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왜 하필 그 사람인데?
* * *
눈 앞에 보이는 그 사람.
달이라도 베어버릴 것 같은 한 자루의 거대한 낫을 든 채 서 있는 그녀.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언제나처럼 고고한 모습으로 서있는, 더없이 강인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 없는 존재.
동시에,
그녀에게 있어선.
엘리사에게 있어선.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자.
줄곧 동경하는 마음을 지녀 왔던 최후의 목표물.
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엘리사는 그대로 단검을 뽑아 든 뒤, 천천히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그 사람에게로…
그녀의 어머니 일라이어스 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설마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구나 우리 딸.”
“…”
엘리사의 등장과 동시에, 언제나처럼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일라이어스의 모습.
그러나,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엘리사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자세를 잡아 보였다.
“바로 시작할 생각이니? 너무 그렇게 서두르지 마렴,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조급하게 굴었다간 자칫 다칠 수도 있단다.”
“....”
마력을 방출하며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를 보이는 엘리사를 향해 다정함이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일라이어스.
이에 엘리사는 눈 앞에 있는 그녀가 딸인 자신을 상대로 일절 진지함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으며 약간 울컥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
챙!!
한 순간, 몸을 그림자와 동화시킴과 동시에 어마 무시한 속도로 날아드는 엘리사의 일격.
육안으로 보고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속도가 담긴 공격은 그대로 정확하게 일라이어스를 향해 떨어졌으며, 일라이어스는 재빠르게 낫을 움직여 이를 아슬아슬하게 막아 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엄마한테 조금 심한 거 아니니?”
약간의 불만을 담아 이야기를 하는 일라이어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엘리사는 격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대충 할 생각을 하지마 마마 지금 난… 정말로 진지하니까! 반드시… 반드시 마마를 꺾고 그 남자랑 마마 사이를 확실하게 정리하게 만들어 보이겠어!”
“!!”
진심이 담겨 있는 엘리사의 말.
이에 줄 곧 여유가 담겨 있던 일러이어스의 얼굴은 한 순간 당혹감이라는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에… 엘리사? 지… 지금 무슨 말을…”
그 말을 하면서 엘리사의 단검을 막아내고 있던 손의 힘이 살짝 풀리기 시작하는 일라이어스.
그와 동시에,
엘리사는 더욱 감정을 격발시키며 그대로 기세를 몰아 일라이어스를 몰아 붙이며 소리쳤다.
“시치미 때지마! 난 이미 다 알고 있어. 마마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시간이 날대마다 그 남자를 만나러 가서 단 둘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큭!...”
엘리사의 날카로운 말에 더 이상 반박을 하지 못하는 일라이어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막아내도 있던 엘리사의 공격을 밀어내면서,
이어서 여전히 떨리는 시선과 함께 그대로 조심스럽게 엘리사에게 질문을 하였다.
“어… 어떻게.. 알았니?”
“당연히 척 보면 알지! 그렇게 티를 팍팍 내고 다니는데 내가 정말로 모를 거라 생각 했어?”
“…하아…”
엘리사의 말에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일라이어스.
이어서 그녀는, 그대로 손에 담긴 힘을 순식간에 폭발 시키며 그대로 엘리사를 강하게 밀쳐 내었다.
“칫!”
일라이어스의 행동에 일단 살짝 뒤로 물러서는 엘리사.
그 직후.
일라이어스는 그대로 무언가 각오를 다진 듯, 눈 앞에 있는 딸을 보며 한결 침학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변명 따위는 의미 없겠지.”
씁쓸함.
약간의 체념.
그리고 그 안에 깔려 있는 의지와 같은 것이 느껴지는 일라이어스의 태도.
이어서 그녀는, 눈 앞에 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을 바라보며, 결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엄마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진심으로 재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
“!...”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듯한 반응을 내보이며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는 일라이어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엘리사는 자동적으로 마음 한켠에 찌르는 듯한 괴로움을 느끼며,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야… 왜… 왜 하필이면 그 사람 인건데?”
“엘…리사?”
“어째서 그 사람인 거냐고? 솔직히 처음 만난 이래 줄곧 사이도 좋지 않았었잖아! 왜 이제 와서 하필이면 그 사람을 선택한 거냐고? 대체… 대체 왜!!”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듯 소리치는 엘리사.
