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전력을 다해 나에게 와주세요!
* * *
용사와의 대결을 진행하면서 진한 행복감에 사로잡혀 있던 엘리사.
그러나…
그녀가 이처럼 감정에 휘둘려 흐느적거리고 있던 그때였다.
“!! 웃!”
파캉!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강한 힘으로 자신을 밀쳐내는 용사.
지금까지 수비에 전념하고 있던 그가 처음으로 반격을 가하는 모습에 엘리사는 정신이 퍼뜩 드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이.. 이런, 순간적으로 너무 풀어지고 말았어… 아무리 용사의 배려가 기쁘다 하지만, 역시 여기선 보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그녀의 전력을 쏟아 부어 보라는 의미에서 방어에만 전념해 주고 있던 용사인 만큼, 엘리사의 이런 풀어진 행동은 그의 호의를 욕보이는 것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정신 차리십시오 엘리사!”
그런 엘리사의 생각을 정확히 지적하듯 목소리를 높여 이이기 하는 용사.
이어서 그는 마치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는 선생님과 같은 느낌으로 그녀에게 말을 이었다.
“당신의 힘은, 마왕국의 사천왕의 힘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보다 전력을 다해 저에게 와 주십시오!”
“요… 용사…”
그녀를 부르는 용사의 단호한 목소리.
이에 엘리사는 순간적으로 조금 흐트러졌던 자신의 행동에 진심으로 반성을 하면서.
동시에 그런 자신에게 다시 한번 전력을 다해 와 달라는 용사의 말에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그대로 검을 쥔 손에 단단히 힘을 가하였다.
‘그래… 용사가 저렇게 까지 나를 응원해주고 있는데, 여기서 어설픈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 최선을 다해, 용사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이상 상황을 즐기는 것은 그만 두기로 마음을 굳힌 엘리사.
그리고…
그녀의 이런 각오의 결과는 그대로 그녀가 지니고 있는 진심전력의 공격을 끄집어내도록 만들기 시작했다.
꿀렁!
그녀의 발 밑에 있던 검은 그림자.
한 순간 그것에는 마치 돌맹이가 떨어진 호수와 같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오오오…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그릇에서 흘러져 나가는 물과 같이 경기장 바닥을 시커멓게 뒤덮기 시작하는 엘리사의 그림자.
이어서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무언가와 같은 모습을 내보이며 그대로 용사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하여 금방 이라도 쏟아질 듯한 해일처럼 무시무시한 위용과 함께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엘리사가 지니고 있는 최강 최악의 공격기술이자, 그녀의 전력이라 할 수 있는 힘.
비록 앞선 전투에서 어머니 일라이어스를 공격할 때에도 사용했던 것이었지만, 어느 정도 힘 조절을 했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 엘리사는 뒷일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전력을 그대로 때려 박고 있는 중이었다.
“나의 전부를 받아준다고 했지? 어서 받아줘 용사! 이게 바로..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니까!”
마치 사랑을 고백하는 듯한 느낌으로 당당하게 선언하는 엘리사.
그리고…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용사는 작은 웃음 소리와 함께 자세를 바로 잡고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하였다.
“그래! 어디 와 보라고! 너의 그 마음. 내가 전력을 다해 받아주도록 하겠어!”
“!! 흐으읏!...”
그녀의 선언에 대해 거침 없는 답변을 던지는 용사의 행동.
이에 엘리사는 비록 그것이 고백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적으로 마음이 설레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과 별개로 엘리사는 이 이상 용사에 대한 애정 때문에 주의를 흐트러뜨리거나 하지는 않은 채, 그대로 공격을 속행 하였다.
“간다아아!!!!”
엘리사의 외침과 함께 그대로 용사가 있는 곳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하는 그녀의 공격.
그림자로 이루어진 수십 수백의 검은 칼날들이 오직 용사 한 사람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해석을 한다면 이러한 공격은 그저 눈앞에 있는 누군가를 확실하게 죽이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긴 했다.
그러나,
이 공격을 받는 상대는 그런 평범한 존재가 아닌 용사였다.
엘리사가 인정한 최강의 존재 중 한 명이자 그녀가 진심으로 신뢰하고 있는 존재.
그런 용사라면 분명 이런 공격 쯤은 충분히 받아 칠 수 있을 것이라도 엘리사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아아앗!!!”
그런 엘리사의 기대에 부응하듯 기합소리와 함께 그대로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그림자의 파도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용사.
그와 동시에,
용사의 대검에 응축되어 있던 어마어마한 마력은 그대로 한 줄기의 섬광과 함께 그림자를 향해서 뿜어져 나갔다.
콰과과광!!!
순간적으로 발생한 폭음과 함께 경기장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하는 용사의 일격.
