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그녀도 하기 싫은 아주 심한 짓
* * *
눈 앞에 나타난 자신의 주군 마왕.
그녀를 보면서, 엘리사는 자동적으로 진한 의문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용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폐하께선 굳이 여기에 오실 이유가 없을 텐데.’
평소 어지간하면 마왕성을 잘 떠나지 않는 마왕이었다.
하는 일들이 워낙 많은 것도 있고, 안전상의 문제도 존재하였으며,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자잘한 이유로 인해 마왕은 가급적 마왕성을 떠나지 않는 것이 권장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바로 그 마왕의 경호를 업으로 삼고 있는 친위대 엘리사의 입장에선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부분.
이와 관련해 무언가 진한 위화감을 느끼면서,
엘리사는 일단 눈 앞에 있는 자신의 주군을 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폐하, 여긴 어쩐 일로 납시셨습니까?”
“포로의 상태를 확인해보러 왔다가 우연히 일이 터진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기분 나쁜 신성력이 이처럼 또렷하게 느껴지는데 그냥 넘길 수 더구나.”
“아…예. 그러셨군요.”
마왕의 말에 일단은 입가에 미소를 담아 보이는 엘리사.
그러나, 그런 겉모습과 별개로, 엘리사는 점점 더 수상하게 느껴지는 마왕의 행보에서 무언가 의심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지?...어째서인지 무언가가 찝찝한데... 불충한 일이지만 내가 꼭 내막을 알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하지만 그렇다 해서 신하 된 몸으로 주군을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
그렇게,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마음 한 켠에 담아둔 채, 우선은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엘리사.
한편, 그런 엘리사의 상황과는 별개로, 이 순간 마왕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하니, 대충 이게 무슨 상황인지 그림이 그려지는 듯 하구나.”
“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 말과 함께 복면을 벗겨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암살자들의 정체를… 엘프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확인해 주는 용사.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옥타비아의 얼굴은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이게 대체 어떻게… 엘프 교국에서 왜 저를?”
인간이나 다른 누군가가 아닌 동포일 엘프들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
이를 옥타비아에게 있어서 상당히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그런 그녀를 보면서, 엘리사는 표정을 굳힌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녀석들의 대장의 얼굴을…
안토니우스의 얼굴을 내보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지금부터 이 녀석들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
“어서 죽여라!”
지하감옥 깊은 곳에 포박되어 있는 엘프 안토니우스.
그를 보면서, 옥타비아는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말 해주십시오 안토니우스, 대체… 대체 왜 그러신 것입니까? 당신은 아버지의 충실한 신하로 줄곧 저의 곁은 지켜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그런 당신이 어째서 저를?”
“네년 에게 할 말은 없다! 마족에게 붙은 배신 녀석! 당장 날 죽여라!”
“그…그렇지 않습니다! 전… 전 단지 세계수를 지키기 위해서…”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다! 나라를 팔아먹은 더러운 녀석!”
지금도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는 옥타비아.
그녀의 입장에선, 줄곧 가깝게 지내왔던 친우가 자신을 죽이러 왔다는 이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으나,
이에 대해서 안토니우스는 그녀에 대한 욕설만을 내뱉으며 다른 어떠한 답변도 거부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엘리사와 나는 상황이 썩 쉽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인지하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옥타비아와 대면하게 해주면 무언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것마저 쉽지 않은 것 같군요.”
“그 동안 고문관이 나름 열심히 일을 하긴 했다만 성과가 없었다나 봐. 거기다 저 녀석하고 놈의 부하들… 여기에 오기 전부터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두었어. 다크엘프화를 시도한다면 즉시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리는 마법을.”
무자비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배후가 누구인지, 정확한 목적이 무엇인지 단 한 명도 입을 열지 않는 암살자들.
그들이 입에선 지금도 큿 죽여라 같은 소리만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서 엘리사와 난 제법 답답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결국 옥타비아마저도 실패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와 엘리사를 일단 그대로 감옥 밖으로 걸어나갔다.
“사실상 심증은 어느 정도 확실하게 확보가 되어 있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가는 부분들이 너무 많단 말이지.”
“동의합니다. 일단 저들이 마족에 대한 혐오도가 유난히 강한 자들이고 그것 때문에 이번 협상을 방해하기 위해 옥타비아를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까진 저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단순히 마족에 대한 혐오감 만으로 움직였다 보기엔 여러모로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당장 엘프 교국의 상태도 좋지 않은 이 마당에, 감정 따위에 휘둘려 일을 벌이기엔 교국 측에서 받게 되는 손해가 너무나도 컸다.
그것도 평범한 존재가 아닌, 엘프 교국 최강의 전사 중 한명인 안토니우스를 움직여 일을 벌였다는 것은 나조차도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거기다 저 정도 고문까지 견디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
아픈 것은 딱 질색인 나였다면 이미 진작에 입을 열고도 남았을 수준의 고문을 받고도 꿈적하지 않는 엘프들.