그와 동시에, 그녀는 감정이 폭주한 듯,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르며 그대로 일라이어스에게 돌격하기 시작했다.
“!”
한 순간 지면의 그림자를 마치 칼날과 같이 세우며 그대로 돌격해 오는 엘리사.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그녀의 새로운 공격 방식에, 일라이어스는 자동적으로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약간 급하게 방어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콰과광!!!
한 순간 들려오는 요란한 폭발음.
마치 수십발의 쇠기둥을 내리 꽂는 것 같은 소음과 충격이 이 일대를 휩쓸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발생한 흙먼지로 인해 그들의 시선은 한 순간 차단되고 말았다.
*
순식간에 격렬하게 변해버린 전투의 현장과, 한 순간 시야를 가리는 자욱한 흙먼지.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을 엘리사가 부탁했던 대로 철저하게 지켜보면서 난 약간의 놀라움과 더불어 의문이라는 감정을 함께 느끼기 시작했다.
‘그림자에 동화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물리적으로 조종하기 까지 하다니… 확실히 이전에 전투를 치렀을 때에 비하면 더 강해진 게 보일 정도이긴 해.’
전투력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칭찬을 해줄 정도로 발전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과 별개로 난 개인적으로 방금 전 전투를 진행하면서 어쩐지 격한 감정을 내보이는 것 같을 엘리사의 모습에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멀어서 소리가 잘 들리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리 봐도 자기 엄마랑 무언가 말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저렇게…’
딸과 엄마가 서로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해 티격티격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티격티격이 이런 국가 규모의 대회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난 저 군단장님과 친위대원 아가씨에 대해 다른 의미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
‘주변 신경 안쓰고 지 할말은 다 하는 스타일이라 이거지? 하긴… 엘리사도 그렇고 일라이어스 도 저 정도로 기가 쌔니가 그 삼손하고 말씨름을 벌일 수 있는 것이겠지만.’
당장 생긴 것부터 산도적처럼 무시무시하게 생긴 삼손을 상대로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의격을 피력해 왔던 일라이어스 였던 만큼, 그녀의 담력은 가녀린 외모와 별개로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난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눈 앞의 흙먼지가 걷히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였다.
“아아…”
다음 순간 나의 옆에서 들려오는 이모티콘… 아니 샤뮤엘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 목소리.
그 직후, 난 그녀의 입에서 왜 그런 이야기가 흘러 나온 것인지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눈앞에 보이고 있는 장면
그것은…
엘리사의 그림자 공격에 몸 곳곳이 꿰 뚫린 채 피를 흘리고 있는.
드러나 동시에.
그런 엉망이 된 몸 상태로 엘리사를 끌아 안아주고 있는.
일라이어스의 모습이었다.
*
“마…마마... 어… 어째서?”
자신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아주고 있는 어머니 일라이어스.
그녀의 이런 행동에,
순간적으로 격정에 휩싸여 공격을 퍼부었던 엘리사는 오히려 진한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찰나의 순간, 엘리사는 보았다.
자신의 공격을 쳐내면서 그대로 공격이 가능한 범위 안까지 파고드는 일라이어스의 모습을 말이다.
‘얼마든지 반격을 가할 수 있었어… 마음만 먹는다면. 오히려 나를 제압하고도 남았을 순간이야. 그런데…’
그러나 마지막 순간, 자신에게 반격을 가하는 대신 그녀의 몸을 끌어안아주는 선택을 한 일라이어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그런 행동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격정에 휩싸여 있던 엘리사는 찬물을 머리에 뒤집어 쓴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엘리사를 보면서.
일라이어스는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잔잔함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싫으니? 이 엄마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게... 그 사람이 우리 딸의 새 아빠가 되는 게...”
“…”
온 몸에 구멍이 뚫려있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딸에 대한 사냥함을 잃지 않은 채 이야기하는 일라이어스.
그녀의 이러한 말은, 마치 화살과 같이 날아와 그대로 엘리사의 가슴에 강하게 박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그런 어머니의 너무나도 강하기 그지 없는 애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그대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싫어… 정말로… 나… 마마가 그 사람이랑 같이 있다는 생각만 해도. 여기가… 가슴이 너무 아파. 왜 하필 그 사람인데… 왜…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 사람을… 용사를 사랑하게 된 건데?”
“…응?”
다음 순간, 엘리사의 말에 일라이어스는 그대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게 되었다.
* * *