이에 상황을 지켜보던 관중들과 이 자리에 있던 고위 마족들.
그리고, 패배가 확정된 직후 대리인과 자리를 바꿔 귀빈실에 앉아 있는 마왕의 얼굴에는 자동적으로 놀라움의 빛이 깃들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
“아…”
이어진 상황에서 그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새로운 장면.
그것은.
용사의 일격에 절반 가량 날아간 경기장 바닥의 모습과 그 중심에서 주저 앉아 있는 엘리사.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앞에서 검을 바로 잡은 채 당당하게 서 있는 용사의 모습이었다.
“최.. 최종 승자는 검은 용사 입니다!”
“우와아아아아!!!”
눈앞의 상황을 파악함과 동시에 울려 퍼지는 심판의 승리 선언.
동시에 경기장 내부에선 우승자의 결정을 축하하는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러한 함성의 중심에서는 마지막까지 강력한 힘을 보여주었던 존재이자, 마족 역사상 최초로 인간 출신으로서 나르실의 자리를 손에 넣은 용사가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엘리사.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셨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군요.”
“그.. 그렇지 않아!미안해 할 필요 같은 건 전혀 없어. 넌 어디 까지나 정정 당당히 겨뤄서 승리한 것이니까. 오히려…”
“오히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 그러니까. 나르실이 된 거 축하해 용사.”
용사의 말에 투구로 가려져 있는 얼굴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엘리사.
그렇게, 얼핏 보면 분한 감정을 억지로 눌러 참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용사를 배려래 주려는 것 같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용사는 다시금 마음 속으로 썩 좋지만은 않은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역시 많이 낙담한 것 같은데… 일반 본인은 괜찮다 하고 있지만 추후에 어떤 식으로든 조금은 달래줄 필요가 있겠어.’
그런 생각과 함께, 용사는 수 많은 이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그대로 엘리사의 손을 붙잡아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의 이런 행동에, 엘리사는 살짝 몸을 떨면서도 그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이어서 용사는 그런 엘리사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마지막 일격에 부상을 입은 그녀를 부축한 채 그대로 대기실로 되돌아 갔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대기실로 이동하는 내내 투구 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사과와 같이 새빨갛게 달아 올라 있던 엘리사의 얼굴을 끝내 눈치채지 못한 채로 말이다.
*
용사의 우승으로 성황리에 종료된 나르실 선별전.
그러나,
경기 자체에 대한 순수한 영향은 용사의 명성이 마왕국 내에 두루 퍼지게 되었다는 것뿐이었으나, 경기 도중에 벌어진 사건의 여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종족 연합의 내부 상황은 서로가 서로에게 대놓고 칼을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것입니까?”
“그 용사MK.2 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벨제뷰티의 물음에 언제나와 같이 ●△●한 얼굴을 한 채 딱딱한 어조로 대답하는 샤뮤엘.
이에 대해서, 벨제뷰티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입가에 자동적으로 미소를 담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전쟁에서 사실상 패전한 이후 종족연합 내부에 큰 분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불과 수 개월 전까지만 해도 서로에 굳건한 동맹으로 맺어져 있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전면전을 벌이게 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이었다.
‘잘 하면… 어쩌면 이 기회를 이용해서 더 큰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비록 전 국토를 수복하는 데에는 성공했다지만 현재 마왕국의 국력은 온전히 내치에만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파괴된 성과 영토를 복구하고, 피난을 떠났던 백성들이 다시금 자리를 잡기까진 못해도 수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그때까지 대외적으로 전쟁과 같은 일을 하기엔 절대로 무리.
그러나…
그런 마왕국의 내부 사정과는 별개로,
지금과 같이 저들이 서로 물고 뜯고를 하고 있는 이 상황에선 국력의 소모를 최소화 하면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고 벨제뷰티는 판단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샤뮤엘, 허면… 보다 자세한 정보들이 나오면 계속해서 보고를 부탁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하여, 그대로 벨제뷰티의 사무실을 떠나는 샤뮤엘.
그 직후, 방안에 홀로 남은 벨제뷰티는 이번에 본토의 종족 연합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이대로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단 말이지. 아무래도 보다 상세한 일을 진행하기 위해선 적들의 영토에 좀 더 쓸만한 첩자들을 보낸 필요가 있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에 대한 계획을 구상하고 이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벨제뷰티.
한편,
그렇게 펜을 놀리고 있던 그녀의 옆에 놓여진 종이에는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는 첩자가 보내온 한가지 소식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벨제뷰티 본인은 그리 신경 쓸 이유가 없었기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내용.
그것은… 전 용사파티의 일원이자,
마도국의 대마녀였던 존재인 슈드라는 자가 갑작스럽게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소식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