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사실대로 이야기했으니 동료들의 목숨만은...
* * *
“으으…”
“큭…”
“제길…”
어마어마한 마력의 폭풍우가 지나간 뒤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세 사람.
비록 간신히 숨이 붙어있긴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상황이 말 그대로 최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순간, 그들은 온 몸은 상처투성이에 체력과 마력은 말 그대로 바닥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정면에서 공격을 막았던 다곤의 경우는 팔다리의 뼈가 부러져 있었으며, 다른 이들 또한 멀쩡한 곳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의 부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이는 적의 공격이 엄청났기 때문도 있었지만, 이쪽의 공격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카운터 당한 탓에 미처 대처를 할 틈이 없었다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이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한 상태로 눈 앞에 있는 검은 용사를 바라보는 세 사람.
그때…
“크윽!...”
“!”
“아아…”
다음 순간 얼굴이 엉망이 된 상태로 그들의 바로 앞쪽에 던져지는 헥토르.
그렇게 마지막 희망까지 사라져 버린 것을 확인하면서, 용사파티의 얼굴에는 짙은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후… 이걸로 끝난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정리하셨군요.”
“용사야말로, 한 두 명도 아니고 세 명을 쓸어버리느라 고생을 많이 한 것이다.”
목숨이 오락가락한 상황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용사파티와는 달리, 여유와 더불어 후련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샤뮤엘과 검은 용사.
그렇게 더 이상 자신들에게는 남은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며 세 사람이 절망에 빠져있던 그때였다.
“큭… 크으윽!...”
“응?”
“아직도 일어설 힘이 남아 있었나?
코와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상황에서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 사람.
헥토르의 모습에, 검은 용사와 샤뮤엘은 약간의 흥미가 담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지? 설마 이 상황에서 계속 싸우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억지로 몸을 바로 세운 헥토르를 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검은 용사.
그러나, 이에 대해서 헥토르는 천천히 고개를 저은 뒤 힘겹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무모한 싸움을 벌일 생각은 없다. 단지, 너희에게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부탁하려는 것이다.”
“자비?”
“그렇다… 보다시피 우리들은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여력 따윈 없다. 순순히 항복을 하겠으며 필요하다면 이들을 이끈 대장인 나의 목숨을 내놓을 테니. 부디… 부디 나의 동료들의 안전만은 보장해 다오.”
“! 헤.. 헥토르!”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건가요!”
“그런 소리 하지 마! 살아도 다같이 살고 죽어도 다 같이 죽어야지!”
고개를 숙인 채 결연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헥토르.
이에 다른 동료들은 자신들을 위해 희생을 하려는 그를 보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으나 헥토르의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이 정도 소란을 일으킨 이상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었으며 헥토르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리를 이끈 리더로서, 이는 당연한 의무이자 소중한 동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후의 희생.
그렇게 눈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 자신의 처분을 맡긴 채 헥토르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였다.
이 뒤에 있는 것이 죽음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지에 대해선 일말의 확신조차 지니지 못한 채.
*
눈앞에서 자비를 청하는 헥토르.
이에 샤뮤엘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한 태도를 내보이며 내게 말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용사? 일단 이들 중 3명을 잡은 것은 너이니 난 네 결정에 따르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놈들은 죽든 살리든 관심 없다는 의사를 내보이는 샤뮤엘.
이에 난 잠시 고민을 한 뒤 일단 눈 앞에 있는 이 헥토르라는 자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헥토르라 했습니까? 일단 처우를 결정하기에 앞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물어보도록 해라.”
나의 말에 약간 고분고분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하는 헥토르.
여기서 대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동료들의 목숨이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만큼, 그는 일단 상당히 순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었다.
“우선 종족 연합에 속해 있던 당신들이 이곳 제루살렘엔 무슨 일이지요? 거기다 그런 소란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건…”
나의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하는 기색을 보이는 헥토르.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난 그가 이곳에 잠입한 이유가 그리 얌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헥토르의 말은 그렇게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던 나의 예상조차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건, 내가 마왕의 목을 취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는 용사이기 때문이다.”
“…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꺼내는 헥토르.
이에 난 순간적으로 원작에서도 나온 적조차 없는 이 녀석이 뭔가 잘못 먹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으나.
