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거기서 용사가 왜 나와?
* * *
“용사…라니? 거기서 용사가 왜 나와?”
“…응?”
진한 의문이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일라이어스.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심하게 많이 다른 어머니의 반응에 의문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라니? 마마가 좋아하고 있다는 상대가 용사잖아… 아니었어?”
“전혀 아닌데?”
“…엥?...”
엘리사의 의문에 찬 물음에 단호하게 대답을 해주는 일라이어스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한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듯 한 공허함을 느끼며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치 꺼졌던 등불이 다시 켜진 것 같은 느낌으로 정신을 수습하기 시작한 엘리사.
그 직후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의문으로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 일라이어스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저…정말로… 정말로 아닌 거지요? 엄마가 좋아하고 있다는 상대가… 어쩌면 내 아빠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 용사가 아니다… 이거지요?”
“아니라니까. 용사라니… 저 녀석은 내 취향도 아니고 무엇보다 인간이잖니. 비록 지금까지의 동적이 있는 만큼 동족으로서 인정은 해주겠지만 그렇게 진지한 관계를 가질만한 대상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단다.”
“아…”
사실 생각해보면 둘은 서로 진심으로 죽이려 했던 사이이며 거기다 일라이어스는 예전부터 인간이란 존재를 기본적으로 싫어해 왔다.
그런 만큼, 엘리사는 일라이어스가 용사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이것이 더더욱 믿기지 않았으나,
이제와 생각해보면 사실 그 모든 것은 애초부터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하긴… 사실 생각해 보면 이상하긴 했지… 어떻게 마마가 용사하고…’
그렇게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엘리사는 그대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까지 자신이 벌였던 짓들이 너무나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아… 아니 나도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착각을 한 거지? 용사가 마마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 일지 모른다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잖아?’
뇌내 필터가 사라진 이후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자신의 어이 없는 행적들에, 할 수만 있다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엘리사.
그때, 문득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는 다시금 새로운 의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그렇다면 대체 그때 용사가 고백을 한 사람은 누구냐 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저… 마마? 그.. 그럼 대체 누구야? 마마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그 사람은 대체…”
“아… 그… 그건…”
엘리사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방금 전의 그녀 못지 않게 얼굴을 붉히기 시작하는 일라이어스.
그리고 그 직후…
“크윽!...”
“마마?”
다음 순간, 그대로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드는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지는 일라이어스.
방금 전까지 멀쩡히 대화를 하던 그녀의 이런 모습에 엘리사는 순간적으로 조금 상황을 캐묻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나 이내 그녀는 그런 생각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지금 엘리사의 공격으로 인해서 일라이어스의 몸에 나 있는 부상들은 절대로 가볍게 넘길 수준이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이 부상은 단순히 그녀의 오해로 인해서 발생한 것이었다.
당장 그녀의 실수 때문에 어머니가 다친 지금,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것도 웃긴 일.
무엇보다, 어머니의 상대가 용사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이 시점에서, 엘리사는 굳이 어머니가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대상을 억지로 캐묻는 것도 조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자세한 것은 마마가 좋다고 생각되는 시기에 알아서 말해주겠지. 솔직히 누구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게, 일단은 마음을 정리한 뒤 그대로 천천히 경기장에서 내려오는 엘리사.
그 직후, 엘리사의 귓가에는 약간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아무튼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후…”
부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복도를 따라 움직이는 일라이어스.
치명상 까지는 아니었지만 제법 적잖은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그녀는 고통으로 인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제법 아픈걸… 그래도 우리 딸이 그 정도로 성정했다는 점은 기쁘지만...’
그렇게, 온 몸을 욱신거리게 만드는 통증과 별개로 마음 한 켠에선 기쁨의 감정을 느끼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 나가는 일라이어스.
그때…
그런 그녀의 눈 앞에,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그 사람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또 본선에서 탈락하고 만 건가? 이번에야 말로 우승할 거라 호언장담을 하더니 또 이렇게 되어 버렸군. 역시 너하고 나르실은 영 인연이 없는 것 같다.”
“칫…”
언제나처럼 거만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삼손.
