 높으신 학자분. 그리고 교국을 배신하고 제국에 나라를 팔아 넘기려 한 매국노 말입니다.”
“뭐…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내는 병사의 말.
이에 키케로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느끼며 그대로 거칠게 항의를 하였다.
“매국노라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지? 어떤 녀석이 그런 말도 안 되는 모함을 했단 말이냐!”
“그건 알 필요 없고 일단 가시지요. 자세한 이야기를 교황 성하 앞에서 하면 될 것입니다.”
“노…놓아라! 이 녀석들! 당장 놓으란 말이다!”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 거칠게 항의하는 키케로.
그러나, 그의 이런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를 붙잡은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
“그 동안 우리 엘프들이 자행한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 드리는 바이오.”
마왕의 앞에서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하는 교황과 엘프 교국의 고위 대신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갑주를 착용한 채 전신을 감싸고 있는 마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으며,
이어서 그는 그대로 교황에게 손을 뻗어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대의 사죄를 받아들이겠소. 이제부터 우리 마왕국과 엘프 교국은 다시 친우로서 지내게 될 것이오.”
“사죄를 받아주셔서 참으로 감사하오 마왕.”
수백 년 간 단 한 번도 머리를 숙인 적이 없는 엘프들의 공식적인 사과.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지금까지 엘프 들에게 짙은 원한과 분노를 지니고 있던 마왕국 백성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교황의 사죄가 끝나고 그가 교국으로 돌아간 직후.
엘프 교국에선 곧바로 한차례 커다란 폭풍우가 발상하게 되었다.
교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반역사건.
그것은, 대의원 키케로와 성기사 안토니우스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팔콘 제국과 손을 잡고 교국을 배신하려 들었다는 내용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마왕국과의 화친을 반대한 키케로와 그의 일당들이 팔콘 제국과 손을 잡고 마왕국에 잡혀 있는 옥타비아를 암살하려 시도했다는 것.
다행히 그들의 이러한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며, 그 과정에서 안토니우스는 죽임을 당했지만.
이 일로 인해 교국 내에선 팔콘 제국에 붙어 나라를 팔아 넘기려 한 역적들을 색출하기 위해 한바탕 대대적인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키케로와 그의 일당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그리고 저 사악한 팔콘 제국에 붙어 신앙을 저버린 놈들을 색출하기 위해 모든 엘프들에게 신앙 탐지를 실시하도록 하라!”
세계수 유피테르에서 비롯된 신성력이 아닌 다른 신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 자들을 찾아내는 마법인 신앙탐지.
평범하게 신앙심이 약하거나 한 경우가 아닌, 확연하게 다른 무언가의 힘을 다루고 있을 때만 감지할 수 있는 이 마법은 교황의 명령에 따라 교국 내의 모든 엘프들에게 실행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추가적으로 몇몇 고위 엘프들을 비롯한 적잖은 수의 엘프들이 붙잡혀 오게 되었으며, 교황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선택권을 주었다.
“이제라도 죄를 뉘우치고 다시 넬테리온님을 따른다면 더 이상 잘못을 묻지 않고 용서를 해주겠다.”
진한 자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교황.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몇몇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 역적들에게 너무 유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교황의 제안에 대해서 키케로를 비롯한 엘프들은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런 건 필요 없다! 당장 우리를 죽여라!”
“그런 거짓된 신 따위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목숨을 구걸하긴커녕 오히려 자신들을 죽이라 성토하기 시작하는 이단자들
광기마저 느껴지는 그들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시민들은 무언가 진한 섬뜩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런 그들을 향해서 교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소원이라면 어쩔 수 없지. 모두 참하라. 그리고 그 시체는 거리 한복판에 효수해 본보기를 삼도록 하라. 넬테리온님을 버리고 사악한 악신을 섬긴 자들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알려주도록.”
“예! 교황 성하.”
그렇게 마지막 자비를 거절한 이들의 목을 모조리 처 버리는 것으로 끝이 난 이번 사태.
이러한 일을 계기로 하여,
지금까지의 일로 인해 바닥에 떨어졌던 교황의 권위는 다시금 바로 세워지게 되었으며,
한동한 흐트러졌던 교국 내의 신앙심 또한 다시금 재정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순간 이러한 일들을 지켜보고 있는 엘프 교국의 수많은 시민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언 듯 단순한 반역자들의 준동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일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이걸로 일단 한시름 덜 수 잇게 되었군.”
“그렇습니다 교황 성하, 하지만 솔직히 전 지금도 참으로 놀랐습니다. 설마 키케로님께서 그런 식으로 타락해버리실 줄이야…”
광장에 효수된 역적들의 목을 보면서 씁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교황과 그의 신하들.
그들의 입장에선 비록 뜻은 조금 다를 지언 정 언제나 나라를 위해 노력해 왔던 인물이,
사실은 악신의 꾐에 넘어가 이 세상을 파멸로 이끌려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큰 충격으로 다가 올 수밖에 없었다.
“악신 아문이라…”
“마왕국의 말에 따르면 제국에서 넬테리온님을 배신하고 새롭게 섬기고 있는 신이라 들었습니다. 비록 겉으로 대놓고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제국뿐만 아니라 수인국과 마도국에도 그 세가 뻗어있다고 합니다.”
어떠한 역사서에서도 그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존재인 아문.
그러나, 마왕국에 방문 했을 때 만났던 옥타비아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 되어 버린 안토니우스는 그자에 대한 명확한 사실들을 알려주었으며.
이와 관련해서 교황은 그 사악한 존재의 실체를 직시하며 어떻게 해서든 대응 책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우선은, 이 사실을 우리뿐만이 아는 다른 나라에도 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잘 하면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수인국과 마도국 또한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록 지난 제국과의 전쟁에서 두 나라는 뒷짐만 지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그들에게도 제국이 그 더러운 손을 뻗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사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지금 이 순간도 제국 놈들이… 아문이 보낸 수하들이 실시간으로 암약을 벌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게 해주게. 비록 모두들 어려운 시기이지만, 이 세계의 운명을 위해서 다 함께 힘내도록 하세나.”
“예, 교황성하.”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치 세상의 운명을 짊어진 것 같은 사명감을 내보이며 대답을 하는 엘프들.
그러나,
겉보기에 이러한 모습과 별개로 이 순간 그들은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다들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중이었다.
악신을 섬기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 팔콘 제국.
이러한 사실을 잘 이용하기만 한다면,
과거 그들이 마왕국을 고립시켰듯이 이번에는 팔콘 제국을 고립시키는 것이 가능할 지도 몰랐다.
대륙의 중심부를 차지한 채 가장 큰 위세를 떨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직접적으로 그들을 침략해 영토를 강탈해가기 까지 한 제국.
불과 수개월 까지는 함께 손을 잡은 동지였으나,
이제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버린 그들을 고립시키고 잘 하면 깨부술 수도 있지 모르는 이 기회를,
엘프 교국은 결코 놓칠 수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