이내 따지고 보면 또 그것만큼 이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 용사에 엘프 궁수와 마녀 그리고 수인족 전사까지. 확실히 조합부터가 일단 맞긴 하네.’
아울러 단순히 신분이 들통나기만 해도 위험해 질 수 있는 이곳에 나타나 그런 테러급의 소란을 피운 것만 봐도 이들이 마왕 암살의 사명을 지니고 있는 용사파티라는 일종의 증거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눈 앞에 있는 이자들의 신분과 목적을 인지하게 되면서, 난 방금 전과는 또 사뭇 다른 시선으로 이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용사파티라… 그렇게 따지면 일단 내 후배가 되는 녀석들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절대로 얌전히 넘어가선 안 되는 놈들이라는 소리군.’
마왕을 척살하려는 목적을 지닌 채 종족 연합에서 파견된 존재들.
이는 이 세계에 떨어진 직후 내가 지니고 있던 임무이기도 했지만, 현 시점의 나에게 용사파티는 명확한 적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와 연인 관계를 맺고 있는 마왕의 목숨을 노리고 쳐들어온 녀석들.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내가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는 만큼 난 순간적으로 이 자리에서 이놈들의 목을 날려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충동과 별개로.
난 이들이 용사파티라면 몇 가지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일단 감정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당신들이 용사파티라 이겁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짓을 한 이유가 설명이 되지는 않는군요, 종족 연합이 해산된 이 시점에서 당신들이 이런 무모한 짓을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비록 방금 전 나에게 패하긴 했지만, 이들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각자의 나라에서 인정 받으면서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헥토르만 봐도 군단장인 샤뮤엘과 거의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수준인 만큼, 못해도 팔콘제국의 최고위 용병이나 장군 자리 정도는 쉽게 꿰찰 수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각자의 조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대신,
가능성도 낮고 위험하기 짝이 없으며 이 시점에선 과연 성공한다 해도 환영이나 받을 수 있을지조차 애매해진 마왕의 토벌을 선택했다.
그 사실에 약간의 의문을 느끼면서 난 놈들을 처치하기 전에 질문을 던졌고,
이에 용사 헥토르는 한층 가라앉은 표정을 지은 채 나의 질문에 답을 했다.
단순한 이유가 아닌 현재 사분 오열된 종족연합의 상황과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의지해온 동료들과 헤어지게 되고 심지어 칼을 겨누어야 할지도 모르는 현실에 저항하고자 했던 용사파티.
그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같은 용사파티의 일원이었으나 문제의 그 동료들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마왕 쪽에 붙게 된 상황과 관련해, 아주 조금이지만 아쉬움 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감히 내 여자를 건드리려 든 이 놈들을 처단하겠다는 결심에 대해선 변함이 없었지만 말이다.
*
“…부럽네.”
“?”
최후의 자비를 구하며 한치의 여과도 없는 진실을 이야기한 헥토르.
그런 그를 보면서 검은 용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헥토르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
그러나,
이런 자세한 사실과 별개로 핵토르는 검은 용사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과 관련해 약간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자신들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동료들의 생존 확률 또한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게 자신이 할 말을 모두 털어놓은 헥토르는 눈 앞에 있는 검은 용사의 처분을 기다렸고.
이에 검은 용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려 하였다.
그때…
“응?”
“큭…”
갑작스럽게 그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장면.
그것은 사방에서 몰려와 이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하는 마족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방금 전 시합장에서 보았던 붉은 갑주를 착용한 전사와 함께 도착한 그들.
이에 잘 하면 동료들의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용사파티는 상황이 한층 더 최악으로 떨어졌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저 붉은 갑주가 신고를 해서 병사들을 끌고 온 것 같은데..’
‘제길… 결국 이렇게 되면 우리가 살아나갈 방법 따위는 없다 이건가?’
이렇게 정식으로 병사들이 개입해 버렸으면 더 이상 검은 용사 한 사람의 자비에 기대를 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용사파티는 그대로 짙은 절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편, 그런 그들의 생각과 별개로.
용사파티의 녀석들을 막 몰살 시키려 했던 검은 전사는 갑작스럽게 병사들과 함께 나타나 그의 행동을 제지하는 붉은 갑주.
마왕의 행동에 가벼운 의문을 표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