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보이지 않는 손
* * *
대상의 근원적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고문 이후 결국 굴복을 하게 된 클레오파트라.
그녀는 눈 앞에 있는 엘리사에게, 과거에 안토니우스 시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맺었던 바로 그 이야기를…
*
엘프 교국의 장수 안토니우스.
국가에 대한 진한 충성심과 신에 대한 독실한 신앙을 지니고 있던 그의 삶은 어느 날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게 되었다.
신을 섬기는 진실된 몸으로써 언제나 남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삶을 살아온 안토니우스.
그러나, 그랬던 그의 인생은 그날,
자신의 사랑하는 동생이 마족들의 손에 의해 전사한 그 날부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안토니우스에 뒤지지 않는,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그보다 신앙심을 지니고 있으며, 이 때문에 소위 성전이라 불리는 마족들과의 전쟁에서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동생.
그런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은 안토니우스로 하여금 마음 속에 후회와 의심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강인한 신앙을 지니고 있던 동생이 신의 뜻에 따른 성전에 참여 했음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정말로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아니. 신이라는 존재가 똑바로 된 존재라면 어째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렇게 한 번 생겨난 마음의 의심은 안토니우스의 신앙심을 서서히 무너뜨려 갔으며. 그 결과 그는 한 동안 폐인과 같은 상태가 되어 정상적인 삶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그에게 접근을 한 사람이 있었다.
엘프 교국의 존경받는 학자이자 권력가인 키케로.
그는 과거부터 친분이 있었던 안토니우스를 직접 방문해 위로의 말을 건네었고, 이에 대해서 안토니우스는 그가 마음 속에 지니고 있던 본심을…
그의 신앙이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스스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면서.
키케로는 입가에 자비로움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확실히 이번 전쟁은 잘못 된 것이라고.
성전이니 뭐니 하지만 실상은 그저 제국과 교황의 손에 놀아나 수많은 이들이 무고한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부추기는 신은 결코 정상적인 신이라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안토니우스 못지 않은 신앙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키케로의 입에서 도저히 나올 것이라 생각지 못하고 있던 말.
이에 안토니우스는 진한 당혹감을 느끼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문을 표하였고.
그런 그를 향해서, 키케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실된 신을 섬기도록 하게. 탐욕을 부추기는 사악한 악신 따위가 아닌 진정으로 평안과 위로를 안겨다 주는 신을 말일세.”
안토니우스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동시에 무언가 위험하기 그지 없는 느낌이 드는 말.
그러나, 이미 심신이 망가져 있던 그는 키케로의 말에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런 그에게 키케로는 자신이 말하는 그 진실된 신이라는 존재를.
통칭.
아문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문께선 말씀셨네, 이 세상의 일그러진 것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우리들을 구속하고 장기말로 이용하고 있는 사악한 신들에게서 벗어나 우리들만의 세상을 이룩해야 한다고. 그래.. 자네의 동생과 같이 신들의 장난질에 놀아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자가 생기지 않도록 말일세.”
“나의… 동생 처럼…”
특유의 능수능란한 언변을 사용해 안토니우스를 회유하고 설득하는 키케로.
이에 안토니우스는 점차 그 아문이라는 존재의 이야기에 현혹되기 시작했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는 본래 섬기고 있던 넬테리온을 버리고 아문의 충실한 신도가 되었다.
그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문이라는 존재의 영향력은 이미 대륙 곳곳에 뻗어 있는 중이었다.
종족전쟁 기간 동안 발생한 무수한 피해와 끝내 이어진 패배로 인한 충격.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넬테리온 신에 대한 신앙심을 크게 흔들리게 만들었으며,
동시에 아문 신의 세력을 크게 확장하도록 만들었다.
엘프 교국은 물론이고 팔콘 제국, 심지어는 저 수인국 죠까지.
기존의 신에게 실망한 그들은 자신들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전해주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닌 직접적인 축복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는 아문의 신앙에 빠르게 침식되어 가기 시작했다.