그 지독하기 그지 없는 모습에 약간 질리는 기분을 느끼면서, 저렇게 까지 하면서 감추고 싶은 비밀이 무엇일까에 대한 나의 의문이 점점 더 커져가던 그때였다.
“하아… 할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그것 뿐인가?”
“네?”
무언가 정말로 싫은 짓을 해야 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하는 엘리사
.
평소 고문을 즐기는 성격인 그녀답지 않은 이런 모습에, 난 자동적으로 그녀가 정말로 지독하기 그지 없는 짓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을 하시려는 겁니까?”
순간적으로 떠오른 무언가 불안한 호기심에 질문을 하는 나.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입가에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그것은 바로…
*
“큭….”
쉼 없이 이어지는 무자비한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는 안토니우스.
이미 이곳에 오기 전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던 그였던 만큼, 그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결코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은 세계를 위해서이다… 그분의 세계를 위해서… 난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며, 안토니우스는 오늘 이어질 고문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끝마쳤다.
그런데…
“…네 녀석은?”
안토니우스의 앞에 나타난 소녀 마족.
이제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마주하고 있는 고문관이 아닌 그녀가 이 자리에 나와 있다는 점에서, 안토니우스의 마음 속에는 약간의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포기한 것인가? 어서 죽여라. 이런 식으로 시간 끌어봤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단호하기 그지 없는 안토니우스의 말.
이에 대해서, 마족 소녀는 말 없이 한쪽 손에 마력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무언가 다른, 연한 분홍빛이 감도는 마력.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이에 대해서 안토니우스는 이제 이자가 자신에게 죽음을 안겨주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내심 미소를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전 이만 당신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나의 신이시여. 세상을 구원하실 빛의 화신이시여, 부디 이 무지한 세계를 당신의 것으로…’
그렇게 마지막으로 ‘그분’에게 기도를 올리며 최후를 기대리는 안토니우스.
그리고,
팍!
“커헉!”
그런 그의 복부에.
마족 소녀는 그대로 손에 맺혀 있던 분홍빛 마력을 쑤셔 넣었다.
그런데…
“!? 뭐…. 뭐…야 이건?”
다음 순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감각에 진한 당혹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안토니우스.
그 직후, 그는 자신의 몸이 이전과는 다르게 무언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한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서… 설마 이건 다크엘프 화?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보호 마법은 작동되지 않았어. 하지만… 하지만 이 느낌은 대체…?’
온 몸에서 느껴지는 끔찍하기 그지 없는 고통.
마치 살이 생으로 타 들어가는 것만 같은 그 무자비 하면서도 너무나도 이질적인 감각에, 안토니우스는 지금까지 고문을 받으면서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알 수 없는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묘한 고통 속에서.
안토니우스는 한가지 사실을 인지하며 그대로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 뭐…. 뭐야? 뭐야…이게? 이… 이건… 이건 대체… 사… 사라져? 사라지고 있어? 내… 그곳이… 이… 이럴… 이를 수는…!!’
소중한 무언가가 그대로 지워져 버리는 감각.
그 속에서, 안토니우스는 여태까지 느껴 본적이 없는 진한 상실감과 공허함에 사로잡히며 그대로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변화가 끝난 것을 인지한 그때.
안토니우스는 비로소 그가 무슨 짓을 당했는지.
그의 몸이 어떻게 변해버렸는지 인지하게 되었다.
“아…아아…”
끔직하기 그지 없는 감각 속에서 경직된 목소리를 흘리는 안토니우스.
그러나 이 순간,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전의 그것과 같지 않았다.
굵직하고 남성적인 목소리를 지니고 있던 안토니우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의 목소리는… 아니, 비단 목소리뿐만이 아닌 그라는 존재는.
더 이상, 남자라 부를 수 없는 몸이…
여자의 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너…너… 대체 이게…이게 무슨…”
“제법 예쁜 아가씨가 되었네? 솔직히 이 정도로 귀여워 질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이… 이런… 어떻게 이런 짓을…”
변해버린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끔찍하기 그지 없는 위화감.
이에 안토니우스는 마음 속의 무언가가 꺾이는 듯한 기분 속에 몸을 떨면서, 그대로 이런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른 마족 소녀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런 안토니우스를 내려다 보면서.
마족 소녀는 입가에 진심으로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네 이름은 클레오파트라야.”
“!”
그 말과 함께 그대로 가볍게 박수를 치는 마족소녀.
그 직후, 안토니우스의 눈에는 마찬가지로 고문을 받고 있던 그녀의 부하들의 모습이…
정확히 말하면, 이전과 같이 소녀의 그림자에 지배 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성 부하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