이에 일라이어스는 작게 혀를 찬 뒤 그대로 짜증이 담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벌서 200년 전이었지요. 그때 결승전에서 삼손 당신에게 패배할 때 까지만 해도 다음에는 별 어려움 없이 우승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했는데… 결국 이렇게 지긋지긋할 때까지 와버리고 말았군요.”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천천히 벽에다 몸을 기대는 일라이어스.
그 직후,
삼손은 그런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선 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그때만 해도 나 역시 몰랐다. 우리들이 이런 관계가 되리라고는...”
“당시만 해도 전 엄연히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으니 말이지요. 그이가 떠나고 나서도 다음 상대가 당신이 될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했지만…”
평소의 틱틱 거리는 어조가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마치 엉성하게 얽혀 있는 나무집과 같이 어로 간의 미묘하면서도 은근히 단단한 감정을 내보이고 있는 두 사람.
그리고 잠시 후, 삼손은 그대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자신의 옆에 있는 일라이어스의 몸을 가볍게 끌어 당겼다.
“…아픕니다.”
“군단장이라는 사람이 이 정도도 못 견디면 안되지.”
“군단장이 아니라 당신 한 사람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런지요?”
“그럼 도로 놓는 게 좋은가?”
“…그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일라이어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잠시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였다.
누구도 보지 않은 그곳에서.
오직 두 사람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서…
*
시합을 끝내고 대기실로 돌아온 엘리사.
방금 전 비장한 각오를 내보이며 경기장에 올라갔던 것과는 달리,
이 순간 그녀는 마치 현타 라도 온 듯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흐에…..”
“…저… 엘리사? 혹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표정이 왜…”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잠시만 혼자 있게 해줘.”
“아… 네…”
나의 물음에 말 그대로 공허하기 그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는 엘리사.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난 분명 무언가 일이 있긴 있었지만, 그렇다 해서 내가 이를 함부로 신경 쓰면 안되겠다는 느낌을 받으며 일단 자리를 비켜주기로 하였다.
‘뭐… 자세한 건 조금 상태가 풀린 이후에 듣기로 하고, 일단은 난 다음 시합에 대비를 하는 게 먼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의 시선은 막 무기 손질을 끝마친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에게로 향하였다.
붉은 갑주를 착용하고 있는 신원 불명의 존재.
그 직후 그자는 그대로 경기장으로 향하는 통로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그자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마찬가지로 정비를 끝낸 대검을 착용한 뒤 그대로 그 붉은 갑주에게 다가갔다.
“그럼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는 나의 행동.
그리고, 그런 나의 행동에 대해 그 붉은 갑주는 즉시 제자리에 정지한 뒤 그대로 천천히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어서, 나의 인사의 응하듯 그대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그대로 말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붉은 갑주.
그자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난 이번 나의 상대가 여러모로 상당히 과묵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일단 그 뒤를 따라 경기장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서로를 마주보며 나란히 선 나와 붉은 갑주.
이어서, 난 그대로 대검을 손에 쥔 채 눈 앞에 있는 상대를 응시하였으며 그런 나의 행동에 붉은 갑주 역시 장검을 뽑아 들고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아까 인사할 때도 그랬지만 역시 대화 같은 건 할 생각이 없나 보네.’
이 직전에 무언가 대화가 위주가 되었던 엘리사의 시합과는 정 반대의 느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난 그대로 대검에 마력을 불어 넣은 채 그대로 눈 앞에 있는 붉은 갑옷에 대한 일격을 준비하였다.
그때…
“!”
“어?”
다음 순간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척.
그 직후, 나와 붉은 갑주의 시선은 거의 동시에 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과과광!!!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요란한 폭발음.
경기장 외곽에서 들려오는 그 커다란 소리에, 나와 붉은 갑주를 비롯한 그 자리에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의 시선은 그대로 그곳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그때…
“끄아아악!!”
“여.. 여기 침입자가 있다!”
폭발의 정 반대편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목소리.
이에 난 무언가 심각한 일이 발생 했다는 것을 인지하며 그대로 재빠르게 마왕이 위치해 있는 귀빈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제길! 마왕님!”
그때…
“응?”
다음 순간,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나의 손목을 잡는 누군가의 손.
이에 난 그대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즉시 이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자는 나의 상대로 있던 붉은 갑옷.
그런데…
“잠시만, 난 여기 있다용사여.”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