당장 안토니우스조차도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신성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 덕분에 본래부터 엘프 교국의 장수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교국 최강의 전사들 중 한 명의 반열에 올라 보다 많은 권력과 권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륙 곳곳에 독버섯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토니우스를 비롯한 아문의 신도들은 결코 그 실체는 내보이지 않은 채, 철저하게 모든 것을 비밀에 붙여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요 목표는 지상에 존재하고 있는 거짓된 신들의 표상들을 소멸시키고. 이 세상에 아문께서 강림하실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들은 반드시 은밀하면서도 치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으며.
그 결과 이번에 벌어진 팔콘 제국과 엘프 교국의 전쟁.
그리고 조만간 발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팔콘 제국과 마도국의 전쟁을 유도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예상 밖의 방해꾼으로 끼어든 마왕국과 엘프 교국 사이에 분열을 유도하기 위해 이번 옥타비아 암살 건을 유도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
그렇게,
안토니우스는…
아니, 클레오파트라는.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켜내고 말겠다 서약한 자신의 비밀을 쾌락이라는 유혹에 굴복하여 모조리 쏟아 내었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엘리사는 진한 충격에 사로잡힌 채 일단 그녀가 그토록 바라는 촉수를 던져준 뒤 그대로 이 사실을 마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귓가에 들리는 클레오파트라의 쾌락에 젖은 신음 소리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하면서…
*
“그… 그게… 사실이란 말이더냐?”
“네 폐하. 그 엘프 녀석들을 영혼까지 박살내가면서 고문한 결과인 만큼 틀림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엘리사의 말에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을 지은 채 진한 충격을 내보이는 마왕.
이어서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벨제뷰티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짙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문이라… 그런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희들도 이를 그냥 묵과 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그 아문이라는 자가 벌이고 있는 일들은 마왕국의 입장에선 적국이라 할 수 있는 구 종족 연합에 속해 있는 국가들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상 과거의 적들이 자기들끼리 신나게 물고 뜯고를 하면서 알아서 자멸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마왕국 입장에서 이는 딱히 아쉬울 것이 없는… 오히려 환영할만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가 단위의 레벨로 보았을 때의 이야기일 뿐.
만약 정말로 세계수가 불에 타 사라지게 되고, 그들의 또 다른 목적인 마도국의 그것 또한 무너지게 된다면, 그때는 단순히 나라가 망하는 수준이 아닌, 대륙 전역에 어마어마한 격변이 벌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이 일은? 물론 아직 부정확한 것이 많진 하지만 일단 그 윤곽 만으로도 우리 마왕국이 홀로 감당하기엔 규모가 너무 큰 이야기라 보여지는구나.”
당장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일도 아닐뿐더러, 각 나라에서조차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
이에 대해서 벨제뷰티는 잠시 고민을 한 뒤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일단 엘프들에게 진상을 전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이쪽에는 아문의 추종자들이 옥타비아를 해하려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상황을 설명하기 쉬울 것으로 보입니다.”
“으음… 확실히…”
다른 나라들이라면 몰라도 일단 엘프 교국인 도움을 준 입장에서 마왕국의 말을 어느 정도 귀 기울이기도 할 터.
그러나 그때,
옆에서 벨제뷰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리사는 약간의 불만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말입니다… 엘프 교국이야 어차피 저희들에게 무릎을 꿇을 예정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저 팔콘제국 놈들은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으음…”
“하…”
“솔직히 말씀을 드리자면, 전 그냥 저 더러운 인간들의 나라 따위는 망해버리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이 대륙에 위기가 닥쳐온 것은 맞지만 그렇다 해서 저희들의 원수나 다름 없는 인간 놈들에게 굳이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동의하기 힘듭니다”
엘리사의 말에 자동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는 두 사람.
확실히 그들의 입장에선 아문도 아문이지만 사실상 종족 전쟁을 주도한 팔콘 제국에 대해선 아무리 세계의 운명이 걸려 있는 상황이라 해도 그리 돕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얼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아문의 일조차도 주로 팔콘 제국에 있는 이들이 주도하고 있는 느낌인 만큼 이런 생각은 더더욱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을 터.
그리고 이러한 사실과 관련해서.
벨제뷰티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허면 말입니다… 차라리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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